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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게시물에 여교사가 작성한 '페미니즘으로 본 학교' 회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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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8-01 23:19:44

 

[현장에서]

페미니즘으로 본 학교

   

최현희(서울위례별초등학교)

   


   


1. 들어가며

   

   초등학교 3학년인 우리 반과 문학수업을 할 때였다. 안락한 집을 떠나 모험을 하는 토끼의 이야기였다. 토끼의 모험이 시작되려는 대목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여러분이 살고 싶은 삶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남자아이들이 모험을 선택했고,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안전한 삶을 선택했다. 이것은 남녀의 생물학적인 차이일까? 문화적인 현상일까?

   작년에 6학년이었던 우리 반 아이들과 진로탐색활동을 할 때였다. 비행기를 좋아하는 두 아이 중 남자아이는 기장의 꿈을 적었고, 여자아이는 승무원의 꿈을 적어냈다. 비슷한 질문을 해본다. 여기에 젠더의 문제는 없을까?  우리 반에서 교사나 친구들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거나 몸싸움을 하고 화를 참지 못하는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성별은 대부분 남자이다. 여자아이들은 대체로 교사의 말을 순종적으로 따르는 편이며 규칙을 잘 지키고 남의 말을 잘 듣는 편이다. 교사들은 이를 타고난 성별의 차이로 수용하는 말을 일상적으로 나눈다. “남자아이들이 다 그렇지”, “여자애들은 너무 이쁘지”. 또 질문을 해본다. ‘타고난걸까?

   3학년인 우리 반 남자아이들은 똥이나 방구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여자아이들은 부끄러워하고 펄쩍 뛴다. 그런 여자아이들의 반응에 남자아이들은 더욱 신이 난다. 생리에 대해 이야기해줄 때는 여자아이들이 꼭 여기서 말해야하냐며 부끄러워한다. 이제 열 살밖에 안된 아이에게 생리가 부끄러운 것이라고 누가 가르쳐준 걸까? 왜 남아들은 생리현상을 재밋거리로 이야기하고 여아들은 그러지 못할까?

   우리 반에서 남자아이들은 요즘 난 잘 생겼어라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유행이다.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턱을 감싸고 교실을 휘젓고 다니면서 큰 소리로 우렁차게 부른다. 개구지고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나려는 순간, 며칠 전에 우리 반 한 여자아이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난 너무 살쪘어.” 남자아이들이 자기 외모에 비교적 무감한(혹은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에 비하면 여자아이들은 자기 외모에 대해 늘 자신감이 없으며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왜 이런 걸까? 생물학적으로 남자는 스스로의 외모에 자신감이 있게 태어난 걸까?

   아이들이 성별에 따라 다른 행동양식을 보이고, 다른 꿈을 꾸는 것이 혹시 우리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방식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대체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성별화시키고 있을까?

   우리가 아이들을 기르는 사회를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 이는 우리가 자라온 환경에 대한 고찰이기도 하다.

   


  

2. 여자아이가 여성으로 길러지기까지.

   

   성역할에 대한 관념은 아주 어린 시기부터 각인된다. 동시대를 살아가며 똑같은 문화적 경험을 하더라도 남아와 여아가 그 경험을 통해 구축하는 세계는 서로 다르며, 아이들의 말이나 행동 역시 성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다르게 수용된다. 성별에 따라 기대되는 행동양식이 다른 것은 신생아시기에 부여받는 이름에서부터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자아이들은 은영, 지은, 연서 등 부드럽고 약한 이름을, 남자아이들은 민혁, 기철, 석민 등 더 세고 강한 이름을 부여받는다. ‘감정을 느끼고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성별에 따라 다르게 학습된다. 미국의 한 아동학자가 성별을 감춘 아기에게 용수철이 튀어나오는 장난감을 보여주고 참가자들에게 아이의 반응을 관찰하게 했다. 아이가 여아라고 들은 사람들은 아이의 반응을 공포로, 남아라고 들은 사람들은 분노로 해석했다. 똑같은 감정표현을 해도 성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경험을 통해 공포를 표현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 여자에게 적합한 행위라는 것을 배우고. 남자아이들은 두려움을 드러내는 대신 분노를 표출하는 것에 더 자신을 맞춰간다. 슬픔은 일반적으로 남자아이들에게 억압되는 감정이다. ‘남자가 왜울어.’라는 말은 남자아이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을 억압하는 동시에, 우는 건 약한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여성 비하가 숨겨져 있는 말이기도 하다.

