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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 리뷰 - 완벽한 광기의 불안전한 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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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0-22 13:47:58
 
 초회차 관람 후 적던 내용에 2회차 관람 후 방향을 재설정해서 덧대서 적었기에 내용이 뒤섞여서 흐름과 가독성이 좋지 못합니다.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DC의 뼈대이자 근본과 같은 두 영웅 슈퍼맨과 배트맨에게는 각각 라이벌 악당이 존재합니다.

슈퍼맨과 랙스루터
배트맨과 조커

 두 영웅의 공통점은 사람의 선한 면을 믿고 선한 선택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준다는 점입니다. 차이점이라면 한명은 희망, 한명은 공포의 아이콘으로써 존재한다는 것이죠.

 반면 랙스루터와 조커의 공통점은 위 아이콘들에게 절대 굴하지 않는 모습과 슈퍼맨과 배트맨의 선함이 가질만한 모순을 영원히 시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두 빌런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바탕이 신념을 갖고 있는 악의인지, 순수한 광기와 혼돈인지 입니다.

 만약 지금 시대에 DC가 조커와 같은 빌런 영화를 제작한다면 렉스루터야 말로 가장 적합한 케릭터가 아닐까 합니다. 그의 재능과 노력, 믿음과 절망에서 나오는 절대적인 악의는 조커가 주는 광기와는 또다른 압도적인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조커보다 더 목적성있고 분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제작은 힘들겠죠. 조커만 해도 이렇게 많은 잡음이 나오는걸요.

 자 이야기가 더 다른 곳으로 빠지기 전에 조커에 대해서 알아보죠.
 제가 어렸을 때 비디오나 티비로 본 배트맨 만화에서 조커는 잡혔다 도망쳤다를 반복하며 배트맨과 고담을 죽이거나 망치고 싶어하지만 배트맨을 위기에서 도와주기도 합니다. "넌 이렇게 쓰러지면 안돼!" 하면서 말이죠.
 배트맨에게도 조커가 가장 큰 위험이라기 보다는 비정상적인 도시인 고담에서 가장 신경쓰고 있는 범죄자 정도입니다. 조커가 사고치기 전에 미리 잡아들이기도 하지만 다른 큰 일이 있을땐 "지금은 너랑 놀아줄 시간이 없어." 하면서 무시하기도 합니다. 조커는 시무룩해하죠.

 조커에게 고담은 가장 좋은 놀이터고 배트맨은 가장 괴롭히며 놀고 싶은 대상입니다. 배트맨에게 고담은 지키며 더 좋게 변화시키고 싶은 가정과 같고 조커는 최고의 말썽꾸러기인 연년생 동생 같은 느낌이죠. 그래서 어떤 에피소드에서는 고담을 아예 파괴하려는 빌런을 상대로 이해가 맞아 둘이 힘을 합친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런 순수한 광기의 산물이자 배트맨에게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로써의 조커를 모르는 분들께서는 아마 잭니콜슨이나 히스레저의 조커, 즉 영화에서 그려진 조커로 이 영화 조커를 기대하셨을거라고 봅니다. 특히 가장 최근인 히스레저가 연기한 놀란감독의 조커일거라고 봅니다.(수어사이드... 수어사이드 스쿼드는... 음... 수어사이드...)

 사실 다크나이트의 조커는 재창조된 케릭터입니다. 단편으로 각색되면서 광기와 신념있는 악의를 모두 갖고 있으며, 결국 영원한 라이벌이자 애증이 아닌 배트맨에게 명확한 딜레마로 존재의미를 주고 죽어서 퇴장하는 빌런이죠. 그래서 방향성을 가진 광기가 절절하게 표현되었죠.
 반대로 말하면 다크나이트의 배트맨 또한 기존 배트맨 케릭터가 각색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야기가 삼천포 가는데 오늘 이야기할 영화 조커는 DC의 단편 영화로 놀란 3부작과는 달리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영화입니다.
 다크나이트를 기준으로 우리가 기대하는 조커와 만화영화의 조커는 큰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스키니한 몸에 클래식한 보라색 정장, 완벽한 광대분장 등 영화 조커의 케릭터는 만화영화의 조커를 꼭 닮았습니다.

