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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서킷 디자이너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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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2-18 22:28:08

 이번에는 댓글로 들어온 주제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바로 F1의 서킷을 설계하는 서킷 디자이너에 대한 글입니다. 그럼 출발해 보겠습니다.

 

서킷 디자이너의 기원

 

 초창기의 모터 레이스는 일반 도로를 활용해 순회 코스를 만들어 이용했습니다. (로드 서킷, Road Circuit) 역사학자들이 역사상 최초의 모터 레이스라고 인정하고 있는 1894년 열린 파리-루앵 간 레이스도 일반 도로를 이용했습니다. 그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르망 24시 레이스가 열리는 라 사르트 서킷 (Circuit de La Sarthe)을 들 수 있겠습니다.

 로드 서킷은 기존의 도로를 이용만 하면 되었기 때문에 이렇다 할 복잡한 설계는 필요하지 않았지만 관중들의 흥미를 끌기 위해 적절한 구간을 뽑아내야 했기 때문에 여기에서 서킷 디자이너의 필요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건설된 로드 서킷중 기획자의 이름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곳으로는 스파 프랑코샹 서킷이 있습니다. 현재는 상설 서킷으로 바뀌었지만 초창기의 스파 서킷은 세 마을을 잇는 도로를 이용한 로드 서킷이었습니다. 스파 서킷을 설계한 사람은 쥴스 데 테어 (Jules de Their), 앙리 랭로이스 판 오펨 (Henri Langlois Van Ophem) 두 명의 벨기에 사람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상설 서킷으로 넘어가면 1930년 도닝턴 서킷을 설계했다고 알려진 프레드 크레이너 (Fred Craner)가 있습니다. 도닝턴 공원 내의 산책로를 이용해 크레이너는 5주 만에 서킷을 만들어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Fred Craner

  

 90년대 이전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50년 F1이 출범하면서 모터 스포츠의 인기는 더욱 올라갔습니다. 그 인기와 더불어 전쟁 기간 동안 비행장등 군사 시설로 이용되던 장소들이 버려지게 되면서 이런 공간을 활용해 상설 서킷이 하나 둘씩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대표적인 곳으로는 실버스톤 서킷 (Silverstone Circuit)과 젤트베그 서킷(Zeltweg Air Base)등이 있습니다.

 로드 서킷이나 시가지 서킷과 달리 상설 서킷은 오로지 레이스만을 목적으로 건설되는 곳이기 때문에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상상력을 펼칠 여지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 덕분에 레이서나 엔지니어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서킷 디자이너로 전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가장 많이 알려진 디자이너로는 존 후겐홀츠(John Hugenholtz)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아마추어 모터사이클 레이서였던 후겐홀츠는 1936년 네덜란드 자동차 레이스 클럽 (Nederlandse Auto Race Club)을 설립했습니다. 또한 국제 서킷 연맹 (Internationale de Circuits Permanents)과 Pionier Automobielen Club을 설립해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s Vobes Anciennes (FIVA)의 수장을 역임하기도 헀습니다.

 이런 명성과 더불어 후겐홀츠를 유명하게 만든것은 다수의 F1 서킷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라는 것이었습니다. 후겐홀츠는 다양한 레이아웃을 가진 서킷들을 설계해냈는데 그가 설계한 서킷들은 도전적인 난이도가 혁신적인 특징들로 인해 찬사를 받았습니다. 드라이버의 안전을 위해 캐치 펜스를 여러겹 설치한 안전 구조는 후세에도 영향을 미쳐 2000년대 오벌 서킷의 방호벽에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후겐홀츠가 설계한 F1 서킷들로는 일본의 스즈카 서킷 (1962), 벨기에의 졸더 서킷 (Circuit Zolder, 1963), 독일 호켄하임링의 모토드롬 (지금의 섹터3) 구간 (1965), 스페인의 하라마 서킷 (Circuito del Jarama, 1967), 벨기에의 니벨레스 서킷 (Nivelles-Baulers, 1971)이 있습니다. (잔드부르트 서킷의 디자이너로도 알려져 있지만 새미 데이비스 (Sammy Davis)를 필두로 한 디자인 컨설턴트 업체가 맡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Johannes Bernhardus Theodorus "Hans" Hugenholtz

  

 그러나 후겐홀츠를 제외하면 여전히 서킷 디자이너에게 작업을 맡기기 보다는 건설업체에서 자체적으로 설계까지 도맡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때까지 서킷 디자인은 과학적이기 보다는 하나의 예술로 취급받았습니다.

 이 시기에 알려진 다른 서킷 디자이너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아델레이드 시가지 서킷 - 밥 바나드 (Bob Barnard, 1985)

 쥘 뷜너브 서킷 - 로저 피어트 (Roger Peart, 1978, 이분은 캐나다 모터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습니다.)

 인터라고스 서킷 - 루이즈 로메로 산손 (Luiz Romero Sanson, 1973)

 헝가로링 - 이스트반 팝 (Istvan Papp) & 페렝 굴라시 (Ferenc Gulacsi), 1985 

 (팝과 굴라시는 Magyar Aszfaltépítő Vállalat, 헝가리 아스팔트 건설 회사 소속으로 서킷을 설계했다고 합니다.)