   유아용 애니매이션이나 그림책에서 모험을 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는 대부분 남성이며, 여성캐릭터는 남성캐릭터를 보조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상냥한 조력자 역할에 머문다. 주인공의 성비도 남성 주인공의 비율이 월등히 높으며, 남성캐릭터는 파랑, 빨강, 노랑, 초록 등의 다양한 색깔로 묘사되며 다채로운 개성을 갖는 반면, 여성캐릭터는 대부분 핑크색에 리본과 치마를 통해 여성성이 강조되어 표상화된다.

   유아동 장난감 시장에서의 성별화 역시 이분법적인 성역할을 강요한다. 여아에게는 움직이지 않는 인형이나 집안 살림과 관련된 소꿉놀이 장난감이, 남아에게는 활동을 부추기는 스포츠, , 동물, 총 등이 주어진다. 변형 가능한 블록이나 자동차 등의 장난감이 인형이나 싱크대 장난감에 비해 아이들의 지적인 성장과 진취적인 태도에 더 도움을 줄 수 있다. 인형을 좋아하는 남아는 남자애인데인형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고, 자동차를 좋아하는 여아는 여자애가자동차를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신의 기호를 예외적 정체성으로 인지해야하며, 이에 저항하거나 고정된 성역할에 순응하는 것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아이들이 접하는 미디어는 더욱 노골적이다. 매일 뉴스에 등장하는 사회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정치인들은 대부분 중년의 남성이며,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연령대, 체격, 외모 등의 남성이 보이는 것에 비해 여성은 표준화된 미모를 가진 날씬한 젊은 여성이 대부분이며 그조차도 구색 맞추기로 남성출연진들 사이에 한두 명 정도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고, 개인의 개별적인 정체성이나 직업적 성취보다는 여성성을 대표하는 이미지로서 소비된다. 광고 속 여성은 날씬한 몸매를 가진 성적인 대상 혹은 육아와 가사를 책임지는 엄마주부의 역할로 주로 등장한다. 드라마에서는 아내에게 반말하는 남편, 남편에게 존댓말을 하는 아내의 관계설정이 흔하게 묘사되며, 대가족이 등장하는 가족드라마의 경우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며 ()부모를 모시는 등의 가정 내 돌봄 노동 및 재생산노동은 자연스럽게 여성의 역할로 그려진다.

   여아들이 이입하고 동일시할 수 있는 역할모델의 부재는 여아들의 인생관 및 태도, 진로 선택 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남아들이 슈퍼히어로, 유능한 정치인, 의사, 정의로운 판검사, 용감한 경찰,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수많은 문학 서사의 주인공들에 자신을 동일시할 때, 여아들은 그 주변 인물, 주요남성인물을 조력하는 모성적 존재 혹은 성적으로 대상화된 존재에 자신을 동일시한다. 여아와 남아가 함께 앉아 티비를 보거나 책을 보는 행위는 겉보기에는 동일한 경험처럼 보이나 실상은 남아에게는 자신이 세상의 주인공이자 삶의 주체가 되는 경험이며, 여아에게는 스스로를 대상화시키고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남성보다 중요하지 않은 존재로서 받아들이는 경험으로 작용한다.

   가부장제가 여성을 이상화하는 방식 및 대표적인 여성혐오 가운데 하나가 모성에 대한 강조이다. 헌신과 모성애는 위대한 가치이나, 한 인간을 구성하는 품성 및 자질에는 자신감, 당당함, 자기 일에의 몰두, 건강한 자기표현 등이 있다. 여아의 경우 모성적인 품성외의 다른 자질을 당당하게 발산하고 개인적인 성취를 하는 여성의 역할모델을 접하기가 힘든 환경 속에서 자라게 된다. 내각 성비가 여성 대 남성이 동일한 캐나다에서 뉴스나 매체 등에서 유능하고 능동적인 여성정치인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캐나다의 여아가, 남성 정치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한국의 여아와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을 하며 성장할 것이라는 점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 역시 여아의 성장 과정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사회에서는 남성 뿐 아니라 여성도 스스로를 대상으로 보도록 배운다. 여성이 자기를 대상화할수록 우울증과 식이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높으며, 자기 대상화는 정치적 유효감(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해서 변화를 가능케 한다는 신념이나 감각)과 반비례한다.

