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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서사시: 영웅 루스템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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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6 21:53:17


 

일본의 소설가 다나카 요시키의 아르슬란 전기는 페르시아의 대서사시 샤나메의 인물 이름과 몇 가지 설정들을 따와서 만든 작품이다. 이 때문에 아르슬란 전기를 읽어본 사람들이라면 샤나메에 등장하는 일부 인물들의 이름이 해당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과 똑같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대서사시인 샤나메는 어떤 이야기일까. 샤나메는 왕들의 책이라는 뜻으로 서기 977년부터 1010년까지 이란의 시인인 피르다우시가 쓴 방대한 페르시아어 서사시이다. 샤나메는 창세에서 7세기 이슬람의 이란 정복까지의 이란의 신화와 역사를 다룬다.

 

샤나메는 문학적인 가치 이외에도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대부분 순수한 페르시아어로 쓰인 이 작품은 아랍어의 영향을 입은 페르시아어를 되살리는 구심점이 됐다. 또한, 페르시아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 그리고 조로아스터교의 종교적 가치를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또한, 샤나메는 사실상 영웅 루스템의 이야기라고 봐야만 한다. 작품이 진행될수록 샤나메는 루스템을 중심으로 얘기가 진행된다. 샤나메에 얽힌 일화를 전부 다 소개할 수 없기에 일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또한, 다른 나라 신화와 비교하며 어떤 점이 다른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공통점인지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루스템은 페르시아의 영웅인 잘과 뱀 왕 자하크의 후손인 루다베 사이에서 태어난 영웅이다. 루스템이 누구인지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인 잘의 일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잘은 태어났을 때 흰 머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이에 그의 아버지인 사움은 아들을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여겼고, 흰 머리를 불길한 징조라 여겨 아들을 알베르즈 산에다 내다 버렸다. 그런데 잘을 발견한 불사조 시무르그는 그를 둥지로 데려와서 키웠다.

 

이후 사움은 잠을 자다가 꿈을 꿨는데, 아들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를 다시 데려왔다. 이때 시무르그는 자신의 가슴 깃털을 잘에게 주며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그것을 불에 던지라고 말했다.

 

루다베와 결혼한 잘은 아내가 아이를 잉태했으나, 밤낮으로 고통스러워하자 안절부절못했다. 이에 시무르그에게 도움을 요청해 루스템을 낳았다. 루스템은 해산했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루스템은 사자처럼 용맹하게 자랐고 갈고리가 달린 철퇴를 거뜬히 휘두르며 코끼리를 손쉽게 죽이곤 했다. 루스템이 성장하자 그는 그 어떤 말도 감히 몸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비대해졌다. 때마침 전장으로 향하고자 했던 루스템은 자신이 탈 말을 골라야만 했는데, 이때 망아지였던 망아지 라쿠쉬를 만났다.

 

당시 페르시아는 투란과 계속 전쟁을 하고 있었는데, 잘과 루스템은 샤(황제)였던 카이 쿠바드를 섬기고 있었다. 카이 쿠바드가 잘에게 사자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고, 잘은 아들인 루스템을 보냈다.

 

 

'아르슬란 전기'의 쿠바드. 단, 여기에 등장하는 쿠바드는 샤가 아니라 마르즈반(만기장)이다

 

루스템은 여러 지역에서 활약하며 페르시아의 영웅으로 성장했다. 워낙 뛰어난 무력을 가졌던 루스템은 각지에서 전공을 세웠고 페르시아의 수호자로 군림했다. 그리고 카이 쿠바드의 아들인 카이 카우스를 섬기며 가장 강력한 펠리바(대충 영지를 받은 왕, 혹은 영주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가 됐다. 카이 카우스가 잘못된 길로 빠질 때마다 루스템은 그를 위기에서 여러 차례 구해냈다.

 

어느 날 루스템은 잠을 자다가 돌연 불길한 예감이 들어 깼다. 그는 라쿠쉬를 타고 계속 말을 몰아 투란 근처의 황야로 향했는데, 그곳은 바로 사멩간(오늘날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는 길이었다.

 

도중에 사냥을 하다가 지쳐 잠이 든 루스템은 잠에 빠졌는데, 이때 투란의 기사 7명이 나타나 라쿠쉬를 납치했다. 잠에서 깨어난 루스템은 라쿠쉬가 없어진 것을 알아채자 말의 발자국을 따라갔는데, 길을 가다가 사멩간의 왕궁으로 향했다. 루스템의 명성을 익히 들었던 사멩간 왕은 라쿠쉬를 찾을 때까지 자신의 궁전에서 지내자고 권유했고 루스템은 이를 받아들였다.

