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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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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2-12 22:11:43

제 인생소설은 영웅문입니다. 중학교때 처음 접해서 책방에서 한권씩 빌려읽다가 날을 세고 대학교때까지 수도 없이 읽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는 안 읽은지 하도 오래되어 디테일한 내용은 거의 기억이 안나지만 등장인물의 다양한 성격들과 그 때 얻은 호연지기의 기상은 아직도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야자시간에 공부하기 싫은데 하는 척이라도 해야할 때 연습장에 항룡십팔장과 암연소혼장을 빼곡히 적으며 놀던 기억도 나네요.

특별히 안 읽게 된 계기는 잘 모르겠지만 새로 나온 양장본이 손에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저에게 영웅문이란 일부는 구처기?, 이부는 소용녀, 삼부는 장무기가 그려진 색이 바랜 낡은 무공비급과도 같은 책이지 번역이 학술적으로 잘 된 이런 역사서같은 느낌이 아니었거든요. 도서관에 가도 아쉬움만 남기고 이게 대체 무슨 영웅문이란 말인가하며 뒤돌아선지 15년 째네요.

어린 시절에 제일 좋아하던 인물은 양과였습니다. 사춘기때여서인지 어이없게도 소용녀에게 사랑에 빠지고요. 오덕이라하기도 그런게 이게 2d조차도 아니거든요. 대체 어떤 이미지로 사랑에 빠졌던 걸까요. 그리고 황약사라던지 황용등 천재에 오만하고 잘난 인물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인생을 살아보니 실제로 저와 친해지거나 제가 존경하게 되는 인물은 곽정 같은 사람이더라고요.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보다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능력이 뛰어나 순간순간 빛이나는 사람보다는 성격이 여일하여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더 신뢰가 가고 마음이 가더군요. 그래도 영웅문의 최애캐릭터는 아이러니하게도 아직도 양과와 황약사구요.

몇일 전 와이프가 세살된 딸이 부끄러움이 많고 소심한 것 같아라고 하길래 저는 진심으로 반대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부끄러움은 많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가족과 친구를 사랑하는 걸 보면 대범한 여장부가 될 거야라고요. 와이프는 소심하지만 결국엔 대범할꺼야라는 말이 잘 이해가 안가는 듯 했고 대화는 내가 장점만 보려하는 팔불출이라는 걸로 마무리 했지만 사실 저에게는 그게 꽤 명확한 이미지로 있었습니다. 아내가 유치하다고 할까봐 말하긴 힘들지만 곽정과 황용부부에 대한 어릴 때 깊숙히 새겨진 이미지가 아무래도 딸도 그렇게 자라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영웅문의 뛰어난 점은 너무도 많지만 여성영웅이 많고 그 빼어난 여성영웅들이 남성의 서브역할이 아닌 메인역할을 수행한다는걸 꼽고 싶습니다. 거기에 어머니로서의 역할, 연인으로서의 감성등 캐릭터의 입체성은 남자들을 오히려 압도하죠. 악역도 마찬가지고요. 이막수는 어떠하며 매초풍도 얼마나 매력적인가요? 아마도 아내와 딸이 접할일은 없는 소설일 수 있겠지만 어제의 아내와의 대화 이후로 이 책이 제 생각의 기저에 미친 영향이 상당히 크구나하는걸 깨닫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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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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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2 22:43:41

저는 영웅문은 재밌게 못 봤는데, 왕가위식으로 각색된 동사서독은 엄청 마음에 들더군요.

1
2019-12-12 23:38:58

영웅문을 다 크고나서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온갖 인간군상이 다 담겨있어서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보면서 기억에 남는 부분은 권선징악은 있지만 개과천선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인간의 성향과 성품이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걸 책보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고나 할까요?ㅎㅎ
김용은 정말 타고난 이야기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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