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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 같은 우연이 탄생시킨 인류의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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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7 04:32:46

우리의 몸은 약 60~100조 개의 세포로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몸속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의 수는 이보다 많습니다. 한동안 몸속의 박테리아 수가 체세포 수의 10배가량이라고 알려지기도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닐지 몰라도 우리 몸에는 박테리아가 세포보다 많은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입 속에도 많은 박테리아가 살고 있는데, 우리 몸에 해롭거나 불필요한 박테리아가 나타나면 침 안에 들어있는 라이소자임(lysozyme)이라는 효소가 박테리아의 세포벽을 파괴함으로써 감염을 막습니다. 동물들이 상처가 나면 혀로 상처를 핥고, 우리 조상들이 상처에 침을 바르던 이유도 본능이나 경험으로 침이 닿으면 상처가 빨리 아문다고 느꼈기 때문일 겁니다. 라이소자임은 콧물과 눈물에도 들어있으며 세균의 세포벽을 용해시키는 성질 때문에 항염제로 널리 사용되며 감기약에도 염화라이소자임이라는 이름으로 배합되고 있습니다.


라이소자임은 스코틀랜드의 세균학자인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에 의하여 발견되었습니다. 플레밍은 25살에 런던의 세인트메리 병원 의과대학에서 기초의사학위를 받고 3년 후 영국의 의사 자격을 따지만, 의사로 개업하지 않고 스승인 앨므로스 라이트(Almroth Wright) 교수의 영향을 받아 연구를 계속하기로 작정합니다. 플레밍은 1차 대전 중에 프랑스 야전병원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던 때를 제외하고는 모든 커리어를 세인트메리 병원에서 보냈습니다.




플레밍은 나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평범한 연구자였습니다. 하지만 플레밍이 동료들은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이는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라 괴짜라는 의미에서입니다. 플레밍은 1차 대전에서 참혹한 부상자를 치료하려 애썼으나 대부분 실패했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 본인의 능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획기적인 부상 치료물질을 개발해서 수백만의 목숨을 구하겠다는 신념(또는 망상)에 사로잡혔습니다. 플레밍은 동료 과학자들이 실험실을 깔끔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과 달리 50종에 가까운 살아있는 배양균들을 혹시라도 이상한 것이 자라면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실험실 작업대에 널어놓고 배양하는 것을 습관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마흔 살이 되던 해 플레밍은 감기를 앓고 있었는데, 그때 자신의 코에서 나온 점액에다 특정 박테리아를 배양해 보았습니다. 2주 후에 그는 배양접시를 씻던 도중에 자신의 점액과 가까운 곳에 낯설게 보이는 박테리아들이 분해되는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분해된 박테리아는 플레밍이 배양한 것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유입된 오염물질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는 자신이 첨가한 코의 점액 속에는 바로 주위에 있는 미생물을 분해시킬 수 있는 물질이 들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눈물과 계란 흰자에 해당 박테리아를 배양할 때에도 유사한 결과를 발견한 플레밍은 그 점액 속에서 어떤 항박테리아성 병원체의 존재를 추론해 내었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작성하여 왕립 학술원에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에 플레밍은 라이소자임을 정제해 내는데 성공했고 과학계에 그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라이소자임의 항생 능력은 플레밍이 기대했던 것만큼 강하지는 않았습니다. 라이소자임을 치료제로 응용하려는 플레밍의 후속연구는 실패했으나 라이소자임은 이후에 동료 학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20세기 소독약 및 방부외과 기술에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라이소자임을 발견하고 7년이 지난 1928년 플레밍은 훗날 자신을 세계적인 명사의 반열에 올려놓게 하는 결정적인 발견을 하게 됩니다. 박테리아를 죽이는 치료물질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던 어느 날 플레밍은 며칠간의 휴가를 마치고 돌아와서 배양균들을 널어놓은 실험실 작업대를 살펴봤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염성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는 접시 중 하나가 드문드문 깨끗해진 것과 거기에서 솜털 형태의 푸른색 곰팡이(페니실륨 노타툼, Penicillium notatum)가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플레밍은 그 곰팡이로부터 추출한 액체에 페니실린((Penicillin)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은 놀랄만한 우연의 일치를 넘어 전무후무한 기적에 의존한 것이었습니다.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래에 나열하는 모든 조합의 결과였습니다.


1. 플레밍은 성격이 사교적이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편안히 실험실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는 실험실에서 세균을 배양하는 학자에게 치명적인 결격사유일 수 있습니다.


2. 열대성 곰팡이를 연구하던 다른 실험실에서 떠다니던 아주 희귀한 공팡이종의 포자가 플레밍의 실험실에 들어와 포도상구균을 배양하고 있던 한 접시를 오염시켰습니다.