   아이들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가정안에서의 성역할도 미디어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별 임금격차가 큰 한국 현실에서 가정 경제의 주요 소득원이 아빠의 월급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거기에 더해 육아를 모성에 의존하는 사회적 분위기,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의 책임과 비용을 여성 개인에게 전가하는 근로시스템, 임금차별로 인한 생애기대소득의 차이 등은 엄마의 직업을 가정 내의 서브직업으로 인식하게 하고, 엄마의 직업이 아빠의 직업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 엄마가 가정의 일로 인해 직업적 성취를 포기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 이는 후에 여아들이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고 유지할 때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심리적 기제로서 작용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가정 내에서 불평등한 가사노동분담을 일상적으로 관찰하는 것 역시 아이들의 성역할 습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맞벌이 부부의 가사, 돌봄노동 소요시간에 대한 통계는 여전히 남녀 간 큰 격차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앞서 언급한 소득 격차 및 고용 안정성의 문제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젠더보상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가족 문화에서 친가에서의 엄마의 하위적 종속적 역할 수행 역시 아이들의 성역할 습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아빠가 외가에서 보이는 행동양식과 엄마가 친가에서 보이는 행동양식은 극명히 대비되며 아이들은 그 속에서 일상적인 성별 위계를 학습한다. 부계 중심의 가족호칭을 통해서도 성차별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한다. 아버지의 결혼한 남자형제는 작은아버지로 호칭이 바뀌고 그 배우자를 작은어머니로 부르게 되지만 어머니의 결혼한 남자형제는 결혼해도 외삼촌으로 남는다. 고모나 이모 등 부모의 여자형제는 작은아버지어머니의 호칭을 얻지 못하고 소외된다. 엄마는 아빠의 형제자매를 도련님’,‘아가씨로 존칭하는 반면, 아빠는 엄마의 형제자매를 처남’, ‘처제로 하대한다. 외가外家와 친가親家라는 말 역시 아이들에게 아빠의 본가가 엄마의 본가보다 더 중요하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가족호칭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언어에 스며있는 성차별도 아이들에게 내면화된다. ‘남녀라는 표현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공적문서에서는 남성이 여성에 앞서 표기된다. ‘여배우’,‘여교사’,‘여의사’,‘여경’,등 여성의 직업에는 여성의 성별이 표기되고 배우’,‘의사’,‘변호사등의 성별이 표기되지 않은 언어는 남성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학습된다. 이는 남성을 인간 일반을 대표하는 보편적 존재로 보고 여성을 타자화시키는 여성혐오적인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러한 남성중심적인 언어의 습득과 사용은 다시 여성혐오적인 문화를 재생산하는 기제로서 작동한다.

   

   

3. 학교의 역할

   

   성차별과 성역할을 끊임없이 재상산하는 사회에서 학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학교가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대안을 세우지 않는다면 학교 역시 아이들을 성별화하고 억압하는 사회의 일부가 되고 만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성장치로서 기능할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재능을 발견하기에 앞서 이분법적 성에 따라 스스로를 분류하고 성역할에 가두는 법을 학교에서 배우거나, 미디어나 광고 등을 통해 학습한 성역할을 강화하고 내면화할 것이다. 아이들이 특정성별과 무관하게 자유롭게 사고하는 개인으로 발달하고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 학교는 미디어, 가정, 광고 등의 끊임없는 성역할의 강요와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학교에 뿌리 깊게 스며있는 성장치들을 인식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4. 학교안의 성장치

   

1) 교사

   학교안의 가장 강력한 성장치이다. 교사의 무언의 생각과 감정은 말이나 행동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 교사의 젠더감수성은 성평등한 학교 환경을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된다.

   스웨덴의 유치원에서는 1998년부터 성평등 교육과정이 의무화되었다. 스웨덴의 블루베리 유아원의 교사들은 양성평등이라는 과제를 자신들이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이들과 생활한 모습을 녹화했다. 그 결과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을 동등하게 대했다고 자신했던 교사들은 자신들이 실제로는 남아와 여아를 똑같이 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사들은 여자아이들에게 소근육 운동을 시키고 차분하게 대화함으로써 언어적 기술을 강화하는 반면, 남자아이들에게는 대화에 끼어들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도록 허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남자아이들과는 명령을 통해 의사소통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아들은 언어와 소근육운동에 대한 학습을 훨씬 덜 하는 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방법을 배우고, 여자아이들은 양보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교사가 남학생에게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더 많은 질문을 하며 과제해결에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여학생 및 성인들의 대화에 끼어들도록 허용하는 빈도가 더 높다는 것은 다수의 연구를 통해 확인된바 있다. 

