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의 앨범들
[2000] D'Angelo <Voodoo>
대중음악이라는 거대한 리듬 속에서 간혹가다 '어떤 앨범'은 시간의 흐름에 예속되지 않는데, 미국의 네오 솔 아티스트 디안젤로가 밀레니엄을 맞이하여 발표한 <Voodoo>가 바로 그 어떤 앨범이다. 사이키델릭 펑크/록, 태동기의 솔, 지미 헨드릭스,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에게서 받은 영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디안젤로의 음악에는 병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집요한 면모가 있다. 모든 세션에서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전자음이 배제되어 있고 대부분의 곡들은 슬로 템포의 농밀한 리듬으로 무장하고 있다. 한편, 상의 탈의한 상반신을 드러낸 채 기타 연주를 하는 모습, 외설적인 가사, 날것의 느낌을 풍기는 음색 등은 프린스가 그에게 남긴 영향력을 가늠케한다. 반세기 알앤비 역사의 기로에서 호기롭게 등장한 청년은 자신만의 재기와 비전을 갈고닦아 오직 신선함만으로 가득 찬 앨범을 탄생시켰다. 그것이 바로 <Voodoo>다.
※ 2000년에 발매된 앨범들
Kid A (2000)
Like Water For Chocolate (2000)
Lovers Rock (2000)
Lucy Pearl (2000)
Mama's Gun (2000)
Parachutes (2000)
The Marshall Mathers LP (2000)
[2001] Daft Punk <Discovery>
[2002] Remy Shand <The Way I Feel>
2000년대에 들어서자 혁신의 심벌이던 네오 솔이 매너리즘에 빠졌고 고전으로부터 추출하던 소재마저 고갈되기 시작했다. 알앤비 신은 새싹들에게 건강한 토양을 공급해주지 못했고, 디안젤로와 알리샤 키스 같은 압도적인 재능의 단발성 히트에 크게 의존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발매된 레미 쉔드의 데뷔 앨범 <The Way I Feel>은 그 자체로 큰 의의를 가진다. 이 앨범은 바비 콜드웰, 홀 앤 오츠, 존 비, 코너 리브스 등의 계보를 잇는 기념비적인 블루 아이드 솔 앨범이자, 밴드, 시퀀스, 엔지니어링, 가사, 뮤직비디오 등 앨범 제작 과정에 관련된 모든 부문에서 뛰어난 성취를 보이는 보기 드문 걸작이다. 누군가는 레미와 그의 음악이 음악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았다고 말한다. <The Way I Feel>은 레미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이 될 가능성이 높고 디안젤로의 기록은 이미 경신했다. 그러나 이 앨범은 미래가 불투명한 레미의 두 번째 앨범이 흔쾌히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다고 넌지시 속삭여주고 있다.
[2003] Alicia Keys <The Diary Of Alicia Keys> / Javier <Javier>
2003년은 싱어송라이팅 걸작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해였다. 영국에서는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데뷔했고(Frank), 미국에서는 포크 뮤지션 수프얀 스티븐스가 50개 주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으며(Michigan), 존 메이어는 자신만의 세계를 완성해가는 중이었다(Heavier Things). 프랑스의 일렉트로닉 밴드 M83는 경력 최고의 앨범을 선보였으며(Dead Cities, Red Seas & Lost Ghosts), 라디오헤드 또한 속세에 무지개의 전조를 드리웠다(Hail to the Thief). 이 밖에도 2003년에 발매된 많은 명반들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힘썼다. 이 찬란한 해의 최고의 앨범을 꼽아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2장의 앨범을 하늘 높이 치켜들 것이다.
[2004] Madvillain - Madvillainy
[2005] Sufjan Stevens <Illinois>
미국 디트로이트 출신의 포크 뮤지션 수프얀 스티븐스는 자신의 소포모어 앨범 제작 과정에서 불현듯 떠오른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로 마음먹는다. 그 어렴풋한 잔상이 미국 모든 주의 이름을 내건 앨범을 각각 1장씩 발표하겠다는 50개 주 프로젝트(Fifty States Project)의 원천이 되어, <Michigan>과 <Illinois>라는 걸작을 낳았다. 그중 2번째 작품이자 수프얀의 5번째 앨범인 <Illinois>는 도시의 풍경을 담은 세련되고 생생한 사운드, 자신의 신념과 사랑, 시련 같은 키워드를 진솔하게 녹여낸 가사를 통해 '현대 포크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극치'라는 찬사를 얻었다. 특히 평단과 팬들은 앨범의 풍부한 사운드에 갈채를 보냈는데, 이는 각종 기타와 베이스, 색소폰과 오보에, 드럼과 비브라폰 등 수프얀이 직접 연주한 20여 가지의 악기와 무관하지 않다. <Illinois>가 흘러가는 74분 동안 관객들은 영화 관람에 가까운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속에는 포크 음악의 야성미, 바로크 팝의 오케스트라, 짙은 인상의 내러티브, 시카고의 도회적인 풍경, 그리고 현대 음악이 도달할 수 있는 극치가 있다.
