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어째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근래 들어 놀라운 점은 넷플릭스의 드라마 덕분인지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 마약 카르텔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학생이나 젊은 세대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 주제로 내가 우리나라의 젊은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었습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마약 문제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던 1990년대에 미국의 입장에서 아주 뜨거운 이슈였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마약범죄와 관련된 이슈 전개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당시에 멕시코가 지금처럼 이렇게 망가질 줄은 짐작도 못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마약과 관련된 폭력도 줄어들고 경제상황도 호전되어 오히려 미래가 밝아 보였습니다. 오늘의 과거를 돌이켜보며 도대체 멕시코가 이렇게 망가진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글을 쓰겠습니다.

20세기 초 멕시코 혁명과 그 이후 10년간의 혼란 이후 베니토 후아레스의 정책과 이념을 계승하여 사회민주주의 개혁정당의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제도혁명당(PRI)은 1929년에 창당된 이래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70년 동안 멕시코를 지배했습니다. 제도혁명당은 32개 연방 주의 다양한 계급과 계층, 이질적인 집단과 부분들까지 특유의 포섭과 통합기제로 통치함으로써 수십 년 동안 경제발전과 정치안정을 이끌었습니다. 대통령의 권한은 강력했지만 헌법에 명시된 6년 단임이 철저히 지켜짐으로써 독재자가 출연하지 않았고, 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이나 제3 세계의 많은 국가들과 달리 문민정부가 군부를 완전히 통제하고 있었기에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도 본질적으로 전무했습니다.

정치적 안정을 기반으로 멕시코는 1950년대 후반 이후 멕시코의 기적이라고까지 불리는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1968년 올림픽과 1970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외형상으로 멕시코는 민주주의를 이루며 선진국에 진입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도혁명당의 권위주의적 일당독재에 의한 정치안정은 나라의 모든 분야에 부패가 만연되어 정경유착은 물론이고 공권력과 범죄조직의 경계마저 불투명한 상황으로 치닫았습니다.

나라 전체를 완벽히 통제하고 있던 집권당과 정부는 정의 실현차원에서 조직범죄를 근절할 방법을 모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부정한 방법으로 거래함으로써 범죄조직을 장악하고 통제했습니다. 이들은 범죄조직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상납 받았고, 제도혁명당을 반대하는 세력을 견제하고 탄압하는 용역으로 조직범죄단을 동원했습니다. 중앙과 지방의 정치 권력자들은 법 위에 군림했고, 마약조직을 비롯한 조직범죄단은 정치권과 정부의 비호를 받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0년대 중반까지도 마약은 미국에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마약을 본격적으로 금지하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 후반부터였습니다. 1960년대가 되면서 미국에서 마리화나가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국내에서 마약을 통한 지하경제의 성장을 막기 위해 각종 마약 생산을 대대적으로 단속했습니다. 이에 따라 가장 수요가 많았고 적발되기 쉬운 마리화나 재배 및 생산 본거지가 멕시코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의 은신처로 옮겨지는 풍선효과가 발생했습니다. 멕시코와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의 기원은 마리화나를 재배해서 미국에 밀매하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멕시코는 시날로아 카르텔을 필두로 하여 미국의 최대 마리화나 공급지였으나 1980년대 초반까지 제도혁명당과 정부는 마약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멕시코 정부와 마약카르텔 사이에는 네 가지 불문율이 잘 지켜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약카르텔은 첫째, 마리화나와 마약의 국내소비를 늘이지 않으며 둘째, 마약과 관련된 폭력으로 사회에 이슈를 만들지 않으며 셋째, 제도권의 정치집단에 도전하지 않으며 넷째, 연방정부의 결정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제도혁명당 정부는 마약조직 내부에 멕시코 연방보안국(DFS)과 연방사법경찰(PJF) 요원을 공공연히 상주시켜 연방정부의 결정을 수시로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 제도혁명당 50년 장기집권의 부작용이 국내외적으로 분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방만한 재정적자를 메꾸기 위해 단기 오일 달러를 대규모로 도입했으나 달러 금리인상과 유가급락이 겹쳐 1982년 8월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습니다. 멕시코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고, 제도혁명당은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것까지 후아레스를 계승했다는 조롱을 세계로부터 들어야 했습니다. 미국은 DEA(마약단속국)를 내세워 멕시코 정부와 함께  1977년 ‘콘도르 작전’이라고 불리는 대대적인 마리화나 재배지 소탕작전을 벌였는데, 멕시코 측의 사전 정보 유출로 인해 값비싼 사회적 비용만 치렀을 뿐 목적 달성에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 일으켜 콘도르작전 이후 시날로아 카르텔의 두목들이 할리스코 주의 과달라하라로 거처를 이동하면서 마약카르텔의 영역이 확장되었고 마리화나 재배와 돈세탁의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미국은 동시에 군대를 동원해 대규모로 콜롬비아의 마리화나 재배지 공습작전도 펼쳤는데, 멕시코의 경우와 달리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미국이 콜롬비아에 군대까지 동원한 이유는 멕시코와 달리 마약재배를 공산주의 게릴라인 콜롬비아 반군(FARC)과 연결시켜 CIA가 주도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공습은 콜롬비아 마리화나 생산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으나 결과적으로 콜롬비아 마약생산을 마리화나에서 코카인으로 전환시킨 변곡점이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 칠레에서 일어난 피노체트의 쿠데타 전까지 중남미에서 소규모로 유통되는 코카인의 대부분은 칠레의 전문 기술자들에 의해 생산되었습니다. 쿠데타 이후 피노체트가 코카인 제조 기술자들을 마구 처형하자 살아남은 이들의 대부분이 콜롬비아로 피신했고, 미국의 마리화나 재배지 습격 이후 새롭게 출현한 조직들에 고용되었습니다. 이들 조직은 코카인을 바탕으로 1980년대에서 1990년대를 거치며 세계 최대의 마약범죄집단으로 진화하게 되며 멕시코의 마약산업 팽창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참고로 설명하면 코카인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안데스 산맥에 서식하는 코카나무 잎이 필요하기 때문에 코카인 생산은 안데스 국가들(칠레, 페루, 콜롬비아, 볼리비아)의 전유물입니다.

