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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의 멸망 2-4 무상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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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06 21:32:25

 

1. 신이시여, 이게 정녕 황제가 맞습니까

 

강유성의 마막이 싸움한번 없이 등애에게 항복하면서, 등애는 로또 잭팟이 터집니다.

싸움없이 관문을 통과한건 좋았으나, 등애에게는 앞으로도 문제가 산적해 있었습니다.

 

등애는 산을 넘어 면죽으로 진군하겠다고 표문을 올렸는데, 면죽은 삼국지연의에서도

유비의 입촉 당시 '성도를 지키는 가장 핵심적인 관문' 이라 언급되는 요충지였습니다.

당연히 면죽 하나만이 아닌 면죽 주위를 방어하는 요새들이 있기 마련이었고, 성도

내부의 금군(수도방위군)과 중앙군이 남아있는 상황이었기에 촉은 강유성이 넘어갔다곤

하나 그리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었고, 등애의 병력도 산을 넘느라 다치고 상해 최대로

쳐도 2만 정도밖에 되지 않아 충분히 해볼만한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 촉은 남중(성도 남쪽)과 대오전선의 병력도 남아 있었는데, 당시 남중을 방비하고

있던 곽익(곽준의 아들)은 소식을 듣고 지원을 가겠다며 황제 유선에게 표문을 올리는데

유선은 성도 방비에는 전혀 문제가 없으니 올 필요가 없다며 거절합니다.

 

유선이 이런 트롤짓을 한 이유는, 강유가 검각을 틀어막아 종회의 군대를 막았기에 굳이

군사를 더 데려와 소란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큰데, 애초에 전쟁의

기본이 '다수의 군대로 소수의 군대를 쉽게 누르는 것' 임을 고려하면 적군의 군세가 훨씬

큰 상황에서 동원 가능한 가용병력을 내팽겨치고 무시한 유선의 트롤짓은 참담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지원조차 무시한 유선은 늦게서야 동맹인 오나라에 지원을 요청했고

오나라 황제 손휴는 촉이 멸망하면 오도 위험해진다며 10월 22일 즉시 군대를 파견합니다.

당시 오의 군권을 쥐고 있던 대장군 정봉은 수춘으로 진격해 양동작전으로 위의 병력을

분산시키고, 정봉(동명이인, 정봉의 동생)과 손이 역시 면중 지역을 공격해 위의 병력을

분산시키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유평을 형주에 파견해, 남군을 방비하며 형주 지역을

수비중이던 시적에게 촉을 돕기 위해 군대의 진군 방향을 상의하도록 지시합니다.

 

오가 지원을 결의한 사이, 영안에서 대오전선을 담당하던 군부 2인자 염우 역시 내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대오전선에 배치된 병력을 빼서 사실상 영안을

비워버린채 군을 이끌고 지원을 가는데, 이는 유선의 명령도 없이 독단으로 움직인 것.

대오전선의 군대를 염우가 끌고 가면서, 이곳은 나헌이 소수의 병력과 함께 남게 되고,

나헌은 촉 멸망 후 이 소수의 병력으로 자신의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되는데.............

이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유선이 트롤짓을 하는 사이, 등애는 마막이란 네비를 달고 신나게 진군하고 있었습니다.

 

 

 2. 마지막 저향

 

유선이 온갖 트롤짓을 하며 할 수 있는 방비마저 던지는 사이, 등애는 경곡도를 지나 촉 내부

핵심에 점점 가까워져 갑니다. 그러자 촉의 위장군이던 제갈량의 아들 제갈첨은 군대를

이끌고 자신의 아들인 제갈상, 황권의 아들인 황숭, 이회의 조카 이구, 장비의 손자 장준 등과

함께 등애의 군대를 상대하게 위해 나갑니다.

 

여기서 황숭이 제갈첨에게 즉시 나아가 험지를 장악하고 등애가 쉽게 평지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것을 진언하는데, 제갈첨은 황숭의 말에 망설이며 쉽게 동의하지 못합니다.

