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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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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01:14:45

이 글을 쓰기 전에 갑자기 궁금해져서 제 프로필을 열어봤습니다. 2008년 가입으로 뜨는군요. 10년 조금 넘게 매니아에서 이런 저런 글을 쓴 셈입니다. 정치게시판이 있을 때는 거기에도 많은 글을 썼고, 제 직업과 관련된 부분이라 자유게시판을 통해 노동법에 대한 몇몇 질문들에 답변 드리고 필요한 분들께 도움을 드리기도 했습니다. NBA는 앤써의 오랜 팬이었다가, 매니아에 가입할 때쯤엔 이미 내쉬와 피닉스를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그건 드라기치를 지나, 부커를 응원하는 지금도 마찬가지이구요. 다행히 10년 조금 넘게 매니아에 있으면서 지금껏 딱히 징계를 받은 기억은 없습니다


저는 남성이고, 페미니스트라고 하긴 조금 조심스럽지만 대학에서 여성학 복수전공을 준비했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취업되는 바람에 한 과목을 이수하지 못해 여성학 전공이 인정되지 않았으니, 딱히 전공자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하려는 얘기는 딱히 페미니즘이나, 정치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고 우리 사회에서의 토론그 전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농사를 조금 잘(?) 짓는 제 고모부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두고 해 주신 얘기가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고모부의 얘기를 단어 하나까지 다 적어가는데, 한국 사람들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대뜸 하는 얘기가 아는 거네. 라는 겁니다. 그래놓고 정작 집에 돌아가서는 전화로 네 말대로 했는데 왜 안되냐따지고 정작 확인해 보면 다 제 멋대로라는 거였죠.  

      

그게 한국의 국민성 문제인지까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매니아를 포함해 한국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유난히 비슷한 느낌을 자주 받았던 것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끝까지 다 보거나 듣지도 않고 쉽게 단정짓는다. 단정이 빠른 만큼 쉽게 아닌 척을 한다. 작은 부분을 크게 포장하거나 큰 일을 작은 것처럼 얘기한다. 뭐 그런 것들입니다.

     

사실 매니아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다른 부분은 사실 제 전문 분야가 아니라 조금 조심스럽지만저는 제가 특히 노동법을 다루는 일을 제 직업으로 하고 있는데도 가끔 여기서 법 얘기로 댓글 달 때 당혹스러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사실이 아닌 걸 너무 당당하게 사실이라고 적으시거나, 단순히 한 케이스에 불과한 일을 모든 경우에 적용하는 경우를 종종 보기 때문이죠. 물론 정말 저보다도 더 법에 대해서 깊이있는 지식, 혹은 실무적인 경험을 가지신 분들도 간혹 뵈었습니다만 사실 그런 경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를 훨씬 자주 목도하곤 합니다. (제가 술 먹고 로그인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능한 조심스럽게 바로잡아드리려고 노력하는데, 몇 번인가는 마치 제가 뭘 모르는 사람인 것 같은 답변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사실 그럴 땐 조금 난감합니다. 

  

페미니즘이나, 정치 얘기를 할 때도 종종 그렇습니다. 개인적으로 썰전을 좋아하는데요. ‘썰전은 다른 토론프로그램과 결정적인 차이가 한 가지 있습니다. 바로 특정 주제에 대해서 작가진들이 양 측이 공유하는 기본적인 전제(팩트)를 정리해준다는 점이지요.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 토론들은 사실 상당히 피곤합니다. 서로 공유하는 전제가 다르면 완전히 어긋나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고, 만약 심지어 그게 어떤 입장의 일부만을 가져온 것이라거나, 잘못된 팩트를 갖고 이야기하거나, 혹은 상대의 입장을 왜곡해 놓은 것이라면 그런 대화는 사실 아무리 길어도 결론 나지 않는 무의미한 대화일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그것을 객관적인 사실인 양 다음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면 당연히 서로간 극단적인 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죠. 

  

페미니즘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그리고 정치적으로 진보이든 보수이든 그 자체는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하지 못할 어떤 이유도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문제는 페미니스트인지, 진보인지 그런 것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전제가 제대로 공유되고 있는지 하는 것이죠. 대화를 위해서 우선 필요한 건 그 '전제' 를 명확히 정리하고 공유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종종 후배들에게 하는 얘기인데요. 어떤 조직이건 사람이 만 명 가량 있으면 그중에 적어도 네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사람이 한 100명은 된다는 점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전체에서 비중은 고작 1%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대화들까지를 전부 일반론이고, 어떤 단체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언급한다면 세상에 멀쩡한 단체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겁니다. 제대로 된 토론을 위해서는 그런 (통계적) 특이값들은 서로 배제해야 합니다.  

