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에 걸려서 병원치료를 받아본 사람으로서, 우울증에 대처하는 방법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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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2 13:29:56
5. 뇌 MRI를 찍어 본 이후, 정말 심각하게 가정의학과 의사인 매형에게 상담을 했는데, 당장 정신과로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듣고 안산의 한 개인 정신과를 찾아갔습니다. 몇가지 질문이 오고간 후 의사선생님은 "이건 전형적인 우울증입니다."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괜찮지 않은 상황을 괜찮다고 계속 자기 암시를 하고, 참고 넘기려는 그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몇가지 심리테스트나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일주일 후 의사선생님은 총 치료에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뭐 이런저런 증상이나 해결책을 이야기 듣긴 했는데 2년이라는 시간은 정말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어요. 이런 두통을 2년이나 더 겪어야 한다니...라는 생각에 밀려오는 짜증은 정말... 여튼 거의 매주 병원에서 약을 타서 먹기 시작했지만, 7시 출근 - 1시퇴근의 삶이 바뀌지 않아서 나아지진 않고 두통은 더 심해지고 나중엔 구토가 나고 길바닥에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단순히 머리가 아프고 몸이 아픈 것 뿐만 아니라, 일을 할 때 정상적일 때의 능력의 1/10도 못 발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예전이면 5분 걸릴 일을 지금은 1시간이 지나도 못 하게 됩니다. 그건 다시 상사나 주위 사람들과의 마찰로, 그리고 스트레스로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고, 명백하게 자신의 잘못이기 때문에 누굴 탓할 수 가 없어 자신을 더 압박하게 됩니다. 이후 몇달을 더 못 버티고 회사를 옮기고 약물치료를 계속했습니다.
6. 조금 여유로운 회사로 옮기고 충분히 수면을 취하면서 2~3개월이 지나자 굉장히 호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우선 구토는 완전히 사라졌고 두통도 엄청나게 호전되었지요. 엄청나게 타이트한 상황이 아니면 두통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죠. 2년이 걸릴 것이라는 의사의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졌죠. 그래서 한 주 병원을르고 약을 먹지 않았고 그 다음주에 가자, 의사가 정색을 하는 겁니다. 절대 이러시면 안된다고, XX씨는 우울증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다고. 2년을 약을 먹고 치료해야 한다는 건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명예를 걸고 진단을 한 거라고. 보이는 증상은 정말로 빙산의 일각이라고. 보이는 증상보다 훨씬 더 뿌리깊게 박히는 게 우울증이라고... 이런 이야기를 굉장히 심각하게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그 이후로는 1주건 2주건 의사선생님이 찾아오라고 하는 주기를 어긴 적이 없습니다.
7. 그렇게 첫 진단을 받은 후 2년이 되었을 즈음, 청첩장을 찍은 후 파혼이라는 사건을 겪자 다시 두통-구토-실신 콤보를 겪게 되고, 다시 3년의 진단을 받고 전보다 더 독한 약을 먹게 됩니다. 다행이 3년을 잘 먹었고, 어느 정도 저를 컨트롤할 수 있는 상황과 능력이 되었기에 완치판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울증을 앓는 동안 회사에 적응을 잘 못해서 5년동안 6군데의 회사를 옮기면서,(사실은 속된 말로 짤린거죠;;;) 겨우겨우 버텨내긴 했습니다만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8. 이 글의 결론으로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느끼셨다든지, 우울증의 증상이 느껴진다고 생각되시면,
(1) 바로 병원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큰 병원보다는 출퇴근시나 점심시간에도 갈 수 있는 그런 개인 병원을 추천합니다.
(2) 햇볓을 많이 쐬고, 운동 및 활동을 늘리시길 바랍니다.(굉장히 중요합니다)
(3) (저는 술담배를 안 했지만)술이나 담배는 되도록이면 줄이시는 게 좋습니다.
(4)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수 없는 일을 냉정하게 판단해서 불가능한 일에 너무 집착하면 안됩니다. 너무 자책하고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다보면 정말 돌이킬 수 없이 정신이 피폐해집니다.
9.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우울증이지만, 한편으로는 '완치'가 가능한 병이기도 합니다. 절대 증상을 가볍게 넘기시지 마시고, 지금 병을 겪고 있으시다면 절대로 완치에 대한 희망을 버리시지 말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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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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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울증을 의지박약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제일 힘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