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K5 차주입니다. (부재: 아빠의 선물)
저는 28세 사회 초년생이고 K5 차주입니다.
와 20대 후반에 중형세단 오너라니 성공했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사실 아빠가 사주신겁니다.
지난 3월, 대학원 수료를 앞둔 상태에서 학업을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의 직장을 대상으로 취준을 해봐야지 라는 생각에 막연하게 지원했던 곳에서 감사하게도 합격 소식을 받았습니다. 합격 소식을 전하자 마자 아빠는 정말 기뻐하시면서 저에게 가장 먼저 하셨던 말은 차 사줄께! 였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차를 참 좋아하고 성인이된 후 면허를 따고부터는 운전하는걸 매우 즐겼었지만, 솔직히 단 한 번도 첫 차를 부모님께서 사주실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취직하면 1년 열심히 일해서 선입금 최대한 모아놓고 나머지는 할부로 해서 한대 뽑아야지, 정 안되면 중고로 사야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요, 막상 취직을 하니 저보다도 아빠가 차를 갖고 다니시라고 완전 난리(?)를 피우셨습니다.
사실 여유가 된다면 자식이 차를 사달라고 조르면 부모님이 사주는 경우는 종종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저희 가족은 완전 반대였습니다. 아빠는 하루라도 빨리 계약해서 저에게 차를 사주고싶어 하셨고 그런 아빠를 저는 사회 초년생한테 너무 과하다, 부모님께 손벌려 차 사는 자식이 되고 싶지 않다, 라며 오히려 말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차를 좋아하고 내 차를 운전하면서 쓴다는게 상상만 해도 좋았지만, 100% 부모님의 돈으로 차를 뽑는다는게 저에게는 조금 부끄러운 일로 다가오기까지 했으니까요.
결국 아빠의 고집에 마지못해(?) 넘어간 저는 어쨌든 살거면 결혼하고도 탈 수 있는 중형세단으로 가자는 아빠의 마지막 욕심까지 받아들여 3월 말에 k5를 계약하였고 4월 1일 만우절날 첫 출근 후 일주일이 조금 더 지나서 차 인수받게 되었습니다. 차를 인수받고 저보다 아빠가 더 좋아하셨습니다. 새차라 그런지 정숙성이 좋다라는 소리부터 원래 있던 차보다 새차이니 앞으로 너가 아빠 모시고 다녀라는 농담까지 하시며 참 좋아하셨습니다. 차 인수받고 잘 쓰라고 첫 주유도 직접 해주셨네요.
그리고 거짓말처럼, 차를 운전하기 시작한지 일주일 뒤에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어차피 제 직장에서 오고가는 부근에 아빠 직장이 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내가 모셔다드리고 모시러 가야지 했던 저의 계획들, 엄마아빠 모시고 내 차로 여행가야지 했던 저의 생각들, 차 사면 너도 분명 처음만 그렇지 어느새 더럽게 쓰게 될거다 라고 확신하던 부모님을 항상 깨끗하게 유지되는 차를 보여드리며 틀렸다는걸 증명하겠다는 당찬 포부들이 모두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렇게 아빠는 두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제 차를 얼마 타시지 못한채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차가 저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될 거라는걸 아빠도 아셨나봐요. 왜 그렇게까지 차를 사주시겠다고 고집을 피우셨는지, 이제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한 때 신형 소나타를 살까 고민도 했었는데요, 만약 소나타를 타기로 했다면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차를 못받아 봤을지도 모릅니다. 소나타가 출고되길 기다리다가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상실감에 차를 취소했을 수도 있어요. 그것까지 생각하셔서, 금방 출고가 되는, 내가 당당하게 차 몰고 다니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보고 가실 수 있도록, K5로 사주신걸까요?
그래도 참 다행입니다. 몇 주 차이로, 아빠가 보셨던 제 마지막 모습은 번듯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며 중형세단까지 끌고다니는 사회 초년생이었으니까요. 초라한 모습으로 아빠를 떠나보내지 않은게 참 감사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차에 참 고맙기도 해요. 아빠가 주신 마지막 선물이니, 아끼고 타려고 노력중입니다. 운전할때도 안전하게 매너있게 하려고 더 신경쓰는데, 무개념 운전자들을 보며 욱하는 재 모습을 보면 아직은 멀은 것 같습니다.
요즘 아빠가 참 많이 보고싶습니다. 말로 형용할 수가 없어요.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괴로움을 갖고 살아가야하나 살짝 막막하기도 하고 또 첫 해외출장을 준비중인데, 20년 전 처음으로 미국 출장을 가셨던 아빠의 마음은 어떠셨을지 그냥 문득 궁금해지네요...그때 미국에서 전화하신 아빠에게 여기는 밤인데 거기는 안졸려요? 라고 물어봤던 유치원생의 제 모습이 얼핏 기억이 납니다.
이 글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아빠를 잃은 괴로움에 파묻혀 뒤쳐지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의미로 차를 사주시고 떠나신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또 일터에서 최선을 다하고 인정받고 하다보면 조금씩 앞으로 나가게 되겠죠...? 오늘도 차에 시동을 걸며 아빠를 떠올립니다. 그리고 잘 해낼 수 있다고 암시를 겁니다. 내가 밟는 차의 엑셀 패들이, 차와 더불어 내 삶까지 앞으로 전진시켜주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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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에 뒤쳐지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의미로서 선물해주심이 틀림 없습니다!!
날씨 갑자기 추워졌는데 감기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