  

저는 매니아에서 징계를 얘기하고, 글의 삭제 원칙을 얘기하기 전에 먼저 글을 쓰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상대의 글을 오해한 부분이 없는지, 내가 가져오려는 전제가 잘못되었다거나 왜곡된 부분은 없는지 그런 검토가 있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징계에 원칙이 없다그런 얘기들을 하기 이전에 우리들 스스로 징계가 문제되지 않는 글들을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우리들 스스로에게도 더 생산적인 결론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그런 생각입니다

 

특히 페미니즘이나 정치, 그런 민감한 이야기들을 할 때는 특히 조금 더 그러한 부분을 유념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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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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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01:44:01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잘 봤습니다

2018-07-17 01:47:03

한번쯤 내가 어떤 댓글을썻나 반성하게 되는 글이네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썰전 자주보는데 이철희 강용석 시절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둘다 말 잘하시니 유시민 전원책때는 유시민 작가님이 그냥 너무 넘사벽으로 말을 잘하시니
균형이 안맞는 느낌이 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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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01:49:47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전제가 공유되고 대화할 준비가 되어있는 여성들은 사회에 녹아들어서 제 역할을해내면서 목소리를 내는 중이고,

인터넷에서는 그렇지 못한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서 '이상한 이야기'가 모이기 때문에 반감을 불러오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말그대로 '이상한 이야기' 들이라서 더 쉽게 퍼지고, 반응도 핫 하구요.

본문에서 언급하신 팩트, 공유되는 전제로 얘기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는 재미도 없고, 반박할 이유나 반감도 없고...
이런 게시판에 올릴만한 유인이 별로 없죠...

(아 쓰고보니 글쓴님은 포용적인 시각인데 반해, 저는 결국 요즘 페미니즘은 이상한 이야기라며 단정지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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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7-17 02:39:40

말씀하신 것처럼 쉽고 빠르게 단정하는 것과 더불어 일부를 전체화 시키고, 일부를 다수에 동일화 시키는 것에 대해 너무 아쉽다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매니아는 여성들이 활동하기 힘든 사이트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드네요.

저는 애매한 스탠스를 자주 취하는데 의외로 공격적인 반응들을 자주 접합니다. 무지 혹은 무책임쯤의 하나로 여겨지죠. 장폴 사르트르의 구토에서 자신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뭐라도 된냥 떠드는 사람들이 묘사되는데 이 부분이 참 기억에 남아요. 그저 흘러가는 문장이었는데 말이에요. 동시에 여러 글들에 무심히 지나가다가 이 글에 덧글 남기는 저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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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7 06:05:36

“그리고 제가 종종 후배들에게 하는 얘기인데요. 어떤 조직이건 사람이 만 명 가량 있으면 그중에 적어도 네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사람이 한 100명은 된다는 점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전체에서 비중은 고작 1%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대화들까지를 전부 일반론이고, 어떤 단체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언급한다면 세상에 멀쩡한 단체는 하나도 남지 않게 될 겁니다. 제대로 된 토론을 위해서는 그런 (통계적) 특이값들은 서로 배제해야 합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저는 이런 인식에 너무 매몰되면 오히려 큰 문제를 생기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심정적 동조라는 표현을 쓰고 싶은데요, 만약 어떤 조직에서 1프로가 단순히 잘못된 일탈 행동을 한다면 그걸 갖고 편견을 가질 사람은 많지 않을겁니다. 예컨대 모 회사의 사장이 음주운전을 했다고 그 회사를 음주운전 하는 회사로 인식하지는 않죠. 그건 개인의 일탈이죠. 다만 어떤 단체가 하나의 이념을 공유하고 그 이념이 비록 소수의 행동이라도 사회적인 문제로 이어진다면 그건 다른 문제입니다. 우리는 어떤 집단이 특정 이념에 매몰되어서 비록 구성원 대부분은 단지 ‘심정적 동조’만 했을 뿐인데 인류의 비극을 낳은 사례를 너무나도 많이 봐왔습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비록 학살 행동을 실제로 행한 건 전체 독일 국민 중 소수에 해당하는 일부 군인들이지만 다수의 이념적/심정적 동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죠. 일본 제국주의도 마찬가지로 난징대학살 같은 행위를 행한 것은 일본 전체 국민중 소수인 군인들이지만 일본 국민 대다수의 동조가 있었기에 그런 학살이 가능했습니다. 중국의 마오쩌둥 시절도 중동의 IS도 이와 동일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최근 남성혐오 문제를 일으킨 몇몇 페미니스트들의 사례로 전체 페미니스트를 매도하면 안 된다는 말은 맞을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 결론을 얻으려면 소수의 잘못에 대해 다수의 페미니스트들이 심정적으로 동조를 하는 지를 잘 따져봐야 합니다. 저 역시 남녀는 동등히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현재 우리나라의 페미니스트들은 본인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이념에 과도하게 매몰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에 남자를 적으로 인식하게 되고 그 인식을 비록 문제가 되는 행동으로 표출하는 건 소수이지만 그 뒤에는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다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건 소수의 일탈로만 취급해서는 안 될 문제이고 정말 그들의 이념이 옳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WR
2018-07-17 08:37:38

제가 말씀드린 통계적 특이값들을 배제해야 한다는 얘기를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나치의 경우처럼 실제 행동한 사람은 소수이고 다수가 심정적인 동의를 보였다면 그 자체로 평가하면 됩니다. 나치는 그들 다수에 의해 선거로 당선되기도 했고, 말씀하신 것처럼 사상적으로 문제가 크죠.