[2006] Justin Timberlake <Futuresex/Lovesounds>
앞서 나는 다프트 펑크의 <Discovery>를 "2000년대에 발매된 앨범들 중에서 이만큼 영향력을 행사한 앨범은 없을 것이다."라고 소개했는데, 여기서 이 구절을 정정하려 한다.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2000년대에 발매된 앨범들 중에서 <Discovery>만큼 영향력을 행사한 앨범은 <Futuresex/Lovesounds>밖에 없다." 프로듀서 팀발랜드의 지휘 아래 탄생한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소포모어 앨범은 발매 후, 좁게는 알앤비/힙합 등 흑인음악의 하위문화에, 넓게는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일렉트로닉/댄스 열풍을 불러일으키는 기폭제의 역할을 한다. 또한 <Futuresex/Lovesounds>는 남다른 밸런스를 자랑하는 작품이기도 한데, 미래지향적이고 실험적인 사운드를 추구하던 당대의 열망과 기존의 알앤비가 가지고 있던 관능적인 분위기를 절묘하게 혼합했다는 인상적인 평을 받았다. 미국의 코미디언 크리스 록은 앨범 작업을 앞둔 저스틴에게 "현대의 <Thriller>를 만들어봐."라고 충고했고 팀발랜드가 작업하던 스튜디오의 화이트보드에는 <Thriller 2006>이라는 가제가 쓰여있었다. 그리고 이 둘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하듯, <Futuresex/Lovesounds>는 우리 시대의 <Thriller>가 됐다.
[2007] Radiohead <In Rainbows>
[2008] Raphael Saadiq <The Way I See It>
단지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 체험되는 진기한 경험을 하고 싶다면 라파엘 사딕의 2008년 앨범 <The Way I See It>을 들어보라. 이 클래식한 솔/펑크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70년대 모타운의 스튜디오 부스에 앉아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것이다. 디안젤로의 How Does It Feel, 에리카 바두의 Love of My Life, 메리 제이 블라이즈의 I Found My Everything에서부터 최근의 솔란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흑인음악의 팬들은 사딕의 감성에 큰 빚을 졌다. "오래되고 촌스러운 음악이라고요? 비틀스와 마이클 잭슨에게 당신들의 음악은 오래됐으니 더 이상 라디오에서 틀 수 없다고 말할 건가요? 오래된 음악이란 건 없어요.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인터뷰를 통해서 음악을 대하는 사딕의 고결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는 고전을 개선해야 할 무언가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또는 이해하고자 하는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창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사딕의 진심은 그의 음악에 고스란히 이식되어 우리 내면의 목소리를 한껏 고양시킨다.
[2009] The xx <xx>
영국의 젊은 프로듀서 제이미 스미스가 이끄는 인디 팝 밴드 The xx는 지난 10년간 인디펜던트 신에서 가장 신선하고 이질적인 존재였다. 대중과 평단은 제이미를 대중음악 신에서 가장 뛰어난 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평가하는데, 이는 현시대를 지배하는 예술 사조인 '미니멀리즘'에 대한 제이미의 완벽한 이해에서 기인한다. 이런 점에서 The xx의 데뷔 앨범 <xx>는 '최소한'이라는 명제에만 집착하는 동료들에게 이 밴드가 보내는 예술적 야유에 가깝다. 미니멀리즘은 조악함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예술 형식이고, 그저 적고, 근소하고, 희박한 것만으로는 모래사장의 해시계마저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것이 간단하게 만들어졌다 한들 어떤 쓰임새도 갖추고 있지 않다면 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라고 에라토스테네스가 지적하지 않았던가. 이 형식은 반드시 기능을 등에 업어야 하고, <xx>는 그에 대해 교과서에 가까운 해답을 제시한다. 간소화된 악기 구성으로 감각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내고, 단조롭게 반복되던 박자와 톤은 변칙적인 리듬으로 탈바꿈하며,최소화된 이펙트와 기교로 행간에 방점을 찍는다. 물론 이 감상은 현재에도 유효하다.
※ 부록 <2000년대의 힙합 앨범>
2000년대 최고의 힙합 앨범.
그러고 보면 힙합은 10년마다 시대를 대표하고 장르를 초월하는 걸작이 나오는 것 같아요.
[1990] People's Instinctive Travels and the Paths of Rhythm
[2000] Stankonia
[2010]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호바, 칸예, 저스트 블레이즈, 빙크, 팀보, 에미넴.
네, 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네요.
힙합 그 자체보다 유명한 래퍼.
ㅡArt of Rap 중에서
이 앨범은 영국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순도 높은 힙합 앨범이면서 정말 힙합 답지 않은...
뭐요?
21세기 최고의 데뷔!
<Be>=컨셔스, 컨셔스=<Be>
일단 외우세요.
참깨빵 위에 순살 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도저히 고를 수가 없습니다. 2장 모두 주세요.
20. Lupe Saved My Life
Yessir!
아직도 소름이 돋네요.
Best Mixtape of All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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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의 앨범들을 한 번 꼽아봤습니다.
기준이랄 건 없어요.
정말 좋아하고, 많이 듣고, 멋진 경험을 선사한 앨범들을 골랐습니다.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본격적으로 얘기해보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군요ㅠㅠ
앨범 하나하나마다 깃든 추억이 너무나 많아요.
저의 인생과 청춘을 풍요롭게 만들어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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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사딕(이렇게 읽는거 맞나요^^;;?) 앨범은 정말 예술이었습니다. 씨디 잘 샀다고 느낀 명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