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고 혼동스러운 미국의 경찰조직

어제 멕시코의 경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늘은 갑자기 미국의 경찰조직에 대해 글을 쓰고 싶어져서 예정에 없이 이 글을 씁니다. 이 내용도 제가 20몇년 동안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였던 결과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독립적인 경찰조직은 경찰청과 해양경찰청 이렇게 두 개입니다. 경찰청은 경찰청장을 중심으로 한 경찰청 본부와 그 산하에 치안사무를 지역적으로 분담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 광역단체에 17개 지방경찰청을 두고 있습니다. 지방경찰청은 지방경찰청장 소속 하에 전국에 252개의 경찰서, 516개의 지구대와 1,479개의 파출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의 조직을 가진 경찰은 경찰청장을 정점으로 상하간의 계급적 질서가 부여된 지휘명령체계에 따라 강력히 중앙집권화 되어 일원적 국가경찰체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에는 몇 개의 독립적인 경찰조직이 있을까요? 놀라실지 몰라도 무려 1만 5천개가 넘습니다. 연방수사국, 50개의 주 경찰본부, 3,000개가 넘는 카운티 경찰본부, 12,000개가 넘는 도시 경찰본부가 모두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 경찰조직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작은 도시들에는 경찰관 10명 이하인 소규모 독립 경찰서들이 다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경찰 조직이라고 하더라도 교육훈련 및 범죄대응 등의 기능을 독자적으로 갖추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카운티 경찰, 주 경찰 등 다른 기관 또는 민간 사업자 등과의 계약을 통해 독립 경찰조직에게 요구되는 기능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주 안에 카운티가 있고, 많은 경우 카운티 안에 도시가 있어 이들 경찰조직들의 역할과 임무에 중복이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와 미국의 경찰조직이 극과 극으로 다른 원인을 알아보려면 역사적 배경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중앙정부에 의해 경찰이 설립되어 국토 내 모든 공간을 관할 지역으로 삼아서, 시작부터 모든 경찰기관이 하나의 지휘체계에 소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경찰은 시작부터 지방이나 도시 단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영국의 식민지 시절 미국 동부의 치안담당 기관들은 Sheriff(보안관), Watch(파수꾼), Night Watch, Slave Patrol(노예 감시대) 들이었는데, 이들은 지역 주민의 안전을 지키고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이었습니다. 그 결과 각각의 지역경찰은 다른 지역의 경찰과 행정적으로 완전히 독립적인 기관으로 유지되었습니다.

미국은 국가의 출범 이전부터 주(state)에는 카운티가 있었고, 카운티 안에는 도시(city) 또는 town이 있었습니다. (알래스카와 코네티컷 주에는 카운티가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국토가 넓어짐에 따라 도시와 카운티의 규모도 달라져서 현재에는 뉴욕처럼 큰 도시는 몇 개의 카운티를 포함하기도 하고, 일부 도시는 두 개 이상의 카운티에 걸쳐 있기도 합니다. 3천여 개 카운티의 규모도 각양각색이어서 인구가 천만이 넘는 거대 카운티(LA 카운티)가 있는가 하면 고작 인구 1만 명 미만의 소형 카운티도 몇백 개가 됩니다. 모든 카운티는 보안관(sheriff)이 경찰 조직을 이끌며, 대부분 카운티의 보안관은 연임 제한 없이 4년 마다 투표로 선출됩니다.

미국의 경찰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대해 가장 인구가 많은 LA 카운티로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LA 카운티 안에는 LA시를 포함해서 버뱅크, 글렌데일, 베벌리힐스, 엘세군도, 라미라다, 호손, 롱비치, 팜데일, 산타모니카, 토렌스 등 여러 도시가 있고 도시나 타운이 아닌 Unincorporated Areas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래의 그림에서 검은 테두리 안에 있는 모든 영역이 LA 카운티입니다. 붉은 부분이 LA City이고 회색 부분이 도시나 타운의 행정구역이고, 흰색이 Unincorporated Areas입니다. 회색 부분으로 표시된 곳에는 모두 독립적인 경찰조직(police department)이 있습니다.

