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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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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6-18 21:25:21

스타벅스를 자주 가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닉네임이 있을 겁니다.
제 닉네임은 ‘취미는 독서’인데요, 독서를 많이 하지도 않는데 음료가 나올 때마다 ‘취미는 독서 고객님. 주문하신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라고 하시니 뭔가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여튼 원주 단계동 스타벅스 터미널점을 갈 때마다 제 닉네임을 제일 힘차게 불러주시는 직원 분이 계셨어요. 항상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습니다.
‘오늘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드시나요?’
‘아, 오늘은 좀 다른 거 마셔보려고요.’
웃으며 간단히 안부를 물을 정도의 사이는 됐던 거 같아요.
그런데 몇 달 전부터 그 분이 안 보이시더라고요.
늘 반갑게 인사해주시던 분이라 뭔가 아쉽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제가 스타벅스 고객센터에 불만을 접수할 수도 없는 거고 떠난 그 분을 다시 돌아오게 할 수도 없었기에 평소처럼 커피를 마시며 작업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제 기억 속에서 그 분의 존재가 알게 모르게 희미해져 갈 때 쯤이었습니다.

날씨 좋은 주말 아침, 에어팟을 귀에 꽂고 캘빈 해리스의 흥겨운 노래를 들으며 러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컨디션이 좋았는지 평소보다 많이 뛰었고, 목이 굉장히 마르더라고요.
지갑도 안 들고 나와서 뭘 마시지 고민하고 있는 찰나에, 근처에 새로 생긴 스타벅스가 있는 게 보였고 사이렌 오더(원격으로 주문)로 아이스 카라멜 마끼야또를 주문한 뒤,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스타벅스에 들어가는 순간, 익숙한 얼굴이 보였습니다.
‘취미는 독서 고객님 반가워요!!’
익숙한 그 분과, 터미널 점에 있던 또 다른 직원 분 그렇게 두 분이서 제가 들어오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시더라고요.

‘어, 여기 계셨어요? 터미널에 안 계셔서 그만두신 줄 알았어요.’
‘아, 저희는 신규매장 생기면 순환해서요. 사이렌 오더에 취미는독서 고객님 뜨시길래, 고객님 오면 우리 반갑게 손 흔들어주자라고 했어요.’

그렇게 간단한 안부를 묻고 자리에 앉아 창밖을 보며 카라멜 마끼야또를 마셨습니다.
그 날 유난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호주의 칼럼니스트 피터 피츠사이몬스의
'인생의 작은 법칙들'이라는 책에서는 반가움의 법칙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반기는 정도는 현재 만난 장소와 두 사람이 평소 자주 만나는 장소와의 거리에 비례한다는 건데요.
즉, 현재의 만남이 늘 만나는 장소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있을수록 반가움의 정도는 더 커진다는 거죠.

부모님과 같이 사는 학생이라면, 부모님을 볼 때마다 반갑다기보다는 오히려 갑갑함을 느낄 겁니다. 부모님이 출장 좀 가셨으면, 부부동반모임 좀 가셨으면, 그래서 잔소리 안 듣고 원 없이 집에서 게임을 하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살아 명절 때만 만난다면 어떨까요?
굉장히 반가울 겁니다.

물론 그 직원분은 저에게 잔소리를 하시지도 않았고, 청소를 시키지도 않았습니다.(웃음)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날의 우연한 만남이 저에겐 굉장히 큰 반가움으로 다가왔던 겁니다.

돌이켜보면, 반가움의 법칙이 아니라 짜증남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 거 같습니다. 안 좋게 헤어진 옛 연인관계라든가, 성격이 맞지 않아 절연한 친구관계 같은 경우겠죠.

