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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그리고 아련한 것들에 대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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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4 21:27:22

 https://www.youtube.com/watch?v=OFBx8M-KuGE

 


 요즘 날씨가 참 덥습니다. 오늘은 다행히 선선했지만요. 올해는 꼭 에어컨 사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결국 어떻게든 버티기로 타협하고 말았네요. 올해 비도 많이 안 온다는데 과연 이 여름을 무사히 지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신경쓰지 못한 것도 있고, 가구 배치도 식상한 감이 없지 않은지라 마나님과 땀 뻘뻘 흘려가며 대청소를 했습니다. 음... 공용 서재 어딘가에 숨겨둔 비상금이 발견되지 않았음을 신께 감사드린 하루였네요.

 

 낡아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는 하루의 끝자락에서 어딘가에 묵혀둔 디지털 카메라를 발견했습니다. 니콘 쿨픽스 4100. 검색해보니 무려 2004년형 모델이네요. 오, 뭔가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라 설레였습니다. 주제에 사진을 배우겠다며 이것저것 찍으러 돌아다니다 그만둔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이분을 왜 아직까지 모셔둔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어쨌든 무려 건전지 구동방식이라 경건한 마음으로 편의점에서 사와 약 10여년 만에 영접했습니다.

 과연 액정이 터무니없이 작아 사진이 잘 안 보이더군요. PC 연결 단자를 기어이 찾아내어 사진을 옮겼는데... 엌, 혹시나는 역시나였습니다. 첫사랑이었던 사람의 사진을 여기에 짱박아두고 있었더군요. 뭐랄까, 첫사랑에 대한 소회보다는 내가 가장 예쁘고 밝아 보일 나이에 왜 이렇게 지냈을까라는 민망함이 밀려오더군요. 옆에서 팝콘각이라며 구경하던 와이파이님께서는 왠 여자 사진에 일단 격분,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인간을 보고 뿜었습니다. 음, 패션의 세계는 심오한 법입니다. 암요.

 하루의 저녁거리를 걱정하고, 앞으로의 일거리를 걱정하고, 가끔 인생을 걱정하는 일상처럼 만남과 헤어짐 또한 평범한 일상임을 받아들일 시기는 아니었겠지요. 더없이 행복해보이는 표정과 그 나이대에 걸맞는 밝음.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 점차 흐려져가는 표정들. 이제는 이들이 어떻게 사랑을 시작했고, 또 어떻게 서로를 보냈었는지도 흐릿해진 때가 되었네요.
 
 그밖에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이젠 얼굴 보기 힘들 친구들,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많이 변했을 여행 속 풍경들. 하나하나 사진을 정리하면서 잊혀졌던 것들에 새삼 반가우면서도 다시금 이별하는 것이 이토록 쉬웠었나라는 생각이 드는 여름밤입니다. 내년에는 에어컨을 반드시 사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겠죠. 아련한 많은 것들에 감사하면서 떠나보내는 무더운 하루를 어루만져줄 비소식이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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