 

 

'아르슬란 전기'에서 나오는 타흐미네

 

술에 깊게 취한 루스템의 방 안에 한 아름다운 여자가 들어왔는데, 그녀는 바로 사멩간 왕의 딸인 타흐미네였다. 빼어난 외모와 그녀의 지성에 매혹된 루스템은 타흐미네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와 결혼했다. 그리고 라쿠쉬를 되찾아 자신의 영지로 돌아갔다.

 

이때 타흐미네는 루스템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영지로 돌아가는 길이 워낙 험해서 타흐미네는 루스템과 함께 돌아갈 수 없었는데, 이에 루스템은 아내에게 자신의 마노 팔찌를 주며 이 팔찌를 잘 간직했다가 만약 하늘이 그대에게 딸을 주시면 이것으로 그 애의 머리를 묶어 주시오. 그러면 사악함으로부터 그 애를 지켜줄 것이오. 만약 그대가 아들을 얻게 된다면 나처럼 팔목에 이것을 채워 주시오. 그러면 그 애는 네리만처럼 강해질 것이고, 네리만의 아들 사움처럼 키가 클 것이고, 내 아버지 잘처럼 말솜씨가 뛰어날 것이오라고 말했다.

 

루스템이 떠난 이후 타흐미네는 아들을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소랍이었다. 소랍은 아버지 루스템을 닮아서 힘이 장사였다. 그리고 투란의 용장으로 자랐다.

 

장성한 소랍은 루스템을 만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로 쳐들어갔다. 소랍은 적을 무찌를 때마다 루스템을 찾아다녔다.

 

소랍이 페르시아를 상대로 괴력을 발휘하자 샤인 카이 카우스는 급히 루스템을 호출했다. 루스템은 적진을 정찰하기 위해 변장하고 몰래 소랍의 진영으로 향했는데, 이때 타흐미네의 동생인 진데와 마주쳤다.

 

 

진데는 투란의 장수 중 유일하게 루스템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타희미네는 혹시 모를 비극을 막기 위해 루스템을 알고 있는 동생 진데를 보내어 불상사를 막고자 했는데, 당시 루스템이 변장을 하고 있었기에 진데는 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다. 적진을 탐색하다가 진데에게 걸린 루스템은 주먹으로 그를 쳤다. 진데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루스템은 곧바로 자기 진영으로 돌아갔다.

 

한편, 소랍은 후질이라는 페르시아인을 생포했다. 아버지가 전장에 왔는지 궁금했던 소랍은 후질에게 루스템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달라고 부탁했는데, 후질은 소랍이 루스템을 죽일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그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려줬다. 아버지가 전장에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실망한 소랍은 그 자리에서 후질을 죽였고 곧바로 페르시아 진영으로 쳐들어갔다.

 

소랍의 기세에 페르시아 군대는 감히 나서지 못했다. 이에 카이 카우스는 루스템에게 소랍과 맞서 싸우라고 명했다. 루스템은 군대를 이끌고 소랍과 맞서 싸웠다.

 

두 사람은 전장에서 마주쳤다. 루스템을 보자 그가 자신의 아버지가 틀림없음을 직감한 소랍은 자신이 루스템의 아들이라고 말했지만, 루스템은 아들이 이렇게 빨리 전쟁터에 올 수 없다고 착각하며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루스템은 자신은 루스템이 아니며 자신보다 용맹한 사람은 페르시아에 널려 있다고 말하며 소랍에게 겁을 준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눈다. 처음에는 더 젊고 강한 소랍이 아버지인 루스템을 압도했다. 부자(父子)는 사흘 밤낮으로 싸웠는데, 날이 진행될수록 루스템이 밀렸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루스템이 소랍을 내동댕이쳤다. 땅에서 떨어진 소랍은 등이 부러져 치명상을 입었다.

 

 

소랍의 죽음에 통곡하는 루스템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자 소랍은 루스템에게 자신이 군대를 이끌고 페르시아를 친 이유는 어디까지나 아버지인 루스템을 만나고 싶어서였지만, 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고 이렇게 죽으니 한스럽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분명 자신의 복수를 해줄 것이라며 루스템을 만나면 자신이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 모험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달라고 말한다.

 

소랍의 말을 들은 루스템은 그제야 소랍이 정말 자기 아들이었음을 깨달았고 자신이 타흐미네에게 준 증표를 발견했고 통곡했다. 루스템은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카이 카루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샤는 그동안 루스템에게 당했던 굴욕이 떠올라서 그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결국, 소랍은 목숨을 잃는다.

