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Free-Talk

형주 공방전- 2( 위, 촉, 오의 상황)

 
14
  2080
Updated at 2019-02-20 17:23:22

 

 http://www.typemoon.net/bbs/board.php?bo_table=freeboard&wr_id=1640518

 

위 글을 참조하여 작성했습니다.

 

 

조조와 손권이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손을 잡을 무렵,

218년 10월, 형주 북쪽 남양(완성) 일대에서 후음이 반란을 일으켰고, 북형주 책임자로

번성에 주둔하며 관우를 견제하고 있던 조인은 후음의 난을 진압하고자 움직이는데,

관우는 후음의 반란과 연계하여, 그동안 존버하며 길러온 병력으로 북진을 시작합니다.

 

관우가 북진한 이유에는 여러 썰이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후음의 반란으로 인해

원래 관우를 치기 위해 번성에 주둔해 있던 조인의 군대가 빠졌던 것이 가장 컸고, 조인이

돌아오기 전에 번성과 양양을 타격해 공략함으로써 조조군에 선제타격을 가하려 했다는

설이 제일 유력하고, 막 점거한 한중의 안정화를 위해 유비가 명령했다는 설 등 다양하지만

관우는 육군과 수군을 이끌고 번성을 향해 진격했고, 조인은 후음의 난을 진압한 뒤에

뒷처리를 전예에게 맡긴 채 황급히 번성으로 돌아왔고, 조조는 믿고 신임할 만한 우금에게

정예군인 7군을 내어주며 지원군으로 파병합니다. 그걸로도 불안했는지, 완성에 서황을

주둔시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게끔 했습니다.

 

 

삼국지를 본 사람들에게 다들 잘 알려져 있듯, 우금의 7군은 여기서 수몰되었고 관우는

7군을 수몰시키고 우금의 항복을 받아낸 데 이어 번성을 포위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7군이 수몰하기 전, 원래 형주에 있던 조인과 방덕은

관우와 맹렬하게 싸웠고, 관우는 방덕에게 이마에 화살을 맞고 부상을 입었을 정도로

전황이 치열했는데, 실제 지도를 보면 7군과 조인의 군대는 번성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강이 범람해서 저쪽까지 물에 잠긴 군대를 관우가 수군을 이용해 움직여 쳐부쉈다는

이야기인데, 조인이나 우금이 위나라 최고의 명장들임에도 이렇게 당했다는 것은

그 이전에 수군끼리의 싸움에서 관우가 승리를 거둬 관우의 수군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싸움에서 관우는 천시(폭우)를 예측하고

이를 활용하여 위나라의 정예군을 압도적으로 관광 보내고 우금의 항복을 받아내는데,

이 당시 항복한 군사만 3만이었으니 원래 보유했던 병력은 더 있었을 텐데 이 병력을

싸그리 날려버리는 동시에 형주자사 호수와 남향태수 부방도 관우에게 항복합니다.

 

방덕은 최선을 다해 싸우려 했으나 결국 사로잡혔고, 투항하라는 관우의 요구에

굴하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금은 살아남은 군사들과 함께 투항하는데,

우금은 이 패전으로 커리어에 치명적인 오점을 남기고, 훗날 조비에게 조롱받아

홧병으로 숨지고 마는데, 끝까지 싸우다 죽은 방덕이 멋있을 수는 있으나 불어난

물에 포위되어 오갈곳 없고, 전의도 상실한 휘하 군대와 장수들을 살리고자 투항한

우금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대놓고 조롱한 조비 역시 인간성이.........

 

형주의 자사가 항복했다는 것으로 보아 형주의 행정 책임자가 사로잡혔다는 뜻인데,

그 와중에 군사책임자인 조인은 5~6장이나 되는 거대한 물길 속에 갇혀 번성 안에

완전히 포위되어 버리면서 전투불능 상태에 빠졌고, 그렇게 형주 일대는 관우의

영향력 내에 들어가고 마는데, 조조는 급히 완에 있던 서황에게 조인을 구원할

것을 지시하지만, 용맹한 서황의 입장에서도 물이 불어날 대로 불어난 상황에

손을 쓰지 못하고 일단은 병력을 두고 관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로잡힌 남향태수의 영역인 남향이 어디인지 나타내는 지도. 남향의 위치를 보면 서쪽으로

상용 이 위치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이 시기 상용에는 유봉과 맹달이

주둔해 있었고, 관우가 왜 상용에 지원을 요청했는지 이해가 쉽게 가는 부분이죠.

 

 

 노란 마름모가 후한의 수도인 허창(허도) 입니다.