위의 그림에서 붉은 부분인 LA City를 담당하는 경찰조직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LAPD입니다. LAPD는 미국에서 네 번째로 큰 경찰조직으로 1만 3천명의 경찰관이 소속되어 있고 연 14억 달러의 예산을 사용합니다. LAPD보다 더 큰 경찰조직은 NYPD, LASD, CPD(시카고 폴리스)가 있습니다. LAPD는 붉은 영역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수사하고 해결합니다. 붉은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가 LASD(Los Angeles County Sheriff's Department)의 영역입니다. LASD에는 2만명이 넘는 경찰이 소속되어 있고 일년 예산은 약 40억 달러입니다. LASD는 붉은 영역에서 벌어진 사건에는 관여하지 않고, 회색 영역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서는 사안에 따라 각 도시의 경찰본부와 협력을 합니다. 예를 들어 베벌리힐스에서 일어난 소규모 범죄는 독립조직인 베벌리힐스 경찰본부(BHPD)가 처리하는데, BHPD 자체 능력으로 버거운 대형 범죄가 발생하면 LASD의 협력을 요청하는 식입니다.

  카운티 안에 그런 도시들이 워낙 많다보니까 LASD의 규모는 방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 작은 도시에서 각종 수색이나 구조임무, SWAT(Special Weapons and Tactics) 투입 등을 모두 LASD에게 요청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림의 흰색 영역은 독립적인 경찰 조직이 없이 LASD 소속 경찰서가 구역의 치안업무를 담당합니다. LAPD의 장은 Police Chief라고 불리는데, LA 시장에 의해서 임명된 후 LAPD의 지휘부를 직접 구성합니다. LA 시장은 Police Chief의 직속상관으로 임명과 해임의 권한을 갖습니다. LASD의 장은 임기 4년이며 연임제한이 없는 보안관(Sheriff)으로 LASD 지휘부에 대한 임명과 해임 권한을 모두 갖습니다. Sheriff은 4년 임기가 보장되고 직속상관이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패하기 쉬운 경향이 있습니다. 1998년부터 2014년까지 16년 동안 4선 LASD 보안관을 지냈던 전설적인 Lee Baca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대부분 도시(city)의 경찰본부장은 시장이 임명하는데, 선거를 통해 Police Chief을 선출하는 도시들도 있습니다. 카운티와 도시경찰의 관할은 법률적으로 중복되지만, 실제에 있어서 카운티경찰((Sheriff Office)은 도시경찰의 관할을 넘지 않으며, 필요한 경우 상호 협력합니다. 도시지역이 아닌 곳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카운티 단위로 보통 선거를 통해서 보안관이 선출되어 지역 내의 모든 치안업무를 담당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동부 지역보다 서부와 텍사스 지역에서 보안관의 역할이 더 큰 것은 그곳들의 카운티 규모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표는 인구가 많은 카운티를 순서래도 나열한 것입니다.

미국 대도시의 경찰조직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LAPD는 Chief 바로 밑에 4명의 Assistant Chief 이 있습니다. 각 Assistant Chief 아래에는 2~3명의 Deputy Chief 이 있습니다. 각 Deputy Chief은 2~3명의 Commander를 거느리고 Commander는 3~5명의 캡틴을 거느립니다. Chief은 4 stars 계급장을 달고, Assistant Chief은 3 stars, Deputy Chief은 2 stars, Commander는 1 star입니다. 캡틴은 3개의 계급으로 나뉘는데, 캡틴3가 그중에서 가장 높습니다. Chief에서 캡틴까지가 LAPD의 지휘부인데 외부에서 영입되는 경우가 전혀 없이 전부 자체승진으로 그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입니다. 대도시 경찰지휘부는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롱비치 같은 LA 카운티의 작은 도시의 시장은 자체승진보다  LAPD의 Deputy Chief 출신을 경찰본부장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LASD의 보안관은 5 stars 계급장을 달고 있습니다. 그 아래 Undersheriff 이 4 stars, Assistant Sheriff이 3 stars 이렇게 나갑니다. 대도시 경찰본부에서 5 stars는 경찰위원회의 장을 의미합니다. LAPD의 경찰위원회는 다섯 명의 민간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Police Chief의 상위기관입니다. NYPD의 장은 Chief이 아니라 시장의 임명을 받은 5 stars 계급의 커미셔너이고, 자신의 뜻에 따라 NYPD 최고지휘부를 구성합니다. NYPD 커미셔너는 경찰위원회와 경찰을 모두 통솔합니다. 커미셔너 바로 아래 4 stars 계급의 Chief이 있는데, LAPD의 Chief과 역할이 유사합니다. 미국 대도시 경찰본부의 구조는 대부분 LAPD와 유사합니다. CPD(시카고 폴리스)의 장은 Chief이 아니라 Superintendent 로 불리는데 역할은 LAPD의 Chief과 동일하고 CPD의 조직은 LAPD의 조직과 거의 유사합니다. 도시 경찰국장을 Chief 대신에 Superintendent 라고 부르는 대도시는 시카고와 뉴올리언스 두 곳입니다. (Superintendent는 영국 경찰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입니다.)