하지만, 짜증남의 법칙을 적용해야 하는 사람들의 수보다 반가움의 법칙을 적용할 수 있는 인연의 수가 훨씬 많다는 것, 그리고 그 반가움의 법칙에 해당하는 분을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행복을 누렸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 날은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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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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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0:15:38

스벅이 순환식 로테이션이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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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0:15:44

원주민님 부산시민님이 되셨군요 ;) 오늘도 글 참 재밌게 읽었습니다. 영화관에서 일하는데 요즘 사회 추세가 점차 면대면 응대를 없애는 추세에요. 패스트푸드점, 영화관 할 것 없이 기계들이 햄버거를 팔고, 티켓을 발권하는 세상이죠. 사람들도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보단 혼자 뚝딱뚝딱하는데 익숙해져가고 있고, 또 그걸 더 선호한다도 하죠. 그럼에도 사람의 인사가 더 반가운 건 비단 저 뿐 만은 아니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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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0:20:06

저도 부천 사는데 여저친구 직장근처 스벅에계시던분이 두정거장 옆 스벅에서 계시길래 순환이구나 생각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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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0:20:25

저는 닉네임이 오돔인데, 오돔 고객님 소리나올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민망해요
썸녀랑 카페갔다가 닉네임 소리에 얼굴 터질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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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0:23:51

x돔 보다야 낫지 않을까요?

1
2019-06-19 10:56:26
 
1
2019-06-18 20:34:33

보통 오돔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라 오돔이 뭐야? 옥돔인가? 이럴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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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9 08:03:17

옥돔이요?

1
2019-06-18 20:23:15

 스벅은 모두 다 직영이라서 새로운 매장 생기면 그 지역에서 차출되서 이동하더라구요.

 

그리고 군장교처럼 정기적으로 일정 기간되어도 다른 매장으로 이동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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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0:28:30

취미는 독서, 외모는 미남 고객님이시라

1
2019-06-18 21:08:35

외모로는 GOAT 아니신가요..

1
2019-06-18 21:06:43

외모를 흘리셨구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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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1:08:27

그래서 오늘부터 1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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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1:22:03

 예전에 연애시절 와이프 닉네임을 얼짱XX(본명) 으로 몰래 바꿔놓았다가 죽을뻔했습니다.

 까먹고 있었는데 회사동료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직원분이 외쳐주셨나봅니다.

 얼짱누구누구님~~!!

1
2019-06-18 21:24:21

 전직 스벅알바 출신입니다. 버디 고객이라고 해서 자주 오는 고객님들 기억하고 최대한 개인화된(?) 커피 경험을 제공하도록 가르칩니다. 첨에 배울때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첨에 바리스타(알바이긴 하나 신세계 사원번호도 나오고 4대보험 적용) 를 빠르면 6개월 하다보면 부점장으로 정규직 지원 기회가 오고 부점장부터는 매장이 있는 지역 내에서 이동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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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1:38:22

글을 정말 잘쓰시네요. 부럽습니다.

1
2019-06-18 21:41:12

유치원 얼른 알아보세요

1
2019-06-18 22:02:26

잘생기셔서 반겨주신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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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2:23:14

원주 반갑네요. 저도 3년 정도 살았었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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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3:11:27

그래서 날짜는 언제로 잡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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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23:23:25

글을 깔끔하게 잘 쓰시세요~^^b
90년 후반 매지리 캠퍼스 출신으로..
우산동 터미널과 중앙시장 KFC와
신기한 A.B.C도로 지금 사는 용인과는
다른 여러 상업점포들과 남부시장 장군(?)인지 잘 기억 안 나는데 고기뷔페가 생각나네요...^^* 한 여름 치악산 계곡서 알몸 물놀이와 겨울등산, 하산 후 먹는 산채비빔밥
그 당시 5천원에 삼계탕이 사이드로 나왔었죠^^♡ 그립네요 원주....마음의 고향 ,
20대 군생활 7년을 제외한 평생 추억의
도시...군사도시의 모습은 많이 벗고
여기저기 재개발로 더 쾌적하고 좋아졌다더군요...가끔 원주 한번 가고픈데 쉽지가
않네요^^ 그만 갈무리하고...
호감이나 느낌 있다면 데쉬하십시오^^b

1
2019-06-19 08:19:33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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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9 08:27:46

전 스타벅스가 좋은 게, 타 카페에서 쓰는 울림벨? 같은 거 쓰지 않고 “캘리포니아드림님, 주문하신 콜드브루 그란데 사이즈 나왔습니다~” 하는 것이, 별 거 아닌 데 그게 그냥 정겹고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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