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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2019 미국 GP - 프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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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0-30 23:27:21

 F1 레이스를 보다 보면 팀 라디오로 드라이버와 엔지니어들이 어떤 내용을 주고 받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곤 합니다.

 전체 팀 라디오는 기밀 사항도 있기 때문에 공개되지는 않지만 FOM에서 공개해도 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중계나 F1 앱을 통해 들을수 있습니다.

 어제 웹서핑을 하던 도중에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르끌레르와 팀간의 팀라디오 전체본을 찾았습니다. 

 긴박함이 묻어나는 팀라디오 입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https://www.youtube.com/watch?v=w6MyrHLgKuM

 

 미국 그랑프리

 

  •  역사

 

 미국 그랑프리는 F1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그랑프리 중 하나입니다. 미국의 모터 스포츠 저변과 많은 팬층이 가장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올해 열리는 레이스는 49번째 미국 그랑프리인데 그동안 총 10개의 서킷에서 열렸습니다. 단일 국가의 이름이 붙은 그랑프리로는 기록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 그랑프리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는데 첫 그랑프리는 1908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창기의 이름은 'American Grand Prize' 였습니다. 

 1900년 세계 최초로 열린 모터스포츠 레이스였던 고든 베넷 컵 (Gordon Bennett Cup)을 시작으로 모터스포츠가 태동하기 시작했는데 미국인이었던 윌리엄 키삼 밴더빌트 1세 (William Kissam Vanderbilt I)는 미국의 모터스포츠를 세계에 알릴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에서 열리고 있던 모터 스포츠를 하나의 시리즈로 연결해 '밴더빌트 컵' 이라는 이름의 그랑프리로 만들게 됩니다. 밴더빌트 컵은 많은 관중들을 끌어들였지만 관중 통제 문제로 골머리를 앓으면서 1907년 취소되고 맙니다.

 다음 해인 1908년 미국 자동차 협회는 국제 자동차 협회와 갈라서면서 독자적인 규정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미국 그랑프리에 대한 지원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 그들에게 로드카 레이스가 열리고 있었던 조지아주 사바나의 서킷은 미국 그랑프리를 열기에 알맞은 장소였습니다.

 사바나 서킷은 이를 위해 대대적인 보수를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주지사의 협조로 교도소의 수감된 죄수들을 공사에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레이스에는 관중 통제를 위해 주 의용군까지 동원하면서 운영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사바나 서킷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미국 그랑프리는 밴더빌트 컵과 연계되어 롱아일랜드로 옮겨가게 됩니다. 

 1910년 밴더빌트 컵에서 드라이버가 사망하고 관중들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벌어지면서 미국 그랑프리는 다시 사바나로 옮기게 됩니다. 그러나 사바나 서킷은 행사 진행에 죄수들과 의용군을 동원하는 것에 대해 큰 비난을 받고 있었고 결국 1912년 미국 그랑프리 개최를 포기했고 공개 입찰을 거친 끝에 밀워키 근처의 와와토사 시에 서킷을 새로 건설해 이 곳에서 레이스를 열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밀워키에서 열린 첫 대회에서도 사망 사고가 일어나면서 밀워키는 1년 만에 버려지고 맙니다.

 1913년에는 롱아일랜드의 신청이 거절되고 사바나 클럽에서의 자금지원도 끊겨 미국 그랑프리가 취소되었지만 다음해부터 캘리포니아로 옮겨가게 됩니다. 1914년 산타모니카에 이어 1915년에는 파나마-태평양 국제 박람회와 연계되어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그랑프리가 열리게 됩니다. 당시 1차 세계 대전 중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드라이버들은 미국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916년 산타 모니카에서 미국 그랑프리가 열렸지만 전세계가 1차 세계 대전의 포화에 휘말리던 시기였고 미국에서의 모터스포츠에 대한 인기도 사그러들면서 이 해를 마지막으로 미국 그랑프리는 긴 휴식을 가지게 됩니다.

 그 기간 동안 출범한 인디애나폴리스 500 레이스는 국제 자동차 협회의 그랑프리 규정을 준수하며 유럽과의 연계를 이어나가기 시작했고 1950년과 60년대를 거치며 월드 챔피언십에 포함되기 시작합니다.

 한편 1957년 개장한 리버사이드 국제 경기장 (Riverside International Raceway)은 SCAA (Sports Car Club of America) 네셔널 대회를 열기 시작했는데 다음해부터 USAC 로드 레이싱 챔피언십을 개최하면서 정식으로 미국 그랑프리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합니다. 

 이와 더불어 러시아 출신의 미국인인 알렉 울만 (Alec Ulmann)은 1952년부터 플로리다 주 세브링에 위치한 공항을 개조해 이곳에서 12시간 내구 레이스를 개최하기 시작했습니다. 울만은 이후에도 왓킨스 글렌, 리버사이드 스포츠카 레이스, 포뮬러 리브레로 성공을 거두었고 마침내 1959년 세브링에서 F1 레이스를 개최하게 됩니다. 이 레이스는 'II United States Grand Prix'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펼쳤습니다. 

