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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버지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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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19 23:20:34

저는 어렸을 적 친형과 매우 자주 다투곤 했습니다

왕왕 폭력이 오갈 정도로 심하게 다퉜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저희 형제를 꼬옥 1~2분 정도 안도록 하셨고

절대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말씀으로 우리 형제의 잘못을 스스로 자각하게 해주셨죠

할아버지께서 절대 자식들에게 폭력을 하지 않으셨기에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 폭력은 있을 수 없다라는 신념이 있으셨고

저한테까지도 대물림이 되고 있네요(당연한 얘기지만)

 

저는 아버지를 꽤나 존경합니다

아버지 당신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오랜 기간 지켜봐왔으니까요

초딩 때 학교에서 강제로 쓰게 했던 어버이날 편지를 지금까지

거진 20년 동안 가방에 넣어 다니시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께 전 큰 불효자입니다

질풍노도의 시절이라 하나요 답 없던 고2 시절 다음날 학교 가야하는 날에

새벽 3시까지 친구들과 밖에서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깊은 고뇌에 빠지신 듯한 표정으로 거실에 계셨고 그 날 처음으로

아버지께 맞았습니다 야구방망이로 엉덩이 5대..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선합니다

그 시절 맞을 때 반항의 분노가 아닌 제 스스로에 대한 아버지를 실망시켰다는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도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 당신의 신념을 무너뜨릴정도로

제 잘못이 컸다는 걸 인지했으니깐요

 

그 날 아침해가 떠오를 때까지 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정말 정말 힘들게 사셨고(할아버지는 사우디에 건설노동자로 다녀오셨습니다)

어린 아버지께 항상 '너희 부모는 돈 없고 시골에서 자라 못 배워서 힘든 일, 무식한 일

하면서 살지만 너는 더우면 에어컨 트는데서 펜 굴리는 일 해라' 라는 말을

들어오셨고 그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아버지는 공부가 안 될 때

자기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너에 대해 기대가 너무 커서 오히려 너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닌가라며

끝내 스스로를 자책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종종 생각나곤 합니다

 

조직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식들 따순 밥 멕이는게 최고 행복한 일이라 하셨던 아버지는

지금 나이에 무색하게 ppt 워드 등 웬만한 컴퓨터 기술(?)을 통달하고 계십니다

임원이 되신 지금도 제일 먼저 출근하시고 늦게 퇴근하시는 편이라 합니다

 

그런 아버지가 다음주 30여년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십니다

매일 새벽 6시 마야의 나를 외치다를 들으시면서 출근하시던 아버지의 모습도

이제는 못 보겠습니다

부던히도 공부하시고 가정을 위해 단내나게 노력하셨던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 자리에서

직장생활을 마치시고 다음주 퇴사한다하십니다

 

술 한 잔 먹고 아버지와의 추억을 회상하다 가을저녁 바람에 센치해지는 밤입니다

아버지께 술 한 잔 따라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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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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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10-19 23:53:33

제가 커갈 수록 느끼는 것 중 하나가 존경할 수 있는 부모님을 만난 운이 얼마나 제 인생의 큰 운이었나 싶습니다. 어설프게 컸을 때야 당연히 부모에게 잘해야지 싶었는데 더 클 수록 그런 마음이 들게끔 해주는 부모님을 만났기에 그런 당연한 생각을 허게 된 것 같아요.
글쓴 분도 좋은 아버지를 만나셨는데 아마도 지금이 그 분에게 매우 힘든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얼마나 표현하시고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그런 감정을 느끼실 수 있게 표현해 주시면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딱 제 십년 전 얘기 같아서 저도 센치해지네요 ㅋ

WR
2019-10-20 11:24:29

그래도 제 주위 친구들보단 부모님께 더 많이 표현해드렸다고 자부할 순 있으나

 부모님 생각하면 아직도 잘한 것 보단 잘못한 게 더 많은 불효자입니다

1
2019-10-20 00:29:14

 질풍노도의 시기 아버지께 사랑의 매로 맞으며 이유없는 반항심을 가질 수도 있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아버님의 가르침에 글쓴 분도 오히려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오차범위 내의 또래일 확률이 클 것 같은데, 저희 아버지 포함 친구들의 경우를 봐도 저희 아버지 세대에 가부장적인 부분이 강한 분들이 많으시기에,, 저의 경우는 나이를 먹을 수록 본의 아니게 아버지와 척을 지게 됐네요. 저희 아버지도 오랜 시간 회사에 다니시며 고생하신 부분 언제나 안타깝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왔습니다만 집에서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실 때 생겼던 마찰로 인해 그러한 감사한 마음도 전달이 잘 안되는 것 같아 언제나 안타깝습니다. 저도 아버지와 차 한잔 하면서 언젠가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글쓴 분 아버지가 이런 마음 아시면 아주 좋아하실것 같습니다.

WR
2019-10-20 11:25:58

네.. 리플 감사합니다

왕자님의 글이 꽤나 먹먹합니다

사실 저희 또래 아버지들의 경우 아직 가부장적인 마인드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죠..

아버님과 꼭 차 한잔 하시면서 마음 푸셨으면 좋겠습니다

2019-10-20 01:14:54

굉장히 센치해지게 만드는 글이군요. 많이 공감합니다. 아버지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꽃과 작은 성의를 담은 봉투(?) 를 건네주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It's 파뤼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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