황숭이 눈물로 호소하자 결국 이를 받아들이는데, 이미 때는 늦어 등애는 평지로 들어왔고,

제갈첨의 군대는 선봉부대가 격파당하고 결국 면죽으로 퇴각하고 맙니다.

 

왜 제갈첨이 황숭의 말을 듣지 않았는가엔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첫번째가 황숭이

위에 투항한 황권의 아들이기에 믿을 수 없어서 제안을 거절했다는 것이고 삼국전투기엔

이 설이 채용되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 설은 신빙성이 낮다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결과적으로 황숭은 최후까지 장렬하게 싸우다 전사해 충절을 증명한

것도 있지만, 황권의 투항은 애초에 자발적인 것이 아닌 어쩔 수 없는 투항이었고 유비도

이를 보증했을 정도였으며, 제갈량은 죽기 전 자신의 아들에게 계자서라는 글을 남겨서

항상 이를 보고 수양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 했는데 계자서의 내용은.......

(이는 소학에도 실릴 정도로 유명한 글이 됩니다)

 

"무릇 군자(君子)는 고요함으로 자신을 수양하고, 검소함으로 덕을 키운다. 담박하지 않으면

뜻을 밝힐 수 없고(非淡泊無以明志), 고요하지 않으면 먼 곳에 이르지 못한다(非寧靜無以致遠)"

 

해석: 마음 상태가 담담하지 않으면 뜻을 제대로 세울 수 없고 외부의 선입견에 휘둘려

마음을 잡지 못하면 원대한 목표 또한 이룰 수 없다

 

제갈첨이 아버지의 글을 유념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보기에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왜일까 생각해보면, 가장 유력한 설은 등애의 군대를 빠르게 격파해서, 내부의

무능한 트롤들이 동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고 타당해 보입니다.

제갈첨 역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재능이 있었다는 평가를 보면, 본인 역시 황숭의 제안대로

요충지를 틀어막고 장기전을 유도해 저들이 자멸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은 파악했을 것으로 보이나, 그 사이 성도 내부에서 황호와 초주를 비롯한 트롤들이

어찌 나올지 모른다는 점 때문에, 유선이 항복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는 패착이었는데, 아무리 제갈첨이 총명하고 능력이 있다 한들 백전노장에

강유를 상대하며 실전 경험이 풍부한 등애를 상대로 전투에서 이기긴 역부족이었습니다.

 

등애는 면죽에 이르자, 면죽의 방비를 보고는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합니다. 등애는

사신을 보내 제갈첨에 항복을 권유하며 항복 시 낭야왕의 자리를 제수하겠다는

권유를 하는데( 제갈량의 고향이 서주 낭야), 제갈첨은 격분해 사자를 죽여버립니다.

이 권유는 되도 않는 드립인 것이, 고작 정서장군에 불과한 등애가 왕 자리를 제수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였으며, 왕이나 당시 실권자 사마소가 보면 꼬투리를 잡아

등애를 날려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발언이었는데, 등애는 결국 훗날 대가를 치릅니다.

 

제갈첨은 남은 병력을 모아 면죽에서 등애의 아들 등충과 사찬이 이끌던 등애군을

격파하는데 성공하는데, 등충과 사찬이 돌아가 면죽을 공략하는 것이 어렵다 호소하자

등애는 격분해 적을 물리치지 못하면 본인이 먼저 그들을 죽일 것이라며 다시 공격할

것을 지시합니다. 전열을 가다듬은 등애군은 악에 받혀 제갈첨의 군대를 공격했으며,

결국 제갈첨은 버티지 못하고 패배하며 장준, 황숭, 이구는 전사했으며 제갈첨은

사로잡힌 뒤 진중으로 끌려나가 참수되면서, 촉의 마지막 방패도 무너지고 맙니다.