 

 그리고 그 조커는 완벽한 광기와 혼돈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이 리뷰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완벽한 광기의 불안전한 잠금'

 

 오래전 만화영화의 조커는 논리적으로나 마음으로 이해가 되는 케릭터가 아닌 순수한 광기와 혼돈의 상징입니다. 거기에 그보단 살짝 삐뚤어진 악의만 있을 뿐이죠. 각 작품별로는 악의의 목적성이 있는 것으로 각색되었을지 모르나 기본적으로는 그마저도 오락가락하는 어디로 튈지 전혀 알 수 없는 빌런입니다.


 그런 빌런의 탄생을 그린다는 이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웠습니다. 마치 트랜스포머 1편을 기다리는 느낌이었습니다.

 트랜스포머1을 보기 전에 '시나리오는 어떨까?', '생각할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는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어처피 오토봇이 이기고 평화, 공존, 화합, 자유는 소중한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영화를 기대하며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언제 변신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습을 보여줄까? 얼마나 사실적으로 변신로봇을 묘사했을까 기대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트랜스포머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은 로봇 변신 영상처럼 조커도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커의 탄생을 영상으로 그려냈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는 절대적 아서 1인칭 시점의 영화입니다. 대부분의 장면은 아서의 시선으로 아서가 느끼는 세상을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그렇기에 사건과 사실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거기서 메시지를 주는 스타일의 영화가 아닙니다. 또 식스센스, 디아더스, 셔터아일랜드처럼 주인공이 느끼고 있는 현실과 다른 영상들을 보여주다가 사실을 밝혀서 반전을 통해 메시지를 주는 영화도 아닙니다. 영화 전체가 주인공이 느끼는 것을 표현한, 현실과 다른 영상들의 집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극도로 비정상적이고 개인적이며, 아닌 것 같지만 현실과 기묘하게 동떨어진 이 영화를 바라보면서 웃음이 부족하면 웃고, 울음이 필요하면 울며, 문제를 제시하고 싶다면 문제를 찾고, 배우만 바라보면 연기에 감탄하고, 몰입이 필요하다면 몰입할 것이며, 잠이 부족하다면 잠들게 될 것입니다.

 이런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 영화를 지금은 높은 작품성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최근에 본 영화로는 영화 기생충이 그랬습니다.
 불과 10년에서 20년 전 매스미디어 전성시대에는 모두가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는 하나의 감정을 주는 것이 미디어적으로 훌륭한 작품이라면, 이제는 이런 다각화된 해석과 감정을 전달하는게 가능한 작품들이 시대적 요구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다시 이야기가 삼천포에서 배를 타고 산으로 가기 전에 비로소 본격적인 영화 조커 리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영화 조커의 초반은 7가지의 약을 먹고 있음에도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힘들어보이는 아서의 정신상태를 다소 객관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서가 7가지 약을 먹고 있기 때문이겠죠. 다만 그 와중에도 TV쇼에 출연하는 망상을 했지만 망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커를 생각하면 너무 정상적인 상태죠. TV에 나오는 멋진 코미디언과 효자가 되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모습이 있으며, 자기연민과 다양한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죠.
 우리가 위에서 이야기한 조커가 이렇게 정상적인가요?

 그런 아서의 정신 상태를 보고 의아함을 느낄때 쯤 터저나오는 웃음을 멈추며 상담실에서 아서는 이야기합니다.
 "제가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했잖아요."
 "아서, 당신은 그렇게 말한적이 없어요."
 아서는 상담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을 뿐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상담사는 모든 대화를 녹취합니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에요. 상담사가 본인의 업무에 대해 태만한게 아닌 이상 아서는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아서의 망상일까?'


 이 영화의 진짜 반전은 이 질문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전 그 경계선을 아래와 같이 설정해봤습니다.

 그 앞의 버스 신에서 아서는 과연 진짜로 그 꼬마를 웃겼을까요? 아서와 꼬마가 클로즈업 되었을 당시에는 꼬마가 웃고 있지만 어머니가 아서를 말리는 장면에서 꼬마의 표정은 좋지 않았습니다.
 만약 아서가 실제로는 꼬마를 괴롭히고 웃으며 병이 있다는 카드를 건낸거라면...

