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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기록 (6) - '그때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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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01-02 20:56:26

 사랑은 둘의 문제지만 이별은 오롯이 남겨진 자의 몫이다. 머리론 어찌저찌 알겠다. 그런데 난 여전히 그녀가 있는 것처럼 군다. 

 누군가 술자리에서 ‘내가 그리운 것은 그때의 우리가 아니라, 그때의 나.’ 라고 이야기할 때, 최소한 사랑했다면 상대와 자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한 적은 없다.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인연의 주인뿐이고, 이건 이해와 타협을 찾을 수 있는 토론같은 대화가 될 수 없기에 서로 적이 될 뿐인걸 안다.
 ‘그녀’이기 때문에 그렇게 사랑할 수 있었고, ‘그녀’와 함께 그 시간들을 만들었다. 난 그 모든 것이 그립다.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지나버린 시간들에서 ‘그녀’를 분리하는 것은 '그때의 나'에 대한 지나친 미화, '지금의 나' 또한 사랑해도 스스로를 위한 사랑밖에 할 수 없다는 증명일 뿐이다.

 물론 이건 사랑에 중점을 둔 이야기일 뿐이고, 이별에 중점을 두면 여러 문제의 다양한 극복, 도망, 합리화 방법들이 생긴다. 요즘 겪은 꽤 그럴싸한 방식이 바로 이야기하려는 ‘그때의 나’다.
 나는 차였다. 이유는 수 없이 많을 수 있다. 내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다만 그녀가 이별을 상담한 내용과 내가 이별을 상담받기 전까지 받은 상처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난 그것들에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종지부를 찍었다.
 처음에는 몰랐다. 이별 직후는 약간의 해방감과 견딜 수 있을만한 그녀의 공배 정도를 느꼈다. 물론 들려오는 슬픈 노래에 눈시울을 붉히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녀의 빈자리를 그냥 둘 수가 없어서, 바쁘고 수고스러운 일을 찾아다녔고. 결국 몸도 마음도 상하기 시작했다.
 이별은 지독하다.

 지금와서 보면 재정신이 아닌데... 무슨 바쁜 일을 견기며, 제대로된 판단을 하겠는가.
 그 뒤로는 다시 그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찾아왔고, 그럴 수도 없고 그러면 안된다는 생각과 싸웠다. 가끔 이렇게 살아서 뭐하냐는 생각이 들고, 그러다가도 살아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떠올리며, 교과서적인 행복을 찾아 나섰다.
 해오던 내 능력을 키우기 위한 일 하나가 정리될 무렵, 아무도 보지 않는, 보면 오히려 부끄럽게 느껴지는 인터넷 방송과 마음을 정리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글은 자가 심리치료의 일환, 방송은 재미있어 보였다. 그거면 목적에 충분했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나’가 되기 위해서 해오던 노력의 선상에서 잠시 내려오고 싶었다. 물론 나를 위한 일이다. 열심히는 아니라도 그런 일은 늘 해오고 있었지만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능력을 갖추면 그녀가 올까? 내가 능력을 갖추면 다른 사랑을 갖을 수 있을까?  난 무엇을 좋아하지?
 질문들만 가득했다.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키, 외모, 목소리, 직업, 수입, 출생, 언어, 감성, 이성 등등 마음먹으면 수치화 시킬 수 있는 것들의 합인 것인가? 사실 이건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했고 그 내용을 아주 조금 알고 있기에 혼란에 빠지진 않았다. 그런데 나와 그녀가 함께인 ‘우리’가 특별할 수 있는 이유와 부분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녀와 같은 조건의 그 누군가와 만나면 '그 우리'도 똑같이 특별해질까? 그건 이미 '특별'하지 않다. 
 헤어진 그녀는 당사자가 아니고는 알 수 없지만 새로운 남자친구와 행복해 보인다. 나도 그렇게 행복해질 수 있는가...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렇게 행복해지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마법같은 감정과 함께한 시간에서 생겨버린 ‘애정’ 때문에 우리가 서로에게 특별해졌으니까.
 아마 ‘그때의 나’가 그립다는 것은 ‘애정이 차있는 나’가 그립다는 이야기는 아닐까 싶다. 그 애정을 쌓는 것은 힘들다. 그렇게 힘들게 얻은 것을 잊어야 하거나, 홀로 버려진다면... 심지어 다른 누군가와 다시 쌓아야 한다. 솔직히 아직 홀로 버려지는 것도, 다시 쌓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누군가를 만나도 늘 더 예쁜 사람은 있고, 더 잘난 사람도 있다. 지금은 과거의 그 어느 때보다 지구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는 그녀만 보이고, 그녀로써 온전히 충분한 세상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없다.
 새롭게 각 인종,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애정이 차있기 전 나‘와 만날 순 없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다. '지금의 나'도 그때라면 그런 사랑을 했을 것이고, '그때의 나'도 지금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단지 이렇게 사랑하고 어긋나면 따라오는 책임을 몰랐을 뿐이다. 내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은 그만큼 깊이 애정하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홀로 버려지며 상처받고 흉터도 남겠지만, 묻든, 잊든, 껴안든, 정리하고 다시 시작되야 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때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나’는 이런 깊은 애정도 버려질 수 있다는 사실에, 겁먹고 변해버릴게 확실하다. 그래서 '그때의 내가 그립다'는 핑계로 도망치고, 내 용기는 ‘그녀’에게 다 썼으니 남은건 없다는 방법으로 극복해버리고 앞으로의 애정을 어느 정도 포기할수도 있다.
 머리로는 이 이별이 남긴 문제가 오롯이 내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여전히.. '이젠 내 안에만 존재하는 그녀'를 탓하며 놓지 못한다. 아직은 조금 더 내가 나로써 온전하기 위한 길을 찾으며, 그녀 탓으로 상처를 덮어두고, 천천히 내게 남겨진 이별 문제를 어떻게 해야될지 지켜봐야겠다.
 작년은 여러므로 힘들었는지... 새해가 꽤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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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17-01-03 01:32:00

평생을 떨쳐내지 못하는 多情이라는 病
骨髓에 사무쳐 無時로 도지는 목마름의 病
 
그 때문에 아프고
그 때문에 저리고
그 때문에 힘들고
그 때문에 쓰라린,
 
癌보다도 무서운 痼疾的인 병
 
그래서 無心을 假裝하기도 하고
일부러 거리를 두기도 하고
짐짓 바쁜 일들을 만들기도 하면서 벗어나려고 애쓰는데,
어이하여 매사 情을 끝내 털어 내지 못하는가.
 
지금은 새벽 두 시를 향하고,
이 밤도 또 하얗게 새워야 되나 보다.

1
2017-01-04 16:12:1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덜 힘드시길, 심심한 위로 드립니다.
WR
2017-01-14 13:15:02
감사합니다!
지노블리님도 새해에 원하시는 일 다 잘되시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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