   교사의 성편견은 확증편향(정보들을 내 믿음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해석하는 경향)이라는 심리적인 현상으로 강화된다. 교사들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개별적인 아이들과 만나지만, 아이들의 행동양식을 끊임없이 이분법적인 성에 의해 분류한다. 이를 위해 소위 사회적 성역할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의 존재를 예외성으로 두거나 삭제하며, 사회적 성역할에 어울리는 역할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근거로 자신의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공고히 한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적사회에서 후천적으로 학습한 문화의 영향을 무시하고 남아와 여아의 차이를 단순히 생물학적 이유로 환원시켜 말하는 교사들의 태도는 다분히 비과학적이며 경계해야할 태도이다. 남녀 뇌구조에 차이가 없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이며, 남아와 여아의 능력 차이는 역으로 성적 고정관념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밝혀낸 연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 교육과정 및 교과서

    여성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존재하는 사회에서 학교교육이 젠더에 대한 교육을 삭제하는 것은 성차별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성장치로서 작용한다. 실제로 제도 교육 안에서의 제도적 성차별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사람들의 오래된 인식과 관습을 선도하지 못한다. 인종차별에 대한 법과 제도는 철폐되었지만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기에 이에 대해 꾸준히 교육하고 각성하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성평등 교육과정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스웨덴의 경우,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라는 최신 페미니즘 서적이 필수교재로 선정되어 공교육 제도권 안에서 교육되고 있다.

   교과서 역시 성역할에 충실한 강력한 성장치로서 작용한다. 교과서의 삽화에서도 주요 의사결정을 하는 직업군은 여자보다는 남자로 주로 묘사되며, 남성중심의 서사 위주의 문학작품이 주로 수록되어있다. 여성의 사회적 참여가 배제되었던 역사적 맥락이 다루어지지 않은 채 위대한 과학자 및 음악가 등 남성의 역사에 대해 학습한다. 교과서는 남성중심의 역사를 충실하게 재현하며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제한된 사회에서도 인류의 많은 여성들이 남긴 투쟁적인 역사는 성실하게 삭제한다. 옛날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다루는 초등 사회과 교육과정의 경우, 전통에 스며있는 성차별적인 관습을 인지하고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맞게 전통을 해석하고 비판하는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전통을 아름답고 훌륭한 것으로 미화하는 텍스트에 그친다. 전통이 그 자체로 아름답고 계승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여자를 함부로 대하고 무시한 전통을 여아들이 수용하는 과정에서 자기모순과 분열을 겪게 한다.

   체육수업이 이루어지는 방식 또한 여자아이들의 신체적 활기를 잃어버리게 만드는 성장치로서 작용한다. 아이들의 체력과 운동기능의 차이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에 맞는 신체적인 활동이나 게임을 도입하기보다는 일반적인 남녀 성차를 전제로 하여 성별화한다. 여자는 피구, 남자는 축구를 하는 식으로 성별에 따라 운동종목을 구별 짓기도 한다. 남아들의 신체적 활동은 여아에 비해 더 본능적이고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장려된다.

   방과후 스포츠클럽 역시 남아를 기준으로 운영되며 여학생을 위한 운동부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호주에서 살던 여아가 한국의 학교로 온 후로 호주에서 일상적으로 하던 축구를 할 동아리를 찾지 못했다는 사례는 한국의 여자아이들의 현재를 말해준다.

   

3) 학교 문화

   학교는 성별화가 충실히 일어나는 공간이다.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성기의 형태에 따라 남성과 여성으로 분리되어 학급번호를 부여받으며, 남학생 집단이 여학생 집단보다 먼저 기록된다. 최근에 학급번호를 성별과 무관하게 가나다순으로 매기는 학교가 생겨나고 있으나, 여전히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로 아이들을 성별화하는 관습은 굳건히 남아있다.

      중고등학교의 경우 교복을 통해 성별화가 이루어지며, 여학생의 외모, 복장은 철저히 통제되고 관리된다. 치마 교복은 정상성이고 바지는 예외이다. 남성의 쩍벌은 정상이고 여성의 쩍벌은 수치심 없고 조심성도 없는 개념을 상실한 행위이다. 남성의 행동은 그들의 본성이며 따라서 통제하고 억압하기보다는 건전하게 발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 여성의 행동은 항상 지나친 것이며 통제되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남학생의 상의 혹은 하의 탈의는 그럴 수 있는 행위이며 여학생의 브래지어는 항상 감추어야 하는 그것이다.

   엄마를 주양육자로 인식하는 학교문화 역시 성장치로서 작동한다. 교사회의에서 가정의 역할을 논할 때는 보호자’, ‘학부모대신 엄마라는 말이 주로 통용된다. 녹색어머니회, 폴리스맘 등의 이름에서도 여성에게 강요되는 돌봄 노동의 현실이 드러난다. 학교에서 양육의 주체를 여성으로 한정짓는 것은 아이들에게 성역할을 내면화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시스템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고용주의 입장에서 양육자로서의 책임을 지고 학교의 일을 도맡아야 하는 여성의 고용은 꺼려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경제적인 지위에 타격을 주고,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어렵게 한다. 이는 또다시 사회에서 여아들이 직업적인 성취를 지닌 여성의 역할모델을 경험할 기회를 박탈하며 차별적 문화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성폭력예방교육에서도 여성의 몸을 단속하고 평가하며 통제하려는 이데올로기는 걸러지지 못하고 고스란히 담겨있다. 피해자의 몸가짐과 옷차림을 단속하는 식의 피해자중심주의는 실제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책임을 피해자에게 묻는 결과를 낳는다. 성폭력이 권력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점은 삭제된 채, 남성의 성욕을 본능적인 욕구로 인정하며, 여성이 스스로 조심하면 예방할 수 있다는 식의 세뇌를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통제하고 여성의 삶을 위축시킨다.