 맨 처음 광고판에 맞았던 광대복장의 아서가 사실 맞고만 있지 않았다면? 아서는 쓰러져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참을 수 없는 웃음이 세어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소식을 들었다는 랜들에 이야기에 마치 아이들일 뿐인데 자신이 잘못했고 과했다는 뉘양스에 이야기를 합니다. 또 그런 뒤에 병원에 가지도 않았고 다시 광대 복장으로 악기점으로 복귀하지도 않았습니다.

 위 가정이 참이라면 아래 내용들도 맞는 말일 것이고 전혀 다른 영화인 조커를 만나실 수 있을겁니다.

 랜들이 아서에게 총을 건낸게 아니라 아서가 총을 구매하려 했다면?
 페니에 대한 사랑, 비교적 정상적인 아서의 감정들도 사실 스스로를 속일 연기라면?
 상담지원은 사실 끊기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망상으로 이유를 만들어 상담에 나가지 않는 것이라면?
 지하철에서 살해된 3명이 화면에서와 달리 아서에게 시비를 걸지 않았다면?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랜들이 아서를 잘 챙겨주었고 게리는 사실 아서에게 잘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위 장면들의 공통점을 아시겠나요?

 아서의 숨길 수 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던 순간들입니다. 아서가 웃음이 터져나올때 환각이나 잘못된 사실을 본다고 가정하는 이유는 두 가지 사례 때문입니다.
 처음으로는 TV를 보며 머레이 쇼에 출연하는 망상을 했을때, 망상이 끝나고 아서는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머레이 쇼에서 아서의 코미디쇼 영상을 보여줄 때 입니다. 아서는 코미디쇼에 올랐을때 첫 실수 후 본인의 코미디가 잘 되었다고 망상합니다. 하지만 머레이 쇼에 나오는 그의 모습은 전혀 달랐죠.

 아서는 자신이 병이 있어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나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망상을 보고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웃음을 참을 수 없는 병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속인 것입니다.

 여기까지 온다면 또 하나 가정을 하나 세워봅시다. 영화가 시작되었을때 폭력적이고 광기에 찬 조커는 이미 완성된 상태고, 영화에서 보여지는 모습들은 조커가 정신병원에서 나오기 위해 메소드 연기를 한 아서 플랙이라는 인격인 겁니다. 아서는 스스로 정신병원에 있을때가 더 나았다고 말하지만 병원에서의 아서는 구속복을 입고 문에 머리를 쳐박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메소드 인격인 아서의 시점으로 조커가 아서의 존재 이유를 하나씩 벗겨나가는 영화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를 보면 대립하거나 동화되어 있는 두 인격을 발견할 수 있는 장치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쓰러진 페니를 태우는 구급차에서 언제 마지막으로 대화했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대답합니다. 아서는 분명 아침에 어머니와 대화했죠. 이와 같이 영화 조커의 여러 대화와 이야기 흐름은 망상과 현실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두서 없이 전달합니다.
 하지만 아서가 접하는 텍스트들은 영상들에 비해 매우 정확하고 틀린 부분 없이 영화를 보는 우리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일기에 적힌 글귀, 신문기사, 페니의 편지, 페니의 의료기록, 패니 사진에 적힌 문장, 거울이나 표어에 적혀진 글귀 등등은 물리적 사실을 유츄할 수 있게 도와주고 결과적으로 아서의 상태 및 생각에 접근하게 해주는 나침판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자, 이 영화는 중요한 장면들에 거울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거울에 비춰진 모습은 그 앞이나 뒤의 연결되는 연기에서 예측되는 주인공의 감정선과는 묘한 위화감이 듭니다. 마치 거울에는 조커가 비춰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서가 비춰져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서가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거울 앞 아서는 입술을 제외한 분장을 완료하죠. 한쪽눈가만 흐르는 눈물로 분장이 번지고 손가락을 억지로 넣고 입을 찢어 웃음과 슬픈표정을 번가라 만들어봅니다.

 

 지하철 살인 이 후 화장실에서 춤을 출때도 양팔을 활짝 벌린 아서의 마무리 동작이 거울에 비치며 화면은 넘어갑니다.

 극장에서 토마스 웨인과의 만남의 마지막에도 웃음을 그치고 거울을 보는 장면으로 마무리 되죠.

 랜들을 죽이기 직전 아서는 거울 앞에서 진중함과 침착함이 느껴지는 단 한가지 표정으로 입 속까지 하얗게 분장합니다.

