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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이야기 : 충신일까? 대립의 아이콘, 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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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8-10 15:51:27

1.들어가며

 

처음 삼국지연의를 접했을 때, 제게 처음으로 충격을 줬던 부분은 아마 조조의 여백사 살해 스토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역적 동탁을 제거하고 무너져가던 한나라 황실을 바로 세우려 노력했던 충신 조조가 이유 없이(정확히는 자신의 의심 때문에)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점이 가장 충격적이었는데요. (여백사 살해 스토리는 삼국지 정사 무제기의 배송지 주에 실제로 실려있는 일화입니다.)

 

소설 속에선 조조와 동행하던 한 인물 또한 그런 조조의 모습에 치를 떨며 떠나갔습니다. 이후 그 사람은 여포의 충성스러운 책사가 되어서 자신의 최후에 이르기까지 조조와 대립을 이어나가는데요. 바로 그 사람은 삼국지 소설 속 충성의 아이콘이자 비운의 캐릭터, 진궁입니다.

 

 

2.진궁의 초기

 

실제 역사 속의 진궁은 어땠을까요? 우선 앞서 언급한 여백사 스토리에 진궁이 포함된 것은 나관중의 복선 역할이고, 실제 진궁은 조조의 거병 당시부터 모사로서 조조를 섬겼습니다. 연주자사 유대가 연주를 공격해온 황건적들에게 목숨을 잃게 되자, 진궁은 연주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조조는 연주목으로 추대되어 황건적을 격파합니다.

아래는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간단히 작성한 세력도입니다.


 

세력도에 나온 것과 같이 반동탁연합이 군벌들의 분열로 실패로 돌아간 이후, 이 시기를 이끌어가던 중심축은 원소-조조-유표의 동맹 vs 공손찬(+유비)-원술(+손견)-도겸의 라인이었습니다. 특히 원소원술은 헌제의 정통성을 놓고 끊임없이 대립하였고, 각지에서 자신의 세력권 또는 동맹을 활용하여 대립을 이어갔습니다.

 

 

3.조조를 배신하다

 

위에 좀 뜬금없는 인물이 나오는데요. 도겸입니다. 삼국지연의 속 도겸은 늙고 병약하고 선한 할아버지 정도로 그려져 있죠. 그러나 실제 역사 속의 도겸은 상당한 야심가였고, 문무를 겸비한 군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도겸은 원술 동맹의 한 축으로서 조조와 영지를 접하고 있었죠, 이에 도겸이 먼저 두 번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조조의 아버지 조숭이 살해되는 일이 발생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조조가 도겸을 공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조조는 자신의 분풀이를 위해 서주 영민들에 대한 대학살을 감행합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닌 두 번이나 말이죠.

 

조조의 두 번에 걸친 대학살 이후 상대였던 도겸의 세력은 크게 쇠퇴했습니다. 그러나 조조 또한 민심을 잃는 결과를 맞게 되는데요. 자신의 거점이었던 연주의 호족과 주민들이 조조에 크게 반발하여 모반을 꾀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조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던 장막 역시 조조에 대항하고, 여포를 연주목으로 세우면서 조조와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주도했던 것은 다름 아닌 진궁이었습니다.

 

 

4.여포와의 대립

 

물론 연주에서의 반란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조조는 멸망 위기까지 몰렸지만, 순욱과 정욱의 활약으로 최소한의 거점을 지키는 데 성공했고 세력을 회복한 후에 여포를 대파했습니다. 그리고 여포는 연주를 버리고 서주의 유비에게 의탁합니다.

 

진궁 또한 이 대열에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진궁이 함께 했던 장막은 따로 원술에게 구원을 요청하러 가던 중 부하에게 살해를 당하였습니다. 결국, 진궁은 여포를 따르게 됐지만, 둘은 우리가 소설에서 본 것과는 달리, 아니 소설보다도 훨씬 더 안 맞았습니다.

