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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글 : 유비-손권 동맹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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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3 21:16:33

안녕하세요. 내일이 시험인데도 1만큼의 긴장감도 없이 놀고 있는 히어로즈입니다.

최근에 삼국지글이 종종 이 매니아에도 올라오더군요.

워낙 이 매니아에는 역사 등 다양한 영역에 관해 내공이 강한 분들도 많으시고, 근래의 추세에도 적합한 듯 하여 이전에 모 커뮤니티에 제가 작성했던 삼국지(삼국시대) 관련 글들도 한번 공유해보려 합니다.

 

아래 글에서 유비의 이릉대전과 관련 등과 관련해서 유-손 동맹에 관한 언급도 있어 제가 그에 관련해 썼던 글이 있어서 간단히 정리했습니다.

 

 

손권의 기본 전략이 주유-노숙-여몽-육손각 도독들이 입안한 전략 하에 주기적으로(엄밀히 말하자면 육손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짧은 수명 때문에) 계속해서 바뀌었다는 것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겁니다. 이 전략 하에서 외교 노선 또한 끊임없이 변화한 것이 손권 및 동오가 이어온 외교 스타일이었습니다. 일찍이 주유가 도독이던 시절에는 적벽대전과 천하이분지계하에서 조조에 대항했던 손권 세력은, 주유 사망 이후 후임이 된 노숙에 의해 유비와의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였지요. 그러다가 217년 봄에 갑작스럽게 손권은 조조에게 항복하기도 합니다. 이는 외교노선의 변경인데, 그에 관한 언급이 손권전에 있습니다.

 

 

 

[22(217) , 손권은 도위 서상을 파견하여 조조를 만나 항복을 청하도록 했다. 조조는 사자를 보내 화의에 동의한다고 대답하고 새로 결혼하게 될 것을 약속했다.]

 

 

 

먼저 이 '항복'이라는 표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지도 한 번 고려해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이에 대해선 관련 분석 글들이 인터넷에 존재하니 검색해보셔도 재밌으실 것 같고요. 여튼 216년 겨울에 조조는 유수오를 공격합니다. 이 유수오 공격에 관한 무제기의 기사도 있습니다.

 

[겨울 10, 군사들을 조련하고 [103] 마침내 손권(孫權)을 정벌하여 11, ()에 이르렀다.

22(217) 봄 정월, 왕이 거소(居巢)에 주둔했다.

2, 진군하여 장강 서쪽의 학계(郝谿)에 주둔했다. 손권은 유수구(濡須口)에 있으면서 성을 쌓아 거수(拒守-막아서 지킴)했는데, 마침내 이를 핍박해 공격하니 손권이 퇴주(退走)했다.]

 

그러나 무제기에는 항복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즉 손권이 철수한 이후 조조에게 화의를 청하였고, 이 것을 진수가 항복으로 언급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어찌 되었거나 이 화의는 조조와 대립하던 손권의 기본 외교 노선이 급격하게 바뀌었음을 시사하는 사건일 것입니다.

  

이 화의와 관련하여 217년이라는 시기가 매우 중요한데요. 그 이유는 노숙이 사망한 해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노숙이 사망한 후 병권을 잡은 여몽전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관우와 땅을 나눠 접경하고 있었는데, 관우가 매섭고 빼어난데다 (오를) 병합하려는 마음이 있지만 또 그 나라가 상류에 있어 형세상 오래가기 어려움을 알았다. 처음에 노숙 등은 조공이 아직 살아있음으로 해서 화난(禍難)이 이제 시작되었는지라 마땅히 서로 도와야지 같이 원수가 되어 잃어서는 안된다고 여겼다.]

  

이 구절로 추측컨대, 여몽은 처음부터 관우를 가상의 적이자 잠재적인 최대의 적으로 인식하고 있었군요. 또한 관우 역시 강동에 대하여 어느 정도 영향력(손권 세력의 입장에서는 위기 의식을 느끼게끔)을 행사하고 있었나 봅니다. 노숙은 익히 알고 있다시피 조조라는 거대 세력에 대항하기 위하여 유비와의 동맹에 힘을 쏟았군요. 그러나 이러한 노숙도 관우에 대해서 어느 정도 걱정,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긴장감만큼은 갖고 있었던 듯 합니다.

   

[노숙이 주유를 대신하게 되어, 마침 육구(陸口)로 가다 여몽의 둔영 아래를 지나게 되었다. 노숙이 항상 여몽을 경시하는 뜻이 있었는데, 어떤 자가 노숙에게 말하길 "여장군의 공명이 날로 빛나 예전처럼 대할 수 있으니, 그대께서는 마땅히 (여몽에게) 들러 보십시오."라 하니 마침내 여몽에게 향했다.

 

술이 취하자, 여몽이 노숙에 물었다 "그대가 중임을 맡아 관우와 이웃하게 되었는데, 장차 어떤 계략으로 불우(不虞)의 상황을 대비하고 계십니까?" 노숙이 경황 중에 응답하길 "때에 따라 시의적절하게 할 것이오"라 했다.

