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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의 멸망 3- 내부의 암덩어리&등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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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5 18:09:38

 

토탈워의 시즌이 왔습니다. 컴터 성능이 안좋아서 못하지만

잠깐 짬이 나서 짧게나마 글을 올려 봅니다.

 

 

1. 정벌의 시작

 

 

강유가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을 무렵, 위는 사마씨의 세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260년 친위 쿠테타를 일으켜 사마소를 제거하려 했던 위의 황제 조모는 사마소의 심복

가충의 지시를 받은 성제에 의해 시해되고 꼭두각시 황제 조환이 황위에 오르면서 조위는

사실상 껍데기밖에 남지 않은 정권이 되었고 사마소가 완벽하게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사마소는 조모가 상국의 지위와 함께 구석이란 최고의 영예를 하사했음에도 매번 한사코

거절했는데, 겸손을 가장하며 찬탈자가 될 것이라는 주위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조모 역시 이를 노리고 행한 것이었지만 사마소는 매번 이를 고사하며 잘 피해갔습니다.

그러나 조모가 시해되고 성제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며 일을 덮으려 했으나, 이미

본인의 이미지는 개판이 되어 찬탈을 하기에는 명분도 실리도 전혀 없는 상황이 되자

사마소는 이런 시선을 돌릴 방도가 필요했고, 내부를 안정시키는 데에는 외부에 적을

만드는 것이 제일 쉬운 방법. 사마소는 이에 대촉 정벌을 결심합니다.

 

촉과 오 두 나라 중에 사마소는 끊임없이 촉을 정벌해야 한다 주장했는데, 주위에서는

촉의 험하디 험한 지형과 낙곡대전의 악몽을 들며 이를 반대했습니다. 때문에 사마소는

자신의 뜻에 찬동하는 종회와 은밀히 촉을 멸할 방안을 계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사마소는 종회를 진서 장군, 가절 도독 관중 제군사에 봉하는 동시에 청주, 서주, 연주

예주, 형주, 양주 등 각지에 공문을 띄워 전함, 특별히 큰 전함을 만들라 지시합니다.

배를 만든다는 건 오나라 정벌을 의미했고, 좌중은 모두 사마소가 조만간 오나라를

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 당시 오에서는 황제 손휴가 권신 손침을 죽였지만 아직 정리가 완벽하지 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손휴는 포리당 사건이란 삽질을 시행해 평가가 최악이던 복양흥을

자신과 친하다는 이유로 승상에 임명하면서 분위기가 흉흉한 상태였기에 타당해

보이는 일이었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263년 사마소는 모두를 모은 뒤

촉을 정벌할 것을 선언하며 그동안의 행적이 페이크였음을 공언합니다.

 

사마소가 대촉 정벌의 이유로 들었던 것은

 

1. 일단 제갈탄의 난 이후 6년간 전쟁이 없었기에 군을 일으킬 여력이 있다.

 

2. 오를 치려면 배가 필요하고, 이를 지원할 물자와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너무 많이 들어가서 전쟁을 지속하는 것이 쉽지 않다.

 

3. 촉을 먼저 쳐서 점령하면 촉을 통해 수륙 양쪽으로 오를 공격할 수 있다

 

4. 촉의 병력은 실제로 얼마 되지 않는다. 성도를 지키는 군사와 오와의 국경선에

    필수적으로 배치되어야 하는 군사를 제외하면 실제 동원가능한 병력은 5만이다.

 

5. 강유가 문제인건 나도 안다. 그런데 강유는 지금 외지인 답중에 주둔해 있다.

 대군을 동원해 강유가 촉으로 돌아가는 길을 막고 한중을 뚫으면 멍청한 유선이

 성도에서 대응하지 못하고 알아서 항복할 것이다.

 

 사마소의 강력한 주장에 주위에선 큰 반대가 없었는데, 단 하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조위 중앙에선 촉 정벌에 동의했는데 정작 서북에서 대촉전선을 담당하던 책임자

 등애가 이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사실상 힘들 것이라는 이야기를 한 것. 등애는

 강유와 수없이 싸우면서 촉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였고, 촉한의 방어

 시스템이나 체계에도 능통했기에 현지의 사정으론 촉 정벌이 어렵다 판단했는데,

 등애의 협력이 당장 필요했던 사마소는 사찬을 보내 등애를 설득했고, 등애 역시

 마지못해 동의하면서 촉 정벌에 걸림돌은 사라집니다.

