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p
자동
Free-Talk

내가 사는 이유

 
6
  942
Updated at 2016-12-18 16:14:02
동남아 여행 중 캄보디아 껩의 숙소에 도착한 날이었다.
숙소에서 일하는 10대 현지 남자애가 우릴 보곤 예전에 한국인 밑에서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한국말 좀 아냐고 물어보니 이 단어 하나만 기억난다고 한다.
"빨리 빨리"
그저 웃기만 했지만 사실 맘속으론 전혀 그러질 못했다.
그가 한 개인을 통해 받은 한국에 대한 시선이 나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친구 지인의 파티에 따라간 적이 있다.
친구에게 로스쿨을 막 졸업한 친구 한 명을 소개 받았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왜 변호사가 되려고 하는지 묻게 되었다.
그 친구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최대한 빨리 은퇴 하고 싶어서.


한때 종종 들었던 밴드 중에 Florence and the Machine이라는 밴드가 있는데,
메인 보컬인 플로렌스 웰치가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I was imaginative, a bit of a dreamer but quite a timid child.
I remember being completely involved in imaginary games that would last for days, weeks.
It was always magic, sorcery, living in trees. A lot of just living in imaginary worlds.
I don't think I've lost that. It's just now I'm doing it as a job."
"전 상상력이 풍부한 몽상가에 아주 소심한 아이였어요.
항상 상상 속의 놀이에 며칠, 몇 주씩 빠져들었던 기억이 나요.
나무 위에서 지내기도 한 마법 같았던 나날들.
그저 상상 속의 세계에서 살았어요. 그걸 잃어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젠 그걸 직업으로 삼고 있을 뿐이에요."


난 항상 성공이란 단어를 싫어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싶은 야망에 대해 내가 뭐라할 건 아니지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성공이란 단어엔 언제나 진정한 의미의 순수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돈, 명예, 안정된 삶, 행복한 가정...이처럼 많은 것들이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의 범주 안에 들어가지만
사람들은 보다 온전한 인격체가 되는 길에 성공이란 단어를 붙이진 않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Tom Waits의 Time의 후렴구는 이렇다.
"It's time, time, time
It's time, time, time
It's time, time, time that you love
It's time, time, time"
우리가 사는 이 시간 그 자체를 좋아(사랑)한다라는 뜻
혹은 이젠 사랑을 할 시간이 됐다는 뜻이다.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찾아본 적은 없다.
두 의미 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얼마전 펀게시판에서 무엇에든 예비라는 단어를 붙이며 남용하는 걸 보며
어차피 죽을텐데 예비고인이라고 부르자는 글을 봤다.
여기선 그저 유머글일 뿐이었지만 사실 이건 로마 시대때부터 전해오던 말이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죽어야 하는 인간임을 기억하라."

이미 여러 시대를 거쳐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의미로 확산되어 쓰이고 있지만
내게 이 말은 단순히 모든 것이 무의미한 염세주의에 빠지자는 말은 아니다.
단지 날이 갈수록 기생적으로 늘어나는 수많은 무의미함 속에서
삶이라는 유한성을 의미있게 만들어줄 자신만의 무언가를 발견하라는 말이 아닐까.

사실 죽기 전에 그 무언가를 찾을 거라는 확신이 내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그걸 발견하지 못할지라도, 내 삶이 주변과 내 안을 둘러보며 이를 찾아가는 과정만으로
끝나버려도 이를 의미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을 갖춰가는 것이 내가 사는 이유이려나.
4
Comments
1
Updated at 2016-12-17 17:21:36

여운이 깊은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1
Updated at 2016-12-17 20:54:09

내지르는 방향만 올바르다면 그 규모와 속도는 얼마든지 좋습니다. 누군가는 대통령의 위치에서, 누군가는 시민단체의 위치에서, 누군가는 기업가의 위치에서 그 방향성을 관철하면 되는 것이겠죠.
완성을 싫어한다... 좋은 말이네요.

2
Updated at 2016-12-17 21:25:10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p 47

그리하여 나는 하나 하나가 고립된 온전한 하나의 기쁨이 될 수 있도록
각 순간을 나의 생애로부터 분리시키는 습관을 붙였다.
거기에 특수한 행복의 형태를 고스란히 집중시킬 수 있기 위하여서.
그러기 때문에 나는 가장 가까운 추억에도 현재의 나 자신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던 것이다.


공감과 사유를 넘어 감상을 이끌어 내는 멋진 글 잘 봤습니다.

2016-12-18 14:58:20

좋은 글에 좋은 댓글

글쓰기
검색 대상
띄어쓰기 시 조건








SERVER HEALTH CHECK: 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