물론 진궁의 말에 따라서 여포는 유비의 뒤통수를 치고 서주를 획득하는 데 성공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포는 이후 진궁의 말들은 대부분 무시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위태로움을 느낀 진궁이 선택한 것은 모반이었습니다.

 

1966, 여포의 수하였던 학맹이 반란을 일으켜 하비에 쳐들어갔습니다. 이때 여포는 놀라서 반항도 못 하고 처자식을 데리고 고순의 진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고순의 활약에 힘입어 학맹의 수하였던 조성이 학맹을 배신했고, 결국 고순에게 반란은 진압된 채 학맹과 조성 모두 붙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여포 앞에 간 조성은 충격적인 말을 여포에게 전합니다. “학맹은 원술의 계책을 따랐을 뿐이고 진궁이 같이 공모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옆에 있던 진궁은 얼굴이 붉어졌다고 기록되어 있고요. 사실상 공모, 최소한 어느 정도의 가담이 예상되는 기록인데 여포는 진궁을 제거하게 되면 발생할 파장을 고려해서 학맹만을 참하고 이 반란 사건을 무마합니다.

 

 

5.최후

 

이후 정치적으로 일관된 선택을 하지 못했던 여포는 점차 고립되었고, 결국 멸망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하비를 포위한 조조는 여포에게 편지를 보내어 투항을 유도했고, 진궁은 이를 저지하려 합니다. 여포 또한 진궁의 의견을 받아들이고자 했지만, 아내인 엄씨의 말을 듣고는 다시 투항도 포기한 채 농성을 선택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이때 여포의 아내인 엄씨가 했던 말은 소설 속에선 별 것 아닌 것처럼 그려집니다만, 실제로는 엄씨는 진궁은 의리가 없고, 고순과 서로 사이가 나빠 성을 제대로 지킬 수 없다.”라는 매우 현명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붙잡힌 진궁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굉장히 고고한 최후를 맞이했고, 이후 삼국지연의를 통해 우리가 아는 이미지가 정립됩니다.

 

-그림은 삼국지 13 PK의 진궁

 

6.마치며

 

보통 연의의 수혜자 또는 피해자라며 일컬어지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진궁 또한 그 범례에 속할 수 있고요. 그러나 나관중이 만들어 낸 캐릭터들은 항상 살아 숨쉬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아마도 삼국지가 현재까지도 군담의 대표작으로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그런 나관중의 능력이 아닐까요? 이상 진궁 편의 짧은 마무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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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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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8-10 17:59:59

뭐 사실상 진궁은 장막 바라보고 배신을 한 셈이죠. 근데 장막과 자신만으로는 연주를 함락할 무력이 부족하니 여포를 끌어들인거고... 하지만 연주 공략은 실패하고, 장막도 비참한 최후를 맞으면서 결국은 진궁이 여포를 따랐지만, 여포는 진궁의 말을 잘 듣지 않았기에 패망한거구요.

 

조조의 서주 대학살은 실제로 민심을 매우 크게 잃은 행동입니다. 단순히 도겸군을 격퇴하는 걸 떠나서 민간에게까지 큰 피해를 주었고, 여기에 진궁같은 사람들이 크게 반발을 했던 거죠. 실제로 장막과 진궁의 반란에 조조 관할의 여러 고을들이 호응을 했으니 얼마나 당시 민심이 뒤숭숭했는지 알 수 있죠. 진궁은 나름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을 한 거고, 진궁과 장막의 배신은 조조가 자초한 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장막은 조조에게 깊은 신임을 받고 있던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로 조조의 절친이기에 조조를 너무나도 잘 알았죠. 원소와 원수지간이던 장막은 조조가 지금은 아닌듯 하지만 나중에 세태가 불리하면 자신을 원소에게 팔아먹을 위인이란 걸 너무나도 잘 알았죠. 만약 장막이 조조를 그냥 데면데면 알았다면 끝까지 조조를 신뢰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장막은 자신의 입지가 불안정한데다가 그 역시 조조의 학살에 충분히 반감을 가졌을 것이며, 진궁같은 모사와 여포같은 후원세력이 있다면 한 번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결국 실패했고, 일족이 참살되는 비극을 맞았죠.