3. 대부분의 푸른곰팡이는 페니실린을 만들지 못하고 오직 페니실륨 노타툼(Penicillium notatum)만이 페니실린을 만드는데, 이 희귀하고 특별한 곰팡이는 마침 아래층의 라투슈 교수 실험실에 있었습니다.


4. 휴가 기간에도 플레밍은 배양접시를 작업대 위에 (오염이 가능하도록) 열어두었습니다.


5. 페니실린은 활동적으로 분열하는 세포에만 영향을 주는데 당시에 날씨는 추위가 풀림으로써 알맞은 온도가 형성되어 페니실린을 형성하는 조건인 박테리아가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6. 플레밍이 휴가에 돌아와서 접시를 봤을 때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접시의 배양균을 버렸지만 우연히 접시를 세척하지 않았습니다.


7. 동료 과학자가 휴가에서 돌아온 플레밍과 환담하기 위해 실험실에 들어왔는데, 플레밍은 그 접시가 동료의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었습니다.


8. 동료 과학자의 지적에 플레밍은 의문에 사로잡혀 접시를 집어 들었고 그때서야 곰팡이가 주변의 세균을 없애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9. 실제로 플레밍이 관찰한 포도상구균의 분해는 페니실린 자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페니실린의 영향으로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생길 수 있는 자기 분해 작용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플레밍이 유명해진 후에 많은 과학자들이 플레밍의 실험을 재현하려 했으나 수십년 동안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플레밍은 자신의 관찰 결과를 설명하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이후 몇 해 동안 일부 학자들이 플레밍이 논문에 관심을 가지고 후속 논문을 발표했지만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플레밍이 발견한 것은 극히 소수의 세균에서만 일어나는 페니실린의 세균 분해 현상이었지, 실제 치료에 쓰일 수 있는 페니실린의 세균 성장 억제 효과는 아니었습니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이 혈액 속에서 약 1시간 30분 만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몇 가지 이유를 들어 그것이 치료제나 살균제로 쓸모없는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플레밍은 페니실린의 항생물질로서의 잠재성을 추적하지 않은 채, 다른 분야로 눈을 돌려 연구를 계속했고 그가 60살이 될 때까지 어떤 의미 있는 연구결과도 추가로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호주 출신의 병리학자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 1898~1968)와 홀로코스트를 피하기 위해 영국으로 탈출한 독일출신 화학자 언스트 체인(Ernst Chain, 1906년~1979)은 1938년에 옥스퍼드에서 항균 물질을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2차 대전이 발발하여 수많은 부상병들은 감염과 전염에 의해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플로리와 체인은 라이소자임의 구조를 연구하던 중에 1929년에 발표된 플레밍의 논문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즉시 세인트 메리 병원에 있는 플레밍의 실험실에서 12년 동안 세심하게 유지되어 오던 페니실린 곰팡이의 배양균을 얻었습니다. 플레밍은 자신이 발견한 페니실린의 더 많은 표본을 정제하는 것을 오래 전에 포기했지만 배양균을 꼼꼼하고 철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1939년 플로리와 체인은 미국의 록펠러 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아 페니실린 연구에 착수했고, 반년 동안의 노력 끝에 페니실린을 정제하여 결정을 얻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쥐와 같은 동물에 실험을 거듭해 1940년에 페니실린이 강력한 감염 치료 효과를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듬해인 1941년 패혈증으로 회복 가능성이 전혀 없는 환자를 대상으로 최초의 임상실험이 실시되었습니다. 환자의 증세는 완전한 호전을 보였지만 투약 엿새 만에 페니실린이 떨어지는 바람에 불운하게 사망했습니다. 이 임상시험은 항생제로서의 페니실린의 위력을 사실을 세상에 확실하게 알린 사건이었습니다.


플로리와 체인은 미국 정부에게 백만 달러를 추가로 지원받았고, 다섯 군데의 대규모 제약회사가 수백 명의 연구원을 동원해 연합국의 군대를 위해 충분한 페니실린을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 만에 수백만 명의 부상병을 치료하기에 충분한 양의 페니실린이 생산되었습니다. 1944년부터는 민간에도 사용돼 수많은 전염병 환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전쟁의 비참함에 억눌려 있던 영국 정부와 언론은 이 새로운 기적의 약에 얽힌 이야기를 과장을 보태 선전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의 플로리와 체인에게 기자들이 달려갔지만 그들은 기자들을 외면하며, 국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통 받는 인류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페니실린을 만든 것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열정 때문에 연구를 계속했다고 모든 언론에 밝혔습니다. 반면에 플레밍을 찾아간 기자들은 그가 일찍부터 인류를 구원할 목적으로 치료약을 개발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명 받았습니다. 그리고 별다른 연구 활동을 하지 않던 플레밍은 자신을 찾아온 모든 기자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당시에 세인트 메리 병원은 국민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사설기관이었고, 자신들의 병원에서 시작된 연구가 인류에게 대단히 큰 공헌을 한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세인트 메리 병원장은 방송과 인터뷰에서 페니실린이 인류를 구한 데는 플레밍의 역할이 가장 크다고 주장했고, 같은 내용을 각종 신문에 기고했습니다.