 

루스템은 아들의 죽음 때문에 큰 슬픔에 잠겼고 본인의 영지로 돌아갔다. 소랍의 어머니인 타흐미네 역시 그 소식을 듣자 슬픔에 잠겼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만약 신화나 민담, 혹은 설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보고 나서 고구려 이야기와 그리스 신화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바로 고구려 유리명왕과 아테네의 왕 테세우스 이야기다.

 

유리명왕이 어릴 적 길거리에서 참새를 쏘다가 실수로 물을 길어 가던 부인의 항아리를 깨뜨렸다. 이에 화난 부인은 이 아이가 아비가 없어서 이처럼 논다며 유리명왕을 꾸짖었고 이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그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물어봤다.

 

이에 유리명왕의 어머니는 너의 아버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서 나라에 용납되지 못했다. 그래서 남지(南地)로 도망쳐서 개국(開國)하여 왕을 칭했단다. 떠날 때 내게 말하기를 당신이 아들을 낳으면 내가 남긴 물건이 있는데 그것을 칠각형의 돌 위의 소나무 아래에 감추어 두었다고 말하시오. 만약 이것을 찾는다면 곧 나의 아들임을 알겠소라고 하셨다며 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에 유리명왕은 이 말을 듣고 산에 가서 찾았으나, 해당 증표를 얻지 못하고 지쳐 돌아왔다. 어느 날 아침, 마루 위에 앉아 있다가 기둥과 주춧돌 사이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다가가서 보니 주춧돌이 칠각형이었다. 유리명왕은 기둥 아래를 뒤져서 부러진 칼 한 조각을 찾아냈다.

 

마침내 유리명왕은 그것을 가지고 옥지(屋智), 구추(句鄒), 도조(都祖) 등의 세 사람과 함께 떠나 졸본(卒本)에 이르렀다. 부왕을 만나 부러진 칼을 바쳤다. 동명성왕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부러진 칼을 꺼내어 합쳐 보니 이어져 하나의 칼이 됐다. 이에 동명성왕은 크게 기뻐하고 아들을 태자로 삼았고, 유리명왕은 동명성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의 왕이 된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왕 아이게우스의 아들이다. 아이게우스는 자식을 얻지 못해서 델포이 신전에서 신탁을 받고 돌아오던 중 들른 트로이젠의 왕이자 자신의 친구였던 피테우스의 딸 아이트라와의 동침했다.

 

그 결과 아이트라는 아이게우스의 아들인 테세우스를 잉태했는데, 아이게우스는 훗날 아들이 태어나면 자신에게 보내라고 하며 그 증표를 큰 바위 밑에 숨겨두고 떠났다. 장성한 테세우스는 바위를 거뜬히 들어 올렸고 그 아래 묻혀 있던 칼과 샌들을 꺼내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이게우스는 과거 이아손의 아내였던 마녀 메데이아를 새 아내로 맞아 메도스라는 아들을 두고 있었다. 메데이아는 테세우스를 보자마자 그가 아이게우스의 장자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그가 자신과 아들의 지위에 위협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아이게우스를 설득해 사람들을 해치던 마라톤의 황소를 퇴치하게 시킨다.

 

테세우스가 마라톤의 황소를 퇴치하고 돌아오자 독살을 시도했지만, 이는 테세우스가 아이트라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신의 장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이게우스에 의해 무산됐다. 메데이아는 달아났고 테세우스는 아이게우스의 뒤를 이어 아테네의 왕이 된다.

 

그러나 루스템과 테세우스의 신화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테세우스는 아테네가 크레타에 매년 젊은 남녀를 미노타우루스의 먹이로 바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본인이 직접 크레타로 떠난다. 이때 크레타의 공주인 아드리아네를 꾀한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루스를 죽이고 아테네로 귀향한다.

 

그런데 테세우스는 크레타로 떠나기 전에 아버지인 아이게우스와 약속을 했는데, 자신이 살아서 돌아오면 배에 흰 돛을, 그렇지 않으면 검은 돛을 달기로 했다.

 

아테네로 돌아오다가 이 사실을 잊어버렸던 테세우스는 출항했을 때 사용했던 검은 돛을 단 채로 귀향했는데, 이를 본 아이게우스는 아들이 전사한 것이라 여겼고 슬픔일 이기지 못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루스템과 테세우스의 이야기 모두 부자가 오랜 기간 끝에 재회에 성공했다. 하지만 테세우스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리고 루스템은 아들이 죽이면서 비극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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