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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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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3-13 14:45:40



에드워드 양 감독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무려 236분 짜리 영화인데,
몇 해 전 개봉했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확장판의 251분과 맞먹는 엄청난 길이의 영화입니다.
그야말로 혼돈의 중심지이었던 격동기 시절인 1960년대의 대만에서 사는 10대들의 이야기로,
그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는 장면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스케일 면에서는 <대부>가, 그리고 염세주의가 깔린 낭만적인 청춘의 방황이라는 점에서는
<이유없는 반항>이 떠오르기도 하는 제겐 없는 줄 알았던 아시아 청춘의 서사시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이 시대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지만, 대만의 60년대가 6.25 사변 후,
그리고 지금 현재의 우리나라 모습과 참 비슷하다라는 점입니다.
이걸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그만큼 영화가 시대적 반영을 잘했다는 의미고,
그 시대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를 통해 주제를 그려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우리나라는 봉준호나 이창동 감독이 그런 걸 잘하죠)
국공내전이 가져온 혼란속에서 갈피를 못 잡는 어른들.
그리고 그런 어른들을 보며 마찬가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
1960년대 대만에서 어른을 존경하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어른들도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정도(正道)를 모르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올바른 길로 이끌어줄 어른들이 없는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사회를 만들어 그 속에서 서로 투쟁을 벌입니다.




지성인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그런지 공부 하나는 잘했던 주인공 샤오스.
하지만 야간학교의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공부와는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비록 질 안 좋은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트러블 메이커지만 그에겐 소년의 순수함이 남아있습니다.
순수한 사랑을 믿고, 자신의 아버질 욕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려다 되려 목숨을 구해주기도 합니다
그를 키운 아버지의 영향일테죠.
아들이 학교에서 처벌을 받아도 꾸중하는 대신 학교가 학생을 제대로 지도하지 못했다며
되려 선생들을 꾸짖으며 아들을 변호하던 아버지.
그를 통해 그는 어른들에 대한 어떤 희망 같은 걸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도 이 험난한 시대 속에서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잃기 시작하고,
결국 그는 현실에 무릎을 꿇고 맙니다.
(영화내내 아버지가 샤오스의 학교에 세 번 정도 불려가고 그 때마다 고령가를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가 사뭇 달라져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더더욱 샤오스를 절망의 길로 빠뜨립니다.




대만에서의 자신의 유년기를 제대로 보여준 영화가 단 하나도 없다고 말했던 에드워드 양 감독.
이렇게 자신이 그려내고 싶었던 유년 시절의 모습을 그는 이 작품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 당시 들어오기 시작하던 외국 노래들과 함께
추억속의 거리 (고령가)를 셋트로 지어서 똑같이 재현해내는가 하면,
일제의 지배를 받았던 원주민들과 중국에서 쫓겨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한족들의모습을 비교해서 보여주며,
심지어 종종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도록 상해어로 대화를 나누는 부모들의 모습까지 담았습니다.
틈만 나면 전기가 끊기던 당시의 낙후된 환경까지도 전부 재현해내는데, 
이는 아주 영화적인 장면들을 연출해내면서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한 사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시대의 진정성을 살리면서 그에 맞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구사하기 위해 1년이 넘는 시간을 리허설을 한 감독.
그리고 지금은 유명한 배우지만 이 작품으로 데뷔를 한 주인공 장첸이 심적으로 편할 수 있도록
배우인 장첸의 아버지를 아버지 배역으로, 형을 형 배역으로 캐스팅하고 심지어 이름까지 그대로 쓰는
세심한 디렉팅은 감독의 섬세한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예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은 여태 자막이 씌어진 채로 나오는 구린 영상의 무단복제판 DVD밖에 없다가,
작년에 Criterion에서 4k 리마스터링을 한 블루레이 버전이 출시됐습니다.
아래 영상 보시면 아시겠지만 거의 환골탈태 수준입니다.
제대로 된 청춘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께는 꼭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AMSHs2adWk

https://www.youtube.com/watch?v=n4pHZ_IrK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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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7-03-13 00:50:58

꼭 보고싶던 영화인데 구린 화질하고 엄청 긴시간때문에 안보고 있었은데 반가운 정보네요

WR
2017-03-13 12:21:12

저도 긴 시간 떄문에 망설이다가 결국 봤는데 참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에드워드 양이나 허우 샤오시엔 같은 명감독들을 보면 대만의 영화사가 참 부럽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2017-03-13 08:44:46
공포분자랑 하나 그리고 둘을 봤는데 정말 천재적이라고 생각한 감독님이고

정성일 평론가가 에드워드 양에 대해서는 고령가 살인 사건을 가장 많이 언급해서 볼 생각은

있어도 못 봤는데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WR
2017-03-13 12:31:42

과거의 대만 (고령가)와 현대의 대만 (하나 그리고 둘)을 단순히 이야기의 비교가 아니라

감독의 스타일도 보면서 비교해보셔도 재밌습니다.
Updated at 2017-03-13 09:51:44
에드워드 양(양덕창), 이름만 들었지 접해 본 영화가 하나도 없네요.
공포분자도 이름만 몇 번 들어본 게 전부였고요.
찾아보니 타이페이 스토리가 조만간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으로 나오는 거 같습니다.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시간 내서 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WR
2017-03-13 12:34:32

전부 다 쟁쟁한 작품들이라 어떤 걸 보셔도 절대 후회하진 않으실 겁니다.

2017-03-13 15:29:25

 이거 봐야지봐야지 하면서도... (다들 예상가능하겠지만) 4시간이라는 압박에 못보고 있네요. 차라리 60분씩 4부작으로 나누어져 있으면 하나하나 보겠는데 딱 한편 러닝타임 4시간 박혀있으니..

WR
Updated at 2017-03-13 16:53:59

아무래도 좀 부담감이 있긴 해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을 극장에서 봤을 땐 중간에 인터미션이 있는 게 인상적이었는데
이건 (제 기억으론) 소년 시절과 성인 시절로 나뉘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물론 이것도 상영사측에서 임의로 정한 인터미션이긴 하겠지만 보다 더 자연스러웠다고 해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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