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간소음 분노, 상상, 그리고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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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10 08:38:53
오피스텔이란 이름을 가졌지만 누가봐도 오피스텔은 아닌 원룸 건물. 그곳에 제가 2년째 살고 있습니다.
관리가 깨끗하게 잘 되고 있고, 월세에 관리비가 모두 포함되어 있어 에어컨 빵빵, 보일러도 빵빵 유지하는 게 가능해서 만족스러운 생활 중이었는데요.
3개월 전부터 위층에서 소음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사건 1. 주말 오후 3시쯤
드르륵, 구구구궁, 드르륵 쿵, 드르륵 드르륵
전 잠이 좀 많은 편입니다. 썰전 틀어놓고 잠들었는데 저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드르륵은 괜찮은데 구구구궁 쿵 이런 게 머리를 흔들더라고요.
그런가보다 하고 참았지만 소음은 2시간쯤 계속되었고, 그 전까지 이런 일이 없었기에 저는 산책을 나가는 것으로 소음에서 벗어났습니다.
사건 2. 2개월전부터 3일전까지
제가 다니는 회사는 출근 시간이 자유롭습니다. 10시 출근을 하던 저는 8시 출근을 결정합니다.
저녁이 있는 삶, 아침형 인간 뭐 그런 거 꿈꿨습니다.
첫날부터 망합니다.
꿍 꿍 꿍 꿍
당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죠? 발꿈치로 찍는 걸음 소리입니다.
건물 문제가 있구나 깨달았고, 위층 분은 좁은 원룸에서 행군이라도 하는지 조금도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6시에 일어나야 하니 11시에는 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매일 소음은 9시에 시작되어서 길면 새벽 2시까지 계속됩니다. 예민한 편이어서 그 소리가 끝날 때까지는 잠을 못잤습니다.
소리가 처음 들리기 시작하면 '또 시작 됐구나' 생각합니다.
그 뒤로는 이상하게도 그 소리에 집중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상열감이 있고, 심장도 쿵쾅거렸습니다.
층간소음 해결책을 찾기 시작합니다.
대뜸 찾아가 문을 두드리는 성격은 못돼서 뭔가 규칙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잠이 안와서 버티는 시간동안 네이버, 구글에 층간 소음을 검색하며 버텼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꿍꿍꿍꿍.
규칙 같은 거 없었습니다.
잘 풀린 사례도 못 찾았습니다.
층간소음 해결 후기가 나와 읽어보면
1. 고무 망치로 천장을 두드리세요. 소음 날 때마다 두드리고, 안 나도 두드리세요.
2. 층간소음 스피커를 천장에 붙이세요. 강력한 우퍼입니다. 그 우퍼로 특정음악을 트세요.
여기서 특정 음악 중 황병기-미궁 이라는 음악이 널리 추천되고 있더군요. 듣는 순간 소름끼치는 음악입니다. 층간소음 전용 스피커 제품은 10만원도 넘고요.
저는 관리인, 집주인에게 민원을 한번씩 넣었습니다. 알아보겠다. 위층에 방나오면 연락주겠다는 답변을 받았고요.
그러는 동안 저는 점점 더 예민해져서 별 상상을 다합니다. 층간소음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기사들을 보세요. 살인, 폭력 등등. 별 일이 다 생깁니다. 2개월쯤 당하니 저도 머리로는 온갖 폭력적인 상상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다 4일 전 새벽 1시.
저는 저녁 7시부터 잠든 상태였습니다. 만성피로가 쌓여있어서 집에 오자마자 바로 잠들어버릴 수 이었던 거죠. 그러나 그날 역시 꿍꿍꿍꿍. 그정도였으면 깨지않았을 텐데
갑자기
쾅! 꽝~앙! 구우우우웅
난리가 납니다.
분노를 조절하기 어려웠던 건지 지금 생각해도 저답지 않게, 곧바로 문을 열고 나가 위로 향했습니다.
새벽 1시. 이웃들에게 미안하게도 문을 두드렸죠. 안에서 나던 티비 소리, 쿵쾅 소리는 제가 문을 두드리는 순간 멈췄고, 아무런 소리도 반응도 없었습니다. 5초 정도만에 침착해진 저는 조용히 제 방으로 내려왔고, 책상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습니다.
더는 그냥 참을 수 없다.
이대로 가면 뉴스의 주인공이 될지도 모른다.
이사를 가던 뭘 하던 해야 한다.
근데 왜 내가 손해를 봐야 되지?
짜증나네;
의식의 흐름을 분노가 지배했습니다. 저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고, 그만큼 피해를 받는 것도 싫어합니다. 다시 올라가 노크를 하는 것은 나도 소음 유발자가 되는 일. 마지막 방법으로 쪽지를 남겨보기로 합니다. 쪽지는 문에 붙여 전달했습니다.
아래층입니다. 노크해도 답이 없기에 이렇게 쪽지 남깁니다. 층간소음 심합니다. 건물 문제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발꿈치로 걷는 소리가 조용한 밤에는 크게 울려 들릴 수 있으니 신경써 주었으면 합니다. 밤 9시 이후로는 시달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탁합니다.
다음날 아침 7시 출근을 위해 나선 저는 제 방문앞에서 쪽지를 발견합니다.
미안합니다. 몰랐어요. 주의할게요.
간식거리 봉투가 하나 같이 붙어있었습니다.
출근길 생각이 많았습니다.
몰랐구나.
오래 참은 동안 상대는 몰랐구나.
소음도, 오래 참은 것도 몰랐겠구나.
내가 스피커를 구경한 것도, 고무망치를 알아본 것도 몰랐겠구나.
집주인이랑 관리인은 뭐 한 거지?
몰랐다는 말을 믿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3일 전부터 저는 꿀잠을 자고 있습니다.
혼자 고민하는 건 상대방에게 전달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의 생각을 남은 모릅니다. 누군가를 통해 전달하는 것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조금 허무하기도 했습니다. 왜 그 오랜 시간 나는 그냥 참으면서 화를 키웠나. 남에게 맡겨놓고 있었을까.
층간소음을 겪고 검색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인터넷에 나오는 답변들은 너무 과감하고, 싸우자는 식이어서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선뜻 생기지 않습니다. 관리인을 통하는 것도 별 효과가 없을 때가 많다고 합니다. 처벌 기준도 비현실적입니다. 소음을 느끼는 정도가 주관적인 거라서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하네요.
하지만 오래 참지 마셔야 하고, 혼자 생각만 많이 하는 것도 좋지는 않다고, 단 1번의 경험만으로 말씀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저는 만약 다시 층간소음이 발생한다면 곧바로 상대와 대화를 시도해볼 것이고, 이후 해결이 안 된다면 이사를 하려고 합니다. 그만큼 괴롭다는 걸 이제 알기 때문에요. 이번에도 잘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만 소음이 재발한다면 저는 이사를 하려고요. 물론 가장 높은 층을 선택하겠죠. 옥탑도 차라리 괜찮겠다는 생각입니다.
별 거 아닌 게 길어졌네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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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먹으면서 매사에 생각과 상상만 많아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