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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일본(왜구포함)는 한반도를 714번 침략하였다.(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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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0:30:05



아래에 기술된 내용은


삼국사기고려사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신라 시대 이래로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던 기사 내용입니다.

 


  왜의 침략현황


1) 신라시대 왜구 침략(삼국사기) : 20회


2) 고려시대 왜구 침략(고려사) : 515회


3) 조선시대 왜구 침략(조선왕조실록) : 178 회


4) 일제침략(1910∼1945) : 1 회 



(총 714 회)


 


 『삼국사기』에 기록된 왜의 신라침략 기사

 

남해차차웅 11년 倭人이 병선 100여소를 보내어 해변의 民戶를 노략하므로, 왕은 六部의

精兵을 일으켜서 막게 하였다.(1회)

 

탈해이사금 17년 왜인이 木出島(목출도)를 침노하자, 왕이 角干(각간) 羽烏(우오)를

보내어 막다가 이기지 못하고 우오는 죽었다.(2회)

 

지마이사금 10년 4월 왜인이 東邊(동변)을 침범하였다.(3회)

 

조분이사금 3년 4월 왜인이 갑자기 닥치어 金城(금성)을 에워싸므로, 왕이 친히 나아가

싸우니 적이 潰走(궤주)하는지라, 輕騎(경기)를 보내어 이를 추격하게 하여 1,000여 명을

殺獲(살획)하였다.(4회)
 

유례이사금 4년 4월 왜인이 一禮部(일례부:郡(군) ?)를 습격하여 불을 놓고 사람

1,000명을 사로잡아 갔다.(6회)

 

유례이사금 9년 6월에 왜병이 沙道城을 攻陷(공함)하니, 왕이 一吉飡(일길찬)

大谷(대곡)에게 망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城(성)을 球援(구원), 完復(완복)케 하였다.(7회)

 

유례이사금 11년 여름에 왜병이 長峯城(장봉성)을 공격해 왔으나 이기지 못하였다.(8회)

 

흘해이사금 37년에 왜병이 갑자기 風島(풍도)에 이르러 邊戶[변호:邊方民家(변방민가)]를

抄掠[초략:掠奪(약탈)]하고 또 金城(금성)을 進圍(진위)하여 급히 치므로, 왕이 군사를

내어싸우려 하는데 이벌찬 康世(강세)가 말하기를, "적이 멀리 와 其鋒(기봉)을 당하기

어려우니 천천히 하여 그 군사의 피로함을 기다림만 같지 못하다"하였다. 왕이 옳게 여겨

城門(성문)을 닫고 나오지 아니하니 적은 양식이 다하여 물러가려 하자 강세에게 명하여

勁騎(경기)를 이끌고 추격하여 쫓아 버렸다.(9회)

 

나물이사금 9년 4월에 왜병이 크게 쳐들어왔는데, 왕이 듣고 이를 대적치 못할까 하여,

草偶人(초우인:풀로 만든 사람) 수천을 만들어 옷을 입히고 병기를 지니어 吐含山[토함산:

慶州(경주)] 밑에 벌여 세우고, 용사 1,000명을 斧峴(부현) 東原[동원:지금의

東方里(동방리) ?]에 잠복하여 두었더니, 왜인이 많은 병력만 믿고 곧 진격하여 오는지라,

伏兵(복병)이 발하여 不意(불의)에 적을 치니 왜인이 크게 敗(패)해 달아나자, 이를 추격

하여 거의 다 죽였다.(10회)

 

실성이사금 4년 4월에 왜병이 와서 明活城(명활성:慶州(경주) 東(동), 明活山城

(명활산성)]을 치다가 이기지 못하고 돌아가니, 왕이 騎兵(기병)을 이글고 獨山

[독산:延日郡(연일군) 神光面(신광면)] 남쪽에서 이를 要擊(요격)하여 두 번 싸워

무너뜨리고 300여 명을 살획하였다.(11회)

 

실성이사금 6년 3월에 왜인이 (新羅(신라)의) 동변을 침노하고, 6월에 또 남변을 침노

하여 100명을 奪掠(탈략)하였다.(12회)

 

놀지마립간 15년 4월에 왜병이 동변에 침범해 와서 明活城(명활성)을 에워쌌다가 아무

보람 [功(공)] 없이 물러갔다.(13회)

 

자비마립간 2년 4월 왜인이 兵船(병선) 100여 ?(소)를 이끌어 동변을 습격하고, 내키어

月城(월성:지금의 半月城(반월성)]을 에워싸니 사면에 矢石(시석:화살과 돌)이 비오듯

하는데 王城[왕성:月城(월성)]을 잘 지켜 적이 물러가려 할때 군사를 내어 적을

격파하고 그 뒤를 쫓아 북으로 海口(해구:지금의 浦項(포항) 부근?]에 이르니 저의

익사하는 자가 반을 넘었다.(14회)