 

 사마소는 그렇게 16~18만 규모의 정벌군을 꾸렸고, 한 나라를 멸망시키기에 충분한

 규모의 군대가 갖추어지자 출정식을 벌이는데, 등돈이란 장수가 촉 정벌의 불가능을

 진언하자 사마소는 대노해서 당장 그를 죽여버렸고, 시신을 사람들 앞에 돌리면서

 정벌에 반대하는 자는 이 꼴이 될 것임을 드러내 강한 의지를 드러냅니다.

 

사마소는 오랜 논의 끝에 체계적으로 군을 동원하고 계획대로 군을 움직였는데,

지휘관은 세 명으로, 정서장군 등애와 옹주자사 제갈서, 진서장군 종회 세 명이

각각 군을 이끌고 삼면으로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등애: 그동안 대촉전선을 맡아왔고 강유와 상대해 본 경험이 많기에 서북의 군사

 3만을 이끌고 적도에서 답중으로 직접 진군해 강유를 붙잡아 놓은 역할

 

 제갈서: 3만의 군사로 기산 방향으로 진군, 강유가 답중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할 시 맞춰 대응하여 퇴로를 막고 등애와 협공을 펴는 것이 목적

 

 종회: 총사령관으로, 10만에 달하는 대군을 거느리고 진군해 자오도, 당낙도, 포야도

 세 방향으로 군을 이끌고 진군해 한중을 공격하는 주력부대를 이끔

 

 이렇게 군을 나눈 위군은 기세좋게 촉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2. 강유의 대응

 

 

위의 진격로와 촉군의 대응을 표시한 지도

  

 그러나 답중에 있던 강유는 둔전을 하며 놀고 있던 것만은 아니었고, 사방에 뿌려뒀던

 척후를 통해 위군이 대규모로 진군해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즉각 성도에 전령을

 보내 지원을 요청하는 동시에 장익을 양안관구에, 요화를 음평교두에 보내 나누어

 지키게 해야 한다며 청원합니다. 정확하게 상황을 보고 이를 대처할 방안까지 줬는데

 

 유선이 황호의 말을 믿고는 이 말을 묵살합니다.

 유선은 황호가 부른 점쟁이가 전쟁은 없다고 예언하자 그냥 이를 믿어버리고 강유의

 진언을 무시하는데, 그 때문에 위군의 진군은 너무나 수월하게 이루어졌고 강유는

 답중에 고립되어 위의 계획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고 맙니다.

 

 그렇게 종회는 대군을 이끌고 진군해 야곡, 낙곡, 자오도를 통과해 양안관구까지

 진격했고, 왕함이 지키는 낙성과 장빈이 지키는 한성, 그리고 장서와 부첨이 지키는

 관성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요충지를 버리고 양안관구에 수비를 몰빵한

 촉군의 방어에 종회는 쉽사리 성을 공략하지 못하고 시간이 끌리게 됩니다.

 위군이 국경을 넘었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제서야 성도에서도 위의 침공을 파악해

 부랴부랴 군대를 파견하는데, 요화가 음평교두로 장익과 동궐은 양안관구로 군을

 파병해 이를 지원하려 하였고, 이미 늦었지만 그들은 군을 이끌고 이동합니다.

 

그러는 사이 답중 전선에서도 숙명의 라이벌인 등애와 강유가 맞붙었는데, 강유는

 종회가 한중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에 답중을 버리고 한중으로 갈 길을 찾아 군을

 이동시켰으나, 등애의 부하 양흔이 추격해오자 싸운 끝에 피해를 입기는 했으나

 군을 이끌고 빠져나오는데 성공합니다. 강유 입장에서는 제갈서에게 음평으로

가는 퇴로가 완전히 막히기 전 빠르게 빠져나가 등애와 제갈서에게 협공당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해야 했는데, 그렇게 군사가 상하면서 빠져나왔지만............

 

그런 강유를 기다리고 있던 건 음평교두가 제갈서에게 장악되었다는 소식.

 

요화가 음평(陰平)에 이르었는데, 듣기에 제갈서(諸葛緒)가 건위(建威)로 항하였다 하여,

이에 한 달 동안 (그곳에 머물러서) 기다렸다. 강유가 등애에 의해 깨뜨려지자, 강유는

음평(陰平)으로 돌아왔다. - 화양국지 7권 유후주지 주석

 

요화는 음평을 지키면서 강유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애썼지만,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닌

부랴부랴 군을 꾸렸기에 들이닥친 제갈서의 군대를 막지 못해 제갈서가 음평을 점령한

것. 위가 계획했던 강유 고립&포위섬멸 시나리오가 이루어진 셈이었습니다.

