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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저 레코드, 황금에 실려 지구를 떠난 음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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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2-18 23:56:54


모든 세상과 모든 시대의 음악가들에게

ㅡ칼 세이건




1977년 8월 20일과 9월 5일, '보이저(Voyager)'라는 이름의 두 우주 탐사선이 우주를 향해 발사되었다. 이 탐사선들은 1979년부터 1986년까지 목성에서 천왕성에 이르는 외행성계를 자세히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이후에는 천천히 태양계를 벗어나서 지구가 우주에게 보내는 첫 사절이 될 예정이다. 2012년 보이저 1호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태양계를 벗어나 인터스텔라(성간 영역)에 진입했고, 보이저 2호 역시 두 달 전 태양계를 빠져나갔다. 두 보이저호에는 금박을 씌운 축음기용 구리 레코드 판이 하나씩 부착되어 있다. 각 레코드판에는 우리 행성과 인간과 문명의 모습을 담은 사진 118장, 지구와 그 생명의 진화를 표현한 소리 에세이 [지구의 소리들(The Sounds of Earth)], 미국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의 인사말을 비롯하여 약 60가지 언어로 말한 인사말(고래의 인사말 포함), 미국 상하원 의원들 명단, 베토벤 카바티나의 첫 두 마디, 그리고 '음악'이 담겨 있다. 이것은 머나먼 미래의 어느 시간과 공간에 이 탐사선들을 만날지도 모르는 외계 문명에게 우리가 보내는 메시지다. 보이저호의 황금 레코드판에는 어떤 음악들이 수록되어 있을까?      



※ 보이저 레코드의 음악 리스트  


1.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F장조, 1악장,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 카를 리히터 지휘. 4:40

2. 자바, 궁정 가믈란, [다채로운 꽃들], 로버트 브라운 녹음. 4:43

3. 세네갈, 타악기, 샤를 듀벨 녹음. 2:08

4. 자이르, 피그미 소녀들의 성년식 노래, 콜린 턴불 녹음. 0:56

5. 오스트레일리아, 애버리지니의 샛별 노래와 사악한 새 노래, 샌드라 르브런 홈스 녹음. 1:26

6. 멕시코, [엘 카스카벨], 로렌소 바스셀라타와 마리아치 멕시코 밴드 연주. 3:14

7. [조니 B. 구드], 척 베리 작사 작곡 및 연주. 2:38

8. 뉴기니, 남자들만의 집에서 노래, 오버트 매클레넌 녹음. 1:20

9. 일본, 샤쿠하치, [둥지의 학들], 야마구치 고로 연주. 4:51

10.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의 파르티타 3번 E장조 중 '론도풍의 가보트', 아르튀르 그뤼미오 연주. 2:55

11. 모차르트, [마술피리] 중 '밤의 여왕의 아리아', 소프라노 에다 모저, 뮌헨의 바이에른 국립 오페라단, 볼프강 자발리슈 지휘. 2:55

12. 조지아, 합창곡, [차크룰로], 라디오 모스크바 방송국 녹음. 2:18

13. 페루, 팬 파이프와 북, 리마의 카사 데 라 쿨투라(문화의 집) 녹음. 0:52

14. [멜랑콜리 블루스], 루이 암스트롱과 핫 세븐 연주. 3:05

15. 아제르바이잔, 백파이프, 라디오 모스크바 방송국 녹음. 2:30

16.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 중 '신성한 춤', 콜롬비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고리 스트라빈스키 지휘. 4:35

17.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 2권 중 전주곡과 푸가 C장조, 글렌 굴드 피아노. 4:48

18. 베토벤, 교향곡 5번 1악장, 필 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오토 클렘퍼러 지휘. 7:20

