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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모든 것들을 삼켜버리는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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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03:19:01

주말에 시간이 되면 블랙홀에 대한 글을 올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어, 남는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글을 올립니다.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일컬어지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1915년 독일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에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보다 10년 전인 190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E=mc² 으로 상징되는 특수상대성이론은 물체가 등속으로 움직이며 중력 및 가속도가 아무 역할을 하지 않는 경우에 국한되었습니다. 그 이후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생각을 확장시켜 가속운동의 경우도 다룰 수 있는 이론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190712월 베른의 특허국 사무실에서 아인슈타인은 중력장과 이에 상응하는 기준좌표계의 가속운동이 물리적으로 동등하다는 등가원리를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는데, 훗날 아인슈타인은 그것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운 좋은 착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이후 아인슈타인은 등속운동뿐 아니라 가속운동에서도 적용되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길고도 먼 학문적 여정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거의 10년 동안 각고의 노력과 방황 그리고 시행착오 끝에 191511월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대한 완전한 장 방정식을 얻어내게 됩니다. 이는 아인슈타인 방정식이라고 불리며 일반상대성이론을 기술하는 텐서방정식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아래의 아인슈타인 방정식 하나로 정리됩니다. (실제로는 열 개의 방정식을 합친 형태이지만 복잡한 설명은 생략하고 수식은 이것 하나만 올리겠습니다.) 여기서 Λ를 포함하는 항은 아인슈타인이 1917년에 새로 삽입한 것인데 정말 흥미로운 스토리를 갖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특수상대성이론의 E=mc²을 확장하면서 중력을 시공간의 곡률이라는 기하학적 언어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E=mc²의 핵심 주장은 에너지와 질량의 등가성인데 반해, 확장된 이론에서는 어느 한 지역에 있는 모든 질량(=에너지)이 근처의 모든 시공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질량이 시공을 뒤틀어 빛의 운동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중력의 장 방정식을 발표한 바로 다음 해인 1916년 카를 슈바르츠실트(Karl Schwarzschild)라는 독일의 과학자가 아인슈타인 방정식에 대한 해(solution)를 구했습니다. 슈바르츠실트는 1차 대전 일어난 후 전쟁에 출병하기 직전에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접한 뒤, 동부전선 전쟁터에서 계산에 성공해서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해를 얻어냈습니다. 슈바르츠실트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아인슈타인에게 편지로 보낸 후 바로 그 해에 전사했습니다.

 

 슈바르츠실트가 얻은 답에 의하면 태양 주위를 지나는 빛은 중력 때문에 휘어야 하는데, 그 휘는 각도가 너무 작아서 약 1800분의 1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빛이 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많은 과학자들이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슈바르츠실트가 옳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일반상대성이론이 옳다는 것이 증명되자 일부 과학자들은 또 다른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슈바르츠실트의 계산에 따르면 태양이 질량을 유지하면서 반지름 3킬로미터 크기로 줄어들 수 있다면 태양의 표면에서 밖으로 나가던 빛이 꺾여서 다시 빨려 들어오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지구가 질량을 유지하면서 반지름 9밀리미터가 되도록 압축된다면 지표가 내보내는 빛이 모두 지구로 빨려 들어오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과학으로는 태양을 반지름 3킬로미터 크기로 줄이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아인슈타인과 슈바르츠실트가 옳다고 하더라도 그런 존재는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 내었습니다.


그런데 1930년대에 영국으로 유학 온 인도의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Subrahmanyan Chandrasekhar)에 의하여 여러 종류의 별의 마지막 상태가 연구되었고, 일반상대성이론을 이용한 그의 연구는 치열한 논쟁을 거쳐서 1940년경에는 다수의 천체물리학자들에게 동조를 얻어냈습니다. 찬드라세카르로부터 시작된 별의 진화와 죽음에 대한 이론을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별의 질량이 태양과 비슷하거나 약간 더 클 경우, 핵융합 반응으로 중심부에 있는 수소를 다 소진하면 내부에서 에너지가 생성되지 않아 중심핵은 수축되기 시작합니다. 핵이 수축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로 핵의 주변의 수소들이 핵융합반응을 시작해 별은 더욱 밝아지고, 팽창하게 됩니다. 그 결과로 별은 커지면서 밝아지지만, 덜 뜨거워지고 더 붉어지는 적색 거성이 됩니다. 그 이후 별의 중심핵이 더 이상 별을 이루고 있던 기체들을 잡아둘 수 없게 되면 표면의 피부가 우주 공간으로 계속 빠져 나가며 행성상 성운을 이루는데, 이때의 별은 질량의 대부분을 잃게 됩니다. 그 이후 별의 중심핵은 천천히 수축을 하고, 수축을 멈추게 되면 천천히 식어갑니다. 이때의 별은 지구정도 크기로 매우 작아지게 되며, 남아 있던 열과 빛을 우주 공간으로 서서히 방출하는 백색왜성이 됩니다.

