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크기와 나이
8년쯤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초등학교 입학한 아들이 지구본을 사달라고 해서 집 근처에 있는 대형 서점에 갔습니다. 제가 지름 32cm 표준형 지구본을 사려는 순간, 아들은 바로 그 옆에 있는 지름 45cm는 충분히 돼 보이는 큰 지구본에 매료된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대형 지구본은 지형 지구본 또는 3D 지구본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산맥과 산 같은 지상 지형은 물론 해령과 해구 등 해저지형의 다양한 모습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아래 사진 참조)
지형 지구본은 그 값도 표준형 지구본보다 말도 안 되게 비쌌습니다. 저는 아들을 설득한 후 값싼 표준형 지구본을 샀습니다. 제가 아들을 설득한 논리는 금전적인 것보다 지형 지구본의 지구에 대한 묘사가 터무니없이 과장됐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구의 지름은 약 12,800km인데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높이가 9km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지구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는 지구의 지름의 1450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따라서 지름 45cm의 지구본을 기준으로 하면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는 고작 0.3 밀리미터 정도로 표현되어야 하고, 따라서 지상의 모든 지형도 높이 0.3 밀리미터 미만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바다의 깊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형지구본은 높낮이를 수십 배 과장한 것이므로 공정한 지도의 자격에 미달된다는 것이고, 올바른 높낮이는 표준형 지구본에 색깔로 표시되었다는 것이 저의 논리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생에게 논리를 사용한 억지를 쓴 것도 같지만, 어린 아들은 이미 이러한 저에 아주 익숙했기 때문에 순순히 물러섰습니다. 제가 갑자기 옛날의 일화를 가져온 이유는 우리가 하늘은 높고 바다는 깊다고 강조하기에는 지구의 크기가 너무나도 크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대기권의 전체 공기는 지구의 중력 작용에 따라 99%이상이 지상 32km 이내에 밀집되어 있습니다. 대류권과 성층권을 합치면 지상 60km 까지 이어지는데, 이를 지름 32cm 표준형 지구본에 표현하면 얇은 비닐로 타이트하게 코팅한 두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대기권도 지구본에 얇은 코팅이나 니스 칠 정도에 불과합니다.
지구의 크기를 쉽게 기억하는 방법은 둘레가 4만km라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지구의 둘레가 딱 4만km인가하고 물으신다면 그게 바로 미터법의 최초 정의였다고 답하겠습니다. 미터법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기에 도입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만 수만 개의 도량단위가 쓰이고 있었고, 전 세계적으로는 수십만 개의 도량 단위가 난립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에 대해 프랑스 과학원은 지구는 모두에게 공통된 터전이므로 지구를 표준으로 하는 도량단위를 개발하는 것만이 도량 단위의 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구 둘레의 4천만 분의 1을 새로운 단위 미터로 하는 미터법을 국가 표준으로 할 것을 프랑스는 1799년에 법령으로 공표했습니다. 이것이 미터법의 기원입니다. 참고로 현대의 1미터의 정의는 훨씬 정교해져서, 1미터는 빛이 진공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직선 경로의 길이로 정의됩니다.
그러면 지구의 나이는 어떻게 될까요? 1650 이후 약 100년 동안 아일랜드의 제임스 어셔 대주교가 우주 창조론이 교회의 지지를 받아 절대 진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셔 대주교는 구약성서의 기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유물을 검토한 결과 우주와 지구는 기원전 4004년 10월 24일 오전 9시에 창조되었다고 그의 책에서 주장했습니다. 그 즈음에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도 지구가 기원전 3993년에 탄생했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성서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지구의 탄생을 이해하는 유일한 정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구의 나이 논쟁은 핼리 혜성으로 유명한 영국의 과학자 에드먼드 핼리(1656~1742)가 바다의 염분 축적 비율을 계산해 지구의 나이를 환산하는 방법을 제안함으로서 뜨겁게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핼리의 제안을 받아들인 영국의 지질학자 리드는 바닷물에 유입되는 염소와 황산의 양을 추정하여 지구가 2억년 정도의 나이를 가지는 것으로 추정했고, 마찬가지로 영국의 지질학자 졸리는 소듐의 농도를 이용하여 지구의 나이가 1억년 정도라는 결론에 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지구의 나이가 어셔 대주교의 생각보다 훨씬 길다는 것을 보여준 중요한 시도였습니다.
지구 나이에 대한 열역학적 접근을 한 가장 유명한 과학자는 윌리엄 톰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켈빈(Kelvin) 경이었습니다. 켈빈은 1907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600편이 넘는 논문과 70건의 특허를 등록해서 부와 명성을 모두 얻었던 과학자입니다. 빅토리아 시대 가장 뛰어난 과학자로 꼽히던 켈빈은 자연과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큰 명성을 얻었으나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19세기 후반 열역학을 과학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한 일이었습니다. 1848년 초 켈빈은 열은 일과 등가이며 온도의 변화는 일의 양에 해당한다는 생각에 기초하여 절대온도를 만들었습니다. 절대온도를 나타내는 K(켈빈)는 그를 기리는 단위입니다.