 머레이쇼 대기실에서 조커는 립스틱에 거울에 웃는 얼굴을 쓰라는 글귀의 거울 앞에 최고의 슈퍼스타처럼 비춰집니다. 이미 이 시점에서 그의 모든 것은 조커죠.

 

 거울과 비슷하게 아서와 조커를 대립시키는 다른 장치는 영상미디어와 TV쇼 입니다.

 

 먼저 머레이쇼 영상에 비춰진 화면 속 코미디클럽의 아서 모습과 스스로가 느낀 모습이 달랐던 부분은 웃음과 망상의 연결고리에서 언급했었습니다.

 첫 머레이쇼를 보며 아서가 봤던 망상에서 머레이는 멋지게 등장하며 춤을 추고 자신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자신이 느끼는 고초와 바른 품성을 공감하고 보듬아주었습니다.
 실제로 머레이 쇼에 출연해서 파격적인 등장과 선을 긋는 머레이의 질문에 대답을 피하며 조커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럴리가 없을탠데 말이죠...
 "제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네요."


 처음 머레이쇼를 보며 아서의 망상이 끝날때 웃음과 표정을 기억하시나요?
 똑같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장면이 또 있습니다. 바로 토마스 웨인을 만나러 영화 극장에 갔을때 찰리체플린의 코미디를 본 아서의 표정이었죠.
 영상 속 눈을 가리고 난간이 없어 낭떠러지가 있는 장소에서 아슬아슬하게 스케이트를 타는 찰리체플린을 보며 아서는 무슨 망상을 했을까요?

 어머니와 함께 TV뉴스에서 총기살인사건에 대해 코맨트하는 토마스웨인을 바라보며 아서는 묘한 웃음과 함께 다리를 떨기 시작합니다.
 상담 장면에서 일기를 보여달라고 했을때 아서는 똑같은 행동을 보입니다. 일기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겠죠?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도 나중에 대사로 나오는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 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머니와 뉴스를 보던 아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마지막 장치는 바로 위에서도 적어 놓은 아서의 반복적인 행동입니다. 똑같아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아서는 비슷한 행동을 반복합니다. 일반적으로 웃고 울고 표정이 나타나듯 그는 행동으로써 숨길 수 없는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만 같습니다.
 다리떨기, 춤, 머리로 벽을 박는 모습, 담배, 다양한 종류의 웃음(저는 4가지의 각각 다르지만 반복된 웃음 형태를 찾았습니다.) 등등 입니다.
 더 있을수도 있기에 직접 찾아보시는 것도 좋은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모두가 의아해하던 엔딩 부분도 설명이 됩니다. 경찰에 의해 체포된 조커는 불타는 세상을 보며 웃음을 참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구급차와의 충돌이 일어나죠.

 '과연 구급차에서 내린 사람은 진짜 광대가면의 시위대였을까요?'

 사실 이제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커가 자신이 보고 싶은 상황을 바라봤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깨어난 조커는 춤을 춥니다. 춤... 앞서서도 우리는 몇번의 춤을 보았죠. 그와 비슷한 춤은 첫 살인 후 화장실에서 춘 춤이죠. 그리고 그 의미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영화가 끝날 순 없습니다. 이것은 엔딩이 아니라 그저 사건의 마침표죠. 그 뒤 나오는 엔딩이야말로 완성된 조커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완벽한 묘사입니다.


 위 내용을 바탕으로 제가 본 영화 조커를 정리하겠습니다.

 영화 조커는 이미 완성된 광기와 혼돈의 인성이지만 잠재되어 있던 조커가 자신의 메소드이자 표면적 인격인 아서의 필요성을 지워가며 세상으로 등장하는 영화 입니다.
 조커가 아서의 인격을 붙잡아주던 어머니와의 유대, 부재된 부성의 회복, 연인의 사랑,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정, 사회구조적 안전망, 친구와의 우정, 타인의 관심과 같은 요소에 개입하고 망상을 이용해 철저히 아서를 무너트려서 비로소 조커로 완성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아서의 인격을 붙잡아 주던 것은 우리들을 붙잡아 주고 있는 요소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커가 정상적으로 표현하고 싶어한 인격인 아서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의 탄생의 당위성 마저 찾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영화를 살펴본다면 어떻게 악인들이 사람의 나약한 부분을 이용하는지, 악인이 자신을 합리화 하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서에게 연민을 느끼고 당위성을 찾았다고 해서 악인이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타인과 스스로에게 더 따듯한 공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겠죠.