LAPD 소속 1만 3천명의 경찰관 중에서 약 100명 정도가 (Chief에서 캡틴까지) 지휘부를 구성합니다. 경찰이 아니라 민간인으로서 LAPD 지휘부에 속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 아래에는 두 계급의 Lieutenant 가 있어 범죄현장을 총 지휘합니다. 일반적으로  Lieutenant 까지를 경찰 간부라고 부릅니다. Lieutenant 아래에는 Sergeant(일반경찰)와 Detective(형사)가 있는데, 이들은 같은 계급입니다. 물론 Sergeant안에 몇 개의 계급이 있고 Detective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반 경찰이 Sergeant나 Detective로 승진하려면 상당한 기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미국은 지역 경찰관 모집에 있어 인종 및 성별에 의한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일반적으로 지역의 신임경찰관 모집은 지원서 접수 이후 필기 및 적성검사, 체력 테스트, 심리테스트, 면접시험, 신원조회,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한 질의응답, 그리고 건강검진 등의 절차를 거칩니다. 미국의 경찰 선발제도 중에서 가장 큰 특징은 지원자의 정직성 및 도덕성을 검증하기 위해 거짓말 탐지기를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미국은 불법적인 마약복용이 많기 때문에 지원자가 반드시 약물테스트를 위해 소변이나 머리카락을 제출해야 하고 거짓말 탐지기를 이용해서 전에 마약 등 약물을 복용한 사실이 있는지를 조사합니다. 미국의 지역경찰은 평범한 시민이 갖는 직종이고 누구에게나 개방된 균등한 기회라고 강조됩니다. 따라서 미국의 지역경찰 선발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부적격자를 탈락시키는 것입니다. LAPD의 경우 경찰채용에 합격한 자는 LAPD 경찰학교에서 8개월에 걸쳐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후 경찰에 임용됩니다.

미국에서 주 경찰(state police)은 도시경찰이나 지역경찰보다 훨씬 늦게 출범했습니다. 1905년에 도시 경찰과 독립적인 기관으로 출범한 펜실베이니아 주 경찰(Pennsylvania State Police)이 그 시초입니다. 그 이후 자동차가 등장하고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함에 따라 기존 도시경찰을 보완할 법집행 기관이 필요했으며, 이에 대부분의 주 경찰은 1920년대에서 1940년대 사이에 창설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각 주의 경찰 기관은 State Police, State Trooper, Highway Patrol 등의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California Highway Patrol, New York State Police 등등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주 경찰은 도로 및 도시 사이의 치안공백에 대한 해결책으로 창설되었기 때문에 주 경찰의 일차적인 관심은 도로 및 교통에 있습니다. 그런데 주 경찰은 교통경찰이라기보다는 도로 위의 일반 경찰로 이해면 좋을 거 같습니다. 캘리포니아 주 경찰(California Highway Patrol)은 LAPD보다 조직의 규모가 작아 7천여명의 경찰이 소속되어 있습니다. 뉴욕 주 경찰(New York State Police)은 약 5천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2 stars 계급의 Superintendent가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1980년대 이후 마약이 국가적인 이슈가 되면서, 미국의 연방정부는 지역경찰이 보다 효율적으로 마약단속을 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연방의회는 법을 제정하여, 국방부가 보유한 군사용 장비들을 지방경찰에 무상으로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국방부는 필요를 넘어서는 군사용 장비들을 지역경찰로 이관하였는데, 지역경찰은 보급된 장비들을 이용하여 SWAT팀을 구성하였고, 이를 이용해서 마약 단속현장 등에 적극적으로 투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지역경찰의 군사화는, 9.11 테러 이후 더욱 강화되었고, 지역경찰이 점차 작은 군대가 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