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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글 : 용과 호랑이, 그리고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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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8-05 13:05:44

삼국시대가 진행이 되면서, 제갈근과 제갈량 형제는 각각 오와 촉에서 큰 공을 세우고 중국 전역에 명성을 떨칩니다.

둘 뿐 아니라 위나라에서도 또 하나의 제갈씨가 이름을 떨치고 있었는데, 그가 바로 제갈탄입니다.

제갈탄은 제갈근-제갈량 형제의 집안 동생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 삼형제와 관련하여 당시에 이런 속설이 유명했다 합니다.

 

"(제갈량)을 얻고,호랑이(제갈근)를 얻었으며, (제갈탄)을 얻었다."

 


사실 이 문구만 보면 "잘 나가다가 왠 개여?" 하실텐데, 그 유명한 태공망의 저서로 알려진, 그리고 연의에선 병법마스터 하후무가 최소 12회독은 했을 것으로 여겨지는 <육도삼략>의 육도가 '문도·무도·용도·호도·표도(표범)·견도'로 이루어진데서 기인한 듯 합니다. 왜 우리가 어릴 적에 '포청천'봤을 때도 개작두 임팩트가 강해서 그렇지 용작두, 호작두도 있었던 걸 기억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어쨌건 너무 짱짱했던 집안 형들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그 형들하고 엮일만큼 본인의 능력을 보여줬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이 제갈탄은 어떤 인물일지 한번 소개해보려 합니다.

 

 

1. 초기의 제갈탄

 

제갈탄이 이부랑이라는 관직에 있었을 때, 다른 이들이 그들 각각의 지인을 벼슬길에 추천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 제갈탄은 추천받은 사람의 공적이나 행실이 그에 부합할 경우 말그대로 확실하게 추천해줬었지만, 제대로 된 인물이 아닐 경우에는 가차없이 까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고 하죠. 이 때 하후현이나 등양(조상의 측근이죠) 등 당대의 명사들과 가깝게 지냈다고 하는데, 이러한 모습을 조예는 너무너무 싫어하여 제갈탄 등을 면직시켜버렸죠.

조예가 죽은 후에 제갈탄은 어사중승상서라는 관직으로 돌아왔고, 양주자사가 되었고 이 때부터 대오전선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한편 이 당시 위나라에선 왕릉이라는 인물이 난을 도모하고 있었고, 이 난을 진압하기 위해 사마의가 진압군을 편성하던 시기에 제갈탄은 진동장군·가절도독양주제군사로 임명받고, 산양정후라는 후작도 받습니다.

 

2. 롤러코스터 제갈탄

 

물론 제갈탄이 항상 활약이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제갈탄 또한 자신의 집안 조카뻘이자 제갈 시리즈의 거품(...) 제갈각에 맞서다 박살이 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제갈각이 이끄는 군세가 본인들보다 적은 것을 보고 방심하였고, 결국에는 제갈각에 의해 크게 패했던 것이죠.

대패의 책임을 물어 진남장군으로 전임되었으나 사마사에 대항하여 군을 일으킨 관구검의 난을 수춘에서 진압하였고, 이 때의 공과 회남에서 오랜 기간 근무한 덕에 다시 진동대장군·의동삼사·도독양주가 되었습니다.

문흠은 관구검의 난이 진압되자 오나라에 항복했었는데, 이 때의 오나라 대장군 손준은 수춘을 제압하기 위해 병력을 보냈습니다. 이 때 제갈탄의 빠른 대처로 오군은 퇴각하게 되었고, 이 퇴각하는 오나라 군세를 추격하여 오나라 장수 유찬의 목도 벱니다. 또 다시 공을 세운 제갈탄은 고평후에 봉해지고, 식읍 3500여호를 더했으며, 정동장군이 됩니다.

 그러나 승승장구에도 불과하고 친하게 지내던 하후현과 등양 등이 사마의의 뒤를 이은 사마사에 의해 제거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이때를 기점으로 위나라의 창업공신이었던 하후연의 아들, 하후패 역시 촉나라로 귀순하게 됩니다.) 제갈탄은 사마의를 따라 본인 또한 난을 일으켰던 관구검이나 왕릉 등을 제거한 적이 있던 경험 때문인지, 그리고 자신의 라인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인지 본인의 입지에 대해 불안해하기 시작하며 자신을 따르는 무리 수천여 명을 후하게 대접하기 시작했습니다. 측근들을 키우기 시작한 것이죠.

 

 

3. 제갈탄의 최후

 

한편 사마사는 제갈탄을 사공으로 삼아 중앙으로 불러들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마사의 이런 제안이 자신을 제거하려는 속셈이라고 여긴 제갈탄은 사마사에 대항해서 군사를 일으키고, 양주자사였던 악침(악진의 아들)을 죽입니다.

이 난을 제압하기 위해 사마사가 군을 파견하고, 제갈탄은 이에 대항해 아들 제갈정을 오나라에 파견, 오나라는 전역·전단·당자·왕조 등이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 출신 문흠과 함께 제갈탄을 구원하였고, 제갈탄은 오나라에서 좌도호·가절 대사도·표기장군·청주목·수춘후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습니다.