 

 그래서 이렇게 마지막 코맨트를 하려고 합니다.

 

 '완벽한 광기 조커와 불안정한 아서 사이에서 보고 싶은걸 보게 만드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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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9-10-22 06:18:05

어제 보고도 이해가 잘 안됐는데 좀 정리가 되네요 아서가 너무 급발진하는거 아닌가 싶은게 한두번이 아니었는데 이제 조금 납득이 되네요

WR
Updated at 2019-10-22 06:43:58
완벽히 이해를 못해서 글도 애매하게 나온 것 같은데 좀 정리가 되셨다니 기쁩니다.
사실 이건 개인적인 감상이고 구멍도 많은 하나의 방향성일 뿐이죠. 누군가에겐 아서의 급발진도 이해가 될 것이고 그대로 감명깊게 봤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해석하기에 따라서 달라지는 작품의 맛을 조금이라도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글을 위해 2회차를 보고 우선 이 글 업로드하기까지 영화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도 즐거웠고 숨겨진 비밀을 찾아서 공개하는 것 같은 짜릿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추천해주시고 댓글 남겨주시는게 더 감사하게 느껴지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Updated at 2019-10-22 06:58:46

맛집 돈까스와 또 다른 맛집 치킨소스를 가져다 돌판 위에 그대로 부어버려서 참신함은 전혀없지만 생각보단 잘 어울렸던 맛.
그렇지만 굳이 돌판에 올리지 않았어도 같은 맛이 나왔을 음식....

WR
Updated at 2019-10-22 07:25:31
재밌는 비유입니다.
저는 목이 좋은 자리를 잡고 유명한 쉐프를 써서 뻔하지만 정통이라는 돈까스를 판매해서 '잘 먹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두번째 먹었을때 '이거 설마 콩고기로 만든 비건 음식인가?' 하고 의문이 드는 상태에서 '이거 콩고기 아닐까요?' 하는 리뷰를 적어 봤습니다.
1
2019-10-22 10:02:03

잘 읽었습니다. 아서의 웃음이 곧 환기의 요소로써 관객에서 몰입에서 나와 사회적 문제점을 생각하게 하는 장치라는 시각은 새롭네요. 확실히 아서의 웃음은 사회적 문제점이 부각되었을 때 나타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작품성 자체는 많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너무 호아킨 피닉스한테 모든 걸 맡겨버린 영화라서 전 거부감이 들더군요. 호아킨 피닉스가 아니였다면,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WR
Updated at 2019-10-22 13:27:11
감사합니다.
 
사실 사회적 문제점 같은 내용이 메인이 아닌 영화라는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수십년간 선의 절대적 대척점에 있는 광기와 혼돈의 상징인 주인공의 입장에서 영화 전체가 주인공이 느끼는 것을 표현한, 현실과 다른 영상들의 집합인 영화입니다.
영화에서 대화와 영상으로 진행되는 사건들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으며, 그것을 알 수 있는 힌트로써 정상적이라면 즐거움과 행복을 표현해야 되는 웃음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지만 그 종류가 정해져있고 그 웃음이 등장하는 사건의 상황을 나눠서 조커의 내면을 표현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유츄해볼 수 있는 요소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사회적 문제점에 관한 입장에서는 그런 의도가 아예 없었다고 보긴 힘드나, 특정 사회문제에 집중한 모습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사회적 뿐만 아니라 개인적, 심리적으로도 아서에게 문제가 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다 영상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조커라는 무결한 광기의 빌런을 완성하기 위해서죠.
또 리뷰에서 적은 가정이 사실이라고 영화를 본다면 오히려 우리는 지금 그런 문제들을 잘 대처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대처들을 잘 유지해야 하며, 위협하는 대상들을 견제 해야된다는 결론까지도 도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영화를 봤습니다.
호아킨의 엄청난 몰입감을 주며 표현된 감정 처리가 다수의 관객을 압도해버렸고 반응을 한쪽으로 몰리게 된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조커가 작품성이 있는 영화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렇듯 사람들에게 보고 싶은걸 보게 해준다는 점에서는 전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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