 

 헤르만 틸케의 등장

 

 헤르만 틸케는 청년 시절 뉘르부르크링에서 내구 레이스에서 활동했던 드라이버 출신 엔지니어입니다. (10여년 전까지 뉘르부르크링 주최 레이스에 참가했다고도 합니다.)

 아헨에서 토목 공학 학위를 딴 틸케는 1984년 틸케 엔지니어링 (Tilke Engineering)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됩니다. 그는 토목 공학과 전기 공학의 지식을 이용해 모터 레이싱과 폐기물 처리 분야에 대한 사업을 벌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틸케가 처음으로 서킷 변경 작업을 의뢰받은 것은 뉘르부르크링의 진입로 설계였습니다. 이것은 틸케가 그동안 뉘르부르크링의 레이스에 꾸준히 참가했던 인연으로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F1 서킷 디자인을 의뢰받은 첫 일은 지금은 레드불링으로 불리고 있는 외스터라이히링의 레이아웃 변경 작업이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외스터라이히링의 길이를 대폭 축소하는 일에 집중되었습니다.

 이후 틸케는 후지 스피드웨이, 호켄하임링, 카탈루냐 서킷, 뉘르부르크링 서킷 등의 레이아웃 변경 작업을 맡으며 인지도를 높였고 F1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4명의 트랙 디자이너 중 한명이 되었고 4명의 디자이너 중 사실상 독점으로 F1 서킷 설계 의뢰를 받고 있습니다.

 사실상 1990년대 이후 새로 건설된 F1 서킷은 모두 틸케가 설계한 작품이고 (세팡, 샤키르, 상하이, 이스탄불, 발렌시아, 싱가포르, 아부다비, COTA, 그리고 영암 서킷까지) 내년 시즌 처음으로 선을 보이게 될 하노이 시가지 서킷도 틸케의 설계작입니다.

 그가 설계한 서킷은 안전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지만 인위적으로 레이스카의 밸런스를 시험하는 듯한 레이아웃 때문에 재미없는 레이스를 만드는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 중 한명이 스파 서킷에서 큰 사고를 겪고 나서 서킷 안전에 앞장섰던 잭키 스튜어트라는 점은 아이러니 합니다.

 

 FIA 공식 서킷 디자이너들

 

 앞서 얘기드린 대로 FIA가 공식으로 인정한 서킷 디자이너는 4명입니다. 이들 중 틸케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은 클라이브 보웬, 앨런 윌슨, 론 딕슨 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3명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며 이번 글을 마무리 해볼까 합니다.

 

  •  클라이브 보웬 (Clive Bowen)

 

 보웬은 1997년 에이펙스 서킷 디자인 (Apex Circuit Design Ltd.)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서킷 설계과 이벤트 관리 등 다목적 사업을 벌여왔습니다. 2009년 FIA와 계약을 맺어 FIA Institute Facilities Advisory Partner 자격을 따낸 보웬은 전세계 각지의 서킷을 설계해 왔습니다. 보웬이 설계한 서킷으로는 두바이 오토드롬 (Dubai Autodrome, FIA Grade 1), 아이슬란드 모토파크 (Iceland Motopark, FIA Grade 2) 등이 있습니다. 보웬의 회사는 세팡 인터네셔널 서킷의 개선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  앨런 윌슨 (Alan Wilson)

 

 서킷 디자이너들중 가장 다재다능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이라는 평가를 받는 윌슨은 포뮬러 포드의 코디네이터로 모터 스포츠와의 인연을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 브랜즈 햇치 서킷의 트랙 매니저로 자리를 옮겼고 다음해에는 울턴 파크(Oulton Park), 말로리 파크 (Mallory Park), 스네터튼 (Snetterton)까지 4개 서킷의 매니저를 겸임하게 됩니다. (이 4개의 서킷을 MCD Circuit이라고도 부릅니다.)

 1983년 미국으로 이주한 윌슨은 인디카를 시작으로 IMSA GTP등 각종 카테고리에 참여했습니다.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윌슨은 상설 서킷 뿐만 아니라 시가지 서킷의 설계까지 영역을 넓혀갔고 그의 설계안은 미국의 서킷 건설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기존에 운영하던 윌슨 모터 스포츠를 2008년 그룹에서 분리된 독립회사로 만든 윌슨은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윌슨이 설계한 대표적인 서킷으로는 유타 모터스포츠 캠퍼스 (Utah Motorsports Campus), 서킷 몽트레블랑 (Circuit Mont-Tremblant, 레이아웃 변경에 참여), 그리고 우리나라의 인제 스피디움 (FIA Grade 2)이 있습니다.

 

  •  론 딕슨 (Ron Dickson)

 

 드라이버 출신인 딕슨은 트랙 디자이너로 변신해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2004년 D3 모터스포츠 (D3 Motorsport)라는 회사를 설립한 윌슨은 현재까지 트랙 설계를 비롯한 사업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딕슨이 설계한 대표적인 서킷으로는 F1의 오토드로모 에르마노스 로드리게즈 서킷 (레이아웃 변경에 참여)을 비롯해 푼디도라 공원 서킷 (Fundidora Park), 로킹엄 스피드웨이 (Rockingham Speedway)등이 있습니다.

