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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 어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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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2 00:15:25


‘그 사람 어땠어요?’
누군가가 너에 대해 물어보더라. 내가 얼마 전에 너와 완전히 끝났다는 걸 아는 거 같아.
너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언제든지 토해내라고, 함께 힐난하며 너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난도질하고 이별의 고통을 경감시켜주겠다는 얼굴 표정을 짓고 있더라.

그 표정이 너무 장엄해서 풋 하고 웃음이 나왔어. ‘왜 웃어요?’
아니, 웃기잖아. 사람이 만나면 헤어질 수도 있는 거지, 굳이 기억 너머 저 편에 있는 아팠던 감정을 끌어올 필요는 없으니까. 욕하면 뭐가 변하는데? 니가 다시 돌아오는 것도, 아픈 내 마음이 치유되는 것도 아닌데.

‘아뇨. 그냥 그 사람 생각하니까 웃음이 나와서요.’
그 사람, 동네 싸움 구경 났다고 해서 신나게 달려왔다가, 서로 눈알만 부라리며 30분 동안 대치하는 모습에 실망해서 가는 구경꾼의 눈빛이었어. 너무 웃기지.
근데 저 사람 작전이 성공한 거 같아. 겨우 잊고 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처음 만났을 때 너무 긴장한 나머지 커피 거품을 내 스웨터에 묻히고는, 얼굴이 빨개져서 ‘죄송해요.’만 연발했던 기억, 꽃을 좋아하지만 시드는 게 싫어 꽃선물이 부담스럽다는 나에게 ‘이건 괜찮을 거야.’라며 수줍게 드라이플라워를 건넸던 기억, 서로 아무 말 없이 벤치에서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끼고 내가 좋아하는 폴킴의 노래만 무한재생했던 기억.
그러고 보니 나 참 이기적이었네. 내가 좋아하는 노래만 들었잖아.

‘자기는 어떤 노래가 듣고 싶은데?’
내가 물었을 때 웃으며, ‘자기가 듣고 싶은 노래가 내가 듣고 싶은 노래야.’라고 했었던 기억. 근데 지금에서야 말하는데 그 때 너 좀 느끼했어.

시간이 지나고, 니가 떡볶이를 시킬 땐 꼭 제일 순한 맛을 시킨다는 것도 알게 됐고, 일주일에 한 번은 부모님께 전화를 드린다는 것도 알게 됐어.
너도 내가 핑크색 모자를 즐겨 쓰고, 소주 안주로 닭발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듯 말이야.
그만큼 가까워지며 편하다는 명목으로 서로에게 많이 소홀했던 거 같아.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만난다 해도 예전처럼 사랑할 수 있을까?
난 자신이 없어. 그만큼 널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라, 다시금 우리가 같은 이유로 헤어질 때, 나는 혼자 온전히 그 아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그냥 서로에게 뜨거웠던, 그리고 참 솔직했던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너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지가 사실 궁금하긴 하다. 물어볼 기회도 없겠지만.
떡볶이는 좀 줄이고. 밀가루 음식이 만병의 근원이래.
부모님한테는 전화 자주 드려. 너 집에 자주 가지도 않잖아.
아무쪼록 니가 행복하길 바라.
나도 행복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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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19-01-22 11:09:01

요즘 원주민님의 글이 와닿는게 많아요.
항상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항상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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