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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진단과 목적, 그리고 남은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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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5 03:04:47

 제가 장애와 관련된 글을 개인 블로그도 아니고 매니아에 쓰게 될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아래에 용기를 내어 '장애'와 관련된 글을 올려주신 유저분을 보고, 고민을 하다 짧은 글을 적어봅니다. 사실 큰 도움이 안될 줄 알면서도 이게 제 일이려니 하고 정리해봤습니다. 아직 특수교육은 미지의 영역이 너무도 많지만, 제가 하는 이야기들은 특수교육을 공부하고 경험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크게 논란의 여지가 없는 내용들입니다. 

 

 장애는 일반적으로 교육, 복지, 의료적 관점에서 진단을 합니다. 그래서 'ㅇㅇ장애'라고 말을 할 때에는 그게 어떤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는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진단은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준거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자폐범주성 장애로 진단을 받으면 복지적, 교육적 혜택을 받습니다.(*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되는 것은 장애 진단과는 또 별개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를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아, 이 아이는 의사소통 전반적에 어려움이 있고 사회성이 좀 떨어지겠구나.' 하는 준비를 할 수도 있구요. 하지만 진단을 받는다고 해서 그 아이들이 모두 같은 성향을 갖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자폐범주성장애>라는 용어 들어보셨나요? 범주라는 말이 '스펙트럼'을 옮겨 적은 말입니다. 빛의 스펙트럼 아시죠? 수 많은 빛깔의 빨간색이 존재하듯 유사하지만 다 다른 모습과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진단이 바람직한 서비스를 동반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여기서 고민해 봐야 할 것은 서비스 제공자가 무엇을 제공할 수 있고, 소비자의 필요는 무엇인가-입니다. 보통 부모님들의 기대와 서비스 제공자(교사, 치료사)가 할 수 있는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제가 현장에서 얻은 결론은 이 차이는 교육 철학에 대한 합의, 그리고 아이들의 자립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좁혀질 수 없다는 것 입니다. 교육 철학은 쉽게 말해서 아이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단순한 '병' 그리고 '불능', '부족'의 개념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입니다. 그래서 '치료'하거나 '수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조절'하고 환경을 잘 디자인 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근데 현실은 장애아동이 있는 부모님들 사이에서도 자기 자녀가 잘났고 누구는 못났고 시기 질투와 경쟁이 엄청납니다. 일반 학교에 있는 경쟁구도가 장애가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있습니다. 기능이 좋지 않은 아이들은 치료실에서도 눈치를 봅니다. 

 

 글을 쓰면서 개론서 안의 내용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내가 부모님들과 어떤 교육적 합의를 이끌어 내려 하고 있는가..' 고민해 보았습니다. 고민하지 않고 나오는 내용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아이들은 모두 완벽하게 창조되었다. 

 2. 아이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의사소통하고 학습한다. 

 3. 대부분의 행동에는 원인과 기능이 있으며 아이들의 부적응 행동들은 적합한 환경에서 해소된다.  

 4. 아이들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건강하게 순기능 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JUxnjMvTi0 

 

 이제는 꽤나 유명해진 '베어베터'라는 회사의 이진희 대표입니다. 이진희 대표의 아이는 자폐범주성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대표가 이 아이를 키우면서 끊임없이 고민했던 것은 '일자리'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장애를 갖고 있는 부모님들의 공통된 소원은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 입니다. 베어베터라는 기업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입사지원서 뒷면에 아이의 기능 수준을 평가하는 체크리스트가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은 방문하여 다운로드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단순해보이지만 개인자조기술과, 필요한 직업 기능들을 고민해 볼 수 있는 좋은 체크리스트입니다.  


 특수교육과를 입학했던 기점으로 15년 정도가 된 것 같은데요. 현재 저는 위에서 말씀드린 저 두 가지를 제가있는 현장에서는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고, 지금은 커리어 체인지를 고민중입니다. 처음으로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었던 것은 1학년 때 서울에 있는 모 지체장애 학교로 현장실습을 나갔을 때 였습니다. 인격적이라는 의미는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들과 자주 사소한 대화들, 의사소통을 하고 하루 이틀 같이 캠프를 가기도 하고.. 부모님과 잡담도 나누고 그런 시간들을 보냈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주 2회 현장으로 나가는 것이 필수였는데 당시 마음으로 했던 기대는 '어떻게 그 사람들의 필요를 내가 채울 수 있을까.' 일종의 기대였습니다. 지체장애학교였지만 실제로 순수 지체 장애만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거의 없거든요. 일년이나고 지나서 제가 가지고 있던 기대는 무기력으로 변화했습니다. 제가 텍스트상의 지도기술, 평가, 수정 및 보완 다 해봐도.. 변하는게 없더라구요. 이성과 논리, 통계, 숫자, 효율성으로 싸우면 이 바닥은 계속 지는 곳입니다. 근데 정말 거짓말처럼 우리가 아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삶을 설계해 나간다고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그 모든 무기력이 건강한 숙제로 변하더라구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태어나면 사실 더 이상 개인의 과제가 아닙니다. 주말도, 휴일도 찾기 힘들고 심신도 피폐해져 갑니다. 가족 모임에도 나가기 불편하고, 죄 지은 것 처럼 친구들도 피하는 아버님들을 많이 뵈었습니다. 아이가 성장해서 캠프에 보내는 어머님들의 마음은 매정해 보일지 모르나 하룻밤이라도 푹 잘 수 있으면..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사랑', '가족, 공동체' 이런 단어들 요즘 세상에서 촌스럽고 더 이상 가치있게 쓰이지 않지요? 우리 아이들은 이 단어들 빼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자란 아이들은 많이 티가 납니다. 아이들의 친구들은 부모와 교사가 아이를 어떻게 보는지를 관찰하고 유사하게 대해줍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눈물로, 콧물로 충분히 사랑해주세요. 이 단어들을 기초로 봤을 때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순기능을 하는지 모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lexMOZCSVQ

 

 윌리엄 신드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사는 모습입니다. 희귀한 장애라 저도 이제까지 한 명밖에 만나지 못했는데요.  지독하게 행복하고, 사랑스러웠던 기억이 나네요. 장애를 가지고 있는 형제, 자매 그리고 부모님들. 거친 길 이지만 혼자가 아니니 함께 잘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걸어간 자리 위에 다음 세대가 멋지게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놓을겁니다.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은데 다른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지 않는 이야기를 적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이런 내용을 적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들 모두 충분히 훌륭해요.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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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17-06-25 12:17:16

충분히 공감이 되는 이야기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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