 다음해 울만은 장소를 리버사이드로 옮겼지만 홍보 부족과 리버사이드의 접근성을 이유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1961년 울만은 미국 그랑프리의 프로모터로 정식으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고 데이토나 국제 스피드웨이 (Daytona International Speedway) 측과 접촉을 가졌지만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8월에 뉴욕 북부에 위치한 왓킨스 글렌 (Watkins Glen) 서킷을 소유하고 있던 카메론 아젯싱어(Cameron Argetsinger)가 서킷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미국 그랑프리는 왓킨스 글렌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이는 신의 한수가 되어 왓킨스 글렌에서 열리는 미국 그랑프리는 대중의 인기를 얻게 되었고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미국 그랑프리를 개최한 서킷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습니다. 호수에 위치한 한적한 서킷은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했고 이때문에 F1 시즌의 마지막 레이스로 열리기도 했습니다. 

 왓킨스 글렌에서 열린 첫해인 1961년 우승을 차지한 이네스 아일랜드 (Inness Ireland)를 시작으로 짐 클락, 그레이엄 힐, 잭키 스튜어트가 번갈아 우승을 차지하며 영국 출신 드라이버들이 1968년까지 8년 연속으로 미국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합니다. 

 1969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요헨 린트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영국 드라이버들의 우승행진을 중단시켰지만 이 해 그레이엄 힐이 큰 사고로 양다리가 골절되는 슬픈 사건도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1970년 우승은 에머슨 피티팔디가 차지했는데 피티팔디는 이 레이스가 자신의 F1 통산 4번째 레이스였습니다. 이 우승은 피티팔디가 소속되어 있던 로터스에게도 뜻깊은 우승이었는데 작년 자신들과 함께 우승을 일궈냈던 린트가 이 해 몬자에서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1971년 왓킨스 글렌은 250만 달러를 들여 서킷을 대대적으로 바꾸게 되는데 기존의 작고 빠른 서킷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난이도 높고 고저차가 심한 서킷으로 탈바꿈 하게 됩니다. 바뀐 서킷은 뱅크 구간을 많이 포함하고 있었고 드라이버들이나 팬들은 서킷에 대해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서킷을 새단장한 첫해인 1971년의 우승은 티렐 팀의 프랑수아 세베르 (Francois Cevert)가 차지했는데 이 우승은 그의 F1 커리어에서 유일한 우승이었습니다. 또한 세베르는 우승 상금으로 267000 달러를 차지했는데 이는 당시까지 F1 역대 가장 큰 우승 상금이었습니다.

 1973년 미국 그랑프리는 역사상 최악의 참사중 하나로 이름을 남기고 말았는데, 당시 티렐 팀 소속이었던 잭키 스튜어트는 아무도 모르게 이 레이스를 끝으로 은퇴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스튜어트의 아내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러나 퀄리파잉에서 팀 동료인 세베르가 끔찍한 사고로 사망하면서 (사고 사진이나 기록이 남아있긴 한데 찾아보시지 않는걸 추천합니다.) 스튜어트와 티렐 팀의 감독이던 켄 티렐이 레이스를 포기하고 F1을 떠나게 됩니다.

 다음해인 1974년에도 불운은 끊이지 않았는데 레이스에서 서티스 팀 소속으로 달리고 있던 헬무트 쾨니그 (Helmut Konigg)가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 사고는 정말x100 찾아보지 않으시길 추천드립니다.) 레이스에서는 카를로스 로이테만 (F1 커리어를 끝내고 정치가가 된걸로 유명한 분입니다.)이 우승을 차지했고 챔피언십에서 동률을 기록하고 있던 피티팔디와 클레이 레가초니는 피티팔디가 5위, 레가초니가 리타이어 하면서 피티팔디가 챔피언을 차지하게 됩니다. 

 1975년 우승은 페라리의 니키 라우다가 차지했는데 팀 동료였던 레가초니는 라우다의 챔피언을 위해 피티팔디를 막아서며 피티팔디의 우승을 저지시킵니다. 레가초니는 레이스 막판 블랙 플래그를 받았는데 당시 팀의 감독이었던 루카 디 몬테제믈로는 이에 격분해 심판과 난투극까지 벌이게 됩니다.

 1976년과 77년은 제임스 헌트가 우승을 차지했는데 76년의 우승은 헌트가 마지막 그랑프리인 일본에서 라우다를 제치고 챔피언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우승이었습니다.

