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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같았지만 행복했던 그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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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2-15 09:32:12


몇 년 전이었을까요, 싸이월드에서 페북으로 이미 패권이 넘어갔을 시기였던 거 같습니다.

그 때 당시 전 친구들의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악플을 달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악동이었습니다.

상호악플관계, 악플로 주고 악플로 받는다 라는 속담 아시나요? 여튼 저도 사랑을 듬뿍 준 만큼 듬뿍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함께 장난을 치던 친구 중에 병욱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지금은 디즈니 랜드에서 길거리 연주를 하는 래그타임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미국에 유학을 가 있는 굉장히 멋진 친구입니다.

그 때 이 친구가 싸이월드에 사진 한 장을 띡 올려놓고, 이렇게 써놨더라구요.
'너무 설레서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치면서 봤다.' 장황한 영화평을 써놓은 것보다 몇 백배는 더 와닿았고(사실 이 친구는 장황한 영화평을 쓸 수 없는 친구입니다ㅋ)이 친구에게 영화 제목을 묻고 다운 받아서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컨셉은 별 게 없습니다.
평범한 미국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사랑에 대해 다뤄요.
데이브와 오브리.
데이브에게는 좋아하는 여자가 있고, 오브리에게는 유기농버터같은 남자친구가 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서로에게 끌리게 됩니다. 첫 경험의 과정도 참 풋풋해요. 둘 다 당황해서 잠시만 잠시만을 외치고 심호흡을 하고 온다거나, 콘돔을 어떻게 끼우는지 모른다거나..ㅎㅎ

보는 내내 병욱이와 마찬가지로 가슴을 쿵쿵 쳤습니다. 끝나니 멍이 들어 있어서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둘의 아름다운 키스신도 있지만 제가 굳이 이 사진을 고른 이유는, 이 사진이 이 영화를 가장 잘 나타내준다고 생각해서 그렇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말로 오브리에게 상처를 준 데이브가 오브리의 집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어물쩡 어물쩡 거리다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해요.

'내가 생각해봤는데 난 연애에 대해 잘 몰라. 사랑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지. 내가 그렇게 아는 척 했다니 믿기지 않아. 난 몰라. 내가 단 한가지 원하는 건 너랑 계속 대화하는 거야. 네 하루는 어땠는지 뭘 먹고 싶은지 듣고 싶고 너랑 말싸움도 하고 싶어. 네 모든 가치관들을 듣고 싶어. 비록 아무리 틀린 것이더라도. 간단한 일이 아니란 건 알아. 단지 너도 나와 이런 대화를 계속 하고 싶다면 나머지는 차차 해결할 수 있을거야.' 꽁꽁 얼어붙었던 오브리의 표정이, 저 말이 끝날 때쯤엔 환한 햇살처럼 밝아집니다.
그리고 둘은 알콩달콩한 연애를 시작하게 되죠.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머리로 했던 연애보다 훨씬 더 상대방에게 깊숙이 다가갈 수 있었던 연애는 가슴으로 했던 연애였던 것 같습니다.

이 상황에서는 문을 열어줘야겠다, 여기서는 이런 칭찬을 해야겠다 라는 프로세스에 의거한 움직임이 아니라,
좀 덜 낭만적이고, 바보 같더라도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진심인 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며칠 전에도 어떤 분이 제 글을 읽고 본인이 느낀 사랑에 대해 감동적인 글을 적어서 주셨습니다. 완벽했던 사람과, 좀 부족하지만 진심이 느껴졌던 사람 둘 중에 본인은 후자의 사랑을 선택했고, 그 결과 너무너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어떤 사랑이 옳은 걸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의 가치관과 생각이 다르니까요. 하지만 이 영화는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보시기 전에 태권도 호구를 입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가슴팍에 멍 들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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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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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2-15 09:27:07

저도 재밌게 본 영화네요! 영화 제목이 본문에 안 나와있는 것 같아서... The First Time 입니다. 못 보신 분들 말랑말랑한 영화 보고 싶으실 때 한 번 쯤 꼭 보세요

WR
1
2018-12-15 09:35:15

아이코! 맞습니다. 빠뜨렸네요.. ㅎㅎ
요즘 지노블리님이 댓글 자주 남겨주셔서 좋네요.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1
2018-12-15 09:37:15

호날두인줄 알았네요

WR
2018-12-15 10:04:19

네 저도 처음 보고 호날두 동생인 줄 알았습니다..

1
2018-12-15 15:28:33

풋풋하네요ㅎ

WR
2018-12-15 19:08:44

보시면 심장을 세게 치게 되실거예요 ㅎㅎ
좋은 주말 보내세요!

2018-12-15 22:43:21

덕분에 재밌는 영화 잘 봤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세요 ㅎㅎ

Updated at 2018-12-16 10:38:37

작성자님 덕분에 풋풋한 영화 예전에 봤던거 복습했네요.

요즘 이런 종류(미국 하이틴영화?)의 영화는 부담없이 볼 수 있어 마구마구 보는것 같아요.

특히 여고생들의 우정을 다룬 영화도 좋아하는데 최근에 나온 넷플릭스의 'DUDE'보면서 예전에 재밌게 본

청바지 돌려입기 (The Sisterhood Of The Traveling Pants, 2005) 가 생각 나더군요.

둘다 재밌게 본영화이고 거부담이 없다면 추천 드려요~


2018-12-29 20:33:32

아하 이글을 왜 이제야 봤을까요...
사실 실재로 세상이란 건 없고 60억(이젠 70억 가량이려나요)개의 이해심만이 있을 뿐이라는 말이 있죠.
다른 건 모르겠고 상대방의 세계, 이해심에 관심을 쏟는 것. 자신에게도 상대방이 푹 빠졌으면 하고 바라는 것. 서로 기대있기에 의미를 갖는 '사람 인'자처럼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관계를 갖는 것. 이게 전부가 아닐까 하네요...
정말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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