 

 

 3. 촉의 대응

 

제갈첨마저 무너지면서 면죽은 등애의 손에 넘어가고 맙니다. 강유는 이 무렵 검각에서

종회의 군대를 계속 막고 있었는데, 강유가 상대하는 종회의 군대는 위의 주력군이었기에

만일 강유가 검각을 버리고 등애를 막으러 가면 종회는 검각을 통과해 촉의 내부를

하나하나 장악해 나갈것이 안봐도 비디오였습니다. 그렇기에 강유는 남중과 대오전선,

중앙의 군대가 2만 남짓의 등애군을 상대로 장기전을 벌이며 충분히 막을 거라 생각하고

검각에서 존버하고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제갈첨이 죽고 면죽이 넘어갔단 소식이........

 

본인이 검각에서 종회를 막는 사이

 

마막이 항복- 유선이 곽익의 지원요청을 거절-제갈첨은 전사라는 상상 이상의 최악의

시나리오가 터져버렸고, 강유는 결국 검각을 버리고 남하하면서 촉 내부에서 병력을

합류시켜 가며 곳곳의 요충지에 병력을 조금씩 남겨 종회의 진격 속도를 지연시키는

동시에 본인은 등애를 막으러 군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무렵, 성도 근처 낙현까지 등애군이 왔다는 사실에 촉 조정은 정신이 나가서

안절부절 못하며 대책을 논의하기 바빴는데, 강유는 성도 조정 내부에서 세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중이라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첫번째는 성도에서 존버하며 버티기

두번째는 남중으로 피난

세번째는 항복........

 

강유는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는 몰랐으나 선택지 3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본인이 군대를 성도 동북쪽 인근의 처현으로 이동시켜 만일 유선이

성도에서 항전하면 즉각 도울 태세를 갖추고, 만일 남쪽으로 피난할 시 본인이 유선의

퇴로를 확보하면서 북쪽의 위군을 막을 수 있는 형세를 갖추려 했습니다.

 

당시 촉의 기록을 보면, 항복을 진언한 초주가 남중으로 가자는 의견을 이미 반란이

많이 일어난 곳이고 민심이 불안해 믿기 어렵다는 드립을 친 것으로 봐서 대부분의

신하들은 남쪽으로의 피난이 다수 의견이었던 것으로 보이고, 그렇다면 오나라로

잠시 피신하는 것이 어떻냐는 제안에도 한 나라에 두 황제가 있을 수는 없고, 오로

피신한다 한들 위가 오를 정복할 것이기에 결과는 똑같다며 초주는 또 반박합니다.

 

초주의 제안은 싸우다 패배해 최악의 상황에 놓이느니 그냥 지금 항복해 황제 유선과

신하 및 백성들의 안위를 살피자는 것이었는데........유선이 신료들 대다수의 의견을

무시해버리고 초주의 의견에만 찬동해서 항복을 결심해버리고 맙니다.

 

그러자 유선의 아들 유심이 나서

 

"만약 계책과 힘이 다하여 화란과 실패가 임박했다면, 응당 부자(父子)와 군신(君臣)이
 성을 등지고 한번 싸워 사직을 위해 함께 죽고 저승에서 선제(先帝)를 만나는 것이 옳습니다."
 
라며 성도에서 결사항전을 주장했으나 유선은 개무시로 대응하고 극정에게 항복 문서를
쓸 것을 지시합니다. 유심은 이에 처자식을 죽이고 본인은 유비의 종묘에서 자살했고,
아들만도 못한 폐기물 유선은 초주와 장소, 등랑을 보내 등애에게 항복합니다. 낙현에
있던 등애는 항복 소식에 매우 기뻐하며 유선의 항복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촉은 2대 42년만에 허망하고 어이없게 멸망하고 맙니다.

 

 

4. 강유, 종회, 등애의 최후.

 

촉 지역 28만호, 남녀구 94만 명, 또 장수와 군사 10만 2000명, 관리 4만 명, 창고의 식량 40만 섬,

금은 4000근, 금(錦),기(綺),채(綵), 견(絹), 각 20만 필과 그 외의 물건들이었다

 

- 촉이 멸망한 후 장부에 남아있던 촉의 기록.

 

이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요..........충분히 싸울만한 여력이 있었는데 항복.

