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놈은 운좋은 놈을 이길 수 없다
옛날에 과외 알바를 하던 시절에, 수업을 갔더니 과외돌이가 투덜대면서 학교에서 들었던 강연 얘기를 해줬던 적이 있습니다. 아마 성공한 졸업생 불러서 그냥 좋은얘기 해주는.. 뭐 그런 종류의 강연이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는 거죠.
"천재는 노력하는 놈을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놈은 즐기는 놈을 이길 수 없고, 즐기는 놈은 운좋은 놈을 이길 수 없다. 운 좋은 놈이 되어라!."
아니 이게 애들한테 할소리냐면서 궁시렁대더라구요. 그 자리에서는 그냥 웃어 넘기고 말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많은 일들을 겪고 다른 분들께 조언도 들으면서 저 운 좋은 놈이 되라는 말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못해도 1년에 한번은 세계적인 석학들의 세미나를 들을 일이 있었습니다. 원한다면 세미나와 세미나 사이의 쉬는 시간에 개인적인 질문을 할 수도 있었구요. 그런 상황에서 만약 제가 그런 사람들에게 세미나 중에 아주 좋은 질문을 할 능력이 있었다면, 쉬는 시간에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제 연구 관련된 이야기를 물어볼 용기가 있었다면, 그래서 그 사람에게 충분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면, 그 사람과 함께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실재로 그런식으로 여러 사람들과 일을 같이 하는 친구들도 없지 않구요. 저는 이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운이 좋았다구요. 세미나에서 만나 질문 몇번 한 인연으로 그런 사람과 연구를 같이 하게 되다니, 얼마나 운이 좋냐구요.
제 스스로 저런 기회를 잡을 능력은 없었지만, 그래도 지도교수님의 인연으로 아주 유명한 사람과 같이 일을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영국 출신의 노교수인데, 능력이 매우 좋기로도 유명하지만 자기가 보기에 아닌 것 같으면 가차없이 물어뜯기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제가 하는 분야를 아주 싫어합니다. 정말로요. 제 지도교수님도 그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세미나를 하실 때면 항상 곤혹스러워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도교수님께서 그 사람이 있는 학교에 연이 있으셨고, 그 인연으로 제가 그 학교로 파견 비슷하게 장기간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첫 2주동안 지도교수님이 같이 오셔서 어떤 주제로 연구를 할지 여러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누셨고, 그 중에 제 분야를 싫어하는 그 교수가, 제가 하는 주제에 관심이 있다는 말을 하면서 그 사람과 제가 연구를 같이 하게 된거죠.
처음 한달..정도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제 분야가 일하는 방식 자체를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했기 때문에 아주 의심이 많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검증해보고 싶어했습니다. 혼도 많이 났...다기 보다는, 그냥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하는게 맞을 정도였구요. 그래도 어쨋든 공부도 하고 다른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도 보면서, 그 사람이 요구했던 사항들을 전부 검증해줬고 일부는 그 사람이 틀렸다는걸 설득해내기도 했습니다. 방문 기간은 그러느라 거의 다 지나갔지만, 여튼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는지 한국에 돌아와서도 꾸준히 연락하면서 연구를 진행해 논문도 같이 썼습니다.
그리고 졸업할 때가 되어 박사후 연구원 자리를 알아보면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그 사람에게 추천서를 부탁했는데.. 정말 흔쾌히 수락해주었습니다. 저는 그 추천서를 보지 못했기에 얼마나 잘 써줬는지는 알 수 없으나, 논문 실적이 매우 빈약한 제가 박사후 연구원 경력을 해외의 좋은 그룹에서 시작할 수 있었던 데에는 아마 그 사람의 추천서가 많은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있는 그룹의 리더도 그 사람이 이 분야를 싫어한다는걸 잘 아는 사람이니까요.
그 사람과 같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제 능력과 상관 없는 지도교수님의 인연이었고, 당연하지만 제가 지도교수님을 선택할 때 이런 일을 내다보고 선택한 것도 아니였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운이 참 좋았어요. 그래도 지도교수님이나 주변 분들은 여하튼 니가 잘했으니 기회를 잘 잡은거라고 이야기하시더군요.
매순간 수많은 기회들이 우리를 스쳐지나가고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각자의 능력에 따라, 보는 눈에 따라 그 기회들 중 얼마나 알아보고 실재로 잡아낼 수 있느냐가 결정이 될 것입니다, 결국 그 강연에서 연사분이 했던, "운좋은 놈이 되어라" 라는 말은, 계속 노력해서 매 순간 지나가는 기회들을 알아볼 눈을 기르고 그 기회들을 잡아낼 수 있는 능력을 기르라는 이야기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능력이 부족해 저 정도의 기회밖에 알아보지 못하고 저 정도의 기회밖에 잡지 못했지만, 제가 보지 못한 수많은 기회들이 스쳐지나갔을 것입니다. 보는 눈이 좋고 능력이 좋을수록, 그 스쳐지나가는 기회들 중 더 많은 기회들을 잡을 수 있게 되고, 결국 더 운좋은 놈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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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놈이 운좋은 놈을 이길수는 없더라도 운좋은놈보다 행복할 수는 있겠죠. 즐기고 있으니까요. 인생이 스포츠는 아닌것 같습니다. 옳고그름이 어디있고 승패가 어디있습니까. 선택하고 책임지는거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