 1978년 대회는 몬자에서 사망한 로니 피터슨을 추모하는 분위기 속에서 치뤄졌습니다. 마리오 안드레티는 레이스 결과에 상관없이 챔피언에 오르는 상황이었지만 리타이어 하면서 페라리 소속이었던 로이테만이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79년에는 쥘 뷜너브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페라리가 2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시기의 왓킨스 글렌은 예전의 인기를 점점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드라이버들은 울퉁불퉁한 노면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했고 팀들은 서킷의 허술한 보안과 시설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서킷의 보안이 허술해지면서 취객들이 서킷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시설에 불을 지르거나 파괴하는 등의 행위를 일삼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1978년 FISA는 왓킨스 글렌 측에 대대적인 개선을 요구했고 1980 시즌에는 미국 그랑프리를 일정에서 제외하기로 했지만 서킷 측에서 개선을 약속하면서 개최시기가 4월에서 10월로 옮겨지게 됩니다.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던 서킷 측은 8월에 겨우 서킷 개선을 위한 자금을 확보했지만 상금과 부대 비용을 포함한 75만 달러에 이르는 대출이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1980년 윌리엄스의 알렌 존스가 우승을 차지하면서 마무리 되었지만 이듬해 정부로부터의 대출이 거부당하면서 미국 그랑프리는 1981년부터 F1 일정에서 제외되고 맙니다.

 한편 왓킨스 글렌 외에도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에서 United States Grand Prix West라는 이름의 F1 그랑프리가 열리고 있었는데 이 대회는 이름을 바꾸면서 1982년부터 88년까지 여러 곳을 거치며 열리게 됩니다.

 1982년부터 88년까지는 디트로이트에서 디트로이트 그랑프리라는 이름으로 열렸는데 주최측은 이 레이스를 정식으로 미국 그랑프리로 격상시키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맙니다.

 미국 그랑프리라는 이름의 F1 레이스는 1989년 부활하게 되는데 피닉스의 시가지 서킷에서 열리게 됩니다. 그러나 피닉스의 더운 날씨로 인해 관람 환경이 열악했고 서킷의 레이아웃도 시가지 서킷의 특성상 저속의 지각 코너로만 이루어져 있어 드라이버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습니다.

 1989년 대회는 디트로이트 그랑프리의 일정을 물려받아 6월에 열렸는데 당시 피닉스의 온도는 섭씨 38도까지 육박하는 상황이었습니다. F1의 수장인 버니 에클스톤은 표가 매진될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정작 피닉스 시 정부는 주민들에게 야외활동을 자제하는 경고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이 해에는 맥라렌의 알랭 프로스트가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1990년부터 미국 그랑프리는 3월로 옮겨졌고 시즌 개막전으로 치뤄졌습니다. 이 해 우승은 맥라렌의 아일톤 세나가 차지했습니다.

 1991년도 시즌 개막전으로 미국 그랑프리는 열렸고 NBA 피닉스 선즈의 홈구장 건설을 위해 서킷 레이아웃이 변경되었습니다. 세나는 이 해에도 우승을 차지하며 맥라렌이 3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나 피닉스 시가지 서킷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었고 결국 FISA는 1992년 미국 그랑프리 취소를 표결에 부쳤고 과반수의 동의를 얻으면서 1992년부터 미국 그랑프리는 F1 일정에서 제외되고 맙니다. 피닉스의 부시장이었던 데이빗 가르시아는 시에서 이미 F1을 위해 130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밝혔지만 F1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1992년 맨하탄, 95년 라스베이거스에서 미국 그랑프리를 개최한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구체화되지 않았고 미국 그랑프리는 다시 한번 긴 휴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2000년 미국 그랑프리는 다시 한번 부활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인디 500 레이스가 열리는 인디애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 (Indianapolis Motor Speedway)에서 열리게 됩니다. 인디애나 시는 피닉스 시절부터 F1 그랑프리를 유치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었는데 1990년 시가지 서킷을 제안한 적도 있었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 서킷은 1마일에 이르는 오벌 구간과 서킷 부지 내의 일반 서킷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2000년 대회에는 무려 225000명의 관중이 몰리면서 최대 규모의 F1 그랑프리로 열렸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서의 첫 대회 우승은 미하엘 슈마허가 차지했습니다.

 2001년 레이스는 9.11 테러가 일어난지 3주 후에 열렸습니다. 드라이버들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헬멧을 준비했고 레이스카에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매세지를 새겼습니다.

 2002년 미국 그랑프리는 레이스 막판까지 선두를 유지하던 루벤스 바리첼로가 팀오더로 슈마허에게 자리를 내주면서 슈마허가 우승을 차지합니다.

 2003년까지 9월에 열리던 미국 그랑프리는 2004년부터 6월로 개최 시기를 옮기면서 캐나다 그랑프리와 시리즈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2005년 미국 그랑프리는 오명으로 얼룩지고 말았는데 현대 F1의 3대 게이트라고 불리는 인디 게이트 (밑에서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가 일어나면서 단 6대의 레이스카만 레이스에 참가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맙니다. 관중들은 그리드에 정렬한 레이스카들과 피트로 들어가는 레이스카들을 향해 일제히 야유를 퍼부었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슈마허가 3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인디 게이트로 인해 미국 그랑프리가 취소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2006년에도 미국 그랑프리는 정상적으로 열렸고 슈마허가 다시 한번 우승을 차지하며 4년 연속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쌓게 됩니다.