 

처현에 있던 강유에게 유선이 장현을 보내 전 촉군에 항복할 것을 명령했는데

이 때, 촉군들이 억울함과 분노로 칼로 돌을 마구 내리쳤다고......................

 

 강유는 차마 등애에게 항복할 수 없어 종회에게 나아가 항복했으며, 유선의

항복 소식을 듣고 한중 방어선에 남아있던 유은과 장빈을 비롯한 장수들도 종회에

차례대로 투항하며 촉은 위의 손에 완전히 넘어갑니다.

 

종회가 항복하러 온 강유에게 말했다.

 "항복하러 오는 것이 어찌 이토록 늦었소?"  강유가 정색하고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 사람을 오늘 보는 것만도 빠른 것입니다!"  종회가 그를 매우 높게 여겼다.

 

 -강유전 주석 진기

 

 종회는 검각농성 당시에도 강유에게 편지를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강유가 항복해오자

강유와 함께 밖으로 나갈 때는 같은 수레를 타고 좌정할 때는 같은 자리에 앉을 정도로

그를 후하게 대접했고, 종회는 두예(후에 오를 멸망시키는 역할을 함)에게 편지를 보내

백약(강유의 자)을 중원의 명사와 비교하면 공휴(제갈탄)나 태초(하후현)도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인품과 능력을 크게 인정합니다.

 

종회는 등애가 촉을 멸망시킨 공로를 차지했다는 것이 무척 분했고, 자존심이 강하고

욕심이 많던 종회에게 등애가 공을 인정받아 태위가 되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

이었습니다. 그는 촉 멸망에 자신의 공로가 더 컸다며 공적을 부풀리고 내용을 늘리는

등 자신의 공로를 뻥튀기했고, 삼공 중 하나인 사도에 봉해집니다.

 

그 무렵 등애는 성도를 장악하고 인수인계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온갖 생고생을

하며 촉을 멸망시켰다는 뽕에 취해 있었습니다. 등애는 자신이 촉을 점령했기에 촉의

백성과 신하들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며, 강유는 영웅이나 다만 나를 만난 것이 불행

일뿐이라 자화자찬하며 기세등등했고, 항복한 촉의 백성과 신료들은 그런 등애를 매우

고깝게 여기고 내심으로 매우 싫어하고 있었습니다.

 

종회는 애초에 촉에 입성할 때부터 제갈량의 사당에 예를 갖추거나, 자신을 찾아온

장완의 아들을 후하게 대접하는 등 촉의 유력자들과 교분을 쌓는데 힘을 쏟았기에

촉 내부에선 등애보다 종회의 평가가 훨씬 좋았습니다. 종회는 이에 힘입어 등애를

모함하기 시작했는데, 등애가 조정에 보내는 편지를 가로채 교만하고 불손한 내용

으로 바꾸는 한편, 등애가 모반할 조짐이 있다고 소문을 퍼트리는데 힘썼습니다.

 

등애는 여기에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당했는데, 등애 역시 스스로 자초한 바였습니다.

등애는 지금 촉을 거두어들였으니 당장 촉의 군사를 이용해 오를 쳐서 정벌해야 한다며

자신의 소관을 넘어서는 내용을 사마소에게 건의했고, 사마소는 위관을 통해 이 상소를

받아보고는 너무 큰 일이라 즉시 시행할 수 없다고 답을 보냅니다. 그러자 등애는

"장수는 국가에 이익을 줄 수 있을 경우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합니다."

라며 춘추의 구절을 이용해 적극적인 군사행동을 할 것을 주장했는데...............

이는 본인의 무덤을 판 짓이었습니다.

 

 사마소는 애초에 누구도 잘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촉 멸망에 큰 공을 세운 종회와

 등애는 이미 견제 대상으로 찍힌 상황이었습니다. 거기에다 더 결정적인건, 종회뿐만

 아니라 호열과 사찬마저 등애의 모반 조짐이 있다고 보고하면서 등애는 결국 감군으로

 있던 위관에게 잡혀 본국으로 송환되는 처지에 놓이고 맙니다.