대중과 언론 모두는 까칠한 체인과 플로리가 아니라 친근한 플레밍을 우상화하는데 열을 올렸고, 그의 두 번째 부인은 그러한 과대광고를 조장하는 탐욕을 보였습니다. 플레밍은 동료 학자들에게 계속 외면 받다가 열두 번의 시도 끝에 1943년에 왕립학회 회원으로 뽑혔고, 그 이듬해 기사작위를 받았고, 그 이듬해인 1945년에는 체인과 플로리와 함께 노벨 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체인과 플로리는 플레밍의 공동수상을 탐탁히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1949년 플로리와 체인을 포함한 옥스퍼드 팀은 플레밍의 업적을 “행운에 의해 페니실륨 노타툼이 실험 접시에 떨어져서 생긴 변화를 인지하고 그것을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후에 타인들이 사용 가능하도록 곰팡이를 보관해 두었다는 것 정도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학자들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플레밍의 말년은 영광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10년동안 세계를 여행하면서 15개국의 시민권을 받았고, 140개가 넘는 온갖 명예와 상을 긁어모았습니다. 심지어는 훗날 달의 분화구 이름을 플레밍이라고 붙이면서 그의 명성은 우주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플로리와 체인은 오직 과학자들 사이에서만 알려진 이름인데 반해, 자신의 코를 풀어 실험에 사용하고 배양접시가 빈번이 오염을 당하도록 실험실을 지저분하게 사용하던 괴짜 스코틀랜드 과학자는 인류의 영웅으로 모두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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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16-07-07 05:46:56

우연이건 무엇인든간에 저는 플레밍의 발견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보고, 그의 신념이 아주 멋지게 생각되는데 학자들의 평은 아주 많이 상반되네요. 통념에 어긋나는 지독한 괴짜였기 때문이었나요?

Updated at 2016-07-07 08:00:21

아니요. 데이먼베일리님이 보라색으로 쓰신 내용들은 그냥 "과학자 / 연구자로써는 해서는 안되는 행동" 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이고 뭐고를 떠나서 세균학자가 실험 플레이트를 따로 보존하지 않고 그냥 대충 아무때나 던져 놓고 아무나 실험실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거 자체가 그냥 미친짓이에요. 생물 화학쪽 같이 실험 조건을 온전히 지켜야 하는 분야에서 저런 행동은 그냥 상식이 없는 사람인거에요.


요리사가 요리하다가 재료 냅두고 다른데가서 컴퓨터하고 화장실 갔다가 손도 안씼고 그냥 다시 요리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요리를 했는데 괜찮은 맛이 나온거에요. 그럴 경우 맛이 좋으니 요리사 잘했네 라고 하면 안되는것과 똑같은거에요.
WR
2016-07-07 13:19:24

그리고 학자들은 인류를 구하기 위한 신념으로 연구 하는 것보다 과학에 대한 열정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2016-07-07 13:23:17

개인적으로는 그런 시선에 더 공감이 갑니다.

애초에 지구를 구하기 위한 그런 실험을 하는것보단 내 앞에 있는 실험들을 차근차근 밟아가다보면 언젠간 퍼즐 조각이 이어지겠지 라는 마음이 더 중요한것 같습니다.
2016-07-07 19:11:46

공학자에 대한 시선도 별반 다르지 않으신가요? 그러시다면 그 생각도 궁금하네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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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8 00:55:30

공학자에 대한 시선은 전혀 다르지요. 그게 과학과 공학의 본질적인 차이입니다. 과학은 가치중립적이고 공학은 가치지향적이라는 차이입니다. 원론적으로는 공학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과학은 자연 속의 진리를 찾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Updated at 2016-07-07 19:13:47

네, 통념에 어긋나는 사람이어서 그런 표현을 하셨군요. 추가적인 설명 덕에 어떤 말인지 더 잘 이해했습니다. 제가 너무 결과론적인 것만 봤네요

2016-07-07 05:53:04

와 정신없이 읽었네요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WR
2016-07-07 13:19:38

고맙습니다.

