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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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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30 00:48:02


이상한 개그에도 바람빠진 풍선처럼 웃어주던 초여름 햇살처럼 밝던 친구가, 어두운 표정으로 저에게 헤어졌다고 말했습니다.
함께 있을 때 참 행복해보였는데.
연인관계에서 1+1이 2가 되는 경우보다 그보다 작은 수로 수렴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둘은 3에 가까울 정도로 서로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커플이었는데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캐묻지 않고 들어주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별 반응을 하지 않는 편입니다만, 이 친구의 이별을 직접 맞닥뜨리니 '왜?'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습니다.

지속적인 학업에 대한 욕심이 있던 여자친구는 유학을 결심했고, 이 친구도 20대 초반의 무조건적인 사랑처럼 '가지마, 나랑 있어, 너 없으면 안 될 것 같아.'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의 무게추가 행여나 여자친구의 미래를 짓누를까봐 그랬겠죠.
이해가 되면서도 참 아팠습니다. 아팠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해본적이 있어서 감정이입이 된 거 같기도 했구요.

영화 라라랜드 보셨나요? 라라랜드는 꿈을 좇는 남녀가 사랑과 꿈 사이에서 고뇌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선택을 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미아는 배우를 꿈꾸며 세바스찬의 조언대로 일인극을 준비하지만 결국 실패합니다. 세바스찬은 재즈 바를 꿈꾸며 사람들이 재즈를 좋아하길 바라지만 차가운 현실에 굴복하여 현실적인 밴드의 키보드 연주자로 들어갑니다. 결국 꿈은 무너지는가 싶더니 이내 둘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자연스레 관계가 멀어지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죠. 모든 것을 다 손에 넣을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둘은 꿈을 선택하게 됩니다.

5년 후, 둘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꿈을 이룬 모습으로 만나게 됩니다. 미아는 정상급 배우이자 누군가의 엄마, 그리고 아내로, 세바는 재즈 바에서 말이죠. 세바는 곡을 연주하면서 미아와의 과거를 자신의 방식대로 상상하게 되고, 연주가 끝난 뒤 둘은 깊은 눈 인사를 나눕니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꿈을 이뤄서 행복했을까요, 아니면 이루지 못한 뜨거운 사랑에 대한 미련에 가슴 아팠을까요? 전 전자라고 생각합니다.
뜨거운 사랑을 했기에, 오래도록 바래왔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기에 당당한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가끔 연락처에 등록된 사람들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훑어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최근에 그 친구의 대화명이 바뀌었더군요.
실연의 아픔을 잊고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의 전 여자친구도 마찬가지겠죠.

시간이 흘러, 서로에 대한 감정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각자의 꿈을 어느 정도 이뤘을 때, 우연히 그들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성숙함에 놀라고, 첫 데이트때 구멍난 발목 양말이 귀여웠다, 그래서 생일 선물로 양말을 10켤레씩이나 사줬었잖냐 같은 옛 이야기들을 웃으며 나눌 수 있는, 서로의 미래를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됐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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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8-12-30 03:10:23

이토록 담백한 글은 또 오랜만이네요. 감사합니다

WR
2018-12-30 20:39:12

저도 감사합니다 곰슬기님! 날씨 많이 추운데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한 연말 되세요 ^^

1
2018-12-30 04:28:02

현실적이면서, 아름답고 낭만적인 이야기네요.

WR
2018-12-30 20:39:41

감사합니다 블루워커님 ^^

따뜻한 댓글에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연말 행복하게 마무리하세요!

1
2018-12-30 09:09:35

정말 많은 생각이 드는 글이네요
무슨말을 해야할지 고민했는데 아무말도 못하겠네요
정말 잘 봤습니다

에세이는 재능이라던데... 정말 가끔 뵐때마다 글 잘 쓰시네요

WR
2018-12-30 20:40:20

감사합니다 오클팬님..

글 잘 쓴다는 칭찬이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칭찬인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

1
2018-12-30 09:30:51

원주민 님의 글은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글을 읽을 때마다 마치 잘 정돈되고 잘 차려진 레스토랑에 와서 식사하는 느낌이 드네요. 연애라는 거도 결국 연애를 시작하는 순간과 연애룰
진행하는 순간도 행복하겠지만, 헤어진 후에 각자가 성장한 모습이 보이는 연애야말로 끝마무리까지 완벽한 연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WR
1
2018-12-30 20:43:21

비유가 정말.. 한참을 멍하니 보고 있었습니다.

우당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1
2018-12-30 10:03:24

라라랜즈 정말 좋아하고 여러번 봤지만
제가 지금 저 상황인거 같습니다
꿈을 쫓고 사회에 자리 잡아야하는 시점에
여자친구가 있어서 잘해주고 싶지만 그러진 못하고 있네요
좀 더 열심히 살아서 두마리 다 잡아야겠어요

WR
2018-12-30 20:43:49

그만큼 북극곰님에게 소중하신 분일 거 같습니다.

꼭 둘 다 잡으시길 바라겠습니다.

2019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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