 

 이와 동시에 사마소는 장안으로 직접 군대를 이끌고 출병하는데, 이는 등애를 잡았으니

 다음엔 야심이 크고 욕심이 많은 종회를 처음부터 의심하고 있던 사마소가 종회를

 견제하기 위한 신속한 대응이었습니다. 종회는 등애가 잡혔다는 보고에도 사마소가

 장안으로 이리 빠르게 오는 것은 필히 자신을 의심해서임을 직감합니다.

 

 촉 멸망 이후 애초부터 종회는 강유를 후대하며 모반을 꾸미던 중이었는데, 사마소가

 직접 군을 이끌고 오자 당하기 전에 본인이 먼저 선수칠 것을 결심하고, 자신의 측근에게

 잘되면 천하(天下)를 얻을 것이오, 못 돼도 서촉(西蜀)으로 물러나 지킨다면

 유비(劉備)처럼 될 것이외다라는 말을 합니다.

 

 즉, 유비가 제갈량을 얻고 천하를 다투며 서촉을 얻었듯이, 자신도 제갈량의 분신에

 해당하는 강유를 얻었으니 설사 실패한들 촉은 점거하고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이는데, 강유는 여기에 호응하며 속내로는 종회를 이용해 위군을 물리칠 생각을 합니다.

 

 그는 종회에게 조언하여 먼저 위나라 장수들을 체포한 뒤 제거하여 후환을 없앨 것을

 조언했고, 종회가 실제로 이를 실행하면 자신이 종회를 제거한 뒤 위나라 군사를 몰아낼

 생각을 가지고 유선에게 서신을 보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 며칠 동안만 모욕을 참으시면 신이 사직이 위태로우나 다시 안전하게 하고

  해와 달이 빛을  읽었으나 다시 밝게 빛나도록 하겠습니다."

 

 종회는 264년 정월 15일, 성도에 도착해 옛 촉의 관리들이 초청된 자리에서 태후 명원왕후의

 상을 당했고, 명원왕후가 자신에게 조서를 남겨 군을 일으켜 사마소를 토벌하라 했다고

 선언하며 모반의 뜻을 드러냅니다. 그와 동시에 호열을 비롯한 위의 장수들을 빠르게

 잡아들여 구금한 뒤 이를 엄중하게 감시하여 지키도록 했는데, 강유는 그들을 빠르게

 제거할 것을 조언했으나 종회는 그들을 제거하기보단 우선 감금시킨 뒤, 위관에게 사람을

 보내 위관은 죽일 뜻이 없으며 호열 등을 제거하고자 한다며 자신의 뜻을 내비치는데

 위관은 이에 반대하면서 위관과 종회의 사이는 틀어졌고 시간이 끌리게 됩니다.

 

 그 사이 종회 휘하에 있던 구건이 자신의 옛 상관이던 호열이 갇힌 것을 안타까워하여

 종회를 만나 호열의 친병이 호열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고, 호열의 친병이 음식을 가지고 드나들자 호열은 은밀히 그들에게 종회가

 자신을 비롯한 위의 장수들을 전부 제거하려 한다며 소식을 전하게 합니다.

 

 이는 호열의 아들인 호연에게 들어가 전부에게 퍼지는데, 강유는 빠르게 위의 장수들을

 제거할 것을 요구했지만 종회는 끝끝내 결단하지 못하고 망설입니다. 결국 호연이 18일

 병사를 이끌고 자신의 아버지를 구하러 쳐들어오자 지휘관이 감금되어 방황하던 위의

 병사들도 호연과 합세하여 종회와 강유를 치기 위해 몰려들었고 종회는 그제서야

 어떻게 대응할 것에 대해 강유에게 묻습니다. 강유가 대답하기를

 

 "오직 마땅히 공격할 뿐이오!"

 

 강유는 직접 병사 대여섯명을 베며 최선을 다해 싸웠으나 중과부적이었고 종회는

 난전중에 결국 병사들에 의해 살해되었고, 강유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면서

 반란은 허무하게 진압되고 강유는 끝까지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하고 한을 삼킨채

 죽음을 맞게 되고 맙니다.