 관우의 영향력권 안에 들어간 남향 일대와 거의 지척에 위치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기록에 의하면 양, 겹, 육혼의 군도, 반 조조세력들이 혹은 멀리서 관우의 관인과 봉호를 받아

 그의 일당이 되었다고 하는데, 지도에서 보면 경, 육혼, 양은 허창 근처의 작은 동그라미로

 표시된 곳으로, 사실상 관우의 힘이 형주를 넘어 예주에까지 뻗치기 시작했다는 뜻.

 

관우의 손에 형주 일대가 사실상 떨어지자 조조는 크게 동요했는데, 일단 남양 일대가

 관우의 영향력 하에 놓이자 남양에 인접한 지역도 관우의 움직임에 호응해 반기를 들고

 관우와 연합하기 시작했는데, 그 인근 지역이란 것이 허도(허창) 인근까지 다가온 것.

 위의 수도가 업군이라지만 엄연히 후한 왕실이 아직 존재하고, 한의 수도가 허도인 이상

 황제가 위치한 허도의 중요성은 어마어마했고, 조조는 이에 허도에 있는 도읍을 옮길

 생각까지 할 정도로 위기 의식에 몰렸는데 여기서 사마의와 장제가 나서 수도를 옮길

 필요 없이, 손권을 움직여 관우를 치게 하면 번성과 양양의 포위는 풀릴 것이라 진언했고

  조조는 이에 즉각 사신을 손권에게 파견하는데, 기록에 의하면 손권은 사신의 연락을

 받자마자 즉시 군사행동을 개시했다고 적혀 있으니, 손오가 이미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하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조조는 서황에게 조인을 구원할 것을 지시했다가 서황이 실패하자, 결국 병력을 또다시

 증원하는데 무려 합비 방면에 있던 장료를 빼내 보내는 동시에 자신도 서황의 뒤를

 따라서 직접 남하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관우 한명 잡자고 조조의 올스타급 장수진이

 총출동하는 셈이었습니다. 오자양장이라 불리는 조조의 장수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 중 이 시기엔 이미 고인이 된 악진과, 한중의 유비를 견제해야 했기에 빼낼 수

 없던 장합을 제외하면 세 명의 장수가 모두 동원되었고(우금은 이미 포로로 잡혔지만)

 번성에 갇혀있는 조인과 만총까지 거의 올스타급의 전력이 투입된 셈이었습니다.

 장료가 움직였다는 것은 위와 오의 밀약했다는 것을 다시 알 수 있는 대목인데,

 손권이 합비를 친다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알아야 장료를 빼낼 수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지원이 투입되는 상황에서, 물에 잠겨 포위된 번성의 상황은 가히 최악이어서

 이미 성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상태였고 병력은 고작 수천에 지나지 않았으며

 지원군으로 왔던 7군이 수몰된 사실에 사기를 잃고 좌절감에 빠진 상태였고, 사령관이던

 조인마저 성을 버리고 퇴각할 생각까지 했지만 만총이 지원이 올때까지 최대한 이곳을

 사수하며 관우를 붙잡아 놓아야 한다며 필사적으로 설득했고 조인이 이에 동의하면서

 장수들을 모아 결사의 각오를 다지니 성 내의 사기는 다시 크게 상승했고............

 

 관우는 양양과 번성 양측을 모두 포위하는데 성공했고, 번성이 무너지는 순간

 완성까지는 프리패스로 뚫리는 최고의 상황에서도 쉽사리 더 북진을 하지 못했는데

 포위된 양양과 번성을 두고 진격했다가 그들이 뛰쳐나와 배후에서 위협할 것은

 분명했고, 거기에 항상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손오의 움직임도 고려해야 했기에......

 만총의 필사적인 호소는 결국 신의 한수가 되는데, 물에 잠긴데다 포위되어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필사의 항전을 벌인 조인에게 발목이 잡히면서 시간이 점점

끌리자, 조조의 군대는 패전을 딛고 일어나면서 관우에게 반격할 태세를 갖춥니다.

 

 - 관우의 상황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관우군 역시 문제가 있었습니다. 위의 수군을 개박살내고,

번성과 양양 양 쪽에 조조의 형주군을 몰아넣으며 궁지에 몰아넣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불어난 물은 조조군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관우군에게도 똑같이 해당되었습니다.

관우의 군대는 배를 타고 번성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배를 타고 공격하는 상황에 악천후

가 겹치면서 물자와 식량은 배로 필요한데, 주변이 초토화된 이상 현지조달은 불가하고

보급은 후방 지원을 담당한 미방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했는데................

 

미방은 당시 남군태수로, 형주의 총책임자인 관우 다음인 형주의 2인자였습니다.

