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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처럼 쓰여진 3덕분에 깨닫게 된 소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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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23:39:38

오늘 저는 굉장히 난감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정리하며 본가로 택배를 보냈는데요,
책을 즐겨 읽고 또 자주 사다 보니, 책이 200권이 조금 넘어 제일 큰 박스로 5개가 나오더라고요. 물론 박스의 무게도 어마어마했죠.
도와주러 온 천사 같은 후배 덕분에 둘이서 2시간 남짓 낑낑대며 우체국으로 옮겨서 택배를 보냈습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제일 처치곤란이었던 책을 보냈으니 이제 가벼운 것들만 남았다는 생각에 굉장히 홀가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거운 짐을 옮긴다고 정신이 없어서였을까요, 5를 3처럼 썼나봅니다. 그 무거운 택배 박스 5개가 115동이 아닌 113동으로 보내졌고, 졸지에 집 앞에 폭탄을 맞은 113동의 아주머니가 어머니께 짜증을 내며 전화를 하셨나봐요. 당연히 짜증나시겠죠. 그냥 작은 택배도 아니고, 하나당 40키로가 넘는 빅빅사이즈 택배였으니까요. 그런데 공교롭게 어머니도 집을 며칠간 비우셔야 하는 상황이었고, 결국 113동 아주머니만 난감하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어머니께 ‘누가 갖고가든 버리든 저도 모르겠으니 알아서 하세요.’라고 하셨고, 저는 책이 아깝다기보다는 113동 아주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커서 순간적으로 멘붕이 와버렸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까?’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의 조건은 크게 3가지였던 거 같아요.
50kg가까이 되는 택배박스를 들어서 옮길 수 있는 건장한 사람이고,
부산에 살며 차가 있어야 하고,
이런 부탁도 흔쾌히 도와줄 수 있을만큼 마음그릇이 넓어야했습니다.

카톡 목록을 슥 넘기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봐도, 제가 너무 미안해서 섣불리 연락을 할 수가 없더라고요. 절친한 친구 지민이는 힘도 좋고 부산에 살고 있고 절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지만 차가 없었습니다. 그 외에 친구들도 있었지만, 제가 오랜만에 연락해서 그런 귀찮은 부탁을 한다는 게 참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어 선뜻 손이 가질 않더라고요. 그렇게 한 30분 정도를 혼자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때 갑자기 조건에 부합하는 한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실제로 만난 횟수는 몇 번 안 됐지만, 서로가 너무 잘 맞다고 느껴서 카톡으로나마 주기적으로 안부를 묻고 연락하고 지내는 형이었어요.
그 형에게 어렵사리 부탁을 드렸습니다.
제가 이런 이런 사정이 있는데 지금 어느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라 고민하다 형님께 연락 드렸다. 어렵다고 하셔도 괜찮으시니 부담 없이 말씀해달라.
그러자 그 형은 흔쾌히 ‘무거운 박스 5개만 옮기면 되는 거지? 알겠어 ㅎㅎ어렵지 않지.’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오늘 저녁, 퇴근한 뒤 꽤나 먼 거리를 달려오셔서 113동에 있던 애물단지를 115동의 제자리로 옮겨주셨습니다. ‘형, 많이 힘드셨죠. 너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제가 다음달에 부산 내려가니까 그 때 꼭 한 잔 살게요.’라고 하니 그 형이 ‘민창이한테 시원한 술 얻어먹을 수 있겠다. 이러면서 민창이 한 번 더 볼 수 있으니 좋네.’라고 웃으며 말씀해주시더라고요. 후덥지근한 날씨에 분명 땀을 비 오듯 흘리셨을테고, 많이 짜증도 나셨을텐데, 그런 티도 안 내고, 오히려 미안해하는 저를 배려하는 그 모습에 참 감사하고 많이 배우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내가 만약 저 형같은 상황이라면, 저렇게 웃으며 상대방을 배려해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습니다.
저는 못 그럴 거 같더라고요. 해준다고 하더라도 힘든 티, 짜증나는 티 팍팍 내며 상대방을 더 작아지게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저에게도 저런 상황이 온다면, 아직 그릇이 작아 종백이 형처럼 저렇게 누군가를 행복하게 도와주지는 못 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하지만, 적어도 상대방의 미안함을 배가시키진 않아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오늘의 저처럼 누구에게나 계획되지 않은 시련이 찾아올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나에게 그 시련이 찾아왔을 때, 흔쾌히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은 결국 내가 즐겁게 도움을 줬던 사람들, 평생 함께 갈 좋은 사람들이라는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조만간 종백이형과 술 한 잔 하며, 인간관계에 대해 깊은 얘기를 하려 합니다. 많이 배우고 좀 더 크고 단단한 사람이 되려구요. 그리고 그런 생각들을 글로 옮기며 여러분들께 일상의 소소함 속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전해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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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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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4 00:00:04

추천을 위해 로그인했네요 좋은인연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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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4 00:01:03

 이런부탁을 할수있는 지인이 있다는게 부럽습니다^^

 

종백이형 비싼술 사주세요 

1
2019-05-24 00:26:06

정말 좋은 인연이네요.
앞으로 더욱 좋은 관계 가지시길

2
2019-05-24 00:44:13

 오늘도 역시 기분좋은 글 잘 봤습니다.

 

원주민님은 반대 입장에서 못 할거라 하셨지만.... 저는 사실 하셨을 것 같아요 ;)

사람은 본디 상대가 내게 부탁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상대에게 부탁하거든요.

어쩌면 원주민님께서 스스로 생각하시는 것보다 종백이형을 좋아하고 계셨을지도 모르죠.

1
2019-05-24 01:16:43

 좋은 인연을 만나셨네요. 

이런 글 볼때마다 세상은 아직 살만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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