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생각하는 매니아 고유의 정체성
매니아에 가입한지 4302일.
12년에 가까운 시간을 여기서 보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걸 지켜봤습니다.
대놓고 분란을 조장하기 위해 수많은 이중가입을 반복하며 활동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영구강퇴라는 징계를 받을정도로 논란을 일으켰던 사람들에겐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는데,
이는 그들 모두 지나칠 정도로 농구와 매니아에 대한 애정이 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징계를 받은 회원들만의 고유한 특징은 아닙니다.
홈지기/운영진/오래 활동한 회원분들의 활동을 보고 있으면
애정을 넘어 애착이 없으면 이럴 수 없단 생각을 하곤 합니다.
직접 짠 개인 홈페이지로 시작해 이젠 서버호스팅을 하고 타 사이트에 템플렛 공유를 하시는 홈지기님.
24시간 내내 한정된 인원으로 수많은 "민원"을 자발적으로 처리하는 운영진 분들.
친구들과 공유하면 "인터넷에 올리는 것 치곤 안타까울 정도로 정성을 들인 것 같다" 라는 평가를 받는
퀄리티의 글/댓글을 다는 회원분들.
이런 사람들이 주축돌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매니아는 다른 웹 커뮤니티들과는 분명 다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 매니아에서 다른 분들의 애착이 느껴질 정도의 활동을 보고 있으면
여기가 가상과 익명의 공간으로서의 "웹" 커뮤니티가 아니라
현실에서의 소통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든 웹 "커뮤니티" 라는 인상을 많이 받습니다.
이러한 인상을 받는 배경에는
애착을 가지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글에서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진심이 있습니다.
타인의 입장과 심정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의 욕구 충족을 위해 외치는 아우성이 아니라
현실에서처럼 상대방과의 소통을 전제로 쓰여지는 글을 통한 교류가 이루어져서 참 좋습니다.
그런 소통은 현실에서 친구들이랑 하면 되지 않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여기엔 나와 접점이 전혀 없어 애초에 만날 수 없었을 사람들과 열린 소통을 나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전 매니아에서의 활동하는 제 모습을 현실에서의 제 모습과 별개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글을 쓸 때 더 정성을 기울이게 되고,
다른 회원의 희노애락에 더 민감하게 관심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조카의 생일을 축하해보기도 전에 매니아에서 처음으로 타 가정에 생긴 생명의 축복을 축하했고
수없이 많은 이들이 사랑의 결실을 누리는 것을 부러워했고
수없이 많은 이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사랑의 결실을 이루지 못해 슬퍼하는걸 함께 슬퍼했고...
소중한 이의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과 멀리서나마 슬픔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활발하게 활동을 하거나 소통을 하진 못해도 이러한 경험 때문에 항상 진심으로 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전 매니아에 (정확히는 매니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 꽤나 자부심을 느껴서
매니아의 게시물을 가까운 지인들과 나누기도 했고
이제는 헤어졌지만 매니아 자체를 전 여자친구에게 자랑스럽게 소개시켜주기도 했습니다.
마치 괜찮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서로 소개하는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처럼.
다른 웹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인터넷상에서 가장 은밀하거나 혹은 정제되지 않은 충동에 가까운 생각을
나누는 과정에 익숙해진 것처럼 보입니다.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과거에 신화 혹은 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만 다루었던 미술작품들이
개인의 사적인 영역을 투영하기 시작하면서 그 전까진 개인에게만 국한된다고 여겨졌던 감정에 대한 공감대가 사회 계층을 넘어 형성되었고 이러한 공감대의 형성이 인권의 신장까지 이어진 전례가 있기 때문에
사적인 감정이 공론화되어 더 다양한 감정에 대한 공감대가 이루어진다는 현상은 매우 좋게 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하고싶은 말을 항상 해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처럼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일종의 "공리적"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의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커뮤니티의 정체성은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정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앞으로 시간이 더 흘러 이러한 감정에 변화가 온다면
매니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커뮤니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단지 전 지금 이러한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매니아가 너무 좋고
그러한 감정을 고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이 공간이 오래 유지되면 좋겠습니다.
p.s. 펀게에 적절한 게시물이 뭔가에 대한 논의는 아마 앞으로도 반복될 것 같습니다. 유머 코드는 사람마다 너무 다르고 유머라는 관념 자체가 '신선함'에서 많은 힘을 얻기 때문에 신선함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기 위해 선을 넘는 경우도 종종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선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 선인 경우가 대부분인지라 이를 피드백이 없이는 미리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이미 규정에서 명시화 된 사안이 아니라면 게시물에 적절한 피드백이 오고가는 과정속에 게시자와 열람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선들이 확립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정적인 피드백에 너무 속상해 하지 마시고 계속 좋은 유머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피드백에 부정적인 톤이 동반될 필요는 없으니 나이스한 부정적인 피드백이 이루어지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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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되는 부분이 많이 있네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