켈빈은 "지구가 뜨거운 돌덩어리였다가 천천히 식어 현재에 이른 것이라면 현재와 같이 식기 위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화산에서 분출되는 용암의 섭씨 약 1100도를 지구 형성시의 온도로 잡고, 암석들의 열전도율을 정밀하게 측정한 후 지하 깊숙한 석탄 광산 갱도에서 관찰된 온도 기울기로까지 지구가 식는데 필요한 시간을 구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1862년 켈빈은 지구 나이를 약 1억년 정도로 추정하였으며 당대의 과학자들도 감히 반론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1880년경에 암석의 열전도율이 훨씬 정밀하게 측정되었을 때, 켈빈은 지구의 나이를 새로운 종류의 열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약 2500만 년으로 새로 추정하였고, 다른 과학자들의 반론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켈빈의 추정은 현재 알려진 지구의 나이인 약 46억년과는 크게 차이나지만 지구의 핵과 방사성 원소 등 새로운 열원이 발견되었으므로 켈빈에 의하면 그 계산은 수정되어야 했습니다.
헬륨은 지구에서보다는 태양 스펙트럼에서 먼저 발견되었습니다. 1868년 개기일식 때, 인도에서 일식을 관찰하던 프랑스의 장센(1824~1907)은 태양의 스펙트럼에서 밝은 노란색 빛을 내는 새 원소를 발견하고,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이름을 따와 헬륨(helium)이라 명명하였습니다. 그 이후 램지(1852~1916)는 1895년에 우라늄 광석에 갇혀 있는 기체를 분리한 후, 그 기체가 당시에 믿고 있던 질소가 아니라 헬륨임을 입증했습니다. 1907년에는 영국의 물리학자 러더퍼드(1871~1937)에 의해 알파(α) 입자가 헬륨의 원자핵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러더퍼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실험물리학자로 꼽히는데, 방사성원소가 자발적으로 붕괴해 새로운 원소로 변환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것은 물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개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현대판 연금술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그는 그토록 작은 양의 물질에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으며, 지구가 뜨거운 이유도 그런 방사성 붕괴 때문이라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러더퍼드는 또한 방사능 연구에 사용되는 많은 중요한 개념들을 도입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방사성원소의 반감기(half life)일 것입니다. 러더퍼드는 주어진 양의 방사성 물질이 붕괴해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반감기로 정의했습니다. 이는 우라늄 등의 광물에서 현재 남아 있는 방사성 물질의 양과 반감기를 알면 거꾸로 그 광물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용융상태에서는 헬륨을 포함한 모든 기체가 공기 중으로 다 사라지지만 일단 광물이 되면 우라늄이 붕괴되면서 방출되는 모든 α입자(헬륨의 핵)는 광물 안에 갇히면서 광물 형성 이후의 경과 시간을 알려줄 수 있습니다. 러더퍼드는 램지가 연구하던 우라늄 광물이 놀랍게도 10억~15억 년 전 형성되었음을 알아냈습니다. 지구나이의 최솟값에 해당하는 이 수치는 켈빈의 잘못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지구 나이에 대한 러더퍼드의 역할은 여기까지였고, 볼트우드와 홈즈 같은 지질학자들이 러더퍼드의 연구 방법을 받아들여서 46억 년의 지구나이를 밝히는 여정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우라늄에는 반감기가 각각 45억년과 약 7억년인 우라늄 238과 우라늄 235가 99.3%, 0.7%로 존재하며, 일련의 붕괴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납 206과 납 207로 변환됩니다. 동일 시료에 대하여 우라늄 238/납 206, 우라늄 235/납 207 및 납 206/납 207의 세 개의 독립적인 모래시계를 적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1930년대 후반에 하버드 대학의 니어 교수는 이런 방법으로 20억 년에 이르는 우라늄광물의 나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1950년대 초에 칼텍의 패터슨 교수는 우라늄이나 납 광물이 아닌 일반 암석속의 적은 양의 납 시료 안에서 동위원소의 비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개발하였습니다. 마그마가 식어 화강암이 형성될 때 우라늄이 많이 함유된 지르콘 같은 광물이 만들어지며, 우라늄이 붕괴하면서 생성되는 납은 광물 내에 축적됩니다. 이때 우라늄과 납의 동위원소 비를 통하여 화강암 형성 후 경과된 시간을 알아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암석이나 광물에 대한 생성 연대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측정 시료와 동위원소의 비를 측정할 수 있는 질량분석기만 있으면 됩니다. 아폴로 우주선의 탑승객들이 가져온 달 암석의 시료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연대 측정되었고, 지질학자들이 지구의 나이를 약 46억년으로 확정지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때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가 태어났다는 결론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즉 지구의 나이와 태양계의 나이는 모두 약 46억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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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우리 딸에게 이야기해줄 지식을 또하나 배워갑니다. 매번 정말 감사핮니다^^