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죽였던' 인간을 만났습니다 (체벌에 관한 장문의 글입니다)
제목 그대로입니다.
여러분은 어린시절 '체벌' 에 대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아마, 서른이상이신 분들은(많을수록 더 강렬하게) 경험이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30대 초반인 제게 체벌은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끔찍한 기억 중 하나입니다.
국민학교도 아니고,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후인데도 불구하고 정말 많이 맞았습니다.
나이가 먹은 지금 생각해도 가끔씩 치가 떨리는 기억들이죠.
작은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중-고학년 시절, 한 선생에게 집요하리만큼 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름도 기억납니다, '강x환'... 국어선생이라는 작자.
당시만해도 촌지는 일상이었고, 집안 형편 상 촌지는 커녕 참관수업조차 오지 못하며 바쁘게 일하셨던
양친을 둔 저였습니다. 그리고 이 선생은 대놓고 촌지를 갖다 바치지 않은 학생들에게 심한 인격적 모욕과
체벌을 했구요.
제 경우, 수업시간에 지우개를 떨어트렸는데 허락 받지 않고 자리를 이탈해 줏으러 갔다는 이유로
안경을 벗은 후 9대 이상(그 이후로는 당시 고막에 문제가 생겼는지 삥-하는 소리에 잠식당해서 횟수를 못 셌던 게 아주 생생히 기억납니다) 풀스윙 싸대기를 맞았습니다. 40대 중반에 족히 80kg는 나가는 성인남성의 풀스윙으로. 뭐 자세하게 따지자면 풀스윙이 아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10대초반의 아이가 느꼈던 그당시 억센 교사의 손은 한대 맞을 때마다 머리 안쪽이 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었죠.
여튼 그렇게 정신없이 구타당한 후, 복도로 쫓겨나 엎드려 뻗쳐를 하고 남은 수업시간에 열외당했습니다.
삥-하는 소리가 너무 심해져서 제대로 균형잡지 못한 채 복도 한편에서 엎드려 있다가, 수업이 끝나고 나온 그 교사에게 엉덩이-허벅지 부위를 짐승마냥 4-5대 발길질 당했었죠.
저는 그 날 사건 이후로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트라우마가 생겼었습니다. 다행히 고막은 크게 다친 것이 아니었지만 아직도 귀에 이명이라도 들리는 날에는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니까요.
이 일화를 말한 건, 어제 저녁 하남에 위치한 모 바베큐집에서 그 교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이다를 기대하셨다면, 더 보셔도 됩니다. 태어나서 시공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던 건.. 처음 자대배치 후
생활관에 들어와 우렁차게 인사했던 때와 회사합격 그리고 첫연애 정도가 다였는데 어제 그 작자를 본 순간
또다시 시공이 멈추더라구요. 거진 20년이 지난 시점인데도 재수없는 인상 덕에 쉽게 알아봤습니다. 다만 대머리 비스무리하게 되었고, 나이가 드니 몸집이 외소해진 듯 했는데 자식들과 그 손주들까지 대동해서 오리바베큐를 먹으러 온 것 같았습니다. 같이 간 여자친구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미칠 거 같이 떨리는 맘을 억누르며 그쪽 테이블로 갔습니다.
손녀로 보이는 5-6살 남짓한 아이에게 정성스레 무쌈을 먹여주는 모습에 가래를 뱉어주고 싶더라구요.
가서 물었습니다. 송파구 소재 초등학교에서 20년전에 근무하셨던 강x환 선생님 맞으시냐고. 기억하시냐고.
자기가 제자들이 참 많았어서 기억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알아봐주고 인사해주니 고맙다고.
여기서 상을 엎었어야 재밌었을텐데, 그도 누군가의 자랑스러운 애비이자 할애비일거란 생각에 망설이게
되더라구요.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는 건 나라는 인간에 대한 모욕인 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20년전에 절 구타하셨어요. 5학년짜리 애를 성인남성의 풀스윙으로 숫자를 세지 못할만큼 강하게 싸대기를 후리고, 엎드러뻗쳐를 시킨 후에 또다시 즈려밟으셨다고. 역시나 전형적인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자기는 기억이 안난다, 그런 폭력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맹세한다, 헌데 정말 그랬다면 당신(이라고 표현하더군요)이 선생님께 매우 큰 잘못을 했을거라면서...
옆에 계신 따님은 이 말을 들으니 어떠시냐고 물어봤어요. 따님이 아니라 며느리라더군요. 자기도 지금 중학교 선생인데, 예전엔 어른들이 사랑의 표현이라던가 규칙의 엄격함을 위해 어쩔수 없이 때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말하시는 걸 보니 그때 정말 아버님이 심하시긴 하셨다고 하더군요.
옆에 처앉아서 멍때리는 내나이또래 아들되는 놈한테도 말했습니다. 당신이 애비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인격을 짓밟고 정신적 살인을 저지른 벌레같은놈이니 이제라도 원망하고 부끄러워했으면 한다고. 영화에서 나올법한 주먹다짐이나 멱살다짐조차 없이,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더라구요. 아버지가 그랬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들 도리지만, 실제 피해를 본 분이라면 감정이 격해질 수 밖에 없을 거라고. 아들된 입장에서 죄송하다고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계속 팔을 붙잡은채로요.
기억이 안난다는 사람한테 진심어린 사과를 받을 순 없고, 강x환 당신을 우연히 길가다 만나고 싶어하는
내 친구들이 참 많다고 말해주고 식당 나왔습니다. 진짜 다음에 길에서 만나면 일 좀 쉰다고 생각하고
그 노쇠한 몸뚱이 서너군데 개박살내줄테니까 뒤지기 싫으면 피해다니라고. 평소에 싸움한번 붙어본 적이
없던 제가 이런 말을 뱉을 줄 저도 상상을 못했는데 참 신기하더라구요.
밥도 못먹고 나온터라, 여자친구한테는 미안한 맘이 들었습니다. 이 친구도 제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드잡이질 하는 건 처음 봤는 지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자고 마음정리 푹 하고 오늘 보자고 하곤 헤어졌구요.
원하시는 사이다가 아닐 수 있겠지만...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이 푸닥거리를 한 게, 잘 한 짓이었을까. 그 작자를 애비와 할애비로 둔 씨들은 뭔 죄인가.
20년이 지난 일을 끄집어내 공공장소에서 행패를 부린 내가 잘못한건가. 그냥 길에서 그 작자를 단둘이서
만났다면 나는 정말 그 사람을 패버렸을까...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운동을 다녀온 지금에도 맘이 진정되지 않고 묘하네요.
처음 글의 시작은 다들 체벌의 경험이 있는 지 듣고싶었던 건데, 저의 한탄만 한 거 같기도 합니다.
결론이랄 건 없지만, 막상 그 상황이 닥쳐오니 꿈꿔왔던 사이다가 터지진 못하더라구요. 주말을 크게 망친 것 같아 나에게도 여친에게도 미안해진 금요일이었습니다. 제발 이쪽 체벌 분야도 미투라던가 이런 게 터져버려서, 가해자들이 인격적으로 조리돌림당해 사회적 살인이라도 당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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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의 시대였죠. 저도 제 친구가 용호난무를 맞는 것 보고 충격 받았습니다. 글러먹은 작자들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