 

태양의 질량의 3배에서 15배 정도 되는 별은 적색거성 이후 초신성폭발이라 불리는 중심핵 내부에서의 강한 폭발로 인해서 별의 핵을 제외한 모든 물질이 날아가 버립니다. 이때의 별의 밝기는 작은 은하와 비슷한 정도가 됩니다. 초신성폭발에서 남아 있는 별의 잔해는 내부의 핵과 전자가 합쳐져 중성자로 변하여 아주 밀도가 높고 작게 수축됩니다. 이 별은 강한 자기장과 함께 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을 하며 중성자별이란 이름을 갖습니다. 중성자별에 대한 글은 제가 예전에 올린 바 있습니다.

  | 노벨상을 놓친 여성과학자 그리고 명왕성  |  Free-Talk

 

한편, 태양의 질량보다 15배가 넘어서 초신성폭발 이후 남아 있는 별의 핵의 질량이 태양보다 두 배가 넘으면 중심핵은 중성자별 대신 블랙홀이 됩니다. 이 핵은 중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수축이 계속되고 마침내 밀도가 무한대인 특이점이 생겨 거대한 중력으로 빛까지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만들어집니다. 블랙홀이란 중력이 너무 커서 빛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천체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이 경우 더 이상 중력에 대항할 힘이 물질세계에 존재하지 않게 되어 별 전체는 공간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붕괴합니다. 그런데 물질이 차지하는 공간은 없어져도 그 질량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중력은 그대로 남아있게 됩니다. 블랙홀은 백색왜성이나 중성자별과 달리 질량의 한계가 없습니다.

 

블랙홀은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으로부터 얻어진 일반상대성이론의 예측 결과였으나 아인슈타인은 사망할 때까지 블랙홀의 실재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1949년에 아인슈타인과 절친한 논리학자 쿠르트 괴델이 얻은 아인슈타인 방정식의 해는 인과율의 고리를 만들어내는 closed time-like curves를 생성했습니다. 그것은 역사의 인과율을 깨지 않은 상태에서 원래 시간과 장소로 되돌아 올 수 있는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블랙홀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일반상대성이론을 신봉하는 현대 과학자들이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기 꺼려하는 이유와 동일했습니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수학적 극단이기 때문입니다.

 

블랙홀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아인슈타인이 타계하고 10년 가까이 지난 196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블랙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은 1969년으로 리처드 파인만의 박사 지도교수인 존 휠러(John Wheeler)에 의해서였습니다. 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블랙홀을 찾아 나섰지만, 잘 알려진 별이 갑자기 사라지지 않는 한 블랙홀을 관측을 수는 없었습니다. 인간이 눈으로 천체를 관찰하기 위해서는 천체가 빛을 뿜어내거나 다른 빛이 반사돼 눈으로 들어와 시신경을 자극해야 하는데, 블랙홀이 존재하더라도 빛을 먹어 치울 뿐 반사시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보이는 별과 보이지 않는 별로 이루어진 쌍성계를 관측하여 블랙홀의 존재를 확인할 수는 있었습니다. 이를 비유를 통해 간단히 설명하겠습니다.

 

남자들은 검은색 정장을 입고 여자들은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서로 팔을 끼고 춤추는 무도회가 있습니다. 이때 조명을 낮추면 사람들의 눈에는 하얀 옷을 입은 여자들만 보일 것입니다. 여기서 여자가 보이는 별에 해당하고 남자는 블랙홀에 해당합니다. 남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파트너인 여성을 통해 존재는 물론 움직임도 추측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쌍성계에서 두 별 사이의 거리가 충분히 가까워지면 강한 중력을 가진 블랙홀이 상대적으로 구조가 허술한 파트너별로부터 물질을 빨아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두 별은 서로 공전하고 있으므로 끌려들어오는 물질들 중에는 바로 블랙홀로 떨어지지 못하고 그 주위에 원반을 형성하는 것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원반은 회전 속도가 다른 안쪽과 바깥쪽이 서로 마찰을 일으켜 온도가 수백만도까지 오르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높은 X선이 방출됩니다. X선 방출은 일반적인 항성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현상입니다.

