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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대한 잡생각 - <닥터 스트레인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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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6-10-27 12:22:48
한때는 마블 영화들을 조금 챙겨보는 편이었는데, 마블 영화들이 가지게 된 너무나 형식화된 모습 때문에 점점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간만에 이번 닥터 스트레인지를 보면서 느낀 점은, 어차피 그 감독의 색깔을 드러낸다고 해봤자 할리우드 시장에서 그럴 수 있는 경우는 극소수일 뿐이고, 결국 케빈 파이기는 영화 산업을 통해 마블을 대중화시키는 데 성공한, 그리고 현대 상업영화 시장에 어울리는 좋은 영화들을 꾸준히 내놓는 추진력과 비전을 가진 뛰어난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장점은 이미 많은 분들이 충분히 얘기하셨고 앞으로도 더 나올 테니 개인적으로 (충분히 재밌게 봤지만)
아쉽다고 느낀 몇 가지 부분들만 적어봤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들고 하여 내용이 두서가 없는 점, 그리고 개인적인 잡생각이 많이 들어간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1. 사실 많은 시리즈물이나 후속작이 예견되는 작품들의 첫 작품은 세계관이나 설정들을 설명하는데 이용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는 그게 작품의 질에까지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다행히 닥터 스트레인지는 단순히 소모작품에 그치지 않고 충분히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방대한 정보를 (그것도 이야기 진행에 반드시 필요한 정보들을) 알려줘야 하다 보니 대부분 것들을 대사 몇 마디로 일축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XX는 그건데 그래서 그렇고, 이거는 저래서 그래. 네가 생각하던 건 이렇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 이건 그렇고 저건 그래. 넌 이런 사람이지만 사실은 착해." 이런 식으로요.
물론 모든 걸 전부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건 말이 안 되고, 꼭 그래야 영화다라는 법칙도 없습니다. 대사도 당연히 영화의 일부분이니까요. 하지만 모든 정보를 논문 읽듯이 줄줄이 대사로 말하면 그건 좀 보는 입장에서도 거북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원작에서 닥터 스트레인지는 남을 쉽게 무시하고 거만한, 악인이나 다를 바 없는 성격의 캐릭터로 알고 있는데 그에 비해 영화에선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조금씩 성격이 변화하는 듯합니다. 다만 캐릭터 탐구가 그다지 없는 이야기에 이런 캐릭터 아크를 주입하다 보니 "넌 사실 맘 깊숙이는 착한 사람이야." 라고 대사를 치는데 '아니... 뭔가 보여준 게 있어야 변화가 납득이 되는데 뜬금없이 이건 무슨...?'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캐릭터를 굳이 만인에게 맞는 likable 캐릭터로 바꾸는 대신 likable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좋아했던 그의 독특한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시시각각 접히고 벌어지며 변화하는 건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투와 추격 씬들은 시각적으로 많은 즐거움을 선사했지만 보는 와중에도 오리지널리티면에선 개인적으로 좀 많이 실망했습니다.
매트릭스,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와 인셉션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오는데, 치료를 위해 동양의 국가로 가는 설정이야 원작에도 존재하는 거니 그렇다 치더라도, 건물 내 공간이 돌려지고, 건물들이 움직이는 모습들은 글세요... 솔직히 대놓고 너무 베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원작에 이미 저런 장면이 존재했다면야 할 말은 없습니다만 그런 건 아닌 걸로 알고 있고... 전체적인 영상미는 인셉션, 그 사이에서 전투 공간이 마련되는 모습은 마치 파이널 판타지와 많이 유사하다고 느껴서 아쉬웠습니다.
스트레인지가 시공간을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한 시퀀스는 나름 원작에 녹아들어 있는 싸이키델리아를 시각화하려고 한 것 같은데 (실제 "무슨 약을 탄 거냐" 이런 대사까지 하는 걸 보면요) 그래도 나름 이 코믹북이 나왔던 당시 유행하게 된 동양 신비주의와 싸이키델리아 트렌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던 작품인 것에 비해 영화에서 그런 흔적은 거의 찾을 수 없는 점이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유행했던 음악이나 Oz 같은 잡지들만 봐도 이 문화에선 시각적, 청각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컸다고 봅니다만... 
어떤 후기를 보면 마블 영화 중 최초 촬영상 수상 가능성도 점쳐보던데, 개인적으론 별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3. 마지막 부분은 사실 많은 뛰어난 배우들이 할리우드 작품에 처음으로 참여할 때 제가 종종 아쉬워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이 분이야 이미 007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만...)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과 맞서 싸우는 악의 우두머리는 도르마무지만, 실질적으로 주인공과 대적하는 인물은 배우 매즈 미켈슨이 맡은 케실리우스입니다. 
