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감상후기(노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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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7 18:08:42
헐리웃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로 저는 일단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가 떠오르는데요, 예전에는 어떤 배역을 연기해도 그 배역에 고스란히 녹아난다는 평을 듣던 드 니로와 어떤 배역을 맡아도 파치노화 시킨다는 두 배우는 비록 영화에 같이 출연한적이 별로 없지만, 그 대표적인 작품인 히트에서는 대단한 명승부를 보여주었죠.
우리나라에도 이런 연기 본좌로 추앙받을만한 대배우가 누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비록 개인차와 호불호가 있겠으나 송강호씨가 먼저 떠오르는것은 저만이 아닐것으로 믿습니다. 예전의 송강호가 마치 드니로처럼, 완전히 배역에 녹아들어 감탄을 자아냈다면,(물론 아주 초기의 이야기입니다만, '나쁜 영화'에 송강호씨가 출연했었고 스쳐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카메라에 비춰졌었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분들도 제법 될겁니다. 저도 훗날에서야 알았으니까요. 게다가 초록물고기에서는 정말 동네 조폭 그 자체였었죠) 이제는 어떤 배역을 맡아도 '내가 송강호다' 라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어느덧 단독 주연에 올라선 이후 모든 연기가 웬지 송강호스럽다는 평을 심심치 않게 들으면서도, 그 배역은 송강호 아니면 못한다는 평가가 지배적인걸 보면 우리나라에 제2의 드 니로나 파치노가 바로 떠오르지는 않지만 어쩌면 송강호씨가 그 두 대배우의 영역에 견줄만하게 발을 걸쳐놓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놈놈놈에서도 그랬듯이 송강호 배우 하면 사람들은 어느정도의 코믹한 모습과 사람냄새 나는 모습, 그리고 그 속에 녹아든 무시무시한 생활 연기를 기대하게 되는데요, 이 밀정에서는 그동안 익숙했던 송강호식 모습이 얼마간 보이긴 합니다만 조금 다른 모습을 띕니다.
영화 상영되는 내내 극장에서 폭소가 터져나오거나 수군수군대는 소리는 전혀 없었습니다. 이는 배우들이 너무 힘을 준 탓도 아니요, 분위기가 너무 무거운 탓도 아닙니다. 마치 타란티노 영화에서 장난기만 덜어낸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냥 상황에 몰입하게 만드는 감독의 솜씨가 이제 경지에 올랐음을 느끼게 합니다.
예전작 놈놈놈처럼 스케일 있는 액션 활극을 기대하시면 안됩니다. 영화는 상당한 부분 로케이션보다는 정교한 세트에서 인물간의 심리묘사에 큰 부분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토리는 별로 어렵거나 큰 반전이 기다리거나 하는 일 없이 우직하게 나아가는데, 그 중간 중간에 비로소 송강호라는 배우의 육십갑자 내공이 빛을 발합니다. 영화가 끝나고 책상에 앉은 지금도 뇌리에 남은, '와, 저건 송강호밖에 못해!' 하는 씬이 존재하며 작금의 울나라 분위기와 묘하게 맞물려 보는 이의 감정을 자극합니다.
물론 이 영화는 픽션이며 풍자적인 요소는 거의 없고 오히려 그 시대에 살아남아야만 했던 여러 인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할 뿐입니다. 조국을 잃었지만 시대에 순응하여 일신의 목숨을 부지하였으면 살아남은 것인지, 독립운동을 하다 목숨을 잃었지만 끝까지 한국인으로 살고저 했던 사람들이 살아남은것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일이겠지요.
제 느낌에는 관객들보다는 평론가들이 더 좋아할 영화가 아닌가 싶고, 영화 후반부쯤 가면 차마 티비에서는 세세히 묘사하지 못했던 당시 독립투사들이 겪었던 고초들이 비중있게 다뤄지므로, 맘의 준비는 하고 가시는 것이 나을듯 합니다.
그래도 15세 관람가이므로 당시의 현실을 잘 알지 못했던, 그리고 교과서의 국정화로 인해 어찌 다뤄질지 모를 당시의 역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한번쯤 관람을 권하고 싶기도 합니다. 별점은 배우들의 연기에 큰 점수를 줘서 8점 주겠습니다.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영화는 아니지만 그간 정면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역사를 담아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어쨌든 추석 극장가의 승자는 이 영화가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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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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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기준엔 올해 나온 영화중 가장 재밌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