 

여포와 진궁의 관계가 연의에서 서로간에 상당히 긴밀한 관계로 그려져 있지만 (거의 뭐 항우와 범증같은...) 실제로는 그 정도의 유대는 없었을 겁니다. 진궁은 장막의 패망으로 어쩔 수 없이 함께 거사했던 여포 쪽에 붙은거고, 여포는 진궁 정도의 인재를 다룰만한 도량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세력이 약했던 여포로선 장막을 기치로 맨 처음 거사했던 연주의 잔여 세력들을 대표하는 진궁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었고, 장막의 복수와 이를 실행할 무력이 필요했던 진궁으로서도 여포가 탐탁치 않았지만 그 밑에 들어갔던 거죠.

 

학맹의 배반 때 진궁이 연루된 정황이 분명했음에도 여포가 진궁을 함부로 처리 못한 건 그래서입니다. 진궁은 애초에 여포가 생사여탈을 맘대로 할만한 심복이 아니었습니다. 함부로 진궁을 죽였다간 장막 사후 진궁 하나 바라보고 자기를 따르는 장막 잔여 세력들이 일시에 들고 일어날 게 뻔했죠. 어쩌면 여포와 진궁은 항우와 범증이라기보단, 유방과 한신과 같은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한신도 소하, 조참같은 유방의 가신이라기보단, 일종의 독립적인 협력 세력의 성격이 강하죠. 실제로 괴통이 한신에게 자립을 권하기도 했었는데, 만약 한신이 자립했으면 삼국지의 타이틀은 그때부터 시작했을 지도 모르죠...)

 

진궁의 행적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건 진짜 지독할 정도로 조조의 안티라는 겁니다. 진궁의 모든 행동들은 조조를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 다 들어맞습니다. 실제로 진궁은 조조에게 높이 평가를 받기도 했고 그의 막료로 있기도 했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안티로 돌아서게 되었는지는 확실히 밝혀진 바 없습니다. 다만 그게 서주대학살 때문이다라는 추측이 유력한 거죠. 진궁을 위시해, 당시 연주의 여러 세력들이 조조에게 돌아서게 된 결정적인 명분이 바로 그 사건 때문이었으니까요.

 

작전 실패로 섬길만한 군주(장막)를 잃은 진궁은, 결국 조조 타도라는 기치 하에 여포에게 힘을 빌려주었고, 덕분에 여포가 서주에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을 수 있었지만 진궁의 반대에도 조조에게 붙었다 결국 조조에게 털려서 패망하고 맙니다. 사실 여포는 정말 여기에도 붙었다, 저기에도 붙었다, 배반했다를 반복하는 신뢰도 제로의 인간이었는데, 원소, 원술, 유비, 조조를 오가며 줄타기 하다가 그 줄이 결국 스스로의 목을 조른거죠.

 

연의에서는 여백사 스토리를 통해 나름 멋드러지게 진궁이 왜 조조를 미워하게 되었나를 잘 각색해주었다고 봅니다. 연의는 조조를 천하의 악당으로 만들어낸 창작물이긴 한데, 정작 역사에서 조조가 저지른 가장 끔찍한 악행인 서주대학살은 그렇게 비중있게 다루진 않았죠. 뭐 백성들의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는 것 보다, 전 왕조에 반역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운 불충이 더 큰 악이라고 본, 연의 작가의 가치관 때문이겠지만요. 

WR
2018-08-11 09:25:03

맞습니다. 자세한 추가 설명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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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8:38:20

창천항로에서 최후를 맞이하기 직전 조조와의 문답이 정말 멋있었는데 말이죠.

WR
2018-08-11 09:25:17

명작이죠 창천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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