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스타벅스를 자주 가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닉네임이 있을 겁니다.
제 닉네임은 ‘취미는 독서’인데요, 독서를 많이 하지도 않는데 음료가 나올 때마다 ‘취미는 독서 고객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라고 하시니 뭔가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여튼 원주 단계동 스타벅스 터미널점을 갈 때마다 제 닉네임을 제일 힘차게 불러주시는 직원 분이 계셨어요. 항상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습니다.
‘오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드시나요?’
‘아, 오늘은 좀 다른 거 마셔보려고요.’
웃으며 간단히 안부를 물을 정도의 사이는 됐던 거 같아요.
그런데 몇 달 전부터 그 분이 안 보이시더라고요.
늘 반갑게 인사해주시던 분이라 뭔가 아쉽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스타벅스 고객센터에 불만을 접수할 수도 없는 거고 떠난 그 분을 다시 돌아오게 할 수도 없었기에 평소처럼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제 기억 속에서 그 분의 존재가 알게 모르게 희미해져 갈 때 쯤이었습니다.
날씨 좋은 주말 아침, 에어팟을 귀에 꽂고 캘빈 해리스의 흥겨운 노래를 들으며 러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컨디션이 좋았는지 평소보다 많이 뛰었고, 목이 굉장히 마르더라고요.
지갑도 안 들고 나와서 뭘 마시지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근처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가 있는 게 보였고 사이렌 오더(원격으로 주문)로 아이스 카라멜 마끼야또를 주문한 뒤,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스타벅스에 들어가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보였습니다.
‘취미는 독서 고객님 반가워요!!’
익숙한 그 분과, 터미널 점에 있던 또 다른 직원 분 그렇게 두 분이서 제가 들어오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시더라고요.
‘어, 여기 계셨어요? 터미널에 안 계셔서 그만두신 줄 알았어요.’
‘아, 저희는 신규매장 생기면 순환해서요. 사이렌 오더에 취미는독서 고객님 뜨시길래, 고객님 오면 우리 반갑게 손 흔들어주자라고 했어요.’
그렇게 간단한 안부를 묻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며 카라멜 마끼야또를 마셨습니다.
그 날 유난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호주의 칼럼니스트 피터 피츠사이몬스의
'인생의 작은 법칙들'이라는 책에서는 반가움의 법칙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반기는 정도는 현재 만난 장소와 두 사람이 평소 자주 만나는 장소와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건데요.
즉, 현재의 만남이 늘 만나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반가움의 정도는 더 커진다는 거죠.
부모님과 같이 사는 학생이라면, 부모님을 볼 때마다 반갑다기보다는 오히려 갑갑함을 느낄 겁니다. 부모님이 출장 좀 가셨으면, 부부동반모임 좀 가셨으면, 그래서 잔소리 안 듣고 원 없이 집에서 게임을 하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살아 명절 때만 만난다면 어떨까요?
굉장히 반가울 겁니다.
물론 그 직원분은 저에게 잔소리를 하시지도 않았고, 청소를 시키지도 않았습니다.(웃음)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날의 우연한 만남이 저에겐 굉장히 큰 반가움으로 다가왔던 겁니다.
돌이켜보면, 반가움의 법칙이 아니라 짜증남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 거 같습니다. 안 좋게 헤어진 옛 연인관계라든가, 성격이 맞지 않아 절연한 친구관계 같은 경우겠죠.
하지만, 짜증남의 법칙을 적용해야 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반가움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는 인연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 그리고 그 반가움의 법칙에 해당하는 분을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행복을 누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 날은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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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벅이 순환식 로테이션이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