2016-07-07 06:03:26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

역시 '운좋은 놈'은 아무도 못이기나봅니다. ^^

WR
2016-07-07 13:20:28

고맙습니다. 그러한 운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것도 큰 능력입니다.

2016-07-07 07:54:07

와아.. 제가 알고 있던 사실은 적당히 미화된 내용이었군요. 저런 일이 있었다는 건 전혀 몰랐네요. 체인과 플로리는 상당히 괴로웠을텐데 플레밍과 별다른 갈등이 없었던 것 같아 정말 대단합니다.

WR
2016-07-07 13:23:15

체인과 플로리는 어쨌든 플레밍의 도움을 받았기에 엄청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특별히 괴로웠다는 기록은 없고 단지 플레밍이 노벨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들에게 달려오는 기자에게 냉담했을 정도면 보통 분들은 아닙니다. 현대 과학자들은 절대 그런 행동 안합니다.

2016-07-07 07:56:54

보라색 첫줄 읽는순간 '어떻게 저런 사람이 항생제의 대명사로 남았지' 란 생각이 들었네요.

속된 말로 미친거 아닌가요;;; 세균학자란 사람이 플레이트를 그냥 공기중에 냅두다니;;;
WR
2016-07-07 13:31:06

플레밍은 수많은 연설에서 자신은 배양균에 관련한 복합적인 요인을 세밀하게 파악하고 있었고, 수십년동안 실험대의 배양균들 중에 기준 상태와 다른 것이 있는지 엄밀히 관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관찰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세균학자로서 대상을 추적했다고 말했습니다. 플로리와 체인은 플레밍의 연설을 과장이라고 폄하했지만 플레밍이 날카로운 관찰자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플레밍은 평생 두번의 큰 발견을 했습니다. 라이소자임을 발견했을 때에는 자신에 콧물에 분해되기에 딱 맞은 박테리아가 찾아왔고, 페니실린을 발견했을 때에는 포도상구균을 분해하기에 딱 알맞은 곰팡이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플레이트를 공기중에 냅둔 덕분에 결과적으로 2차대전에서 수십~수백만명이 목숨을 거졌으니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은 분임은 확실합니다.

2016-07-07 13:38:37

결론은 운빨인가요...

통찰력이 없다면 운빨을 받아서 그걸 결과물로 만드는것 역시 어렵다라고 생각은 듭니다만 뭐가 기묘한 느낌은 지울 수 없네요.
WR
2016-07-07 13:48:42

박테리오파지 연구로 유명한 막스 델브뤼크는 그런 현상을 'principle of limited sloppiness'라고 명명했습니다.  예상치못한 것을 발견하려면 부주의할 필요가 있는데, 너무 부주의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구글에서 그 단어를 검색하면 재미있는 이야기와 논문들도 나옵니다. 예를 들면

http://www.fasebj.org/content/23/1/7.citation


2016-07-08 08:28:25


아무래도 매니아 분들이 보기엔

이쪽이 좀 더 편하실 듯 하여 링크 하나 남깁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520030&cid=42433&categoryId=42433&expCategoryId=42433

WR
2016-07-08 15:43:23

그렇네요. 고맙습니다~

2016-07-07 08:34:13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WR
2016-07-07 13:31:21

고맙습니다.

2016-07-07 10:49:07

이번 내용은 몰랐던 내용인데다 재미있기까지 했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WR
2016-07-07 13:31:35

네^^ 고맙습니다.

2016-07-07 13:15:00

의외로 이런 일들이 흔하죠 역사에선.

WR
2016-07-07 13:31:48

그렇군요~

2016-07-07 13:36:21

그래도 그 우연덕에 가능성을 찾아낸 것이니 공동수상을 하는게 맞는것 같긴 해요

WR
2016-07-07 13:40:48

페니실린이 본격적으로 부상병에게 투입된지 2년만에 연구자들이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만큼 중요한 발견이었으니까요. 최초 발견자와 공동개발자에게 함께 노벨상을 주는 경우 발견자와 공동개발자가 절반씩 상금을 나눠갖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페니실린의 경우는 플로리와 체인의 공로가 워낙 컸기 때문에 셋이서 삼분의 일씩 나눠가졌습니다. 그러니까 노벨상 위원회는 플로리와 체인의 공로가 플레밍보다 두배 가량 크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Updated at 2016-07-07 14:12:22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금분배인거 같습니다. 부연설명 감사드립니다.

2016-07-07 13:55:59

정말 빠져들듯 재밌게 읽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WR
2016-07-07 14:03:39

말씀 감사합니다^^

2016-07-09 01:13:19

정말 흥미로운 내용이네요 글을 재밌게 잘 쓰셔서 읽기가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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