 

 이것으로 서킷 디자이너에 대한 짧은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저는 다음주 새로운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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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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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2-18 22:42:07

틸케에게는 원죄 수준의 무거운 죄가 있죠.
호켄하임링 어쩔 이제 예전 구간은 걍 잔디밭이던데.
짐 클락 추모비도 풀속에 묻혀가는 중이고요.

몬자도 틸케한테 갔으면 파라볼리카 구간에 이상한 헤어핀이랑 고속코너 네댓개 집어넣는다에 한표 걸 수 있습니다.

2019-12-18 22:45:26

F1 입문자라 모르는 사실인데

혹 자세히 좀 설명해주실수 있으실까요?

1
2019-12-18 22:49:03

https://youtu.be/wk5XrhXx4lY
호켄하임이 몬자에 비견될만큼 고속서킷이었는데.
틸케의 개조 이후에 아무런 개성없는 틸케표 서킷이 되어 버렸습니다.

WR
1
Updated at 2019-12-18 22:54:11

 없어진 구간은 이미 자연으로 돌아갔죠. 

 그러나 틸케보다는 이미 FIA 차원에서 예전부터 서킷에 대해 이런저런 제한을 많이 걸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카테고리지만 라 사르트 서킷의 뮬산 스트레이트도 시케인 2개를 설치하면서 쪼개버렸고 스파도 호켄하임 이전에 대대적인 칼질이 가해졌습니다.

 호켄하임의 사라진 구간은 FIA의 심사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직선 구간이 하나씩 놓고봐도 가이드보다 길었고 전체 길이도 너무 길었기 때문에 수정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2
2019-12-18 22:53:35

그래도 어느 정도의 정체성은 유지 시켜 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호켄하임은 아예 정체성을 잃어버렸을 정도라서..

2
2019-12-18 23:01:38

본래 호켄하임이 이렇게 생겼었군요;;

지도 보니 케로님 방송에서 언급하셨던거 생각나네요

제 기억이 맞다면

여기는 안전도 그런데 저 숲에 들어가는 구간이 너무 길다고

관중들이 현장에서 관람하기에 너무 불편하다고 수정이 불가피 하다고 들었던것 같아요;; 


WR
1
2019-12-18 23:18:37

 아마 그렇게 얘기하셨을 껍니다. 숲속으로 들어가는 구간은 따로 관중석이 없어서 헬기화면이나 온보드, 방송 카메라로 봐야하는 불편함이 있었죠.

WR
1
2019-12-18 23:04:31

 옛날에는 출발선에서 모토드롬에 들어올때까지 시원하게 쭉쭉 뻗어있는 직선 구간뿐이라 보는 맛이 있었죠. 그때 생각하면 지금이 밋밋해진 느낌인건 어쩔수 없네요. 

2
2019-12-18 22:43:29

틸케표 서킷은 너무 그냥 틸케다가 티나서...

WR
2019-12-18 22:51:20

 S자 모양의 고속 코너, 까다로운 저속 코너, 긴 직선 구간등으로 설명되죠. 세팡부터 나오기 시작한 특징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고착화되고 있긴 합니다. 

2
2019-12-18 22:48:04

스파와 실버스톤에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실버스톤은 굉장히 한적한 곳에 있어보이긴 했는데 본래 군용활주로였군요 

틸케는 F1 팬들사이에서는 정말 재미없는 서킷이라고 말이 많더라고요;;


WR
1
2019-12-18 22:58:26

 지금쓰고 있는 스파 서킷은 예전 삼각형 모양 서킷의 밑부분 끄트머리입니다.

 아래 영상은 옛날 스파 서킷을 따라서 달려본 건데 예전에는 정말 길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U9wUCg1lqM

1
2019-12-18 23:02:48

스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서킷인데

본래 상용도로 였던 만큼 규모가 어마무시 했군요;;

WR
1
2019-12-18 23:07:53

 옛날 서킷의 길이가 대충 14km 정도 됩니다. 지금이 7km니까 두배 정도 되겠네요. 사실 다른 옛날 서킷 중에는 25km가 넘는 페스카라 같은 괴물도 있긴 하죠. 

1
2019-12-18 23:08:55

최근에도 한번 바뀌지 않았나요?
어느 순간부터 네임드 코너 중에 버스스탑시케인이 사라졌던데.

WR
Updated at 2019-12-18 23:20:39

 요새는 시케인으로 부르기도 하고 버스스탑 시케인으로 부르기도 하더라고요. 아마 2007년에 시케인 방향이 바뀌면서 이름이 떨어진게 아닐까 싶네요.

1
2019-12-19 15:17:17

가뭄에 단비와도 같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도 틸케 서킷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이번 베트남은 기대해볼만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WR
2019-12-19 20:35:13

 칭찬 감사드립니다.

 세팡이나 모나코 같은 서킷에서 영감을 얻은 코너들을 만들어놨다고 하는데 어떻게 나올지 한번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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