 그러나 2007년을 마지막으로 F1과 서킷 측은 더이상 미국 그랑프리를 개최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미국 그랑프리는 F1 일정에서 제외되고 맙니다.

 2009년 미국 그랑프리의 부활 움직임이 있었지만 인디애나폴리스 서킷 측에서는 개최 비용이 부담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시하며 거부 의사를 표시합니다.

 이 해 8월, 버니 에클스톤은 당분간 미국 그랑프리가 열릴 일은 없다며 선을 그었지만 뉴욕에 미국 그랑프리를 유치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2010년 뉴저지의 리버티 스테이트 공원에 시가지 서킷을 조성하려는 계획이 있었지만 폐기되었고 뉴욕 북부에 위치한 몬티첼로 모터 클럽이 미국 그랑프리 유치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2012년, 텍사스 주의 수도인 오스틴 시와 F1, 그리고 프로모터인 Full Throttle Productions 간에 향후 10년 동안 미국 그랑프리를 개최하기로 계약이 성사되면서 미국 그랑프리는 새로 건설되는 서킷인 서킷 오브 아메리카 (Circuit Of The America, 이하 COTA)에서 열리게 됩니다. 서킷의 건설 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미국 그랑프리는 무사히 열렸고 해밀턴이 COTA에서 열린 첫 미국 그랑프리의 우승을 차지합니다.

 COTA에서의 미국 그랑프리는 오스틴 시의 명성, 시민들의 협조, 그리고 특유의 분위기가 맞물려 성공적인 그랑프리로 정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2015년 텍사스 주 정부는 재정 지원 규모를 2500만 달러에서 1900만 달러로 삭감했고 이 해에 허리케인 파트리샤가 텍사스를 휩쓸면서 관중수는 감소하고 맙니다.

 그러나 2016년 미국 그랑프리는 화창한 날씨, 해밀턴과 로스버그의 챔피언십 경쟁, 레이스 전날 열린 테일러 스위프트의 콘서트 덕분에 무려 27만명에 가까운 관중이 몰리며 성공적으로 열리게 됩니다.

 2017년 우승도 해밀턴이 차지했는데 시상식에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등장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콘서트와 함께 열린 이 해의 그랑프리는 전년보다 관중수가 4만명이 증가하며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2018년에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브루노 마스가 콘서트를 열며 관심을 끌었고 라이코넨이 해밀턴의 4년 연속 우승을 저지시킴과 동시에 2013년 호주 그랑프리 이후로 113경기만에 우승을 차지하면서 두번의 우승 사이에 가장 많은 레이스에 출전한 드라이버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  인디 게이트 (Indi Gate)

 

 인디게이트는 팀 기밀을 엔지니어가 고의로 누출시킨 스파이게이트(Spy-gate), 레이스에서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크래시게이트(Crash-gate)와 더불어 현대 F1의 3대 게이트로 꼽히는 악명 높은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때의 F1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는데, F1 팀들은 지금과 달리 타이어 공급 업체를 자유롭게 선택할수 있었습니다. 타이어 공급 업체로는 미쉐린, 브릿지스톤이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F1에 참가하고 있던 팀들 중 르노, 맥라렌, 토요타, 윌리엄스, BAR-혼다 (브론 GP를 거쳐 지금의 메르세데스), 레드불, 자우버는 미쉐린 타이어를 사용하고 있었고 페라리, 조던 (지금의 레이싱포인트), 미나르디 (지금의 토로로쏘)는 브릿지스톤 타이어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레이스 중에는 타이어에 펑쳐가 일어났거나 마모가 너무 심해 레이스를 계속하기에 위험한 상황이 아니라면 타이어 교체가 금지되었는데 이는 슈마허의 독주를 막기위한 F1의 조치였습니다. 

 이 규정은 2005년 라이코넨이 심한 플랫스팟이 난 상황에서 레이스를 계속하다 서스펜션이 부서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플랫스팟이 났을 경우에도 타이어 교체가 가능하도록 수정됩니다.

 2005 시즌 미쉐린은 브릿지스톤보다 나은 성능의 타이어를 선보였고 컨스트럭터 순위에서 브릿지스톤을 사용하던 페라리가 3위, 조던과 미나르디가 9, 10위를 차지하며 결과로도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진행되던 시즌은 미국 그랑프리에 접어들게 되었는데 금요일 프랙티스 세션에서 토요타 팀 소속이었던 랄프 슈마허가 오벌 구간에서 타이어가 터지는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고 슈마허의 자리는 테스트 드라이버였던 리카르도 존타가 대신하게 됩니다.

