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경 논란에 대한 현직 경찰관의 생각
저는 올해로 근무한지 5년 정도 된 현직 경찰관이고, 주로 외근에 있었지만 내근도 경험해보았고, 같은 부서에서 함께 근무한 여경도 10명 이상 됩니다. 최근 대림동 사건과 관련하여 여경과 관련한 논란이 많은데요. 현직 경찰관으로서 제가 현장에서 보고 느끼는 점들을 매니아분들과 공유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적어봅니다. 보시기 전에, 이 글의 내용은 온전히 제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사견임을 밝힙니다. 제 글이 모든 경찰관들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고, 경찰 공식 입장은 더더욱 아닙니다.
1. 일선 지구대 파출소에서 여경과 한 조가 되는 것을 기피하는 분위기는 분명 있습니다. 저도 여경과 조가 되어 순찰차를 탄 적이 많이 있는데, 신고가 많은 금요일이나 토요일 야간 근무 때는 남경과 탈 때보다 심적 부담이 조금 더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물리력을 사용해야하는 상황에서 아무래도 남자보단 도움이 덜 되기도 하고, 문제 상황도 더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어쩔 수 없는 성별에 따른 신체적 차이로 인한 것이니 따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후자의 경우 덧붙이면, 술에 취하면 더 동물의 본능이 나오는 것인지 주취자들은 소위 말하는 강약약강이 심합니다. 만취 상태에서도 덩치 좋고 험악한 인상의 경찰관에겐 고분고분하고, 여경이나 아니면 남경이라도 체격이 왜소하거나 나이가 본인보다 어려보인다 싶으면 말을 전혀 안 듣고 대놓고 시비거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만만해보이니까요. 20대 미혼 여경의 말은 남성 주취자들에겐 사실상 안 통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같이 신고 나가면 곁에서 동료로서 안쓰럽게 느낄 정도로 사람들이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일선에서 일을 하다보면 경찰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도나 운동능력이 아닌 겉으로 보이는 피지컬(크고, 쎄보이고, 험악해보이고...)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2. 그렇지만 여경의 체력기준을 남경과 같은 수준으로 높여야 하는가? 라고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답하겠습니다. 1대1 제압이라는건 현장에선 사실상 없는 개념입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1대1 상황에서 상대방을 다치지 않게 완벽하게 제압하는 건 생각보다 훨씬 압도적인 힘과 기술의 차이가 필요합니다. 물론 국민들은 경찰관이 영웅과 같은 모습으로 범죄자와 1대1 상황에서 멋지게 제압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분들도 소수지만 계시구요. 하지만 그러려면 유도나 레슬링 선출급이 아닌 이상 어렵습니다. 타격할 수 없으니 복싱이나 태권도 같은 건 무용지물입니다. 현재의 채용기준으로는 경찰관들이 그런 실력을 갖추기 어렵고, 그런 사람들로 13만 경찰을 모두 채용할 수도 없습니다. 중앙경찰학교에서 받는 고작 6개월의 교육 기간 동안 그런 실력을 만들어 줄 수도 없구요. 실제 현장에선 체포할 때 피의자가 노인이라도 최소 2명, 피의자가 일반 성인 남성이라면 3~4명은 필요합니다. 체포는 제압이지 싸움이 아니니까요. 몸부림치면서 난리치는 피의자를 한 대도 때리지 않고 다치지 않게 안전하게 뒷수갑을 채우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게다가 현 제도 하에서는 무리하게 체포하려다가 피의자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경찰관 개인이 책임을 져야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실제 제압 능력을 갖춘 분들도 최대한 몸을 사리고 지원요청 후 안전하게 다수 대 1의 상황을 만들어 제압합니다. 결국 현재 시스템이 변화하지 않는 이상 남경과 같은 체력기준으로 여경을 뽑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여경이든 남경이든 지금보다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를 더 잘한다고 해서 현장에서의 대응능력이 좋아지지 않으니까요. 요약하면, 경찰관의 물리력 행사가 아주 제한되어 있고, 경찰관이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는 현 시스템 하에서는 남경들도 1대1로 남성 피의자를 제압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고, 여경들에게 남경들과 같은 체력기준을 적용한다고 해서 그렇게 들어온 여경들이 1대1로 남성 피의자를 제압하는 것 또한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통념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체포 제압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 등 사고에 대해서는 100% 국가가 책임을 지고, 테이저건 등 각종 장비 사용이 지금보다 훨씬 장려되어야 이런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대림동 사건에서 뺨을 맞은 경찰 당사자라면, 바로 제압하려 하지 않고 일단 무전으로 지원요청을 한 후 체포했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주취자라도 2대2 상황에서 체포 시도를 하는 것은 발생할 수 있는 변수가 너무 많습니다.