19. 불가리아, [이즈렐 예 델요 하그두틴], 발랴 발칸스카 노래. 4:59

20. 나바호 아메리카 원주민, 밤의 찬가, 월러드 로즈 녹음. 0:57

21. 홀번, [파반, 갤리어드, 알망드와 그 밖의 짧은 노래들]중 '요정의 원무', 데이비드 먼로와 런던 고음악 콘소트 연주. 1:17

22. 솔로몬 제도, 팬 파이프, 솔로몬 제도 방송국 녹음. 1:12

23. 페루, 결혼 노래, 존 코언 녹음. 0:38

24. 중국, 고금, [유수], 구안핑후 연주. 7:37

25. 인도, 라가, [자트 카한 호], 수르슈리 케사르 바이 케르카르 노래. 3:30

26. [밤은 어둡고 땅은 춥네], 블라인드 윌리 존슨 작곡 및 연주. 3:15

27. 베토벤, 현악 사중주 13번 B 플랫 장조, 작품 번호 130번 중 카바티나, 부다페스트 현악 사중주단 연주. 6:37





▲ 우주의 아이들은 척 베리의 기타 연주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



세상의 음악에는 밤하늘에서고대 이집트의 태양 찬가, 불교 경전에서부터 현대 대중음악의 가사에 이르기까지ㅡ영감을 얻은 주제들이 무수한 별들처럼 박혀 있다. 플라톤의 말처럼, 우리의 눈은 천문학에 맞게 만들어졌고, 우리의 귀는 화음의 움직임에 맞게 만들어졌다. 태양이 물러난 밤하늘은 우리에게 사물의 더 넓은 구조를 엿보게 한다. 보이저호의 프로듀서였던 티머시 페리스는 보이저호에 실려 우주로 발송된 87분 30초 길이의 음악에 대해, 우리가 우주에 빚진 영감에 대한 약소한 대가라고 일컫는다. 티머시는 말한다. "우리는 그 유산의 우아함에 필적하는 훌륭한 음악들을 보내고 싶었고, 지구에 사는 인간들의 다양성을 조금이나마 암시하도록 충분히 다채로운 음악들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레코드에 수록될 음악을 위해서 프로젝트의 책임자들(칼 세이건, 린다 세이건, 앤 드루얀, 티머시 페리스, 프랭크 도널드 드레이크, 존 롬버그 등)은 두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째, 탐사선을 쏜 사회가 친숙하게 느끼는 음악만이 아니라 여러 문화들의 음악을 폭넓게 아울러야 한다. 둘째, 그저 의무감에서 무언가를 포함시키지는 말아야 한다. 선곡된 곡 하나하나가 머리뿐 아니라 가슴에도 와닿아야 한다. 이 과정의 자문에 참여한 음악학자 로버트 브라운의 발언은 이 기준을 잘 함축하여 나타낸다. "우리가 열렬히 아끼는 것들을 보내지 않을 거라면, 애초에 왜 보내겠습니까?"


  여러분이 저 기준을 읽으면서 깨달은 바, 두 기준 모두 아무리 잘 해봐야 완전하게 만족시킬 수 없는 희망이었다. 문화적 편향과 빠듯한 제작 시간 외에도, '정보량' 자체가 큰 벽으로 다가왔다. 서양에는 바흐의 음반이 수천 장 있지만, 아프리카 피그미 족의 노래를 녹음한 음반은 몇 장 되지 않는다. 글렌 굴드의 기예를 보여주는 녹음은 편리할 정도로 접근이 용이하지만, 중국의 고금 연주자 구안핑후의 녹음은 이념의 장벽마저 넘어야 했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그가 직접 쓴 글을 읽으면서 이해를 도울 수 있지만, 자바의 가믈란 곡들을 작곡한 사람들의 언어는 세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구가 많은 세상들 중 하나이듯이, 지구 속에도 많은 세상들이 담겨 있다. 보이저 레코드가 비서구 문화의 음악을 담는 데 조금이라도 성공했다면, 그것은 우리와는 다른 사회들의 음악을 녹음하고 이해하는 데 헌신하는 연구자들의 노력과 조언 덕분이다. 이들은 대부분의 연구를 빠듯한 예산으로 진행하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열정으로 채운다.


  깊이 감동하는 곡만을 레코드판에 실어야 한다는 두 번째 기준은 자연스레 의견 차이를 낳았다. 책임자들 모두가 동서양을 막론하고 '민속 음악'보다는 '고전 음악'을 더 선호했다. 서양 고전 음악의 경우에는 같은 작곡가의 여러 작품에 집중하는 편이 외계 청취자의 '해독'을 용이하게 하리라 판단했다. 바흐와 베토벤이 이 경우다. 음악에 할당된 시간을 세 배로 늘리자는 결정은 프로젝트가 시작되고서 시간이 꽤 흐른 뒤에 내려졌기 때문에, 모든 선곡과 취합에 주어진 시간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지금 만드는 것이 앞으로 10억 년을 버틸 레코드 판이라는 것보다, 그 아이디어가 지금 당장 사용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묘안이라면 묘안이었다. 사람들이 권했던 수백 곡의 리스트 중에서 인도 라가 음악과 고금 연주곡인 [유수]가 당장 레퍼토리를 차지하며 좋은 길라잡이가 돼주었고, 이 두 곡은 현재 보이저호의 황금 레코드판에 담겨 우주를 유영하는 중이다.