유비가 서주에 있었을 시기부터 유비를 십여년을 훨씬 넘도록 따랐던 충복이었으며

그의 형 미축은 명예직이지만 촉에서의 지위가 제갈량보다 높았고, 미방의 누이는

유비의 부인이었을 정도로 유비군 내부에서도 꽤 지위가 있고 명망 있는 인물이었는데

미방은 관우와 사이가 그닥 좋지 못했고, 관우는 평소에도 미방을 좋게 보지 않았다 하는데

거기에 결정적으로 기름을 부은 일이, 남군성 내 실수로 불이 나서 적지 않은 군사 기물이

불타자 격노한 관우는 미방을 질책했고, 관우에게 두려움을 느낀 동시에 화가 난 미방은

여몽과 미리 결탁해 이때부터 내통을 시작했다(정사 여몽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통을 했어도 아직 항복한 것은 아니었기에 미방은 보급을 해주고 있었으나, 관우의

군대에 충분한 보급이 닿지는 못했고, 관우는 분노해 돌아가면 반드시 죄를 다스릴 것

이라며 이를 갈았는데, 미방 입장에서도 3만에 달하는 포로의 식량까지 충당하려면

보급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책망을 받자 더더욱 양자간 불신의 골은 깊어졌고

전방과 후방의 협력이 잘 이루어져도 힘들 판에 점점 더 답없는 상황으로 향해갔습니다.

내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보급도 과연 최선을 다했을까는 의심이 들지만....

 

관우는 상황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답답해했는데,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번성과 양양을

모두 무너뜨리고 북진할 수 있는 상황에서 보급도 제때제때 오지 못해 차질이 생기고,

거기에 조인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시간을 계속 끌고 있었는데다

결정적으로, 상용에 지원을 요청했는데 유봉과 맹달이 이에 응하지 않은 것

 

상용에서 형주로 오는 길은 사실상 뚫린 것이나 다름없었고, 관우는 이에 상용에서

군대가 와서 자신의 군대를 지원하는 동시에 포위망을 강화하여 조조군이 조인을

구원할 엄두도 못내도록 사전에 차단하려는 생각이었지만, 유봉과 맹달은 상용에서

점령하지 얼마 안 되어 군사를 보낼 여지가 없다면서 관우의 지원 요청을 무시했고,

거기에 군악대의 소유권을 놓고 싸우는 등 한심한 지휘계통 다툼을 하고 있었고......

(사실 유비의 실책도 있는 것이, 상용을 거의 다 점령한 맹달에게 유봉을 붙여버린

것이 유비. 유선이 태어난 이상 유봉의 가치는 없었고, 어디다 짱박아 놓을 곳을 찾던

와중에 찾아낸 것이 멀리 떨어진 상용이었고, 맹달 입장에선 본인이 다 해놓은 공적에

왠 주공 양아들이 꼽사리로 끼어들어와 본인 상관 자리에 눌러앉은 격이니.............)

 

연의에서는 맥성에 갇힌 이후에 상용에 요화가 간신히 포위망을 뚫고 가서 지원을

요청하지만 유봉과 맹달의 거절로 관우가 결국 사로잡혀 죽음을 맞이하는데 실제

정사에서는 그 이전부터 계속 지원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유비가 관우 사후

유봉과 맹달에게 격노한 것은 이 이유가 더 큰데, 다 이긴 싸움에서 지원만 갔다면

충분히 유리하게 전개했을 것을 망쳐놓았다고 봤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10월에 이르자 서황이 결국 지원군을 끌고 번성 인근까지 도달하는데, 서황이

군을 이끌고 온다는 사실은 관우도 이미 알고 있었고, 관우는 조조군의 병력에

대처하기 위해 병력과 물자를 더욱 확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두 가지의

조치를 실행하는데, 이 두가지 조치는 관우의 몰락을 불러오게 됩니다.

 

하나는 남군과 공안 인근에 손권의 군대를 견제하기 위해 배치해놓았던 군대를

조조군과 싸우기 위해 전진배치하면서 형주의 수비를 약화시킨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부족한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영릉 근처에 위치해 있던 상관을

마음대로 털어 물자를 확보한 일인데, 상관은 촉과 오의 경계 지역에 위치,

이곳을 오가는 사람을 관리감독하기 위해 설치한 군사시설인데, 이곳의

물자를 털면서, 손권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하고 만 셈이었습니다.

