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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인생 역대 최악의 패배는 장수한테 진 게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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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1-21 20:56:35

지인 중 삼국지 팬인 분들이 많은데, 조조 인생 최대의 패배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말에 다들 적벽대전이나, 아니면 서영한테 당한 패배, 혹은 한중공방전, 아니면 장수한테 당한 패배를 뽑더군요.

 

근데 제 개인적으로 조조 인생 역대 최악의 패배는 장수한테 당한 패배가 아니었나 싶네요. 서영한테 당한 패배야 패배라고 하지만, 그만큼 조조한테 가져다준 게 많았는데 장수한테 당했던 패배는 전위를 잃은 것도 크지만, 장남 조앙이 죽은 게 제일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앙의 죽음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조조 뒤를 이은 인물이 조비라는 점인데, 조앙이 조조의 정실인 정부인의 친자는 아니었지만(조앙의 생모인 유부인이 일찍 세상을 떠나서 자식이 없었던 정부인 밑에서 대신 거두어 자란 케이스), 어쨌든 장자였죠. 사실상 정실 부인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정통성이나, 이런 부분에서 앞서 있었고요.

 

개인적으로 조앙 사후 조위는 정통성 문제에서 꼬이기 시작했던 게 크지 않았나 싶네요. 조앙이 죽었으니 조비가 얼떨결에 장자가 됐지만, 엄연히 따지면 정실부인 소생도 아니었던 데다가 조앙이 살아있었다면 사실상 조비가 조조의 뒤를 이을만한 확실한 명분이 없어졌을 테니까요.

 

또한, 조조가 조비, 조식, 조창 등 변씨의 자식들과 후계자 경쟁을 시키는데, 이 과정에서 조비는 자기가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그리고 또 조조 사후 황제가 되기 위해서 호족들과 강력하게 결탁할 수밖에 없었고요.

 

조조 때인 경우 조조가 호족들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있었지만, 조조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동안 조비를 지지했던 세력들이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죠. 결정적으로 조비는 조식과 같은 친형제들을 심각하게 압박하면서 친족들의 힘이 매우 약했고, 이는 결국 나중에 사마씨가 찬탈하는 후폭풍으로 이어졌고요. 사실상 조앙의 죽음이 위나라가 쇠퇴하기 시작하는 씨앗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스포츠와 역사 모두 만약이라는 가정은 의미없다고 하지만, 만약 조앙이 죽지 않았다면 역사가 완전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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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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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1-21 21:05:15

  호족과의 결탁은 어쩔수 없었습니다. "내가 황제다"그러면 다들 "네 황제폐하 절대 복종하겠습니다"하는게 아니거든요. 중국=한 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이 망했습니다. 그 한을 부흥시키겠다는 명분 하나로 세력을 키운게 유비였구요. 이게 또 어느정도 먹혔죠. 조조(조씨집안)는 그냥 수많은 군벌들 중 가장 군사력이 센 군벌에 불과했습니다. 권위가 없죠. 물론 황제에게 선양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건 그냥 억지라는거 다 알구요. 

 

 

 조씨 집안내에서 적자니 서자니하는 것은 사실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조씨 집안 자체가 황제로써의 절대적 명분이 부족했다는 것이 문제일뿐. 이는 누가 왕이 되어도 마찬가지이고 그 결과가 바로 5호 16국의 대분열이었죠. 

WR
Updated at 2019-11-21 21:06:05

호족과 결탁은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은 저도 인정합니다. 서한 시대 때는 그래도 황권이 강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중국이라는 나라는 너무 거대하기에 이들을 제대로 통제하려면 아무리 강력한 황제라고 해도 결국 호족들과 일부분 결탁할 수밖에 없었죠. 동한을 세운 광무제 역시 호족들과 결탁했고요.