 

여몽이 말하길 "지금 동서(유비와 손권)가 비록 한 집안이 되었으나, 관우는 실로 곰과 범같은 장수인데 어찌 계획을 미리 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 했다. 이로 인해서 노숙을 위해 5가지 계책을 짜 주었다. 노숙이 이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가, 그 등을 치며 말하길 "여자명(자명은 여몽의 자), 경의 재략이 미치는 바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내가 미처 몰랐구료"라 하면서 마침내 여몽의 모친에게 절하고, 우호를 맺고 헤어졌다. ]

  

이것이 유명한 괄목상대의 일화와 관련한 여몽전의 내용인데요. 주유 사후 노숙이 그 후임을 물려 받은 시점에서 이미 관우와의 대립을 염려한 여몽의 계책 진언으로 보입니다. 이 계책에 대하여 노숙이 호응한 것을 감안하면, 아마 노숙 역시도 이후의 혹시 모를 대립에 대하여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이는군요.

  

과연 관우는 이 때 어떠한 태도를 갖고 있었을까요? 노숙전에서 관우가 계속 해서 손권 세력을 견제하고 또 위협했던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있습니다.

 

[관우는 노숙이 경계를 인접하고 있게 되자. 자주 의심이 있었으므로 경계 지역에서 분쟁이 일어났는데... 노숙은 항상 우호적으로 그들을 진무시켰다.]

 

이 구절은 익양 대치 이전에 대한 기록인데요. 익양대치의 경우 우리가 자주 읽는 소설 삼국지에는 관련 내용이 관우의 노숙 인질작전(...) 정도로나 볼 수 있는데 유-손 동맹이 군사적으로 대치했고, 실제 요립 등의 장사-계양 지역의 태수들이 손권에게 항복하기도 했던 꽤 큰 사건입니다. 여튼 이와 관련하여 관우와 손권 세력은 익양에서의 분쟁 이전부터 감정적 대립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던 것으로 생각해봐도 될 듯 합니다.

 

 이미 노숙이 병권을 물려받을 시점부터 관우에 대한 우려를 안고 있었던 여몽과, 손권 세력에 대해 강한 경계를 가지고 있던 관우. 어쩌면 형주에서의 대립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비 역시 익양 대치에서 드러난 모습을 보면 손권과의 전면전을 불사할 요량이었던 것 같고, 손권 역시 유비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것도 둘의 대립은 불가피했을 것 같네요. 그것을 형주 분할이라는 미봉책으로 넘어서려 했으나, 이미 그 전부터 두 동맹 사이의 불화는 형주 분할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을 만큼 멀리 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입장을 먼저 정리한 것은 조조와 화의를 청한 손권이었던 셈이구요.

 

이미 주유시절부터 형주를 놓고 대립했고, 손권 본인 또한 주유-노숙-여몽 등에 대해 평가하면서 노숙과 여몽에 대해 '관우를 공격하라고 했다는 점에서 여몽이 노숙보다 나았음'이라고 평했던 것을 생각하면 형주를 유비에게 양보한 것 자체로도 손권은 기본적으로 불만이 가득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여몽이 형주를 병합하는데 성공하면서 형주 방면의 새로운 전략이 입안될 수 있었지만 여몽 역시 요절했고, 결국 현대에 와서는 촉빠 및 오빠들이 아쉬워하는 결과의 시발점이 되었다는게 아이러니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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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8-08-03 21:18:07

 초 강대국인 조조의 위나라가 없었다면...

 정말 가장 피 튀기게 싸워야할 정작 원수는 촉나라와 오나라였죠.

 오월동주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두 나라의 관계.

WR
2018-08-03 22:48:52

일단 오촉 서로 간에는 위나라 공멸 후 영토 분할에 대한 신사 협정도 맺긴 했습니다만 말씀대로 서로 언젠가는 해결해야할 상대로 여겼겠죠. 실제로 두 나라 간의 동맹이 매우 강화된 후에도 장완이 상용 급습 작전 계획을 세울 당시 오의 도독이었던 주연은 배신아닌가 의심했다고 하니까요.

2018-08-03 21:18:49

역시 이런건 시험기간에 올려야 제 맛이죠 

WR
2018-08-03 22:49:24

언제나 시험 전날은 그 모든게 재밌습니다

2018-08-03 21:32:58

법조윤리 쉬워야할텐데요...ㅋㅋ

WR
2018-08-03 22:50:02

안그래도 올해가 역대급으로 쉬울거라는 썰이 돌면서 공부를 더 안했습니다 저란 인간

1
2018-08-04 00:14:43

쉬울겁니다
작년 헬난이도 피해자로서
쉬워야합니다 ㅠㅠㅋ

WR
2018-08-04 10:06:37

화이팅입니다

3
2018-08-04 10:55:23

관우 형주공방전 관련 글도 썼었는데 대부분 삼국지를 읽으신 분들이 유관장 및 조조에게 포커싱이 가니 촉한과 동오의 분쟁 인과관계를 잘 모르시더군요

적벽 이후 흐름을 보면 동오의 서주 방면 진출이 쉽지 않자 형주로 눈을 돌렸고 뒤통수 칠 준비만 계속 노렸다고 봐야겠죠 형주 진출에 대한 강경파가 여몽이었구요

촉한 입장에선 입촉 이후 유비가 자리잡기 시작하니까 형남 땅 내놓으라고 해서 끝장 볼 태세였다가 한중때매 타협했는데 그뒤에 유선 납치미수건 등 때문에 동오에 대한 신뢰가 박살났겠죠 그 상황에서 관우한테 결혼동맹 제의하니 뭔 개소리야? 나온것이고

촉한이 남양까지 치고 올라가고 동오가 합비를 뚫고 서주로 진출했다면 진지하게 천하삼분이 이뤄졌을텐데 둘이 서로 치고박고 하면서 천하삼분이 어그러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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