 다음날 미쉐린은 사고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게 되는데 사고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고 발표하며 의혹을 키우게 됩니다. 미쉐린에서는 다른 사양의 타이어를 긴급 공수해 왔지만 새 타이어 마저도 시즌 초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똑같은 문제를 일으켰던 타이어였던 것이 밝혀지게 됩니다.

 결국 같은날 미쉐린은 FIA의 레이스 디렉터였던 찰리 와이팅에게 편지를 보내, 슈마허의 사고 원인을 파악할수 없음과 동시에 사고 지점에서 10랩 이상 달릴 경우 안전을 보장할수 없다고 밝히게 됩니다.

 와이팅은 미쉐린의 새 타이어와 편지 내용에 당혹감을 표시하면서 사고 지점인 13번 코너에서 드라이버들이 미쉐린이 제안한 제한 속도로 지나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여러 곳에서 제안한 대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해당 지점에 시케인 구간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유력한 방안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브릿지스톤을 사용하는 팀들에게는 이 방법은 불공평한 것이었고 페라리는 이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시합니다.

 결국 페라리의 팀 수석인 장 토트를 제외한 F1과 각팀 수뇌부 모두가 모여 시케인 구간을 설치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회의에 참가하지 않은 토트와 FIA 회장인 막스 모즐리가 반응을 보일 경우 회의를 다시 소집하기로 결정하고 마무리합니다. 엔지니어들은 이에 따라 시케인 구간 설치를 준비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 시간 후 에클스톤은 토트가 시케인 설치에 반대했다고 발표했고 모즐리가 만약 시케인을 설치한다면 미국 그랑프리 뿐만 아니라 FIA가 주관하는 미국의 모든 모터스포츠 대회가 위협을 받을것이라는 얘기를 했다고 밝힙니다. (후에 FIA에서는 모즐리의 발언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을 발표합니다.)

 게다가 모즐리는 시케인 설치가 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빠르게 돌지 못하겠다면 속도를 늦춰서 돌아라.'라는 말도 안되는 지시를 내립니다.

 미쉐린은 결국 13번 코너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는다면 타이어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타이어를 사용하는 팀들에게 레이스에 참가하지 말것을 권유하게 됩니다. 이에 미쉐린 타이어를 쓰는 7팀 모두 레이스를 보이콧한다고 발표했고 FIA는 만약 보이콧이 일어난다면 미쉐린과 보이콧한 팀 모두에게 강력한 재재가 뒤따를 것이라고 위협하게 됩니다.

 일요일 레이스는 예정대로 열렸고 모든 차들이 그리드에 정렬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듯 싶었습니다. 그러나 포메이션 랩이 시작되자 미쉐린 타이어를 쓰는 팀들의 드라이버들이 모두 피트로 들어가버리며 레이스를 포기해버리며 출발 그리드에는 페라리, 조단, 미나르디 팀의 드라이버 6명만 남으며 레이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인디애나폴리스 서킷에 모인 관중들은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사태를 파악하고 각 팀들과 주최측을 향해 거친 야유를 퍼붓기 시작합니다. 쓰레기가 서킷 안으로 날아들 정도로 관중들의 분노는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레이스는 끝까지 진행되었고 슈마허와 바리첼로가 1, 2위를 차지했고 조던의 티아구 몬테로가 3위를 차지하며 F1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포디움에 오르게 됩니다.

 레이스가 끝난후 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조던의 팀 수석인 폴 스토다트 (Paul Stoddart)는 TV 인터뷰에서 욕설을 섞어가며 FIA와 모즐리의 행동을 강력하게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FIA는 레이스를 보이콧했던 7팀과 미쉐린을 청문회에 세웠는데 팀들은 만약 징계를 받는다면 F1에서 철수할 것이라며 FIA를 압박했고 해당 팀들의 드라이버들도 만약 징계가 나온다면 파업을 벌이겠다며 동조하게 됩니다.

 청문회 결과 FIA의 WMSC(World Motor Sports Council)은 이들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FIA 이사회에서 면책 결정을 내리며 징계는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미쉐린은 도의적인 책임을 지기위해 2005년 미국 그랑프리의 티켓을 모두 환불해주고, 2006년 그랑프리의 티켓 2만장을 구입해 무료로 배포한다고 발표합니다.

 이 해를 끝으로 미쉐린은 F1에서 철수하게 되면서 F1은 타이어 독점 계약 체제로 바뀌게 됩니다. 브릿지스톤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F1에 단독으로 타이어를 공급하게 되었고 2011년부터는 피렐리가 이를 이어받아 F1에 타이어를 공급해오고 있습니다.

 미국 그랑프리도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미국 그랑프리가 취소되는 결과로 연결되고 맙니다.