다만 아마 나치 안에서도 유태인 학살에 반대한 사람은 찾아보면 몇 명은 있을 겁니다. 이분들은 제 입장에서는 당연히 정상적인 인간입니다만, 그렇다고 이 분들을 기준으로 나치를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나치 안에서 이 분들은 특이값, 극단치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페미니즘 안에도 다양한 생각들 사람들이 있고 극단치는 있습니다. 그에 대한 반대도 얼마든지 가능하구요. 하지만 만약 대한민국의 모든 페미니즘을 단순히 혜화역에 나온 피켓 한장으로 치환한다면 그에 대해서 건전한 대화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참석자 한명 한명의 피켓을 일일이 검열하는 것도 아닐테구요.

그리고..
저는 모 회사의 사장이 음주운전을 했다면 그 회사가 음주운전 하는 회사로 인식되어도 할 말 없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는 통계적 특이값이기 이전에 엄밀히 다수의 대표이니까요.

Updated at 2018-07-17 09:58:24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판단하는 근거가
시위 피켓 한장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저런 시위에서 홀로 튀는 피켓 들 수 있습니까?
참가자 전부 그 피켓을 검열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겠습니까

말씀하신대로 그 집단 내부에도 반대의 목소리가 있겠고 다른 이의 시선에선 정상인이겠지만 소수일 뿐이고 특이값 아닐까 싶습니다

한 집단이 만명이 넘게 모이고
여지껏 유래없는 사회적 이슈를 몰고 다니며
관련 여론 형성을 주도하고
여타 단체의 인정과
해당 정책을 총괄하는 장관의 지지까지 받는다면
그것도 특이값입니까

저는 다른 생각의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키가 다른 농구선수라는 말과 같다고 봅니다
일반인이 보기엔 다 키 큽니다 그것도 많이

만약에 건전한 대화가 정말 다른 생각의 페미니스트를 그들 다수와 같은 비중으로 다루는 것이라면

혹은 노출빈도와 그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혜화역 시위는 사람들에게 비춰지는 페미니스트의 얼굴이 아니라면

뚤님의 전공 지식에 비해 모자른 제 소양의 탓이겠지만
저는 건전한 대화가 어렵습니다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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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07-17 10:13:03

저는 페미니즘을 판단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말씀하신 얘기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최근 혜화역 시위 참석자 가운데 일부는 상당히 극단적으로 보입니다.

다만 1. 혜화역 시위에 참석하는 사람 다수가 동의하는 내용, 혹은 다수를 대표할 만한 사람/단체의 입장을 통해 혜화역 시위를 평가해야지 그 가운데 일부가 마치 전체인 것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되며

2. 혜화역 시위에 참석한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건 단지 혜화역 시위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매니아나, 혹은 다른 집단을 평가할때도 마찬가지라는 의미입니다.

Updated at 2018-07-17 10:36:51

저는 시위 참석 자체로 그들의 구호에 동조한다는 의사를 충분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당연히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기 마련이고 하나의 프레임이 한 사람의 생각을 전부 재단할 순 없겠자만
현장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특수한 행위에서 개별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반작용이 드러나자 그때서야 그들이 전부는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회피성 발언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저랑 하나의 관점이 다르신 것 같고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언급했을 뿐
저도 다른 예시는 수긍이 가며
뚤님의 의견 전체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1
2018-07-17 11:45:41

통계적 특이값들을 배제해야 한다 즉 특정 단체를 구성원 소수의 행동을 보고 성급한 일반화를 하면 안 된다는 말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그래서 당연한 말이라고도 했고요. 다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일반화를 하지 말자는 생각에 특정 단체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2018-07-17 06:51:04

개인적으로 공감이 많이 갑니다. 집단이 크면 소수의 비이성적인 사람과 그로인한 사건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죠. 사이코패스의 퍼센테이지가 있듯이 극단적 예는 존재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 예들에게 큰 의미를 두면서 집단화를 시키면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

2018-07-17 08:13:31

공감&추천입니다.

2018-07-17 10:52:19

추천을 누르지 않을 수가 없네요. 좋은 글입니다.

2018-07-17 11:34:4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마음대로 행동하기 부담스러운 현실에서도 백 명 중 한 명은 이상한 사람이 있을 지경인데 사람들이 조심성 없게 행동하는 인터넷에서 인간이 성숙하게 행동하는 일은 요원할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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