 

강유는 이 최악의 상황에서 또다시 본인의 군사적 능력을 입증하는데, 공함곡(孔函谷)을

따라 북쪽 길로 옹주 방면으로 30여 리 진격했고, 당시 옹주자사 신분이었던 제갈서는

기겁하여 점령한 교두를 비우고 강유를 따라갑니다. 그러자 그 소식을 들은 강유는 즉시

군대를 돌려 비어있던 교두를 번개같이 통과하는데, 제갈서는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황급히 군을 돌려 이를 차단하려 했으나 하루 차이로 강유는 보기좋게 이를 벗어나

음평에 있던 요화의 군대와 합류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는 답중에 강유를 고립시키고, 강유를 묶어 포위섬멸하겠다는 위의 전략을 강유가

중앙의 지원 없이 스스로 해결해버린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음평에서 요화와 합류해

한중으로 떠나려던 강유에게 또 다른 소식이 들어왔는데, 관성이 뚫렸다는 것이었습니다.

 

 

3. 내부의 적

 

그 무렵 종회는 한중에서 양안관구를 두들기고 있었으나 촉의 방어는 철통같아서 쉽게

뚫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낙성과 한성은 종회 본인이 직접 때리는데도 무너지지

않고 있었고, 강유의 부장인 유은이 지키던 또다른 요충지 황금성도 마찬가지였기에

한중의 우주방어에 종회는 고통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도중, 오히려 관성에서 일이 터지고 마는데 관성을 지키고 있던 장서와 부첨의

 의견이 갈려, 장서는 나가서 싸울 것을 주장했고 부첨은 지시대로 성을 굳건히 지키며

사수할 것을 주장했는데 의견이 맞지 않자 장서는 그대로 성을 나가 위군에 항복했고,

장서의 배신에 의해 결국 부첨은 몰려오는 적을 상대로 끝까지 싸우다 전사하면서

관성은 그렇게 어이없게 위의 수중에 떨어져버리고 맙니다.

 

종회가 파상공세를 퍼부어도 잘만 버티고 있던 양안관구였고, 거기에 집중적으로 공격이

쏟아진 낙성과 한성이 아닌 관성이 먼저 제풀에 무너진 것은 종회에겐 엄청난 행운이었고

촉에겐 어이가 없는 패배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위군은 자오도, 당낙도, 포사도를

거치고 공성을 거듭하며 식량과 물자를 많이 소비한 상황이었고, 촉이 요충지를 전부

버리고 청야전술로 들어왔기에 현지조달도 어려운 상황에서 관성이 알아서 무너지며

관성에 비축해 두었던 식량과 물자는 고스란히 종회의 손에 넘어가버리고 맙니다.

 

만일 강유의 요청에 유선이 즉각적으로 반응해서, 장익을 즉시 양안관구로 보냈다면

종회는 더더욱 고전했을 것이 분명한데, 다른 곳은 뚫리지 않은 상황이었고, 장서와

부첨이 서로 싸우는 것을 상관&현지 책임자로 충분히 통솔하여 막아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알다시피 유선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강유는 이 소식을 듣고는 양안관구로 가기엔 글렀다 판단, 즉각 군대를 휘몰아 검각으로

달려가는데 이는 정확한 판단이었습니다. 마침 한수 인근까지 병력을 끌고 가던 장익과

동궐도 합류하여 강유의 군대는 종회가 검각에 도달하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먼저 도착

하는데 성공하며 검각 방어에 나서게 됩니다.

 

장서의 항복으로, 한중 방어선은 한점돌파가 너무나 쉽게 허용되어 버립니다.

외부의 침공이 아닌 내부의 적으로 인해 무너져 버린 촉군이었지만, 최악의 상황에도

촉군이 검각에 먼저 도착하면서, 종회는 더 답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검각은

정말 방어에 최적화된 지형으로, 대군을 운용하기엔 답이 없는 험악한 지형과 좁은

길목으로 인해 촉군이 틀어막은 검각 어귀는 철옹성이 따로 없었습니다. 거기에

한중 방어선은 무너진 것이 아니라 관성만 뚫린 상황이라 촉군은 후방에 그대로

남아있는 상황이었고..................