 

  •  서킷 오브 아메리카

 

 

 COTA는 2012년 텍사스 주 오스틴에 건설된 상설 서킷입니다. 서킷의 설계는 헤르만 틸케가 맡았습니다.

 총 길이가 5.513km로 상당히 긴 편에 속하기 때문에 F1 레이스는 56랩을 소화하게 됩니다.

 높낮이 차이가 30.8m로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하고 전형적인 틸케 서킷의 레이아웃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균형잡힌 다운포스를 요구합니다.

 DRS 구간은 홈스트레이트와 11~12번 코너 사이 두 군데에 설치되어 있고 많은 추월이 이 곳에서 일어납니다.

 COTA는 다른 F1 서킷을 따온것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데 1번 코너는 레드불링의 1번 코너를 180도 뒤집은 형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3번부터 9번 코너에 이르는 구간은 실버스톤의 마곳-베켓-채플과 스즈카의 S커브 구간의 영감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섹터 3는 저속 코너와 고속 코너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러 개의 에이팩스를 가지고 있는 16~18번 코너는 베르스타펜이 라이코넨을 추월했던 명장면을 연출한 적도 있고 가끔씩 추월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트랙 레코드는 작년 해밀턴이 세운 1:32.237, 랩 레코드도 작년에 해밀턴이 세운 1:37.392입니다.

 

  •  눈여겨볼 팀과 드라이버

 

 미국 그랑프리에서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팀은 10승의 페라리입니다. 그러나 COTA로 범위를 좁히면 페라리가 거둔 우승은 2018년의 라이코넨이 유일합니다.

 페라리의 뒤를 이어 맥라렌이 8승을 차지했지만 맥라렌도 COTA에서의 우승은 2012년 해밀턴이 유일합니다.

 메르세데스는 5승은 페라리와 맥라렌에 비해 떨어지지만 COTA에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연속으로 우승을 휩쓸었습니다.

 미국 그랑프리에서 가장 강한 드라이버는 트랙 레코드, 랩 레코드, 우승 횟수만 보더라도 답이 바로 나오는데 해밀턴입니다.

 해밀턴은 2007년 인디애나폴리스에서의 우승을 포함해 6승을 미국 그랑프리에서 거뒀는데 메르세데스의 4년 연속 우승을 모두 해밀턴이 일궈낼 정도로 COTA에서 절대 강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미국 그랑프리에서 4포인트 이상을 획득하면 자력으로 챔피언을 확정짓게 되는데 그동안의 모습을 봐서는 99% 결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 같습니다.

 해밀턴을 제외하고 현역 드라이버들 가운데서 미국 그랑프리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경험이 있는 드라이버는 라이코넨, 베텔 두명입니다. 그러나 라이코넨은 올해 우승은 불가능 할것으로 보이고 베텔이 해밀턴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될것으로 보입니다. 베텔은 1승을 포함해 총 4번의 포디움을 미국 그랑프리에서 기록했습니다. (8-2-1-7-3-4-2-4)

 해밀턴의 유일한 챔피언십 경쟁자인 보타스는 이 곳에서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우승도 없거니와 최고 성적도 2014, 2017, 2018년에 거둔 5위가 고작입니다. (8-5-DNF-16-5-5)

 베르스타펜은 보타스보다 낫지만 이 곳에서의 성적이 좋지는 않은 편인데 2018년에 거둔 2위가 최고 성적입니다. (4-DNF-4-2)

 르끌레르는 작년 Q3에 진출하며 9그리드를 차지했지만 31랩째 사고에 휘말리며 리타이어 하고 말았습니다.

 해밀턴, 베텔, 라이코넨, 베르스타펜을 제외하고 이 곳에서 포디움 경험이 있는 드라이버로는 리카르도와 그로장이 있습니다. 리카르도는 두번의 포디움을 제외하면 포인트를 따낸 적은 2015년 10위가 유일할 정도로 널뛰는 성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2년은 레이스카 문제로 레이스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12-11-3-10-3-DNF-DNF) 

 그로장은 로터스 소속이던 2013년 2위를 거뒀지만 하스 소속으로는 2016년 거둔 10위가 최고 성적입니다.

 중위권 드라이버들 가운데 이 곳에서 성적이 좋은 드라이버는 사인츠와 페레즈인데 사인츠는 데뷔 후 4년 연속 (7-6-7-7), 페레즈도 4년 연속에 총 5번 (11-7-DNF-5-8-8-8) 에 걸쳐 포인트를 따냈습니다.

 

  •  2018년 리뷰

 

 해밀턴이 폴포지션을 차지하며 기분좋게 레이스를 시작합니다. 베텔은 퀄리파잉에서 2위를 차지했지만 FP1때 일어난 레드플래그 상황에서 제한 속도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3그리드 패널티를 받아 5그리드로 밀려나고 맙니다. (지난 멕시코에서 베르스타펜이 받았던 패널티와 똑같습니다.) 베르스타펜은 레이스카 문제로 Q2를 포기한데에 이어 기어박스 교체로 패널티까지 받으며 18그리드에서 출발합니다.