3. 여경은 필요없다 혹은 여경은 이미 충분히 있으니 더 뽑을 필요가 없다? 이 역시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경 더 뽑아야 합니다. 다시 지구대 파출소를 예를 들어 이야기하면, 반드시 여경이 나가야하는 신고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가령 단순히 '주취자'라고만 신고가 접수되어 남경 두 명인 순찰차가 나갔는데 여성 주취자가 누워있는 경우 몇 번 소리내어 불러보고 반응이 없으면 무전으로 여경을 불러야합니다. 이 외에도 성범죄 신고에서 여성 피해자의 진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 여성 피의자를 체포해야하는 경우, 신고지가 여자화장실, 여탕인 경우 등등 현장에 여경은 한 순찰팀당 최소 1명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경이 없는 순찰팀이 많고, 그런 팀은 위와 같은 상황에서 대부분 어떻게든 출동나간 남경끼리 해결합니다. 실제로 아는직원이 술집에서 만취하여 업무방해를 한 여성 피의자를 체포하였는데, 나중에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사례도 봤습니다. 무혐의로 끝나긴 했지만 고소당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경찰관 개인에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입니다. 다시 제도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법과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해 현장 경찰관들이 물리력 사용 자체를 꺼리는 상황이고, 남경은 여성을 상대로는 아예 신체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도가 개선된다고 해도 여성 상대로는 웬만하면 여경이 나서는게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맞다고 생각이 들구요. 여경은 경찰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4. 다음은 여경은 내근에만 들어가려고 한다, 여경은 현장을 기피한다, 남경은 현장에서 고생하고 여경은 내근에서 꿀(?)빤다, 등등에 대한 의견입니다. 각 부서별 여경 비율을 보면 내근의 여경 비율이 외근 여경 비율보다 훨씬 높습니다. 내근의 경우 부서에 따라 여초인 곳도 있습니다. 현장에 있는 여경들은 초임이 많고, 몇 년 지나면 대부분 여경들은 내근으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 여경이 필요함에도 더더욱 부족한 거구요. 하지만 저는 이것이 여경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경찰 조직과, 더 나아가 우리 사회가 성숙해져야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전술한 것처럼, 현장에 여경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구대와 파출소의 많은 직원들이, 특히 나이드신 분들일 수록 여경 앞에서도 대놓고 여경을 싫어하는 티를 냅니다. 힘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아무래도 남경들보다 부족한 점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고, 여경과 밤새 둘이서 순찰차를 함께 타야하니 불편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팀장에 따라서는 여경이 탄 순찰차가 신고를 나가면 불안한 마음에 무조건 다른 순찰차를 함께 나가도록 지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 다른 순찰차에 탄 분들은 아무래도 업무부담이 늘어나니 안 좋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구요. 이유야 어찌되었든 제가 여경이라도 지구대 파출소에 있기 싫을 것 같습니다. 다양한 경찰 부서 중에서 남경과 여경의 차이가 가장 도드라져보이는 곳이 지구대 파출소이고, 여경이 가장 눈칫밥을 많이 먹는 곳도 지구대 파출소입니다. 한 순찰팀에 여경이 2명 있는 곳은 거의 없다시피하니, 여자는 자기 혼자뿐인 남초 근무환경에서, 다른 직원들이 눈치주고 싫어하는 티를 내는데 누가 외로이 근무하고 싶어할까요. 여경 때문에 해결되는 상황도 많고, 여경의 도움을 받을 때도 많으니 일정 부분에선 남경들이 포용해주어야 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또, 여기에 더해서 여경들이 내근을 선호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야간근무입니다. 내근은 한두달에 한 번 돌아오는 당직근무를 제외하면 야간근무가 없습니다. 여경이 야간근무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의 대부분 육아 때문입니다. 맞벌이를 해도 육아나 집안일에 있어 여성들이 훨씬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입니다. 자신은 외근이 좋은데, 외근에 있고 싶은데 교대근무를 하면 시어머니 눈치가 보여서 못하겠다는 여경을 실제로 보았습니다. 이는 경찰만의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남녀평등이 더 이루어져야 해결될 부분입니다. 덧붙여 내근은 꿀(?)빤다는 시선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습니다. 부서마다 다르긴 하지만 몇몇 바쁜 지구대를 제외하면 솔직히 내근이 외근보다 힘듭니다. 업무가 많아 6시에 퇴근하지 못하는 부서가 많고, 윗 사람 눈치보랴, 각종 행정업무에 치이고 월급은 시간외수당이 적어 외근보다 적습니다. 많게는 40~50만원 이상 차이납니다. 특히 지구대 파출소가 한가한 시골 경찰서의 경우 젊은 직원들 상대로 내근 순위명부가 작성되어 있습니다. 아무도 내근에 들어가려 하지 않으니 인사 때마다 나이 어린 순서로 내근에 발령내고, 2년정도 의무기간을 채워야 다시 외근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5. 마지막으로 여경들은 일을 하려 하지 않는다, 여경들은 신고나가면 구경만 한다 등등의 시선에 관한 생각입니다. 길진 않지만 5년간 근무하며 제가 느낀 것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살살 눈치보며 일 안하려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는 사람은 어느 조직에나 있습니다. 그런 남자도 있고 그런 여자도 있습니다. 특정 성별이 더 비율이 높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평균적으로 보았을 때 남경이 여경보다 일을 잘한다, 열심히한다는 생각도 딱히 안 들구요. 오히려 집에서는 독박으로 육아와 집안일을 하면서 업무도 누구못지 않게 성실히 하고, 틈틈이 공부해서 순경으로 들어와 입직 10여년 만에 시험으로 경감까지 승진하는 대단한 여경들도 있습니다.
두서 없이 적다보니 글이 많이 길어졌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론 최근 남여 대립이 심해지면서, 여경에 대한 비난과 비하가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다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인데 너무들 각박해졌다는 생각도 들구요. 덧붙여 법과 제도의 개선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현장에서 일하기..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정말 가능하다면 주말 야간 근무 때 주취자들이 저희 경찰관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거기에 저희는 어떤 식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는지... 녹화해서 보여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건전한 의견개진과 토론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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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