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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과 신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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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7 00:38:31

 아래에 올라온 결혼 앞둔 분의 글을 보고,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저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의 첫 결혼식 주례는 지금부터 날짜까지 정확히 13년 전인 2006년 6월 27일에 있었습니다. 당시 주례를 맡기에는 너무도 어린 나이여서 극구 사양했지만 신랑과 신부 모두 대학원 지도학생이었기에 결국은 피하지 못하고 결혼식 날 단상에 올랐습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모두 합쳐서 28번의 결혼식 주례를 맡았습니다. 주변에 저보다 훨씬 연세 많은 분들까지 포함해도 압도적으로 많은 주례 횟수입니다.

 

그동안 맡았던 모든 주례에서 신랑은 저의 학교 제자였습니다. 대부분 제가 속한 학과의 졸업생이었지만 가끔씩 타과 출신이나 동아리 제자도 있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주례 없는 결혼이 확연히 늘어나고 있어서 앞으로는 예전보다 주례를 맡게 되는 경우가 줄어들 것 같습니다. 제가 맡았던 결혼식 주례에는 자연스럽게 하객들이 많이 겹쳤습니다. 그래서 처음 몇 년은 결혼식마다 완전히 다른 주례사를 준비해서 단상에 올랐고, 몇 년이 지나 그동안 준비했던 주례사의 종류가 많아지자 그 중에서 신랑과 신부에게 어울리는 말들을 골라 편집하는 경우가 늘어났습니다. 최근 3~4년에는 결혼식 전날 혼자 연습하고 당일에는 원고 없이 주례사를 하고 있습니다. 

 

근래에 준비 없이 주례사를 하기 전까지 제가 결혼식에서 했던 주례사는 모두 한글 파일로 컴퓨터에 저장해 놓고 있습니다. 지금 폴더를 열어 당시의 주례사를 읽어보니 우스운 내용도 많고 유치한 이야기도 적지 않아 보입니다. 

 

오늘은 지난 13년 동안 제가 결혼식 주례사에서 했던 말들 중에 10 개를 골라서 소개합니다. 다른 번호가 붙은 글은 다른 주례사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첫 번째 주례사는 첫 소절만 소개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네요.

 

 

1. 지금 앞에서 보니까 이 두 사람이 긴장을 많이 하고 있고 조금 떨리는 것도 같습니다. 아마도 처음 해보는 결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도 이 두 사람들처럼 긴장이 되고 떨립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처음 해 보는 주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상에 지금 서 있는 우리 세 사람이 여러분들 눈에는 안보이시겠지만 다 떨고 있습니다. 모두 초보자이니 초보자의 공통점 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이 결혼식이 서툴게 진행 될 것이 분명합니다. 무엇이든지 첫 경험이란 시행착오를 일으키는 법이고 서투르기 마련이지요. 혼주 되시는 분이나 하객 여러분들께서는 신선하고 너그럽게 보아주시고, 혹시 실수가 있더라도 그 실수를 즐거워 해주시기 바랍니다.

 

2. 결혼은 관계입니다. 옛날처럼 배우자의 가족과의 관계에서 오는 심각성은 많지 않다 해도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렇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 관계를 관리하는 기술과 지혜를, 학업에 임했을 때보다 더 진지하게 터득해 나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스승이 제자들과 더불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고개 길에 들어섰는데 규모가 꽤 큰 창고가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무너져 내린 목재들을 치우는데 문짝이며 벽면이며 모두 튼튼했습니다. 제자가 물었습니다.

 "스승이시여, 이렇게 튼튼한 재목으로 지은 이 집이 어찌 무너지게 되었습니까?"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재목이 튼튼해도 틈새가 벌어진 것을 그냥 놔두면 틈이 점점 벌어질 것이고 드디어 몸체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 무너지는 법이다"

스승은 계속 설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이음새가 풀렸을 수도 있다. 방치하니 한 쪽이 주저앉아 그 다음 조임새 까지 풀어지게 했고, 나중에는 쓸 만한 목재들도 맥을 못 쓰게 되었을 것이다. 무릇 관계란 이런 것이다.”

 

3. 부부사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사랑입니다. 하지만, 나 자신조차도 스스로 미워질 때가 있는데, 타인인 누군가를 지속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도 가끔씩 만나는 사람이 아니고 같은 생활공간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배우자를 지속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구성원들은 시간과 공간, 자산을 함께 공유하며 나누어 사용해야 하므로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둘 사이에 특별히 애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부부로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 자체에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가 생기고 커갈 때 부모자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시간과 자원을 많이 투자할수록 부모자신이 향유할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은 줄어들게 되어있지요. 그렇게 하다보면 부모는 자녀에게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것을 갖게 되고, 자녀가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지 못할 경우 부모 자녀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4. 부부는 서로 반대 성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라는 과정에서도 서로 다른 사회화 과정을 거쳤고, 거기에 자라온 환경의 차이와 개인차이도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영위해 나갈 수 없습니다. 

 

5. 신랑, 그리고 신부. 수틀린다고 방문 잠그고 들어가지 말고 싸우세요. 싸움도 언어에요. 초상집에도 언어가 있어요. 울음이라는 언어가 바로 그것입니다. 언어가 없는 곳은 무덤뿐입니다. 아까 제가 관계를 경영하는 기술을 연마하라고 했지요? 이제는 싸우는 기술을 터득하세요. 싸울 줄 아는 사람만이 풀 줄도 아는 법입니다. 어느 철학자는 자식에게 한글보다 싸움을 먼저 가르친다고 합니다. 화해하는 법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서 랍니다.