전투는 지속되었고 사마사는 직접 군을 이끌고 진압에 나섰으며, 이에 오나라 대장군 손침은 주이(오나라의 5대 도독 주연의 아들 주환의 아들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를 보내 대항했지만 전투가 진전이 없자 손침은 주이를 죽여버리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제갈탄과 문흠, 그리고 당자 등이 남아서 대항했지만 전세는 계속 밀리는 형국이었고, 제갈탄은 문흠과 갈등을 빚기 시작합니다. 방어 방법에 대한 갈등이었는데, 결국 제갈탄이 문흠을 죽여버렸고, 문흠의 아들들이었던 문앙과 문호 역시 사마사에 항복하게 되었고, 제갈탄은 고립되었습니다.

결국 이 난은 제갈탄이 성문을 열고 공격하여 죽게 됨으로써 끝이 나는데, 이 난의 하이라이트는 제갈탄의 사망 이후입니다서 살펴보았던 제갈탄의 측근들 이야기인데, 제갈탄의 수하 중 수백명이 붙잡혔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제갈공을 위해 죽으니 여한이 없다"는 말을 하며 주인인 제갈탄을 따라 순사합니다.

 

4. 제갈탄에 대하여

 

제갈량 평전을 지은 여명협 선생은 본문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제갈량 형제를 용과 호랑이로 비유한 것은 적절하지만, 제갈탄을 개에 비유한 것은아무래도지나치게 폄하된 것이다.제갈탄은 관직 생활이 청렴했고, 위나라에서 벼슬하면서 충절을 다해 먼 조상인 제갈풍의 유풍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에 사마씨가 조정을 손아귀에 넣고 위나라를 없애려는 데 반대하다 피살되었다. 그의 행동은 아름답고 용감했으니 성패로써 영웅을 논해서는 안 될 듯 하다."

 

 여기서 나오는 제갈풍은 제갈량 형제의 선조로 일컬어지는 인물로,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유명하던 인물입니다

제갈근이나 제갈량 모두 이러한 품성이 돋보이는 인물들이었으며, 제갈탄 역시 그의 삶이나 최후에 있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본인 나름대로의 충절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제갈탄의 측근들을 바라볼 때 제갈탄에게도 다른 형제들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지 않았을까요

비록 형제들에 비해서 관직이 높지 못하고, 공훈도 비할 바 못되며, 보여준 모습이나 행적에도 비판받을 부분이 있고, 부족한 모습이 보이지만 노력하는 인물상에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애초부터 스탯 자체가 너무 뛰어났고 미친 워커홀릭에 자기관리까지 철저했던 제갈량은 인간으로서 따라하기엔 너무 어렵고(제갈량이 롤모델이었던 어떤 엄청 능력자 황제조차 과로사를 해버렸더랬죠) 그 형 제갈근의 넘나리 언제나 부드러운 성품 또한 따라가기 벅찬데, 제갈탄은 적절히 인간미까지 있어서인지 더 호감도 가고 그런 노력이 돋보이는 사람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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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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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8-05 09:44:28

 

문앙에 대한 글이나 한 번 써주세요..

희대의 먼치킨..

 

제갈탄은 삼국전투기 때문에 저의 뇌리엔 이제 데드풀 이미지 밖에 

2018-08-05 09:48:35

저도 보면서 계속 데드풀생각

6
Updated at 2018-08-05 10:01:39

지금 보면 최훈이 참 삼국전투기를 참 잘만들었어요.
패러디때문에 책이 더 안나온다는 말이 있던데 아쉽네요...

WR
Updated at 2018-08-05 13:06:10

그 시대 무장을 언급하게 된다면 문앙보다는 아마 마륭부터 언급하게 될 것 같습니다

2018-08-05 09:47:33

제갈량이 롤모델이었던 능력자황제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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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5 12:31:17

강희제가 제갈량을 롤모델로 삼았다는 기억은 납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황제가 신하를 롤모델로 삼는 거 아닙니다"하니까 강희제가 "짐은 하늘의 신하다"라고 답하기도 했죠. 헌데 강희제는 과로하긴 했지만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미친듯한 관리 견제와 치밀한 꼼꼼함 덕분에 과로사 한 건 옹정제에 가까워보이기도 하구요.

2018-08-05 13:39:49

감사합니다!!

WR
5
2018-08-05 13:03:45

강희제의 롤모델이기도 했고, 그 아들 옹정제를 염두에 두고 쓴 내용이었습니다. 옹정제 또한 제갈량의 후출사표의 내용인 '국궁진력'을 모토로 삼았다고 합니다.

1
2018-08-05 13:24:34

역시 그 아버지와 그 아들이었네요

WR
2
2018-08-05 18:09:21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은...

1
2018-08-05 13:40:21

청나라쪽은 잘 몰랐네요 몰랐던사실 알게됬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08-05 10:51:30

제갈탄이 본인의 출세를 위해서든 본인의 본래 주위를 챙기는 성향이든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얻은 건 대단한 능력이고 엄청 부럽네요

WR
2018-08-05 13:04:35

맞습니다. 절대 쉬운 능력이 아니죠. 그만큼 사람을 대할 때만큼은 진심으로 대한 것이겠죠.

2
2018-08-05 11:26:34

잘 읽었습니다! 조심스럽게 하나만 말씀드린다면...... 최후 부분에서 주이는 주연의 아들이 아니라 주환의 아들이죠.

WR
2018-08-05 13:01:52

아 맞네요 기억으로 적은 후에 팩트 체크를 안했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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