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Free-Talk

때늦은 <기생충> 후기

 
8
  1323
Updated at 2019-06-22 09:00:34

안녕하세요. 

 

영화를 본지가 한참인데 이제서야 후기를 쓰네요. 원래 한번 더 보고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보게 될 것 같아 그냥 쓰려고 합니다. 

 

 저는 봉준호 감독 영화를 <괴물> 이랑 <옥자>, 그리고 <기생충>, 요렇게 세 작품만 봤습니다. 괴물은 벌써 꽤 된 작품이니 제외하고.. 최근 작품들인 옥자랑 기생충을 보고 느낀 것이, 이 감독이 이 영화들을 만들면서 오로지 메세지에만 집중했다는 겁니다. 저는 영화는 감독의 창작물이고, 영화의 한장면 한장면, 소품 하나하나까지 모두 감독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믿습니다. 방 구석의 찢어진 벽지도, 감독이 그곳에 가져다놓고 카메라에 담지 않으면 영화에 나오지 않을테니까요. 그렇다고 제가 영화의 모든 요소들에서 감독의 의도를 찾아낼만큼 영화를 잘 안다는 뜻은 아니고, 영화를 그런 방향으로 보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생충은 확실히 메세지를 위한 영화였어요. 물론 이야기도 잘 만들었지만, 어디까지나 감독이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지, 이야기 자체를 위해 만든 것 같지는 않아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크리스토퍼 놀란이 인셉션을 만들 때, 사랑의 위대함 같은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 이야기와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을거란 말이죠. 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그 재밌는 이야기 자체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거지. 반면 기생충은 확실히 메세지를 위해 만든 이야기였습니다. 옥자도 그렇구요. 

 

 그러다보니 영화의 한장면 한장면, 설정 하나 하나를 뜯어보면 지나치게 영화적인 장면들이 많습니다. 따지자면 끝도 없을거예요. 기우 가족이 아무리 머리가 좋고 박사장 와이프가 아무리 바보라도 저렇게 온가족이 스무스하게 다 들어갈 수는 없을겁니다. 아무리 관심이 없어도 지하벙커를 모를 수도 없구요. 십수억짜리 집에 등이 지맘대로 켜졌다꺼졌다 하는데 그걸 고칠 생각을 안할 리도 없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래서 감독이 이 영화의 초반부를 코미디로 만든 것 같습니다. 코미디를 넣음으로써 관객들은 초반부의 비현실적인 전개를 그냥 웃고 넘길 수 있게 되고, 그 후에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를 보여주는 2부를 시작할 배경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죠.  2부의 시작을 가정부가 집에 찾아오는 장면으로 보던, 기우 가족이 비를 맞으며 내리막에 내리막을 걸어 물난리가 난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으로 보던, 여튼 그 때 부터 영화는 바뀌기 시작하고 진짜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메세지가 좀 촌스럽다 싶을정도로 적나라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결국, 없는 사람들끼리 있는 사람 좀 등쳐먹어보겠다고, 이겨보겠다고 아둥바둥 해봐야, 결국 없는 사람들끼리만 싸우게 되고 있는 사람들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 라는 잔인한 메세지였을 것입니다. 두 가족이 기생해도, 사람이 죽어나가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려도 박사장 가족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대비는 비온 다음날의 가든파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급기야는 영화 속의 기우와 기택도 관객과 같은 메세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박사장과 인디언 분장을 하고 대기하던 기택이 선을 넘죠. 영화의 파국을 만들어낸건 기우의 기우 (杞憂) 였지만, 기택이 박사장에게 "그래도 사모님 사랑하시죠?" 하고 물었을 때 부터 영화는 파국으로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감독이 참 잔인한 것이, 그런 메세지를 영화가 끝날 때 까지 계속해서 보여줍니다. 가정부 남편이 전등을 통해 보내는 메세지를 다솜이 분명히 보지만, 그리고 다솜은 그런 가정부 남편을 구해줄 능력이 분명히 있지만, 끝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식의 결정을 보여주는 장면도 없어요. 그냥 다솜이 그런걸 본 적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갑니다. 말그대로 아무것도 안한거죠. 뒤에서 기택이 같은 방식으로 메세지를 보내고, 기우도 그것을 봅니다. 다솜과 달리 보기가 힘든 상황이었는데, 그래도 기를 쓰고 봐요. 해석도 하고, 기택을 꼭 구하겠다는 다짐도 합니다. 그러나 기우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마치 기우가 집을 사는 것 같은 묘사가 나올 때 저는 이 영화에 매우 실망할 뻔 했습니다만, 그냥 기우의 상상해 불과했다는 것으로 끝나면서, 기우가 반지하에서 계속 살아가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영화가 끝나고 박수를 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끝나야죠.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좋았습니다. 수석...은 좀 너무 노골적이어서, 감독이 자꾸 영화에서 메타포 같은거 찾아내련는 사람들 비꼬려고 영화에 넣었나 싶은 정도였지만 그래도 나쁘진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기우의 욕망..을 상징하기도 하구요. 기우는 다른 가족들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상류층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그들과의 괴리감도 느끼는 캐릭터니까요. 여전히 제 인생 최고의 영화는 <그래비티> 이지만, 이것은 개인이 자신 내면의 솔직한 감정을 깨닫고 성취를 이뤄내는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에서 더 큰 감동을 느끼는 제 개인 취향의 문제이지, 영화의 완성도에서 기인하는 차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Comment
Updated at 2019-06-22 12:10:52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는 두 번 봤어요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