 

자비마립간 5년 5월에 왜인이 活開城[활개성:위치 未詳(미상)]을 습격하여 부수구 國人

(국인) 1,000명을 사로잡아 갔다.(15회)

 

자비마립간 6년 2월에 왜인이 감량성 「지금의 梁山(양산)」을 침노하다가 이기지

못하고 물러가니, 왕이 伐智(벌지)와 德智(덕지)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中路(중로)에 숨어 기다리다가 要擊(요격)하게 하여 (왜병을) 크게 깨뜨렸다.  왕은

왜인이 자주 신라의 강역을 침범하므로 綠邊[연해지방]에 두 성을 쌓고, 7월에는 군사를

크게 열병하였다.(16회)

 

소지마립간 5년 5월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였다.(17회)

 

소지마립간 8년 4월에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였다.(18회)

 

소지마립간 19년 4월에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였다.(19회)

 

소지마립간 22년 3월에 왜인이 長峯鎭[慶州(경주) 동쪽 ?]을 攻陷(공함)하였다.(20회)

 


<고려시대>

 

고려시기 최초의 기록 : 고종 10년 5월 "왜구가 김주(김해)를 침구하였다"(21회)

 

고종 10년(1233) ∼충숙왕 100여 년간 10여차 10여곳(31회)

 

1350(충숙왕)부터 본격화, 충정왕 2년 재위 동안만 11회 기록(42회)

→ 가마쿠라 바쿠후가 멸망(1333)과 뒤이은 남북조의 쟁란으로 서부 일본지방의 연해민이

   해적집단화.

 

공민왕 재위 23년 간(1352∼1374) 115회(157회)

 

우왕(1375∼1388) 14년간 378회(535회)

 


<조선시대>

 

* 조선시대 왜구 침임 횟수(조선왕조실록의 기록)

 

태조 -- 38회

정종 -- 3회

태종 -- 45회

세종 -- 18회

문종, 단종, 세조 -- 없음

예종 -- 없음

성종 -- 8회

연산군 -- 8회

중중 -- 31회

인종 -- 없음

명종 -- 20회

선조 -- 7회(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가각 1번씩으로 쳐서)

광해군, 인조, 효종, 숙종, 영조, 정조, 순조, 철종 -- 없음


 

조선시대 총 178회


삼국시대 - 일제침략전까지 총 713회

 

1910-1945 일제침략이 714회째 침이이었음.



 

참고 : 육사 사학과 편, 『한민족전쟁사총론』 교학연구사, 1988, 144∼149쪽.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특이점 고려시대 우왕때는 14년간 378회 공민왕때까지 합치면 37년간 493회....


 

 

장군님이 이런말을 하신 이유가...

 

왜구를 국가적 군벌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있어 제목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그러면 왜구는 711번 일본국가적 군벌로는 3회로 봐야겠군요.

 
이 게시물은 아스카님에 의해 2019-07-21 10:11:21'Fun' 게시판으로 부터 이동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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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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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09:59:34

왜구라는 한 집단의 침입을 일본(왜)이라는 국가의 침입과 병렬적으로 볼 수 있는가는 의문입니다만, 정말 지겨울 정도로 온 건 사실입니다. 오죽하면 명과 조선 정부가 해금 정책을 펴는 이유가 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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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0:21:31

맞습니다. 일본인 해적이 약탈한 것을 일본 국가가 침범했다고는 할 수 없죠. 책임의 문제는 있겠으나 적절하지 않은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거의 매일 중국의 서해 침략을 받고 있는 셈이죠.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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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0:26:32

역사서에 표기될 정도의 침략이라 표기했었습니다. 왜구라고도 따로 표기하도록 수정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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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0:51:47

'일본(왜)'이라는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침략은 사실 백제 부흥 운동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백강 전투가 가장 유명한 전투인데, 부여풍을 지원하기 위해 왜(일본)의 정규군이 원군으로 파견되어 백제부흥군과 왜의 동맹군이 나당연합군과 전투를 벌인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내물마립간 당시 기사의 왜병은 왜군(정규군)의 국지적 침입에 해당합니다. 결국 이를 지원하기 위해 광개토대왕이 원군을 파견했고 가야-왜의 연합군을 박살내면서 신라가 고구려 영향권에 편입되거든요. 저 당시 왜인의 표현은 그 정권과 왜구라는 무력 집단이 혼재되어 사용되어있습니다. 그걸 일본서기 등의 사료와 교차 검증하여 성격을 규명하는게 사학자가 하는 일의 하나겠구요.
워낙 왜구라는 집단의 성격이 복잡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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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0:04:17

펀게에 어울리지 않는 게시물입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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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0:16:35

다행히 옮겨주셨네요.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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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7-21 10:21:18

피드백주셔서 아주 감사합니다. 늘 펀게 올려주시는 글 잘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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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21 10:34:22

마치 분단이후 북한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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