    학교의 교직 사회 역시 지극히 성별화, 위계화 되어 있다. 교장, 교감의 자리는 남성-최근에는 여성 관리자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기는 하지만-의 자리이다.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학교의 관리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어야 하고, 소위 교무, 연구 등의 주요 보직을 맡아야 한다. 매일 학교에서 제 2의 일터인 가정으로 출근하는 여교사들에게 소위 관리자로의 승진은 애초부터 자신의 인생 드라마 밖의 영역이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매일 매일이 경력단절인 여교사들에게 남성중심의 교직사회는 집, 아이들만 아는 사명감이라고는 찾기 힘은 무능하고 월급만 축내는 존재라고 비난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여교사들의 일부는 여성이라고 차별받는 일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교는 성평등하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높다는 이데올로기가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어 자신의 존재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기조차 어렵다.

   

   

5. 성평등한 학교를 위한 실천

   

   성평등한 학교를 위한 실천은 획일화된 매뉴얼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 교육의 주체가 성평등 감수성을 깨워 학교안의 성장치를 발견하고 깨닫는 일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교사모임에서 나온 여러 가지 실천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 교사 대상 성평등 감수성교육을 꾸준히 하고 서로 더욱 예민해지기.(학교에서 성평등, 성인권 교육 예산을 확보하고 질 높은 강사를 확보하기)

- 성별화 경계하기 (출석 번호를 매기거나 줄을 세울 때 성별을 구분하지 않기)

- 해부학적으로 올바른 단어를 사용해서 신체를 명명하기 (고환, 자궁, )

- 상호합의를 가르치기. 몸을 함부로 만지는 행위를 심각한 성적 폭력으로 인식하기. 싫다고 하면 그만해야 함을 가르치기

- 문학작품에서 성별의 균형을 고려하고 성차별적인 내용이나 성역할에 대한 편견이 없는 이야기 선정하기.

- 과학자나 음악가, 역사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의 성별의 균형을 고려하기. 위인 중에 남자가 많을 수밖에 없는 역사적 맥락을 비중 있게 다루기

- 옛 이야기나 옛날 사람들의 문화를 학습할 때는 전통을 그대로 유지 전승해야할 것으로 무조건 미화하지 않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재해석되고 평가되어야 함을 인지시키기

- 여자아이가, 남자아이가 라는 말을 일체 사용하지 않기

- 학교 업무나 회식에서 성별이나 나이로 차별하지 않기 (졸업식 꽃순이를 여교사로 시키는 것 등)

- 남자 축구나 농구를 응원하는 여학생 치어리더가 아닌 여학생의 스포츠 리그도 남학생과 똑같이 운영하기

- 성별의 차이보다는 개별적 특징에 주목하기

- 성차별적 언어 사용하지 않기 (집사람, 안사람, 내조, 00, 아녀자, 아줌마)

          



6. 나가며 - 페미니즘 없는 학교혁신은 가능한가?

   

   일전의 한 강의에서 페미니즘을 알기 전과 후의 의사로서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의사를 만났다. 그는 페미니즘이 단순히 의사가 환자에게 친절해야 한다.’ 등의 윤리적 태도가 아닌 자기 직업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을 불러일으켰다고 고백했다. 인간에 대한 일체의 대상화를 경계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시선을 성찰하게 되었으며, 이전에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의료적 행위의 모든 의미가 전복되었다고 했다.

   나에게도 페미니즘은 전복의 학문이었고 마찬가지로 교사로의 삶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았다. 젠더권력을 예민하게 성찰하는 시선은 여성혐오가 공기처럼 퍼져있는 시대에서 고통스러운 것이기도 했으나, 젠더를 떠나 모든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새로운 언어를 선물했다. 사회적 권력이 우위에 있는 집단이 다른 집단을 - 남성이 여성을,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백인이 흑인을, 독일인이 유대인을, 이성애자가 성소수자를, 비청소년이 청소년을 타자화하고 혐오하는 기제는 너무나 놀랍게도 동일했다.