 

6. 심각한 불화를 겪는 부부들이 내세우는 불화의 주요 원인은 성격차이입니다. 그런데 과연 성격차이가 없는 부부가 있을까요? 그런 부부는 있을 수가 없고, 만에 하나 있더라도 그렇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부부사이의 차이는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필요한 보완점이 되어 주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격은 많은 부분 타고 나는 것입니다. 반응의 양식이나 강도를 다소 조절할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성격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7. 우리나라의 전통적 부부규범 중에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여자의 독립성이 인정되지 않던 가부장제하에서 부부간의 의견 차이를 원천적으로 불인정하며 남편에 대한 부인의 일방적 복종을 의미로 생겨난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이 현대에 와서 낭만적 사랑의 모습으로 왜곡 포장되어 변신한 듯합니다. 상대방이 자신과 똑같이 느끼고 생각하지 않을 때 “나를 사랑한다면 나와 똑같이 느끼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는 모습을 특히 젊은 연인들에게서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의 사랑은 대부분 오래가지 못합니다.

 

8. 우리가 좋아하던 싫어하던 우리는 어렸을 적의 기억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지고 결혼생활에 임합니다. 그 형태나 양상은 개인마다 독특하지만 성공적인 결혼생활을 위해서는 자신과 배우자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들이나 사건들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배우자에 대해 심한 갈등을 느낄 때에도 그 갈등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 우리 내부에 숨어있는 성장과정에서의 경험이나 상처 때문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9. 사랑은 수용이고 이해하는 것이며, 상대방이 자신이 타고난 자질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국화에게 장미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절대로 사랑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어떤 바탕을 가졌는지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대접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과 함께 자신이 가진 바탕에 어떤 특징이 있는지를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도 동시에 해야 합니다. 부부의 사랑은 부모의 사랑과는 다른 종류의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이 내리사랑이라면 부부의 사랑은 평등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수평적 사랑입니다. 그러니까 서로를 존중하고 수용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공평하게 이루어져 합니다.

 

10. 서로에게 하늘로 대접받고 싶나요? 나도 아내에게서 하늘과 같은 대접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그 때가 그리워서 어느 때였지 하고 더듬어 보니 바로 내가 하늘같았던 때였습니다. 하늘 같이 높은 사랑을 보여주었을 때고, 하늘 같이 깊은 자애를 나타냈을 때였고, 하늘 같이 무한의 이해를 했을 때였지요. 하늘 같이 귀하게 대접 받고 싶으면 하늘같은 사랑을 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랑 신부에게 오늘은 정말 행복한 결혼식 날이겠지요? 하지만, 살아가면서 오늘보다 더 좋은 날을 많이 만들어서, 훗날 오늘이 두 사람의 행복을 열던 날로 기억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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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3
2019-06-27 00:49:34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저희는 부부 이야기를 할때 배부른 상황에서 애기하려 노력 합니다
배고픈 상태에서 대화를 해봐야 싸우기만 하더라구요

WR
2019-06-27 11:42:48

현명한 선택이십니다.

1
2019-06-27 01:05:46

정말 좋은글 감사합니다.

WR
2019-06-27 11:43:02

고맙습니다.

4
2019-06-27 01:09:27

앗, 베일리님 그렇게 안 봤는데...

주례사가 엄청나시군요. 

 

https://youtu.be/x_gicLTIWxk

WR
1
2019-06-27 11:39:51

제가 했던 모든 주례사는 6분에서 7분 사이였습니다.

1
2019-06-27 01:45:08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와닿게 읽었네요.
글의 순서도
1번은 풋풋한 느낌에서 시작하고
10번에선 체득하신 경험으로 맺으시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WR
2019-06-27 11:40:06

감사합니다.

1
2019-06-27 06:47:10

정말 좋은 글이네요. 사회도 28번 못봤는데 주례를 28번이나 보시다니...대단하십니다.

WR
1
2019-06-27 11:41:12

저는 결혼식 사회를 본 적이 아직은 없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앞으로도 없을 거 같네요.)

2
2019-06-27 06:58:48

그만큼 주변에서 데이먼 베일리님의 사려깊음과 통찰력 그리고 인품을 높이 사는게 아니겠습니까. 대단하십니다. 여기 본문의 글도 좋지만 예전에 사모님과 주고 받았던 편지인가 했던 내용이 전 참 인상 깊었습니다. 저희 부부의 목표와도 비슷하구요.

WR
3
2019-06-27 11:39:14

제가 학생들에게 그렇게 많은 애정을 갖고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소속된 곳이 제 처가 졸업한 바로 그 학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부 전공부터 완전히 다른 문과 출신입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서는 학부와 대학원 전공이 다른 경우가 흔합니다.) 처음 부임했을 때에는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기에도 경직된 학풍에 학생들이 너나 할 거 없이 조금씩 기죽어 있는 것처럼 보여 답답한 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든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돌이켜봐도 제가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도 외부에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거나, 인터넷에서 매니아를 많이 할수록 학생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는가를 실감합니다.

1
2019-06-27 07:09:21

필요할때마다 꺼내볼려고 글을 스크랩해두었습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WR
1
2019-06-27 11:41:28

말씀 감사합니다.

1
2019-06-27 09:27:34

그 어느때 보다도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WR
1
2019-06-27 11:41:47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1
2019-06-27 13:27:31

아래 글 적었던 예비신랑입니다. 원래 텍스트가 많은 글은 잘 안읽는 편인데 하나하나 정독했네요. 마음에 그대로 와닿는 부분도, 아직 결혼하지 않아서 겪어보지 못해서 머리로만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스크랩해두고 여러번 읽어보려 합니다. 좋은 글감사합니다

WR
1
2019-06-27 14:36:01

고맙습니다. 아직은 석달 남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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