 스타트에서 해밀턴이 라이코넨을 안쪽으로 밀어냈지만 라이코넨이 이를 이겨내며 첫 코너에서 라이코넨이 해밀턴을 재치고 선두로 올라섭니다.

 베텔은 첫 랩부터 리카르도와 치열한 배틀을 벌였지만 12번 코너에서 리카르도와 부딪히면서 스핀을 일으키며 작년 내내 이어졌던 지긋지긋한 스핀 악몽에 또 시달리고 맙니다.

 베텔을 이겨내며 순항하는것 같았던 리카르도는 9랩째 레이스카 문제로 리타이어하며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지긋지긋한 불운에 또한번 붙잡히고 맙니다.

 해밀턴은 12랩에 소프트 타이어로 교체하면서 투스탑 전략을 가져갔지만 타이어의 이점에도 불구하고 라이코넨의 방어에 틀어막히며 21랩에 라이코넨이 타이어를 교체할때까지 추월에 실패하고 맙니다.

 첫 랩의 스핀으로 크게 순위가 떨어졌던 베텔은 추월쇼를 펼치며 3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렸지만 마찬가지로 신들린듯한 추월을 선보이며 4위까지 올라온 베르스타펜에게 27랩째에 추월을 허용하며 우승은 라이코넨, 해밀턴, 베르스타펜의 3파전으로 좁혀지게 됩니다.

 40랩째 해밀턴이 두번째 소프트 타이어로 교체하면서 라이코넨-베르스타펜-해밀턴이 1초 내에서 치열한 배틀을 벌이기 시작합니다. 해밀턴은 베르스타펜을 계속 노려보지만 베르스타펜은 해밀턴의 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냈고 라이코넨은 베르스타펜과 간격을 유지하며 선두를 유지합니다.

 레이스 종료를 3랩 남긴 54랩째 해밀턴은 절호의 기회를 잡으며 17번 코너에서 베르스타펜과 휠투휠 배틀을 벌이지만 해밀턴이 코스밖으로 밀려나며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베텔은 55랩째 보타스가 흔들리는 틈을 놓치지 않고 추월에 성공하며 4위까지 순위를 끌어올립니다.

 마지막 힘을 다한 해밀턴은 더이상의 추격을 포기했고 해밀턴을 막아내느라 지친 베르스타펜도 추격을 포기하면서 라이코넨이 2013년 호주 그랑프리 이후 무려 113경기 만에 F1 우승을 차지하며 2018 미국 그랑프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  타이어

 

 이번 미국 그랑프리는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C2 (하드) / C3 (미디엄) / C4 (소프트) 타이어가 사용됩니다.

 드라이버 별 타이어 셋팅은 아래와 같습니다.

 

 

 메르세데스와 페라리가 비슷한 셋팅을 가져온 가운데 메르세데스는 하드 / 미디엄, 페라리는 하드 / 소프트에서 차이를 두었습니다.

 FP2에서 해밀턴, 베텔이 하드 타이어를 테스트 할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르끌레르는 소프트 타이어를 하나 더 준비한 것으로 볼때 투스탑 전략을 가져갈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작년에도 보았듯이 투스탑 전략은 자칫 독이 될수도 있습니다.

 레드불은 미디엄 타이어를 4 세트 준비했는데, FP1과 FP2에서 하나씩 사용한 다음 Q2에 미디엄 타이어를 쓰면서 미디엄-하드의 원스탑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위권에서는 르노가 가장 공격적인 셋팅을 준비했는데 최대한 퀄리파잉에 집중하고 Q3 진출에 실패할 경우 마찬가지로 미디엄-하드의 원스탑 전략을 쓸수 있어 보입니다.

 맥라렌과 레이싱포인트는 모두 하드 타이어를 2 세트 준비했는데, 레이스에서 하드 타이어로 좋은 페이스를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

 

  •  일정

 

 미국 그랑프리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하 우리나라 시간)

 

 FP1 : 토요일 01:00 ~ 02:30

 FP2 : 토요일 05:00 ~ 06:30

 FP3 : 일요일 03:00 ~ 04:00

 퀄리파잉 : 일요일 06:00 ~ 07:00

 레이스 : 월요일 04:10 ~

 

 저는 목요일 F1 소식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8
Comments
1
Updated at 2019-10-29 18:49:25

2005년에 저 문제 터진건 결국 타이어 교체 금지 규정 때문일까요?

이전에도 인디에서 계속 열렸고 그때는 별 문제 없었는데 말이죠.

여하튼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인디게이트는 안그래도 F1이 정치 스포츠인데 그걸 더 부각시킨 대표적인 사례인거 같습니다.