이 인물이 가진 모티브 자체는 흑백논리로 구분되지 않고, 자기만의 소신이 담겨 있어 마음에 들었지만, (아마 배우가 이 역할을 수락한 이유 중 하나같기도 합니다만) 이게 밝혀지는 부분도 주인공과의 대면에서 대사 몇 마디가 전부이고, 사실상 그 외에는 이 인물이 하는 역할은 캐릭터 적으로 봤을 때 너무나 작고, 무의미합니다.
인물을 위한 행동 하나 없이, 캐릭터성이 하나도 부각되지 않은 채 누가 맡았어도 문제가 안 됐을 그런 캐릭터.
이제 조금씩 대중적으로 알려진 유럽 쪽 배우의 이미지만을 소모하기 위해 캐스팅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론 보면서 이미 예측되었던 일임에도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이런 좋은 배우를 저런 말도 안 되는 역할에 낭비하다니요.
배우들이 강제로 이런 역할을 떠맡은 것도 아니기에 저의 이런 토로는 사실 말이 안 되긴 합니다만, 너무나 많은 뛰어난 배우들이 블록버스터 영화에만 나오는 즉시 자신의 본모습을 못 살린 채 소모되는 경우를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언급한 점들은 사실 닥터 스트레인지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 봤을 땐 최근에 나오는 많은 상업영화에서 보이는 일종의 트렌드입니다.
영화의 기능성을 스스로 제한시키고, 독창성이 없으며, 캐릭터성 있는 인물을 만들어내질 못합니다.

1. 연출이란 건 간단히 말하면 이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이지만 영화 연출은 단순히 이야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이야기를 '영화가 가진 기능들을 통해서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단순히 그 상황을 화면에 잡아주고, 인물이 분개하면 분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하는 식의 상황이나 감정을 '재현'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 미장센, 미술, 음악, 카메라워크 등 영화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최대한 끌어올려 그 상황 또는 감정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는 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많은 작품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 대신, 무의미한 장면 연출과 카메라워크로 겉보기에 있어 보이는 연출하기에만 급급해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관객들이 보다 쉽게 영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보편화한 것이지만 (그리고 그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 어떻게 보면 그저 연출이 게을러졌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관객들과의 소통을 차단하는 지나친 연출은 객기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단순히 재현 그 이상의 것을 통해 다른데선 느낄 수 없는 감정을 심어주는 영화적 경험을 제공해주는 건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2. 독창성의 부재는 사실 상당히 이전부터 계속 제기되던 문제입니다. 해마다 영화 제작비의 규모가 커지다 보니 제작/투자사들은 재정적 리스크가 있는 창작물들을 거부하고, 이미 어느 정도 수익이 보장된 소설 영화화, 리부트, 리메이크, 후속편 제작 등에만 몰두합니다. 마블 영화들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독창성 부재는 단순히 영화의 이야기뿐 아니라 영상미, 인물, 그리고 심지어 음악에까지 존재합니다.
많은 영화 음악가들이 이미 성공한 영화 OST를 그대로 베껴온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물론 재정적 리스크를 무시한다는 건 특히 근래 제작비 규모를 봤을 때 너무나도 위험한 행동인 건 사실입니다. 실제로 작년에 개봉한 투마로우랜드 같은 영화는 오랜만에 독창적인 이야기의 설정을 가지고 나온 블록버스터 영화였지만 대본의 허술함으로 인해 참패를 겪기도 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결책은 사실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작사들은 독창적이고 도전적인 작품들 제작을 끝없이 장려해야 합니다. 후속편 제작도 결국은 한계가 있을 텐데 이런 작품들이 만들어질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 결국은 영화 산업의 숨통을 스스로 조이는 행위라다고 생각합니다.


3. 캐릭터성에 관한 문제는 사실 개인의 호불호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애초에 산업영화들은 전부 플롯 중심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캐릭터 탐구가 주가 되는 캐릭터 중심의 이야기는 성공하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캐릭터 탐구가 아니더라도 최근에 나오는 작품들을 보면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낼 정도의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마블 영웅들처럼 원작이 존재하는 인물들 외에 영화관을 나선 이후에도 흥얼거리는 영화 ost들처럼 기억에 남는 인물은 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예전의 에얼리언, 터미네이터, 인디아나 존스, 네오, 잭 스패로우 같이 하나의 영화 프랜차이즈를 만들 수 있는 캐릭터는 과연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요?
단순히 우리가 응원하고 싶고, 맘에 드는 '주인공 같은' 인물을 만들어내는 게 다가 아닙니다.
영화 제목이 아니라 인물 이름만 말해도 누군지 알고, 할로윈이 되면 다들 코스튬을 만드는, 말하자면 영화라는 매체를 벗어나서도 숨을 쉴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캐릭터 창조의 최종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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