멕시코 외채위기 후 제도혁명당의 독점적 정치권력에 균열이 생겼고, 미국은 멕시코에 경제적 지원을 미끼로 DEA가 수행하는 마약과의 전쟁에 (수작부리지 말고) 협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이때 멕시코 정부는 DEA에 순순히 협력해 1984년 400여명의 군인을 헬기에 태워 치와와 주 사막 은밀한 곳에 위치하던 멕시코 최대의 마리화나 재배지를 불태웠습니다. 그 지역에서 모집된 수많은 가난한 농민들이 총에 맞거나 불에 타서 숨졌습니다. 당시 멕시코 정부가 DEA에게 협력한 이유 중 하나는 멕시코 마약 사업에서 마리화나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집중 단속으로 플로리다와 카리브의 섬을 통한 코카인 밀반입량이 한계에 다다르자 콜롬비아의 거대 마약 카르텔은 미국으로 코카인 반입 루트를 다양화하는 방편으로 멕시코의 마약 조직과 손을 잡고 있었고, 코카인은 마리화나에 비해 훨씬 큰 수익을 가져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DEA의 공습에 의해 자신의 마리화나 재배지가 모두 불타버린 조직 우두머리는 분노에 치를 떨었고, 부하를 시켜 1985년에 해당 작전에 참가한  DEA 요원 ‘키키 카마레나(Kiki Camarena)’를 납치 고문하며 자신을 배신한 자의 정체를 추궁했습니다. 카마레나 요원은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고, 그 사건은 당시까지 미국과 멕시코의 마약 단속 역사에서 가장 큰 후폭풍을 가져왔습니다. 미국은 카마레나 요원의 납치 살해에 대해 멕시코 전체에게 길고도 가혹한 행정보복과 경제보복을 가했습니다. 군대와 정보기관을 멕시코에 불법으로 파견해 카마레나 요원 납치와 관련되었을 것 같은 모두를 죽이거나 미국으로 납치해왔습니다. 미국은 카마레나 요원의 위치를 알려줬다고 의심받던 연방보안국(DFS) 요원까지 살해했고, 멕시코 대통령 미겔 데 라 마드리드를 압박하여 연방보안국을 해체시켰습니다.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의 마약조직 보스들의 공통점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가족은 끔찍이 아낍니다. 그들이 사이코패스라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카마레나 요원의 죽음은 애석한 사건입니다. 하지만 미국이 그 사건에 대해 보인 반응은 사이코패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DEA는 FBI와 마찬가지로 미국 법무부 산하의 연방기관입니다. 하지만 FBI나 CIA와 달리 당시에는 미국의 일반인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조직이었습니다. 카마레나 요원의 죽음 이후 DEA는 FBI에 맞먹을 정도로 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조직의 규모도 순식간에 커졌습니다. 멕시코와 남미 인들은 DEA를 ‘라 데아’라고 부르는데, 마약산업 종사 여부와 무관하게 그들이 가장 혐오하는 단어가 ‘라 데아’입니다.

미국의 마약 정책은 미국 내부의 불법 마약 소비를 억제하고 단속하는 것보다 외국의 마약 생산지를 타격해서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마약이 미국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것에 초점을 둬 왔습니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동떨어진 방식이지만 미국에게는 몇 가지 이유가 있고,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국 국민들보다 멕시코나 남미 국가들이 만만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글을 끝내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길어졌고 아직 중요한 부분은 건드리지도 못했습니다. 이 글에 대한 반응에 따라 다음 글에서 마치던지 아니면 좀 더 자세히 다뤄 두 번에 걸쳐 글을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