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 작곡가 요한 요한슨이 세상을 떴네요
지난 10일에 아이슬란드 작곡가 요한 요한슨이 세상을 떴습니다. 가끔 가다 한 번씩 찾아 듣는 작곡가였는데도 부고 소식을 듣자마자 입밖으로 "Oh, f**k"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더군요.
요한 요한슨은 영화 작곡가로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이름을 한 번쯤 들어보신 분들도 계실 거에요. 대표작으로는 컨택트(Arrival) OST와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 OST가 있고요. 하지만 저는 요한 요한슨을 전혀 다른 경로로 알게 됐습니다.
지난 2015년 여름에 군 전역 후 막무가내로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말년에 우연히 아이슬란드에서 찍은 오로라 사진을 본 이후에 아이슬란드에 미쳐, 비싼 비행기값을 감수하는 대신 가장 싼 호스텔에서 묵으며 빵과 베이컨과 바나나로 하루 세 끼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출국해서 3주 가량 머물렀습니다.
수도인 레이캬비크에서 약 1주일 정도 머물렀는데 그때 12 Tonar라는 음반 가게를 매일 방문했습니다. 가게의 모든 CD를 마음대로 들을 수 있는 데다가 갈 때마다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한 잔씩 내줬거든요. 매일 가다보니 주인과도 친해져서 마지막 날에는 소소한 인터뷰를 따내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그때 12 Tonar에서 들은 많은 음반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반으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게 요한 요한슨의 <And In The Endless Pause There Came The Sound Of Bees>입니다. 음반들을 뒤적거리다가 표지가 너무 삭막해서 오히려 손이 가는 앨범이 한 장 있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그 앨범을 꺼내 들었는데, 세상에, 너무나도 처절하게 아름답더군요.
앨범을 끝까지 들으면 내가 다른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무서웠는데도 아름다워서 차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게 무너져 내린 폐허 속에서 아직 남아있는 생명의 목소리를 담아낸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마치 앨범 타이틀처럼요. 그때 너무 가난하게 여행을 떠나서 한화로 3만원 가량 하던 이 앨범을 못 산 게 이제와서 아쉬워집니다.
앨범 수록곡 하나를 올리면서 글을 마무리 지어보려 합니다. 요한 요한슨이 좋은 곳에서 편히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LFd04IzTCs&index=1&list=PL0dYx2N3BTuS0o9M2D-7ifTa8HeDQdD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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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는 작곡가라 바로 공감할 수 없는 게 아쉽긴 하지만 잘 들었습니다. 아이슬란드로 직접 가셨다는 것도 정말 놀랍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