WR
1
2019-10-29 20:01:47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F1에서 쓰이는 타이어들은 옆으로 가해지는 힘에 상당히 취약했습니다. 그런데 인디의 오벌 코너는 특성상 옆으로 가해지는 힘이 일반 코너보다 더 강했습니다.

 그래서 이를 견디지못한 미쉐린 타이어가 터져나갔고 상대적으로 미쉐린보다 횡으로 가해지는 힘에 강했던 브릿지스톤의 타이어는 버틸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때는 제가 F1 뉴비 시절이라 피트로 들어가는 차들을 보면서 '쟤네들 뭥미?'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사건이 아마 F1에서 정치적인 단면이 가장 많이 드러났던 사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
2019-10-29 22:36:30

오벌이 확실히 위험하긴 하네요. 당장 나스카 같은 경우도 타이어 셋업을 좌우 완전 다르게 하겠네요. 가장 유명한 데이토나 500도 반시계 오벌로 도니까 우측 타이어를 정말 단단하게 해놓겠네요. 또 중계 영상을 봐도 그 동네는 타이어 터지는 사고보다 차가 뒤엉키는 사고가 더 많다는...

WR
1
2019-10-29 22:55:05

 Chain Bear 채널에서 인디게이트를 다뤘었네요.

 한번 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mCZk1qUtX8

1
2019-10-29 21:00:39

아니 선생님 도대체 어떤 길을 걸으셨길래 이런 양질의 글을 써주시는 건가요 다시 한번 감탄하고 정독 해봅니다

WR
2019-10-29 21:35:23

 하핫 칭찬에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그랑프리 역사같은 경우에는 영문 위키피디아를 요약한 다음 제가 알고있는 몇가지를 붙이는 정도로 쓰고 있습니다.

 왓킨스 글렌에서 일어난 두 건의 사망 사고는 예전에 유투브에서 F1 관련 영상으로 본적이 있어서 쓰는게 어렵지는 않았네요. 그대신 사고 당시 사진을 보고 트라우마가...

 기록 같은 경우에도 각종 팬사이트나 위키피디아를 참고로 하고 있고 타이어 셋팅 같은 경우에는 그동안 봤던 경험을 기초로 '내가 전략을 짠다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덕분에 저도 하나하나 쓰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1
2019-10-29 23:35:33

늘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이번시즌 후반기에 들어서야 F1을 제대로 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리저리 경기 영상이나 하이라이트 찾아보고 F1 정보를 여기저기서 찾아보고 있는 저에게

베일님 글은 정말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 아니 포틀랜드의 릴라드 같은 존재십니다.

생각치도 못하게 매니아에서 F1에 대한 이런 양질의 글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우면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F1 지식이 정말 대단하신것 같습니다! 저도 F1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을 쌓고 더욱 재미있게 레이스를 즐기고 싶네요!  

 

르클레르는 과거 파릇파릇 했던 베텔마냥 눈여겨 보고 있는 선수인데

몬차에서의 저 레이스는 정말이지..

덕분에 베일님 이탈리아 GP 리뷰글 다시 읽고 왔습니다. 

르클레르에겐 생애 첫 폴투윈이자 페라리 드라이버로서 몬차에서의 우승은 정말 각별했을것 같아요 

저 수많은 티포시들 앞에서 페라리 드라이버로서 맞이하는 폴투윈은 무슨 느낌일까요

더군다나 이때 해밀턴과의 배틀이 참 치열했죠, 레이스 막바지 보타스의 맹추격까지

이미 하위권으로 내려간 베텔, 뒤에는 챔피언과 베테랑 레이서가 추격해오고

정말 정신없었을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아마 르클레르 자신이 늘 꿈꾸던 우승

그 이상이라고 한게 아닐까 싶네요 

다음시즌 고향인 모나코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맞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멕시코에 이어서 해밀턴의 도넛 세레모니는 미국에서 한번 더 보게 될것 같군요

보타스도 힘내길!

WR
2019-10-29 23:48:43

 칭찬이 점점 감당할수 없는 지경으로....아앗...

 저도 아직 많이 알아가는 중입니다. 하하하....

 이탈리아 그랑프리는 F1 레이스 중에서도 특별한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킷에 모이는 티포시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도 대단하고요.

 만약 몬자에서 페라리 드라이버가 우승이라도 한다면 바로 광란의 도가니죠. 

 오래된 역사도 그렇고 팀을 둘러싸고 있는 이런 분위기때문에 드라이버들에게 페라리가 매력적인 팀이 되지 않나 생각되네요. 

 르끌레르가 모나코 그랑프리 우승을 역사상 처음으로 모나코에서 우승하는 모나코 드라이버가 될텐데 또 하나의 기록을 쓸수 있겠네요. 

 보타스는 남은 시즌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만년 세컨 드라이버라는 이미지를 벗어줬으면 좋겠네요. 챔피언십이 해밀턴쪽으로 거의 기울긴 했지만 만에 하나라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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