  다른 문명이 만든 물체를 실은 우주 탐사선이 우주를 떠돌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100억 년 혹은 150억 년이나 되는 우리 은하의 역사에서 성간 우주선을 쏘아 올린 생명체가 우리뿐이라면 오히려 그게 더 놀라울 것이다. 우리가 우리 세계의 음악가들이 만든 음악을 내보내기로 결정한 행성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저절로 자부심이 샘솟는다. 인간의 음악이 다른 행성의 다른 지적 생명체에게 조금이라고 의미가 있을지, 푸른 하늘 아래에서는 알 방도가 없다. 그러나 우연히 보이저호를 만나고 그것에 실린 레코드 판이 인공물임을 인식한 생명체라면 그것이 귀환의 희망 없이 발송된 물건이라는 사실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레코드판 안에 담긴 정보나 제스처보다는 음악이 우리의 메시지를 좀 더 분명하게 전달할지도 모른다.  


  조지아인들은 합창한다. 우리가 아무리 원시적인 존재로 보여도, 그리고 이 우주 탐사선이 아무리 조악해도, 우리는 스스로를 우주의 거주자로 여길 만큼은 알고 있다고. 나바호의 원주민들은 외친다. 우리가 아무리 작은 존재라도, 우리 안에는 스스로가 이미 멸종했거나 알아보지 못할 만큼 변했을 게 분명한 머나먼 미래에 미지의 발견자에게 닿고 싶어 할 만큼 크나큰 무언가가 있었다고. 피그미 소녀들은 노래한다. 당신이 누구이고 무엇이든, 우리도 한때 별들의 거주지인 이 우주에서 살았고, 낭만적인 음악을 들으며 당신을 생각했노라고.




우리는 망원경으로 성운을 보았네

황금빛 안개 무리인 것 같았지

더 큰 망원경으로 본다면

깊디깊은 공간에서 무수한 태양들이 빛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


우리 머릿속에서 풀려나온 생각들 때문에

그것이 높이 솟는 듯했지, 지구의 전쟁들 너머로,

시간과 공간ㅡ우리의 보잘것없는 삶ㅡ을 벗어나,

다른 장엄한 차원으로


그곳에서는 이곳의 삶을 다스리는 법칙이 통하지 않네

그곳에서는 세상들의 세상을 다스리는 법칙이 지배하네

그곳에서는 태양들이 물밀듯 생겨나고, 성숙하고,

모든 태양들의 근원으로 퍼져 나가네


무수히 많은 태양들이 있지

그곳에서는 모든 태양이 더 큰 태양들의 찬란한 빛 속에서

우주의 법칙에 따라 박동하네

그리고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명료하다네, 모든 날들의 날이


ㅡ하리 마르틴손의 시집『파사드』중에서, [천문대를 방문하다]




---


작년 12월, 드디어 보이저 2호가 태양계를 벗어났습니다.

보이저호의 본디 목적인 탐사 과정 자체도 대단했지만

저는 황금 레코드라는 발상 자체도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 안에 음악을 담는다뇨...

 

음악이 다소 생소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저 또한 아는 곡이 거의 없었습니다.

보이저 팀 역시 짧은 제작 기간 동안 열심히 토론했다고 해요.

'인류의 긍정적인 면만 보여줘도 괜찮은 걸까',

'미술 작품이 포함되지 않아도 괜찮을까',

'비틀스를 빠뜨리는 게 정말 괜찮은 일일까' 등등

 

사실 이 레코드가 정말로 우주의 누군가에게 닿을 확률은

전혀 없다고 해도 좋을 겁니다.

보이저 팀 자체도 이 사실을 잘 알았구요.

칼 세이건도 회고에서 밝혔듯이,

사실 골든 레코드는 지구에 남은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호기심이 대기권에 국한되지 않음을,

사실은 우리가 외계에 있는 지적 생명체를 그 누구보다 만나고 싶어함을,

인류가 진화하면서 얻은 지성, 유머, 상냥함을,

우리가 모르고 지낸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일 테니까요.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혹시 모르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쨌든 스피노자는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었고,

인류는 태양계 너머로 보이저를 보냈습니다.


 

http://goldenrecord.org/

여기로 접속하시면 골든 레코드에 실린 모든 음악과 인사말을 직접 들어 볼 수 있습니다.


https://voyager.jpl.nasa.gov/mission/status/

나사의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제공하는 두 보이저호의 이동 거리 계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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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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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9 07:05:14

좋은 음악은 하나하나가 작은 우주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2019-02-20 22:16:42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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