 

동한이 황제들이 단명하고 외척과 환관들의 전횡을 일삼으면서 호족들의 힘이 커졌기 때문에 누가 됐든 호족들과 결탁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다만, 그 호족들을 일부분 통제할 수 있는 힘이나 정통성 부분에서는 조앙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보는데, 조앙 사후 치열해진 후계자 경쟁으로 인해 호족들 간의 결탁이 더 강해진 게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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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1 21:05:17

저는 1위가 역시 적벽... 적벽에서의 패배 아니었으면 '삼국'이라는 말 자체가 안나왔을듯 싶습니다.

그다음이 바로 장수와의 전투 같네요. 중고세탁기님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조비가 형제 정리/호족 키우기한것도 사실이라...

사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저렇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긴 합니다ㅎㅎ

WR
2019-11-21 21:07:52

여담이지만...조비가 이릉대전 때 유비가 패할 것을 예측한 거 보고 소름 돋았는데...왜 정작 자신은 오나라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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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1-21 21:14:16

"위서에 의하면 몸져 누운채 임종을 기다리던 조조는 다른 일은 마음에 걸릴 것이 없지만 정씨의 일만은 후회된다며 죽어서 조앙을 볼 면목이 없다고 "만약에 사람이 죽어서 영혼이라는 것이 있어서, 내 아들 조앙이 '내 어머니는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할지 모르겠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난세의 간웅 조조에게 있어 최악의 패배이기도 하지만, 조조라는 인간, 남편, 아버지라는 카테고리로 봤을 때 더 큰 패배같습니다.

후계구도면에 있어서도 조비에 비해 성격이 원만한 조앙이 있었다면 형제간의 반목이 덜 했을 것 같긴합니다. 조창, 조식과의 갈등에서 정치적 갈등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갈등을 키운게 조비의 성격탓도 있다 생각하고요.

WR
1
2019-11-21 21:09:52

두 번째 문단 정말 잘 표현해주셨네요. 매우 공감합니다.

2
Updated at 2019-11-21 22:33:31

조앙이 살아있었다고 위가 무너지지 않았을까는 모르겠어요

조비의 아들인 조예도 어머니 문제가 있었음에도 충분히 권력을 누리며 하고 싶은만큼 했기도 하구요

사마씨에게 장악당한건 조씨 하후씨 친위세력이 멸망했기 때문인데 조인,조홍,하후돈, 하후연에 비해 후세대가 능력부족한게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조진 사후 이어받은 조상의 능력이 선대에 비하면 형편없었으니까요.

그렇다 해도 조상도 조예가 황제였을때는 별탈 없었기때문에 가장 치명타는 역시 근본없는 혈통인 조방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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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1 23:09:06

 삼국지 연의 가 나옴에 있어 1등 공신인 적벽대전이 위나라의 입장에서 국력적인 측면으로도, 이후의 혼란을 야기한 점으로도 단연코 최대최악의 패배 라고 생각합니다. 적벽에서 조조진영이 신중 했더라면 한방에 통일왕조가 되었을 수도 있고 위진남북조시대가 펼쳐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제갈량이 잡히고 사마家가 종용되지 않았을테니까요. 조비가 친족을 박대한것은 성장시에 받은 트라우마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앙 사망 전에는 조앙이 장자이니 조앙을 좋아했을 것이고 조앙 사망이후에도 조비가 세자가된것은 조조사망 3년전 일이고 조조도 조충과 조식을 더 좋아했다고 전해지죠 그 트라우마는 조식과 조창을 유배보네고 조조의 사망다음해에 고향에가서 축제를 벌일정도로 조조또한 싫어한것을 보아 조비의 괴팍한 성격의 형성은 조조가 그에게 애정을 다하지 않았던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아버지의 세력에 강한 거부감이 있었겠져. 쬬가 죕을 일찍 세자에 봉하고 그에게 사랑을 줬다면 죕이 그렇게까지 삐뚤어진 행보를 보이진 않았을것 같습니다. 사랑을 주지 않을 것이라면 후사로도 보지않아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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