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못생긴남자가, 생애 첫 소개팅을 했습니다.
생애 첫 키스도 아니고 첫 경험도 아니고 첫 소개팅 후기를 씁니다.
저는 못생긴 24살 체리보이. 그래도 연애는 하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기회날때마다 얼굴에 철판 깔고 소개주선을 부탁해왔습니다.
그럴때마다 "괜찮은 애들 다 연애중이야 미안" "나 친구없어. 미안"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저도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지만, 소개팅 역시 와꾸가 되어야 할 수 있는 중급자코스라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며 쓴웃음 지었습니다. 친구가 해주고 싶지만 못해서 미안해할 수록 저는 더 쓰게 웃었습니다.
운동, 피부관리, 매력적인 목소리내기, 표정연습 등등 말도 안되는 노오력을 하고 있고 저역시 이런 제가 우습습니다만, 제게는 연애가 그렇게나 하고픈 일이란걸 전 깨달았습니다. 다들 누리는 젊은날의 아름다운 사랑을 왜 나는 이렇게도 가지기 힘든건지...그까짓 연애,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저는 너무나 절실하게 원하고 있더라구요. 띠기럴. 연애하지 못하는 이유에 외모는 많은 이유 중 하나였겠지만 아무튼 저는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친구가 자신이 알바하는 곳에 아는 동생이 소개팅을 부탁했다고 저보고 나가보라고 하더군요. 다른건 제쳐두더라도 저에게 기회를 주고 의리를 지킨 그 친구에게 너무나 감사해서 소개팅성사여부와는 달리 밥을 한 끼 사주기로 했습니다.
서로 사진을 보내고 천만다행스럽게도 일단 소개팅은 성사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로 약속을 잡았죠. 긁어부스럼 만들기 싫어서 약속 잡은 다음엔 일주일간 그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고 약속 전날에만 가볍게 안부물으며 내일 약속 시간과 장소를 상세히 정했습니다. 저는 여자랑 카톡하는 방법따위 모르니까요.
일주일동안 제가봐도 평균이하의 외모를 저는 최소한 여자가 한숨은 쉬지않을 평균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최대한 피부관리를 하고 펌과 염색을 하고 가장 이쁜 슬랙스와 셔츠, 슈즈를 세탁맡겼습니다.(새로 살 돈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필사의 다이어트와 웨이트 운동으로 일주일 후엔 아주 조금이라도 옷빨이 더 살아나는 기적을 바랬습니다. 나무위키와 유튜브에 소개팅을 검색해서 글로 소개팅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소개팅 당일. 이틀전 토요일입니다. 만나서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파스타를 시키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생각이 백지화되어서 뇌를 거치지않고 말하던지 아니면 뇌속에만 있던지 횡설수설했고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웃음 웃음 웃음 무조건 웃었습니다. 웃음병 걸린줄 알았을 겁니다. 게다가 소개팅 두번째라고 거짓말도 했습니다. 처음이라고 하면 뭔가 있던 매력도 없을 것 같았습니다.
파스타집에서 계산하고 일어나니까 뭔가 기분이 쎄했습니다. 어딘가 많이 느껴본 그런 분위기의 공기. 짝사랑할 때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매력어필과 관심, 배려를 쏟아도 돌아오는 것은 없던 그때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저는 이 소개팅이 망했음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상대방이 가고 싶어한다는 카페에 가서 쉬림프후렌치랑 라임스파클하나를 사서 광안리 해변으로 가서 나눠먹으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라임스파클이 원체 한 컵에 많은 양이 들어있어서 그랬겠지만, 저는 한 컵에 빨대 두개를 꽂아넣고 먹어서 "혹시..?설마..??"하고 흔한 남자의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내 정신차리고 내가 원빈이라면 그렇겠지 하고 운기조식하며 콧바람을 다시 집어넣고 냉정을 찾았습니다.
해가 뉘엿뉘엿하고 쌀쌀해지니까 슬슬 들어가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인사하고 헤어졌죠. 운명의 장난인지 갑자기 휴대폰이 뻑가서 벽돌상태가 되버렸습니다. 하...집까지 버스타고 1시간반거린데....
아무것도 못하고 그냥 방전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버스안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술에 술 탄듯 물에 물 탄듯 흘러간 하루. 남녀간 후일을 기약할 만한 썸띵이나 조그만 임팩트도 없었던 만남. 내가 여자라도 오늘 처음본 이 남자 다시 만나서 또 시간낭비하고 싶지는 않겠다. 그래. 내가 그렇지 뭐."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도, 여자에게 미안한 마음도 그 순간에는 전혀 생각할 여유가 없더군요. 그냥 언제나처럼 돈쓰고, 시간쓰고 마음상하는 예정된 전철에 몸을 맡겼습니다. 등불에 뛰어든 나방신세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살자고 생각하고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휴대폰은 던져두고 컴퓨터를 켜서 카톡을 보니 상대방에게 와있더군요. "오빠 집에 잘들어가~" 답장을 늦게한 이유를 말하고 단답형으로 대화를 마무리 했습니다. 단답형으로 하고 싶어서 했던게 아니라 여기서 뭘 더 얘기할게 애프터신청말고는 제 깜냥으론 도저히 생각이 안났습니다.
"그래. 애프터신청하고 까이는게 제일 깔끔하고 명예로운 까임이다. 지르자" 생각했습니다.
제 단답으로 끊긴 카톡의 10분간 정적뒤에 저는 톡을 보냈습니다. "ㅇㅇ아 혹시"(라멘 좋아하니? 같이 먹으러 갈래?라고 뒤에 더 보낼생각이었습니다.)
라고 보내는 순간 동시에 "오빠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담에 또봐용"
뚀잉..??순간 현실을 의심하고 이럴 땐 침착하게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찾아서 현실세계로 보내달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신이 혼미했지만 클러치야말로 제가 가장 자신있어하던 순간(물론 농구)이었기 때문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질렀습니다.
"나도 오늘 진짜 재밌었어. 그래서 말인데 혹시 라멘 좋아하나? 맛집하나 알고있는데 같이 갈래?"
너무 좋다고 하더군요. 그 라멘집오픈시간이 사정상 안맞아서 이번주 금요일 고양이카페에가서 같이 놀기로 했습니다. 분위기 급물살 타서 "왜이렇게 심장이 뛰지? 고양이랑 빨리 놀고싶은가봐"하고 날려버린 똥드립도 "나도 심장이 뛴다ㅎㅎ고양이랑 놀고싶은가봐"하며 받아주더군요.
하나님 부처님 성모마리아님 맙소사 저에게 이런 세컨찬스를 또 주시는 겁니까!!!!
저에게 기적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진짜 말도 안되는...이제 1쿼터 끝난 셈이지만 기세를 타서 막판까지 균형감있게 경기를 끌고나가야겠습니다. 이상 미괄식 글이었습니다. 헤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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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건 두괄식으로 쓰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