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허무하게 갈거면서.
※이하 내용은 수필이라 말이 짧습니다. 편하게 읽어 주시길.
0.
소주.
잔에 담겨 있는 저 투명한 액체는 소주라 불리는 알콜성 음료다. 시원하게 해서 마시는 걸 추천하며, 냉장고를 나온지 제법지나 그 냉기를 잃어버리면 개인적으로는 그 쓴 맛이 별로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평상시라면 지금 눈 앞에 있는 이 놈을 들이키지 않았을 것이다. 버렸겠지.
마시라고 누가 해도 웃으며 쌩깔 수 있을 나이니까. 싫어하는 건 안 할 수 있으니까.
근데 살다보면 싫지만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아니 지금은 싫다고는 할 수 없다.
그냥 고통스럽고 싶을 때가 있다. 그래 차라리 그게 지금 상황에 맞을 지도 모르겠다.
소수잔을 바라보던 눈 흐릿해져 있던 배경에 그 초점을 맞췄다.
검고, 하얗고, 향이 타고 있고.
사진 속 놈이 웃고 있었다. 검은 띠 2개를 머리에 비스듬이 걸치고는.
- ....
지금은 소주가 필요했다. 평소 좋아하는 차가운 건 아니지만 눈 앞에 있는 이걸로도 족했다.
조금 고통스럽고 싶었다.
1.
생각보다 엄청 슬프진 않았다. 고향을 떠난 지 수년이 넘은 나에겐 고향에 내려와야만 볼 수 있는 친구여서인지 상실감은 그리 크지 않았다만, 그래도 앞으로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불현듯 옆구리를 찌르면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운동 잘했다. 키도 컸고... 스스로도 자신감이 넘쳤던.
잘생긴 편은 아니다. 그냥 호탕했고.... 아니 병신이다. 병신 같은 놈이다.
눈의 초점은 영정을 떠나 그 옆에 멍하니 앉아 있는 제수씨로 향했다.
... 내가 이런데 제수씨는 어떨까. 나는 친구를 잃었지만 저 사람은 가족을 잃었구나.
하도 울어서 인지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제수씨였다.
술이 필요하다. 소주를 잔에 따랐다.
2.
취기가 오르길래 밖에 나와 찬 공기를 쐬었다. 딱히 차갑지도 않았다.
옆에서 부르는 사람이 있어 고개를 돌리니 친구놈이 따라 나와 담배 한 대를 건냈다.
내가 그저 묵묵히 담배 개피를 바라보고만 있으니.
- 담배 피잖아?
그래. 친구야 담배 폈지. 과거형으로. 내가 담배 폈던 건 기억하고 끊은 건 또 모를 정도로 우리 사이의 거리는 서울과 부산만큼 멀어져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게 당연히 섭섭하진 않지만, 그래도 갈수록 혼자가 되어 가는 느낌이라서 인지 뭔가 아프구나.
- 그래. 고맙다.
난 씩 하고 웃으며 담배를 받아들고 녀석이 붙여주는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썩은 내 가득한 공기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게 고통스럽다. 어지럽고. 살짝 역겹다.
그래도 덤덤히. 연기를 뱉으며 담배를 피워냈다.
그 와중에 네가 하는 그 병신 녀석의 옛 이야기 덕에 나는 웃을 수 있었다.
그래...
이제 너도 나도 스리 슬쩍 과거를 추억하며 살아가는 나이로 가고 있는 지 모르겠다.
앞으로 만날 새로운 이야기 보다 추억들 얘기나 하며 시간을 보낼 지도 모르겠어.
담배를 비벼 끄고 우린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어지럽다.
3.
식장에 들어가니 다시 나를 반기는 건 병신 놈이 바보 같이 웃고 있는 영정 사진이었다.
또 속이 갑갑하다. 체한 듯이. 가슴 부위가 먹먹하다.
사실 막 울면서 고함치고 이럴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는데. 친구야. 이 병신아.
이렇게 갈 거면서. 왜 그리 살았는데.
사고 싶은 거 못사고, 먹고 싶은 거 못쳐먹고, 아끼고 아껴서 집 살 거라며.
집 살거라며. 그렇게 해서 자기 엄마 아빠도 못 산 집 꼭 살 거라며.
살아있을 때 하던 그 말이 왜 네 놈 디진 다음에 내 귀를 후벼파냐.
그러면서 거기 쳐 누워 있어. 왜 누워 있어.
제수씨는 어쩌라고. 너 작년에 결혼했잖아. 이 새끼야.
먹먹한 가슴을 욱욱 거리며 세어 나오는 소리가 행여 들릴까 상에 고개를 쳐박고 머리를 쥐어 뜯었다.
4.
잘가라. 나쁜 새끼야.
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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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면서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