   학교 교육의 목표는 건전한 민주시민의 육성이다. 이를 위해 혁신학교에서는 기존의 교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교사가 되찾아 학교를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민주적인 학교문화는 민주적인 교실문화로 이어지며, 정치적으로 각성된 주체로서의 민주시민 양성에 이바지하고 있다. 그러나 질문이 있다. 페미니즘이 없는 학교혁신은 가능한가. 인류의 반이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현실을 묵인한 채, 그 위에서 자발성, 협력, 평등, 자유 등의 진보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가능한가.

   일상에 스며있는 성적인 차별과 억압, 폭력과 혁신학교가 추구하는 가치는 명백히 상충된다. 혁신학교운동이 페미니즘을 끌어안았으면 한다. 모든 교사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더 고민하며 학생들에게 성 억압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으로서의 학교를 선물했으면 한다.

 

출처: 진보교육 연구소

 

 이 회보를 읽어 보시면 밑에 게시물 동영상에서 선생님의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이해 할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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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7
2017-08-01 18:14:15

본문 내용중에 

성차별적 언어 사용하지 않기 (집사람안사람내조, 00아녀자아줌마)

에서 그냥 웃고 갑니다

 

1
2017-08-01 19:42:40

다른 건 민감한 분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아줌마는 대체 왜 성차별인가요??

2
2017-08-01 20:15:03

저도 아줌마에서 뿜었는데요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냥 아줌마로 불려지는거 자체가 싫은거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2017-08-01 21:43:16

아저씨나 아재도 성차별이여야 겠네요

4
2017-08-01 18:14:59

치별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양성평등을 외치면 됩니다.
페미니즘, "여성"주의라는
말이 평등을 대표하는 말이 될 수 있을까요

2017-08-01 18:28:01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일관된 헛소리라 일일히 반박할 엄두도 안나네요.

2017-08-01 18:34:05

혹시 좀 다를까 했는데 역시나군요. 저에게 아이가 있다면 절대 만나게 하고 싶지 않은 선생님입니다.

5
Updated at 2017-08-01 18:40:57

양성평등이라 주장해도 페미니즘의 문제가 이 글에서도 드러나네요

학교 업무나 회식에서 성별이나 나이로 차별하지 않기 (졸업식 꽃순이를 여교사로 시키는 것 등)

성차별의 가해자,수해자는 남성, 피해자는 여성 프레임으로만 바라봅니다. 남성교사들이 힘든 일을 맡는 것, 초등학교 관리직에 남성비율이 높음은 얘기하지만 전체 여성교사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으니 아이들에게 어린아이를 돌보고 교육하는 성별은 여성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 심어줄수 있으므로 남성할당제 하자는 말은 안하는 것

 

1
2017-08-01 18:36:56

당장 애들이 보는 교과서에서 멍청하고 유아적인 행동을 하는건 대부분 남자애고 그걸 지적하고 정답을 가르쳐주는건 여자애죠.

여자애들의 축구 동아리가 없다? 축구 동아리가 안생기는건 그 동아리를 모으기 위한 여자아이 참여수가 부족할 가능성이 높을까요, 축구를 하고 싶어하는 여자아이가 22명(내부전이 가능한 최소 인원)이 넘는데 학교에서 막는 가능성이 높을까요?

초등학교 때 선생님들께서는 어떻게해서든 여자아이들을 체육시키기 위해 정말 다양한 고안을 하셔야 했습니다. 보디가드 피구/발야구/티볼 등등... 그러나 결국 여자애들이 참여가 저조한건 해결하지 못했구요. 특히 이 나이대에 여자애들은 먼저 2차성징이 일어나는데 가슴이 나오고 생리가 시작할 때라 아직 적응하지 못하고 3,4 학년 때만 해도 같이 도둑과 경찰 등을 하면서 막 뛰어놀던 여자애들도 운동을 포기하곤 했죠. 그때는 왜 얘가 안하지 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또한 본문의 칼럼에 내재되어있는 기본 전제는 "남성이 가해자거나 기득권"이라는 겁니다. 대체 초등학교 내에서 아이들끼리 애가 남자라서 얻을 수 있는 기득권이 뭐가 있습니까? 신체적인 우월성? 그 나이대에 여자애들이 평균 키가 더 클텐데요? '여아들이 직업적인 성취를 지닌 여성의 역할모델을 경험할 기회를 박탈하며 차별적 문화의 재생산에 기여한다.' 것이 문제라는 분이 왜 유아기에 가장 큰 롤모델이 되는 초등학교의 선생님의 성불균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까요?  그 나이에 최우선 역할모델이 되는 부와 모 다음이 교사 아니었습니까? 그 최우선 역할모델의 대상이 한쪽 성별에 지나치게 치우쳐져 있는게 오히려 저 관점에선 더 큰 문제제기가 되야할텐데요?

