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글 : 헌제를 위하여 I
이제 본편입니다.
항상 초반에는 미친듯한 속도로 글을 올리다가 점차 힘이 빠졌는데, 이번에는 어떻게든 계속 이어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끝나면 다시 전국시대 무장 소개글을 썼다가 삼국지 글로 돌아올 계획입니다.
1.십상시의 복직과 하진 암살
파면된 십상시들은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원소는 이 기회에 후환을 막아야 한다며 십상시들을 잡아들이라 하진에게 제안했지만, 하진은 계속해서 이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이에 원소는 과감하게도 하진의 명령을 사칭해서 십상시들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그러나 이미 해임됐던 십상시들이 모두 궁에 돌아온 상황이라 이 과감한 행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얼마 전 해임된 자들이 궁에 돌아온 것일까요? 이는 십상시의 우두머리였던 장양과 하태후 때문이었습니다. 우선 둘은 사돈 집안이었습니다. 장양은 마치 조조의 할아버지 조등이 그랬던 것처럼 양아들을 뒀는데, 이 양아들이 결혼한 상대가 바로 하진과 하태후의 여동생이었습니다. 해임 후 장양은 자신의 며느리에게 “한 번만이라도 황제와 하태후를 보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며 엉엉 울었고, 이걸 또 그 며느리는 자신의 언니인 하태후에게 전했고, 하태후는 이런 장양의 말에 너무나도 감동을 받아 십상시 전원을 복직시켰던 것입니다.
이젠 십상시 척결에 있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던 하진 또한 단단히 분노했습니다. 물론 사실상 이 과정을 주도하고 있던 원소의 분노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던 중 189년 8월 25일에 하진은 태후의 조서를 받아 궁에 입궐하게 됩니다. 물론 하진은 십상시들을 감싸고 돌던 하태후와 자신의 동생 하묘를 설득하기 위해서 입궐한 것이었죠. 그리고 이 조서는 가짜였습니다.하진에게 내려온 하태후의 조서는 십상시들이 위조를 한 것이고, 결국 궁에 입궐한 하진은 십상시들에 의해 암살당하게 됩니다.
2.원소의 무자비한 척결
“대장군 하진이 죽다.” 아마도 십상시 측에선 하진을 죽인 후 자신들의 손에 있는 황제와 태후를 이용해서 일단 하진부터 죽여놓고 밑에 있던 세력들은 이전처럼 역적으로 몰던지해서 죽이거나 쫓아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십상시의 리더 장양은 ‘당고의 금’을 주도하던 당시에도 두무의 선빵을 받았지만, 역습으로 두무 세력을 박살내버린 경험이 있었으니까요. 병력적으로는 열세여도 해볼만하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진의 수하들은 보다 강경했습니다. 하진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하진의 수하였던 오광, 그리고 원술(!!)이 군사들을 이끌고 궁궐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궁궐문을 부수며 궁에 난입을 시도했습니다. 환관들은 이를 막아는 냈습니다만, 궁에 들어가지 못한 원술은 남궁의 문과 서궁, 그리고 동궁에 불을 싸지르며 장양을 나오라고 협박했습니다. 그리고 장양은 황제와 하태후, 그리고 황제의 이복동생 진류왕 유협 등을 이끌고 북궁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럼 원소는 어땠을까요? 사실상 이 모든 사건의 배후로서 십상시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겼던 원소는 이미 역적으로 몰린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원소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앞서나갔습니다.후한서 하진전의 기사에 따르면 이미 원소는 숙부였던 원외와 함께 조서를 위조했고, 자신의 사병들을 이끌어 장양이 임명한 두 관리(번릉, 허상)의 목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하진 사망 후 3일이 지난 8월 28일, 북궁으로 진입한 원소에 의해 무자비한 살육이 시작됩니다.
원소는 북궁 정문으로 진입한 후 북궁의 문을 닫고 정말 환관은 전부 죽여버렸습니다. 정말 썩은 환관뿐 아니라 착한 환관도, 나이 많은 환관도, 어린 환관도, 아니 환관뿐 아니라 너무 일찍 관직에 올라 수염이 없는 일반 관리조차 모조리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무자비한 살육과정에서 하진의 동생인 하묘 역시 목숨을 잃게 되었고요. 결국 장양은 황제 등을 겁박하여 궁궐을 탈출했지만, 원소의 끈질긴 추격에 강물로 뛰어들어 자결하게 됩니다.
3.동탁의 등장
과감한 정세 판단과 무자비함으로 십상시 세력을 축출하는데 성공한 원소. 사실상 원소 주도하의 정국이 운영될 수 있는 모든 배경이 생겼는데요. 정작 원소는 얼마 있지 않아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낙양을 탈출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꾀에 자신이 당한 셈이 된 채 말이죠.
십상시의 난이 진행되던 과정에서 하진과 원소는 세력을 더욱 불리기 위해 지방의 장수들을 소집했습니다. 이런 하진의 움직임에 “the 나쁜 놈 그 자체 통닭”동탁이 호응하여 낙양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동탁이 3000 명의 군사를 이끌고 낙양으로 오고 있던 중 원소의 살육이 진행된 것입니다.
한편 장양과 함께 도망치던 어린 황제와 태후는 앞으로 터덕터덕 나아 갔습니다. 그리고 그 앞을 맞이한 건 바로 동탁의 군대였습니다. 황제의 신변을 확보한 동탁은 정말 십상시 척결에 그 어떤 공훈도 세우지 않은 채 황제라는 가장 좋은 도구를 손에 쥐고는 낙양으로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고작 3000 밖에 안되는 병력으로 어떻게 동탁이 이 혼란했던 정국을 손에 쥘 수 있었을까요? 동탁은 심성이 썩었을지언정 머리가 누구처럼 돌탱이거나, 정세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머리를 쓴 동탁은 자신의 수하들을 며칠 간격으로 밤에 내보냈다가 다시 다음날 아침에 입성시켜서 계속 자신의 군사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그리고 하진과 하묘가 이끌던 직속 병력들, 그리고 여포를 매수하여 병주자사 정원을 암살하게 만든 뒤 그 세력 역시 흡수하는데 성공합니다.
이런 식으로 세력을 불리는데 성공한 동탁. 다시 동탁은 태위 유홍을 가뭄을 이유로 면직시켜버리고는 자신이 그 자리에 올라 정권을 완전하게 장악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동탁은 황제 폐위라는 엄청난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 폐위에 대해 눈앞에서 정권을 놓친 원소는 동탁에게 맞섰습니다. 폐위를 강행하겠다는 동탁의 말에 원소는 칼을 뽑아 읍하면서“천하에 힘 있는 자가 당신 하나만은 아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동탁은 정말로 황제였던 소제를 홍농왕으로 강등시켜버리고, 진류왕 유협을 황제로 세웁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바로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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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글은 언제 읽어도 재밌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새롭네요.
저기 쓰인 당고의 옥이 후한 말 실시하던 향거리선제로 등용된 청류파 사대부들과 관련 있는 사건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