 

종회가 검각에서 고생하는 사이, 서쪽에선 강유를 놓친 제갈서가 등애와 합류하여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등애는 검각 돌파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기에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 주장합니다. 제갈서는 이에 어떤 방안인지를 묻는데,

등애의 답은 산을 타고 넘어 면죽을 통해 성도로 가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제갈서는 등애를 노망난 늙은이의 오기라 판단하고 일언지하에 제안을 거절하고,

자신은 강유와 싸우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검각으로 가겠다며 검각에 가서 종회의

군대와 합류합니다. 종회는 고전하던 중 제갈서의 군대가 오자 크게 환영했으나,

이내 제갈서를 모함해 수도로 압송시킨 뒤 제갈서의 부대를 자신이 꿀꺽해버렸고,

그 꿀꺽한 제갈서의 부대를 총알받이;;;로 삼으며 검각 공략에 열을 올렸습니다.

 

 

 글쓴이 주) 이 선택이 정말 재밌는 것이, 제갈서에겐 불행과 행복을 모두

 안겨주었다는 점인데, 종회를 선택하면서 모함을 받고 수도로 압송되었기에

 등애와 함께 했다면 얻었을 촉 멸망을 함께 하는 영광을 누릴 수는 없으나,

 반대로 수도로 압송되었기에 촉 정벌 후 이루어진 모반 사건으로 종회와

 등애 둘 모두가 죽는데 본인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법...............

 

그러나 제갈서의 부대 합류는 종회의 군대에 그닥 도움이 되지 않았는데, 군이

늘어나봤자 검각의 좁은 길과 험악하기 그지없는 지형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식량과 물자 소비량만 더더욱 늘어난 셈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력 10월이 찾아왔고, 산 특유의 날씨로 기온은 하강하기 시작했으며

주위에서 식량과 물자를 구할 방도는 거의 없는데, 뒤에는 한중의 촉군이,

앞에는 검각을 방비하는 강유의 촉군이 있어 잘못하단 쌈싸먹힐 상황.

 

     

유선이 트롤을 하고, 내부의 배신으로 관성이 뚫린 상황에서도 강유와 촉군은

위군을 거의 벼랑 끝까지 밀어붙이며 이를 막아내나 싶었습니다.

종회가 검각 공략에 실패했다는 소식은 등애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등애는 그러자 10월, 사마소에게 표문을 올리는데 그 내용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길이 없으니 본인이 직접 길을 만들어 뚫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등애는 등산을 하기 시작하는데.......................

 

 4. 등산왕

 

 

이화초흥(二火初興) - 두 불이 처음 일어나면{염흥(炎興) 263년을 의미} 

유인월비(有人越此) - 여기를 넘어 오는 이가 있다.
이사쟁형(二士爭衡) - 두 선비가 서로 지지 않으려고 다투니
불구자사(不久自死) - 저절로 죽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으리라 

 

- 삼국지연의. 음평에 남긴 제갈량의 표비

 

등애는 그렇게 군사를 이끌고 산을 타서 넘는다는 미친 짓을 실제로 시행합니다.

시기는 음력 10월, 산의 특성상 해는 짧고 기온은 하강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그

당시 서촉의 날씨는 수분을 머금은 구름이 산을 타고 넘다 봉우리와 충돌하며

눈이 내리는 일이 잦은 상황이었고, 등애의 군대는 촉 내부까지 깊게 들어왔기에

식량과 물자도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70세 가까운 노장이 이끄는 군대는

정말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에 직접 나서며 등산을 시작합니다.

 

강유가 검각을 틀어막고 등애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는

말이 안되는 것이 상식상 음평 산길을 넘겠다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고, 거기에

촉의 병력을 집중하여 종회의 본군을 막는 것이 최선이었고, 설사 등애가 산을 넘는다

한들 지치고 식량과 물자가 없는 상한 군대로는 촉의 관문을 통과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이 당시엔 사진에 나오는, 사람이 지나다닐 잔도도 없었습니다.........

 이 산을 넘어서 탈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대륙의 기상이랄까........