 성평등과 역사나 과학은 관련이 없습니다. 과거 남자가 사회생활만을 하던 시기에 발견이 되었건 어쨌건 간에 성적 밸런스보다 중요한게 그 사람이 한 업적과 발견에 대해 아는 겁니다. 퀴리부인급으로 중요한 발견을 한 사람은 남여와 구분없이 모두가 알게 됩니다. 역사적으로도 허난설헌은 천재라한들 최초의 한글소설(지금은 아니지만)의 저자인 허균보다 역사나 문학적으로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말도 안되는 평등을 이루기 위해 더 중요하고 기념비적인 업적을 한 사람을 배제해야 한다면 이게 올바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저건 말도 안되는 주장일 수 밖에 없습니다. 

2017-08-01 21:56:43

아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교과서 예문에서 헛소리하는애들 거의 남자놈들

2
Updated at 2017-08-01 18:40:44

페미니스트들의 기본적인 문제는 프레임을 깨기를 원하면서 정작 본인들이 갈등론에 입각한 프레임에 갇혀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도 공감가는 내용들이 상당히 많음에도, 문학작품이나 음악가, 과학자 및 위인들도 "성별할당" 하자고 하는 대목에서 고개를 젓게 되는데요. 이는 교육과정의 목표에 가장 적합한 콘텐츠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야 한다는 기본을 망각한 행위죠. 페미니즘이 교육에서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목표가 아닌걸요.
솔직히 이렇게 치우쳐진 인사이트를 가진 사람들이 편향되지 않고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을지, 애꿏은 남자아이들이 "한남"으로 몰려 상처받지나 않을지 걱정됩니다.

1
2017-08-01 18:39:56

우리나라 페미는 여권신장이 아니라 그들이 욕하는 남성우월주의와 반대되는 여성우월주의의 양상을 보이긴 하죠

2017-08-01 18:47:08

진보교육 연구소?

전교조쪽 단체 같은데 한번 찾아봐야겠네요

2017-08-02 13:05:46

저 여자 전교조 소속입니다

2
2017-08-01 19:09:33

손으로 똥을싼다는게 이런 글일까?

3
2017-08-01 19:15:10

데이터야 미안해

Updated at 2017-08-01 19:41:45
2017-08-01 19:30:29

그냥 뭔 한 주제를 보면 자기관점을
딱 찍어놓고 봐 내말 맞지? 이러는 느낌입니다.

Updated at 2017-08-01 19:43:10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이 타자로서 남성을 세워놓고 그에 맞춰 주장을 펼치는 한 퇴행적이라 생각합니다. 애초 사회구조 속에서의 평등을 위해 나온게 페미니즘이었고, 현재는 단순 여성인권이 아닌 보편적 인권평등 속에서 각자 차이를 바탕으로 역할을 인지해야지,
말마다 남성과 대척점에 놓고 얘기하며 페미니즘 역할을 규정하려는한 전근대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네요

2017-08-01 19:45:31

허...

2
Updated at 2017-08-01 20:38:52

경비시스템이 무인경비화 되기 전인 90년대 중반까진 학교를 비롯하여 공공기관에선 직원들이 당직근무를 서곤 했습니다. 당시의 사회풍조는 육아의 상당부분은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이었으며,이에 따라 당직근무는 남자 직원들이 대다수를 맡아 하곤 했습니다. 국민학교(초등)의 경우 교사의 여초현상이 매우 심한 직군이며, 그 이전에는 지금보다 그 정도가 더 심했습니다. 그래도 당직근무는 여교사들이 꺼려했기에 대부분 남교사의 몫이었으며, 학교에 몇 안되는 남교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한달이면 몇 번씩 당직근무를 서야 했습니다. 심지어 시골 학교는 당직을 서기 용이하도록 숙직실이 아닌 남교사 관사가 학교부지 안에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승진에서 가산점을 얻은 세대가 지금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관리자들이며 2000년대 까진 교장,교감과 같은 남성 관리자들의 비율이 높은 이유였습니다. 희생에 대한 보상이었고, 여교사들도 수긍하는 분위기 였습니다. 물론 여성이 육아와 가사로 인하여 승진을 할 수 있는 과한 업무를 맡지 않은 이유도 있긴 합니다.
2017년에 들어선 지금은 여느 학교를 가더라도 여성 관리자들의 비율이 높아졌습니다. 88학번 이후 부터는 성별에 따른 승진의 이득은 사실상 없는 상태입니다.