 

1964년 지구에서 6000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백조자리 X-1에서 강한 X선이 방출되는 현상이 발견됐고, 1970년대에 발사된 위성 우후르도 백조자리 X-1에서 방출된 X선을 포착했습니다. 그곳에 블랙홀이 있음을 확신한 과학자들은 전파망원경을 사용하여 중력과 방사선을 탐지하는 방식으로 블랙홀을 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전파는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방해를 덜 받으며 지구까지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1999년에 우주로 발사된 찬드라 망원경은 X선을 볼 수 있도록 특별히 고안된 우주 망원경인데, 이런 방식으로 블랙홀의 간접적인 이미지들을 여러장 촬영했습니다. 천체물리학자 등 과학자들에게 찬드라 X선 망원경이 가져온 자료들은 블랙홀의 존재에 대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증거였습니다. 그 시점에서 블랙홀의 존재에 대한 과학적 논쟁은 끝났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간접 증거로 만족하지 않고 블랙홀의 실제 모습을 보려는 시도를 이어갔습니다. 블랙홀 자체를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블랙홀의 경계인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을 관측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사건의 지평선을 안쪽으로 넘어서게 되면 빛을 포함해 그 어떤 물질도 빠져나갈 수 없으며, 사건의 지평선은 대략 원형에 가깝고 그 크기는 질량 규모에 따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관측을 시도하려는 블랙홀의 후보지는 수천만 광년이 떨어져 있어 멀어도 너무 멀었습니다. 아무리 고성능이라도 전파망원경 한 대로 블랙홀을 살펴본다 한들 수많은 잡음과 산란 때문에 블랙홀에서 발생하는 전파를 온전히 가져오기 어려웠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지구에 있는 전파망원경을 하나로 묶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글을 쓰다보니 길어졌고 밤이 늦어져서 몸이 피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어지는 글은 다음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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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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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4-14 09:02:27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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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07:33:38

잘읽었습니다 알고있는 내용이어도
데이먼 베일리님께서 또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주시니 더 재밌는것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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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07:50:12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이론이 실제와 맞아떨어지는걸 발견한다는건 정말 소름끼치는 일이네요.

슈바르츠실트의 이야기는 참 마음 아프면서도 경탄스럽습니다.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에서 그런 계산을 할 수 있었다는게. 사람이란 대관절 어떤 존재인가. 유전자적인 문제로만 생각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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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18:32:28
슈바르츠실트는 경이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 방정식은 당시에 아인슈타인 조차도 근사해가 아닌 정확한 해를 구하는 게 불가능할 거라고 여길 정도였습니다. 슈바르츠실트는 맨손으로 10개의 2차 비선형 연립방정식을 풀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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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09:19:12

안그래도 이번에 관측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신기하면서도 흥미가 솟아났는데 이렇게 써주시니 감사하네요. 다음 내용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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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09:41:10

이번에 찍힌 블랙홀 사진에 대하여 돌아오는 월요일에 하버드에서 설명회가 있다고 합니다.

여하간, 저 한줄의 수식에 우주의 비밀 중 하나가 담겨있다는 것이 놀랍고도 아름답네요. 세상은 넓고 대단한 사람은 많다는 것을 나날이 느끼고 있습니다.

좋은 글 항상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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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09:41:17

매번 유익한 글에 무척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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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9-04-14 10:10:35

베일리님의 글을 볼때마다 입이 벌어집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 방면에서 엄청난 지식을 이렇게 타인의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글을 정리해주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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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11:24:05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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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11:25:10

너무 어렵지만, 이렇게 수준 높은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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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14 12:24:56

기를 쓰고 정독했네요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WR
1
2019-04-14 18:34:15

남겨주신 글들 감사합니다. 이르면 오늘밤이나 새벽에 이어지는 글 올리겠습니다.

1
Updated at 2019-04-14 22:25:01

정말 어렵지만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내일 또 읽으면 이해가 조금이라도 더 되겠죠?

무리한 부탁일 수도 있었는데도 글을 올려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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