 

- 오의 상황

 

그런데 여기에는 여몽의 무서운 계략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여몽은 이 무렵

중병에 걸렸다며 후방으로 옮겨 요양중이었고, 후임에는 육손이 임명되어 있었는데

육손은 연의와는 달리 당시 36세로 어린 나이도, 햇병아리도 아니었지만 육손은

임명되어 오자마자 관우에게 사신을 보내 ' 난 초보니까 아무것도 모름. 명성 높은

님이 봐주십쇼' 라며 납작 엎드린 태도를 취하는 동시에 관우의 전공을 찬양하며

'님은 킹왕짱임. 적국(조조군)이 패배한 것은 동맹인 우리에게 이로운 일이므로 님의

승리을 듣고 손뼉을 쳤고, 중원을 석권하는 대업을 이루어 함께 조정을 보좌하고 기

강을 유지시키기를 희망함' 이라며 관우를 추켜세우며 북벌을 돕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관우는 경계를 풀고 남군에 있던 군대를 북쪽으로 이동시켰는데, 여몽은

애초에 이를 의도하고 자신이 물러난 뒤 육손을 그 자리에 앉혀 위장한 것으로

여몽이 뜻한 대로 관우는 병력을 옮겼으며, 관우가 상관을 털면서 명분도 제공해

주었기에 손오의 입장에선 이만한 찬스도 없었던 셈이었습니다. 관우가 이렇게

방심한 것에는 육손을 얕잡아본 것도 있겠지만 실제로 여몽이 아팠던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여몽은 실제로 형주 공방전 내내 골골거렸으며, 형주를

손에 넣은 직후 병사하는데(219), 여몽을 위협적인 상대로 여기고 계속 지속적으로

주시하고 있던 관우가 이를 몰랐을 리는 없고, 그랬기에 여몽이 후방으로 물러나자

정말 아파서 죽기 직전이기에 저랬구나 라고 경계를 풀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상관을 턴 것은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한 일이었지만, 실제 번성에 있던 관우가 직접

물자를 털었을 리는 없고 관우 휘하의 부대가 이를 실행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여기서

하나의 썰이 도출되는 것이, 만일 미방이 물자를 확보한다는 핑계로 상관의 물자를

털고, 손권이 형주를 공격하는 명분을 제공해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인데, 실제로

손권은 상관이 털렸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즉각 군을 움직였는데, 미방이 유도하건

유도하지 않았건 상관의 물자 탈취는 호시탐탐 기회와 명분을 찾고 있던 손권에게

충분한 구실이 되었죠.  원래 여몽이 아픈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처음에 지휘 부담을

덜어주고자 손교에게도 지휘권을 나누려던 손권은 여몽이 지휘 계통이 일원화

되어야 번개같은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여몽의 뜻에 따라 손교에게 여몽을

뒤에서 지원할 것을 명령했고, 여몽은 그렇게 오의 군사를 통솔해 형주로 진격합니다.

 

그렇게 오가 동쪽에서 숨겨둔 발톱을 내밀어 공세를 취하려고 할 무렵, 조조군 역시

관우을 상대로 대반격을 시작하는데, 그 선봉장에 선 것이.......................

 

 

 조조군 최고의 명장 중 하나인 '하동군 도끼 살인마' 서황이었습니다.

 

 서황의 무쌍과 여몽의 책략, 관우의 몰락은 마지막 3에서 적어보겠습니다.

 

4
Comments
1
2019-02-20 18:28:24

미방의 배신은 관우로서도 정말 예상못했을 겁니다. 개국공신인데 말이죠. 심지어 미축, 미방 모두 서주의 대호족으로 영향력이 넘쳤고, 조조가 미방을 패국상으로 추천하는 등 그런 러브콜까지 쳐내고 왔으니까요. 관우라면 전장군에 임명되며 받은 가절후를 이용해서 진짜 자신을 처단할거라 여긴듯 합니다.
많은 분들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저 상용의 중요성이 생각보다 진짜 크죠. 삼국지게임에서는 주로 공백지(...) 신세지만 이후에도 제갈량이 그 맹달을 꼬시고, 장완도 습격 작전을 계획했으니까요. 맹달이 상용을 넘겨버리면서 진출 루트도, 위나라의 대촉 방어 루트도 장안 루트로 한정시킬 수 있던게 가장 큰 타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9-02-20 19:40:28

상용만 잃지 않았더라면 제갈량이 북진할때 더 수월했을텐데 그부분이 많이 아쉬웠네요.

2019-02-20 21:15:11

잘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9-02-21 12:07:21

많은이들이 형주공방전을 관우의 고집과 자존심이 만들어낸 천하삼분을 깨먹은 실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 공방전은 제반 상황만 본다면 촉 입장에선 절대 손해볼 리가 없는 싸움이었죠

이후 유비가 분노해 유봉을 죽이고 미축이 사실상 정계은퇴를 할 정도로 배신과 내분은 뼈아픈 것이었습니다 물론 계기를 준것도 유관장 브라더스 아니냐 할수도 있지만요

주력군이 익주쪽으로 다 빠져나간 상태에서 길지 않은 기간 내 병력을 양성한 것, 수군 지휘관으로서 능력을 보여준 것 등은 확실히 관우가 단순히 유비 밑의 싸움잘하는놈이 아니라 능력있는 사령관이라는걸 보여줍니다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