글쓴이가 현직 초등교사라면서 저같은 직종 외에 있는 사람도 알고 있는 상황을 무시하며 글을 쓰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과연 육아와 가사의 분담의 문제가 불평등한 승진의 이유일 뿐인지, 혹은 그렇더라도 그것은 사회 전체의 풍조이기에 교직이란 특수한 상황을 대입하여 지적할 것은 아니라고 하고 싶습니다

2017-08-01 21:04:47

인간적으로 남성들의 동의를 이끌어내려면 남성이라서 피해보고 희생하고 억압받는 것도 개선하자고 해야죠....

3
2017-08-01 21:11:51

저도 남성으로서 저 여교사의 이야기에 반감이 생기는 부분들도 있고 우리나라의 여성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이른바 페미니즘이 가지고 있는 프레임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하는 편입니다. 여성가족부라면 왜 내가 내는 세금이 저런 일 하는 사람들 먹여살리는 데 쓰여야 하는지 치를 떨기도 하고 말이죠.

다만, 유치원생 나이의 딸아이를 가진 입장에서 매우 어린시절, 아니 갓난아이 시기부터 주변 사람들과 환경에 의해 꽤 많이, 아니 아주 많이 성역할이 고정되어지고 그로 인해 이미 초등학생 정도 되면 남자아이는 남자아이대로, 여자아이는 여자아이대로 이미 확고한 프레임에 갇혀버리게 되는 현상에 대해서는 좀 우려가 되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고작 여섯살인 제 딸아이 말하는 걸 듣고 행동하는 걸 보고 있자면 모두 같은 사람이라는 개념보다는 남자/여자의 대비대는 개념이 먼저 머리에 박혀있을 정도로 알게 모르게 고정적인 성역할에 대해 전혀 아무렇지 않게 주입시키고 있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사실이고 현실이더군요.

개인적으론 딸아이가 좀더 주도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사람으로 성장해나가길 바라는 입장에서 냉정히 생각했을 때, 아직도 여전히 어떤 고정적인 프레임을 강요하는 환경에서 살아나가기엔 (이건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그런 부분에서 앞서있는 나라들에게도 여전히 해당하는 문제라 생각합니다.) 여자아이보단 남자아이에게 좀더 유리한 환경인 것은 어느정도 사실이라는 무의식이 그런 환경 속에서 사십 년 가까이 살아온 제 기저에 깔려있기에 고정된 성역할을 아무렇지 않게 벌써부터 받아들이는 딸아이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7-08-01 21:14:10

 역시나네요. 메갈이나 워마드 회원에 한표던집니다.

2017-08-01 22:45:55

저는 어느정도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한데
워낙 최근에 양쪽 진영의 대립이
심했던지라 질려하시는 모습도
이해되네요

2017-08-01 23:13:57

생물학적으로 차이는 무조건 적으로 있다는건 이해할 생각이 없는걸까요? 여자로 길러진다? 여자라는거 자체에 불만인건가요?

1
2017-08-02 01:35:19

저는 이 분이 하시고자 하는 주장에는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 것 같습니다. 단, 이를 통해 진정으로 교육을 이끌어내고 싶으시다면 역성차별에도 촉각을 곤두세우셔야 하실 것 같습니다. 모든 혁신에는 신선함이 필요한 법이지요. 그러나 접근 방식을 새롭게 해서 비판적사고력을 이끌어 내는 것도 좋지만, 그 방식 또한 위험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여자 교사들보다 소수인 초등학교 남교사들이 힘쓰는 일, 자잘한 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남자교사들의 권익 또한 지켜주시면서 페미니즘을 이야기 하시는지가 우선적으로 궁금하고요, 또한 남자아이들에게 역차별로 다가오지는 않으련지 모르겠습니다. 이미 운동장에서 공 차고 놀고 있는 아이들은 운동능력이 발달한 고학년 아이들일텐데요, 그러한 아이들의 사고가 비판적 사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닌 자기자신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고 느끼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순전히 교사분의 능력에 달린 부분인데 위의 많은 분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시는 것 또한 이해가 됩니다. '페미니즘을 접목시킨 비판적 사고력 향상'에 많은 관심을 가지신 것 같고 실제로도 자주 수업시간에 논하실 것 같은 어조인데 그 내용만큼이나 많은 부분을 고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2017-08-02 10:40:07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저런 운동을 하고 싶으면 교직을 그만두고 시민단체 활동을 하던지 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개인이 신념이나 주관을 교육에 깊게 개입시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2017-08-02 11:33:07

네 왜 남자아이들만 운동장을 쓰지? 이런 부분은 충분히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굳이 페미니즘 사상을 접목시키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비판적 사고력 향상에서 끝나야 하는데 과연 거기에 그칠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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