 

등애는 음평 길로부터 사람이 없는 땅을 7백여 리나 행군하였다. 산을 뚫어서 길을 통과하게 하고

계곡에는 다리를 만들었다. 산은 높고 계곡은 깊었으므로 작업은 매우 어려웠고, 또 식량 수송의

어려움으로 인해 거의 위기에 이르게 되었다. 등애는 모전으로 자신의 몸을 감싸고 산기슭을

따라 내려갔다. 장수와 병사들은 모두 나무를 붙잡고 낭떠러지를 기어오르며 서로 이어서 전진하였다.

 

 -등애전.

 

 

삼국전투기에서 묘사한 등애의 등산

 

 요약: 미친짓...........

 

 그런데 기적적으로, 산을 넘는데는 성공했는데 그런 등애군의 앞에는 강유성이란

 요새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등애는 여기까지와서 포기할 순

 없다며 휘하 장수 전속에게 공격을 명하는데 전속은 이건 미친 짓이야!를

 외치며 도망칩니다.

 

 식량도 물자도 없고, 험하디 험한 산을 타느라 지치고 상했으며 공성장비

 조차 없는 군대가 요새를 공략하긴 만무한 일. 그런데 여기서 강유성을 지키던

 장수 마막은 그냥 싸움 없이 등애군에 투항해버리고 맙니다.

 

 등애군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을테고, 거기에 마막이 바보가 아닌 이상 동북쪽

 검각 방향에서 온 병력이 아닌, 북쪽 마천령 산맥 방향에서 온 군대일 것을

 뻔히 안 상황에서, 산 280km를 넘어온 등애군에 항복해버린 것..........

 등애로선 자신의 전략이 성공한 셈이었지만, 이건 성공한 미친 짓이었습니다.......

 

 촉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초기엔 유선이, 한중에선 장서가, 강유성에선 마막이.....

 그냥 윗대가리의 상태들이 죄다 노답인 상황에 촉의 멸망은 점점 가속화됩니다.

 

  마지막과 이에 대한 평가는 마지막 4-4에서 적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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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9-05-25 18:28:22

예전 글들 부터 봐야겠네요. 재밌어보입니다.

그리고 중간에 최훈 만화 말고 다른 만환 어떤 만화죠?

Updated at 2019-05-25 18:42:10

이미 흥세산전투에서 그렇게 박살이 나고, 갑자기 원정을 준비한 사마소는 사실상 도박패를 던졌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견제할 세력도 없으니 큰 건 한번 해보려던 것 같은데, 큰일날뻔 했죠. 실제로 종회의 본대가 틀어막혀있는데 사마소의 전략의 기본틀부터 어긋났으니까요. 이걸 해낸건 등애의 미친 산악행, 그리고 장서-마막-유선 3신기였지 싶습니다. 사실 강유성 위치도 꽤 거점인데, 그런 곳에 마막 같은 자가 있던 것도 이미 촉 말기는 인사관리 시스템이 무너져있다는 증거 같기도하고요. 제갈첨+동궐의 시스템이 운영되려나 하자마자 무너졌으니 참.

2019-05-25 18:32:26

강유성에 멀쩡한 장수 한명만 데려놔놨어도 촉군의 우주 방어가 통하였을터인데... 인간의 일이란 알 수가 없네요

2019-05-25 19:59:16

근데 생각해보면 뒤에 남길 사람이 없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워낙 인재가 부족했고 내정도 내정인데 장수풀이 정말 아작나버렸던게 당시 촉이니까요.
이릉에서 인재풀이 날아가버린 이후 멀쩡한 애들은 그나마 죄다 전방으로 나가야하는 상황이었고
그러면서 중앙의 부패가 가속화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무능력들이 후방에 남아서 간신짓 일삼고 전방에서는 아웅다웅 버티고 전형적인 나라 망조죠.

2019-05-25 21:24:28

진짜 촉은 내부에서부터 망할 수 밖에 없던 나라였네요. 그 전의 일련의 일들의 나비효과를 떠나 인재풀이 정말 아쉽습니다.

2019-05-25 22:35:11

아후. 촉 멸망시는 볼 때마다 암 걸리겠습니다.
망하는 나라에 이유가 있고, 안 되는 나라에 다 이유가 있겠지만, 진짜 갑갑합니다.

2019-05-25 22:58:52

강유 피눈물 흘리겠네요..

2019-05-26 19:27:11

잘 읽었습니다^^
저도 본문에 만화가 어떤 만화인지 좀 알려주세요

WR
2019-05-27 00:05:18

저도 인터넷에서 얻은 짤이라 구글 이미지 검색을 돌려봤는데

[인물 삼국지]라는 책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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