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을 때의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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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3-15 00:13:40
전 책 읽을 때 딱히 정해진 습관이 없습니다. 아니, 정해진 게 없는 게 습관이라면 습관이겠네요.
어떤 사람은 주로 카페에서 읽거나 정자세로 앉아서 읽거나 커피 한 잔과 읽는 등 책을 읽을 때 집중할 수 있는 정해진 자세나 환경이 있는데, 전 그냥 제가 내키는 곳에서 내키는 자세로 읽습니다.
앉아서 정자세로 읽기도하고 , 비스듬히 의자를 뒤로 기울여서,
책상에 책을 놓고 거의 엎드린 채로, 그리고 아예 침대에 누워서 읽을 때도 있습니다.
심지어 누워서 읽을 때도 똑바로 누워서 읽다 엎드려서 읽고, 빙그르 몸을 굴려 오른쪽으로 누웠다 다시 반대로 굴려 왼쪽으로 누워 읽다가 거실로 나가서 앉아서 읽기도 합니다. 굳이 바닥에 앉거나 누워서 읽을 때도 있고요.
이래저래 좀 산만하게 읽는 편입니다.
책 한 권 읽는데 유목민처럼 정착을 못하고 집안 곳곳을 떠돌아다니며 읽는 느낌.
음악을 들으며 읽을 때도 음악 없이 읽을 때도 있네요.
(요샌 주로 장한나 앨범이나 말러 교향곡을 듣습니다. 이상하게 책 읽을 때 피아노 반주는 영 거슬립니다)
그리고 한 권에 집중하질 못합니다. 보통 두 세 권 정도 동시에 읽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렇게 독서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정말 문제는 바로 제 기억력입니다.
어떤 책을 읽고 있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책을 읽다가 다시 책꽂이에 꽂아놓고는 다른 새 책을 읽고, 그 책을 읽다가 책꽂이에 꽂고 나중에 다른 책을...
그래서 제 책꽂이의 책들을 보면 책갈피가 꽂혀진 채로 저의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이 있습니다.
책들에겐 참 미안한 습관이긴 한데 이상하게 책 한 권만 읽을 땐 읽기가 좀 싫어집니다.
네, 제가 이상한 놈입니다.
책을 읽을 때 필기를 하거나 밑줄을 긋는 등 다른 걸 같이 하는 분들도 많지만
전 읽을 때는 읽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안 합니다. 책에만 집중하고 싶고 무엇보다 흐름이 끊기는 걸 싫어해서요.
책과 함께 하는 그 순간의 경험에 흠뻑 빠진 채로 기분 그자체에 몰입하며 즐기는 걸 좋아합니다.
그래서 사실 좀 후회할 때가 많아요. 맘에 드는 구절을 읽는 순간엔 그 구절의 매력에 적셔지지만
기억력이 안 좋아서 나중에 다시 찾아보려 하면 백프로 못 찾습니다. 구절을 잘못 기억하는 경우도 있고요.
사실 책에서 어떤 한 구절만으로 그 문장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는 경우는 드물잖아요.
그래서 그 구절이 가져다주는 경험을 상기시키기 위해 전체 문단을 다시 읽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니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머리가 좋으면 다 해결될 일이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밑줄 긋기를 하라고 하면 그건 또 싫습니다.
어떤 작가분이 인터뷰에서 책이 더럽혀질수록 그 책을 많이 읽은 증거가 되니 좋다고 하셨는데
전 그 반대입니다. 실수로 페이지 모서리가 살짝 구겨져도 제 인상이 조금 구겨집니다.
책이 휘거나 뭐가 묻는 것도 질색이어서 뭘 먹으면서 독서하지도 않고,
읽은 후에 다시 원래 비닐포장지에 그대로 넣어두는 책도 많습니다.
그리고 웬만한 양장본 책들은 책꽂이에 세워두는 대신 눕혀놓고요. 종이가 내려앉을까 봐...
물론 너무 많이 쌓아놓으면 또 안됩니다. 위에서 부가되는 무게 때문에 책이 뒤틀려지거든요.
유별나게 책에 관해서 만큼은 이런 결벽 증세가 있기에 밑줄 긋기는 사실상 책을 향한 제 폭행입니다.
여하튼 이래서 생각한 차선책이 인상 깊은 구절을 봤을 때 구절과 페이지를 재빨리 핸드폰에 기록해두는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엔 쓰는 것보다 빠르고 이러면 인터넷에서 그 구절을 우연히 접하거나 그냥 문득 생각났을 때
핸드폰에서 찾아보고 그 책을 꺼내 다시 읽으면 되니까요.
스스로도 이 아이디어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합니다.
이젠 제가 핸드폰에 기록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기록해놓은 걸 못 찾는 경우가 생깁니다.
단어 저장을 이상하게 해서 그런진 몰라도 항상 찾을 땐 없고 나중에 다른 걸 찾다 우연히 찾게 되고 그러네요.
그 다음 차선책은 아예 그 문단을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두는 거였는데... 이것도 결국 하다 말았습니다.
찾기도 힘들고 읽기도 좀 불편해서요.
더 좋은 방법들이 있을 텐데 결국은 그냥 그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읽어버립니다.
제게 습관의 종류는 두 가집니다. 자연스레 길들여진 습관과 자발적으로 만드는 습관.
근데 확실히 자발적으로 만드는 습관은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보다 오래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자기 스스로 그 습관을 지켜야 할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면 되는데,
이 부분에선 전 아직 그런 이유를 성립시키질 못했네요.
'그냥 다시 읽으면 되지'라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니.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소설 <농담>의 구절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것은 적이 아니라 친구다"를 보고 문득 떠올라서 써봤습니다.
이 구절과 페이지도 핸드폰에 기록해뒀습니다. 제가 후에 이걸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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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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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좀 특이한 책 습관이 있는데 책을 쫙 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야 항상 새 책처럼 유지가 돼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