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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배운 당구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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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0-20 22:36:00

나는 시행착오를 제일 싫어한다. 청각장애가 있다보니 학창시절 담임의 지시를 듣지 못해 헛발질(?)을 하게 되었을 때의 당혹감은 대체 어떻게 풀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친구들의 비웃음과 하지 않아도 될 일임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의 그 쓰라림! 그게 쌓이니 짧은 내 생애는 계획에 어긋나는 행위나 시행착오는 증오에 가까운 것으로 각인이 되었다.

자연스레 그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전 시행착오를 줄이려는 나의 노력은 그것에 대한 사전 탐색은 필수사항이 되었다. 집요하리만치 그것에 대한 정보는 풍부해야 했었고, 스스로 생각하기에 만족스러운 수준이 아니면 ‘시작’이라는 어휘는 출발선에 설 수 없었다.

그 좋아하는 사진도 시작은 나에겐 이론공부가 먼저였다. ‘사진학 강의’ 책을 수십 번 독학했다. 다른 이는 디지털 카메라의 장점인 그냥 많이 찍어보고 지우며 배우는 것을, 나는 서터를 누르는 것보다 종이 페이지를 넘기며 배웠다.

어느 누구에게는 그저 경험으로 배웠을 ‘당구’조차 나에겐 ‘이론’이 먼저다. 그게 나에게는 자연스럽다. 나이 서른 중반이 넘도록 당구를 쳐 본 적이 일절 없었다. 대학시절에는 대체 뭘 하고 살았길래 그런 흔한 것도 해 보지 않았을까. 그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던걸까.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 곧 지천명을 깨닫을 나이도 순식간에 다가오리라. 이렇게 살아가는게 어느 누구의 잘못이 아님을, 그저 삶의 쳇바퀴가 돌부리에 걸려 짧은 순간 덜컹거림에 불과한 것임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었다.

우연찮게 좋은 동료교사들과 처음 가 본 당구장에서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예전같으면 그렇게 싫어했을 ‘실패’가 마흔이 가까워지니 좀 더 너그러워진 걸까. 쉬운 배치의 적구를 ‘히로’나, ‘삐사리’가 나서 나의 부끄러운 50점 다마를 1시간째 빼지도 못하고 있을 때, ‘분노’보다 ‘즐거움’이 파란 색 당구대에 넘칠 거렸다.

늦게 배운 즐거움이 무섭다고 당구 이론이 궁금해서 이 책 저 책을 찾아 읽어본다. 가을 날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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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8-10-20 22:26:54

선생님, 마흔은 불혹이고 쉰이 지천명 아닐까 싶어요 마흔에도 하늘의 뜻을 안다면 뭐... 흐흐
당구는 10점당 십만원이라고 들었습니다. 대학 때 많이 쳤는데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하하

WR
1
2018-10-20 22:36:48

아이구.. 핸펀으로 길게 쓰다보니 이런 실수가..

1
2018-10-20 22:36:48

문득 공무원 국어에서 모든 나이 지칭어들 외웠던 거 생각나네요

2018-10-20 22:57:31

참 좋은 글이네요
저는 잘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걸 두려려워 하는 사람인데 조금은 그 심정이 이해가 가요
당구마스터가 되길 응원합니다

2018-10-21 10:33:57

수많은 짜장면 값과 게임비가 결국 실력이 될겁니다.

2018-10-21 11:49:05

 전 오히려 그때 소위 시내루, 히끼(?) 같은 걸 더 잘했던 거 같아요.

경험이 쌓일수록 안정적으로 치려다보니 당점이 중심쪽으로 옮겨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초보때는 삑사리도 워낙 많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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