 

 종회의 반란이 진압된 이후, 모반을 획책한 것은 등애가 아닌 종회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등애의 부하들은 등애를 다시 모시고 성도로 돌아오기 시작했는데,

 등애를 체포해 압송시킨 당사자였던 위관은 훗날 등애가 자신에게 보복할 것을

 두려워했고, 이에 등애에게 깊은 원한을 품고 있던 장수를 불렀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전속이었는데, 전속은 등애와 함께 음평 산길을 넘으며 온갖

 개고생을 한 뒤 등애가 강유성을 공격할 것을 명령하자 이를 거부하고 도망친

 사람인데, 위관은 그가 등애에게 깊은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것을 이용해서

 

 "강유성의 원한을 갚을 수 있을것이다." 며 충동질했고, 전속은 음평에서 고생하며

 등애에게 원한을 품은 병사들을 이끌고 가서 등애를 살해합니다. 이 과정에서

 등애 뿐만 아니라 등애의 아들 등충도 사망했고, 사찬은 아예 병사들에 의해서

 난도질당해서 죽는 등 참담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두예는 이 소식을 듣고 위관이 공신을 함부로 죽였으니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이라며

 디스했는데, 위관은 이 말을 듣고 두예에게 가서 잘못을 청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등애를 죽이면 후폭풍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위관이 등애를 죽인 것이며,

 등애를 죽이려 한 전속에게 병사들이 호응했다는 점을 보면 등애도 역시 자신이

 어느 정도 화를 자초했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촉은 강유에 의해 시도되던 마지막 시도도 좌절되었고, 촉을 멸망시킨

당사자인 종회와 등애도 허망한 최후를 맞으면서 결국 승자는 사마소가 되고 맙니다.

 

 

평가:  촉은 망할 수밖에 없는 나라였습니다. 국력도 약하고 불운이 겹쳤다고는 하나

애초에 최초의 대처 자체도 황호의 점괘만 믿은 유선의 트롤짓으로 실패했고, 군주가

트롤한데 이어 장서와 마막이라는 내부의 적마저 발생했으며, 결국에는 무능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수뇌부가 항복을 결정하면서 어이없게 무너지고 맙니다.

 

물론 망국에도 충신이 있고 유능한 신하들이 있지만, 윗대가리가 어떻냐에 따라,

핵심 요충지(부서)에 누가 배치되어있었는가, 인재를 제대로 활용했는가 세 부분에서

촉은 모두 낙제점에 가까웠고, 결국 현장에서 분투했음에도 무너져 버렸습니다.

 

촉이 무너지고, 동시에 종회와 등애마저 죽어버리면서 사마소는 더더욱 힘을 받게

되었고, 그의 앞을 막아설 것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촉의 멸망으로 동맹을 잃은

손오에게는 암울한 미래가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오의 멸망 시리즈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3
Comments
2019-06-07 06:49:18

정성스러운 글 잘 읽었습니다.

Updated at 2019-06-07 07:42:42

근데 황호와 초주가 같이 묶일 트롤은 아니지 않나요? 초주는 유선이 향락에 빠져있을 때도 질타하는 글을 올리고, 구국론을 통해 공명 사후에 무리한 북벌을 비판하는 등 나름 촉의 학자 로써 할 일을 해 온 것으로 아는데 말이죠. 뚜렷하게 욕 먹을 짓은 등애가 쳐 들어오자 유선에게 항복을 권유 한 것 일 텐데 이 또한 어느정도는 유선의 성향을 미루어 봤을 때 현실적인 주장을 한 것이라는 평도 있구요.

찾아보니 유비와 유선의 이름을 풀며 항복할 수 밖에 없다고 도참론을 주장했다고 나오는데 이건 반박 할 수 없이 욕먹을 짓 이긴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름 촉의 후기 문신들과 학자들의 지식적, 정신적 지주 였던 초주가 사이비 간신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황호와 같은 레벨로 묶이는 건 조금 과한 시선 이지 않을까 싶어서 한마디 더했습니다.

1
2019-06-07 10:54:06

시리즈 모두 너무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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